오점 많은 인간들을 축복한 하나님
철없던 요셉은 자신을 노예로 판 형들을 왜 용서했을까
기민석 침례신학대 구약학 교수
▲성경 속 인물들은 다 성숙한 것 같지만, 그렇지 만도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남자가 철이 들까? 성경의 인물들은 왠지 다 성숙한 인물들일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아브라함은 그의 아내 사라가 너무 예뻐서, 여행 다닐 때 아내가 아니라 여동생이라고 속이기 일쑤였다. 남자들이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아 갈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여동생이라고 속이면 자기는 안전했다. 하지만 사라는 두 번이나 낯선 남자들에게 끌려가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faithful)’ 조상이라 하지만 아내에게는 천하의 ‘믿지 못할(faithless)’ 남편이었다. 나쁜 것도 부전자전인지, 그의 아들 이삭도 자기의 아내를 여동생으로 속이고 다녔다. 그래서 그의 아내도 시어머니와 같은 위험을 당했다. 대대로 여자를 ‘엿 먹이는 집안’이다.
이삭의 아들 야곱은 늘 형을 이기고 싶어 안달이었지만, 힘으로는 형을 이기기 어려웠다. 형 에서는 씩씩하여 취미가 사냥이었지만, 야곱은 엄마 곁에서 요리하는 것이 장기였다. 게다가 잔머리를 잘 굴렸다. 마초들이 딱 싫어할 스타일이다. 어느 날 야곱은 배가 출출했던 형 앞에서 맛있는 팥죽을 끓여놓고는 ‘장자’ 권리를 달라고 황당한 거래를 제의했다. 더 어이가 없는 건 에서가 팥죽 한 그릇이 먹고 싶어 그냥 줘버린 것이다. 옆에서 여자들이 보고 있었다면 ‘저런 철없는 것들’하며 혀를 찼을 것이다.
이 셋은 성경의 첫 책인 창세기에 등장하는 유명한 족장들이다. 성경 속 남자들의 ‘흑 역사’는 이것 말고도 수 없이 많다. 큰 배를 지어 인류를 구원한 노아 할아버지는, 술을 드시면 벗으신다. 한번은 술 드시고 아랫도리까지 벗고 자는데, 그의 아들이 보고는 예의에 어긋난 실수를 하였다. 이로 인해 아버지로부터 무시무시한 저주를 듣게 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말도 꺼내기 싫다. 이 지면을 통해 몇 번 소개도 했거니와, ‘소귀에 경 읽기’를 3년간 하신 스승 예수가 안타까울 뿐이다. 그의 제자 하나는 결국 스승을 팔아 넘기기까지 했다. 대 사도이며 기독교 신학의 선구자인 바울도 한 성격 하는 사람이었다. 같이 일하기 정말 어려운 동료다. 오죽했으면 온화하기로 유명한 동역자 바나바와도 대판 싸우고 서로 헤어졌을까? 이 모두 성경에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성경은 그들의 인간적 오점을 감추지 않았다. 감추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런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에게 가문의 축복 약속을 거두지 않았다고 한다. 왜 그러셨을까? 이는 꽤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내비친다. 하나님의 축복은 인간적 장점에 의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의한다. 하나님이 꼼짝 못하시는 것이 있는데 바로 ‘약속’이다. 한번 하신 약속은 끝까지 지키신다. 인간이 신앙 영웅이 될 수는 없다. 모든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에만 달려있다는 것이다.
반면 창세기의 마지막 주연인 요셉은 좀 다르게 평가되어 왔다. 그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는 다르다. 철이 팍 들은 남자로 알려져 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자기를 유혹했던 여인을 당차게 뿌리쳤다는 일화로 인해, 요셉은 완벽에 가까운 성숙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요셉도 처음부터 그렇게 괜찮은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철이 없어서 큰 곤욕을 치렀었다. 그의 이야기를 보자.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아내가 둘이 있었다. 레아와 라헬인데, 야곱은 라헬을 더 사랑했다. 얄궂은 것은, 레아는 자식을 척척 잘 낳는데 라헬은 애를 갖지 못했다. 그러다가 늦게 간신히 라헬이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바로 요셉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어렵게 낳았으니 얼마나 요셉이 귀했을까?
그런데 그 집안에는 어떤 업보 같은 것이 하나 있다. ‘편애’와 이로 인한 형제간의 다툼이다. 야곱은 자기 형 에서와 사이가 좋지 못했는데, 그 배경에는 부모의 편애가 한몫 했다. 아버지는 남자다운 에서를 총애했고, 어머니는 안쓰러운 야곱이 더 눈에 밟혔다. 결국 큰 사고를 치고 두 형제는 결별 할 수밖에 없었다. 편애의 업보는 이제 야곱의 두 아내에게로 옮아갔다. 레아와 라헬은 사실 자매간인데, 남편 하나를 두고 서로 간에 아들 낳아주기 경쟁을 하게 되었다. 남편 야곱은 라헬을 편애했고, 자매간의 라이벌전은 치열해졌다. 자매들이 자기 여종들까지 남편과 동침을 시키는 바람에 야곱은 네 명의 여자들과 노역(?)을 해야만 했다. 덕분에 아들은 많이 낳았다.
그 가운데 태어난 요셉은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이 되었다. 그리고는 다시 편애의 업보가 아들들에게로 넘어갔다. “(야곱은) 늘그막에 요셉을 얻었으므로, 다른 아들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여서, 그에게 화려한 옷을 지어서 입혔다. 형들은 아버지가 그를 자기들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서 요셉을 미워하며, 그에게 말 한 마디도 다정스럽게 하는 법이 없었다.”(창세기 37:3-4) 야곱이 요셉에게만 입혀주었던 ‘화려한 옷’은 편애의 상징이다. 자신이 겪으면서 힘들어 했던 편애가 자기 아내들에게 그리고 자기 아들들에게 대물림 되었다. 안타깝다. 아프게 겪은 것을 자기 자식에게는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심지어 아들들을 일하도록 내 보내면서, 편애하는 아들 요셉은 보내지 않았다. 설상가상, 아들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정탐(?)하도록 요셉을 형들에게 보내기까지 했다. “네가 알고 있듯이, 너의 형들이 세겜 근처에서 양을 치지 않느냐? 내가 너를 너의 형들에게 좀 보내야겠다. 너의 형들이 잘 있는지, 양들도 잘 있는지를 가서 살펴보고, 나에게 와서 소식을 전해 다오.” (13-14)
게다가 어린 요셉은 눈치가 빵점이었다. 한번은 분위기는 아랑곳없이 자기 꿈 이야기를 철없이 떠벌렸다. “요셉이 형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꾼 꿈 이야기를 한 번 들어 보셔요. 우리가 밭에서 곡식단을 묶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내가 묶은 단이 우뚝 일어서고, 형들의 단이 나의 단을 둘러서서 절을 하였어요.’
형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우리의 왕이라도 될 성싶으냐? 정말로 네가 우리를 다스릴 참이냐?’ 형들은 그의 꿈과 그가 한 말 때문에 그를 더욱더 미워하였다.”(37:6-8)
단단히 벼르고 있다고 결국 감시하러 찾아온 요셉을 형들이 작당하여 이집트에 노예로 팔아버렸다. 아버지 야곱에게는 요셉이 짐승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거짓말을 하며, 피를 묻힌 요셉의 ‘화려한 옷’을 아버지에게 보였다. 편애의 상징이 찢기고 피 범벅이 되어 돌아왔다.
사람은 고생을 해야 좀 철이 드나 보다. 요셉은 타국에서 살면서 갖은 인생의 위기들을 겪었으며, 노예로 시작하여 이집트의 국무총리까지 되었다. 그 때, 그의 형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식량을 찾아 이집트로 왔다. 동생이 살아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이들은 다시 만나게 되었고, 형들은 겁에 질려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이때 요셉이 하였던, 한없이 철든 멘트를 들어보시라.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책하지도 마십시오. 형님들이 나를 이곳에 팔아 넘기긴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45:5)
형제이긴 하지만 인생 원수 앞에서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니 형님들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형님들을 모시고, 형님들의 자식들을 돌보겠습니다.” (50:20-21)
인간의 분투와는 아랑곳없이 역사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이라는 깊은 신앙 고백도 하는 요셉이 되었다. 한때 자기를 죽이려 했던 이들을 넓은 아량으로 품을 줄도 아는 대인배가 되었다. 삶의 질곡에서 살아남아 하늘도 어느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 성숙한 요셉의 이야기로 창세기는 끝을 맺는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하나있다.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가 살았지만 성공해서 국무총리까지 되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그대로 노예로 살고 있었다면 그래도 형들을 만나 용서할 수 있었을까?
<출처> 2018. 12. 8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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