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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충청남도

논산, 합시다, 러브, 드라마처럼…

by 혜강(惠江) 2018. 12. 8.

 

겨울 ‘햇살’ 눈부신 논산

 

합시다, 러브, 드라마처럼…

 

논산=글·사진 이귀전 기자

 

 

 연고가 없더라도 한 번은 듣게 된다. 친척이든 친구 등 주위에 입대를 하는 이들이 있다면 가장 많이 가는 곳이다. 그러기에 전국 어느 지역보다 선입견이 강한 곳이다.“그쪽 방향은 쳐다보기조차 싫다”며 떠올리는 것조차 싫어하는 이들부터 “주위가 이렇게 변했네”라며 한창 젊은 시절을 보낸 추억의 장소로 기억하는 이들까지 한 장소이지만 반응은 극과 극이다. 예전의 얘기만 아니다. 앞으로 2년이 지난 후 이런 기억을 떠올릴 이들이 매주 찾는다. 매주 월·화·목요일 충남 논산은 전국에서 오는 외지인들로 북적인다.

 월요일과 목요일은 훈련소에 입소하는 장병과 그들을 배웅하는 가족, 친구들로 화요일은 훈련을 마친 아들, 친구를 보러 온 이들로 붐빈다. 출장도 아니고 가족, 친지끼리 집을 떠나 다른 지역을 가는 것이지만, 여행이라고 하긴 애매하다. 여행으로 논산을 찾기보다 떠나보내고, 배웅하러 들르는 곳으로 여긴다. 이별의 장소, 고된 훈련의 장소로만 기억된다. 여기에 드라마의 가슴 벅찬 감동을 되새김질할 수 있는 추억의 장소가 입소 장병이 훈련을 받는 연무대 인근에 들어섰다. 바래지 않고 오랫동안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고택에서는 논산의 고즈넉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연무대로만 기억되는 논산에 새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

 

 

충남 논산 ‘선샤인 스튜디오’는 주위 모든 건물이 드라마에 나온 모습 그대로다. 드라마 야외 촬영을 위해 지은 세트장이기에 드라마의 감동을 해칠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합시다. 러브’… 오롯이 느끼는 감동

“가베 한 잔 하시겠소?”

입장하는 순간 말투가 바뀐다. 아니 바꿔야만 할 것 같다. 연인끼리라면 드라마에 나온 대사로 “합시다. 러브, 나랑, 나랑 같이”라는 말을 던지며 분위기를 잡아본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빠져들어 정주행한 이들이라면 그 감동을 다시 한 번 느껴 보고 싶어진다. 드라마에 대해서만 종일 얘기를 하고 싶지만,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곳에선 다르다.

 

 

한성전기 건물에 있는 유진 초이 집무실 책상

 

 

글로리 호텔 1층에 전시된 유진 초이와 고애신이 찍은 사진.

 

 전국에 ‘미스터 션샤인’을 촬영한 장소가 많지만, 논산 ‘선샤인 스튜디오’는 주위 모든 건물이 드라마에 나온 그 모습 그대로다. 드라마 야외 촬영을 위해 지은 세트장이기에 드라마의 감동을 해칠 괴리감은 거의 없다. 오롯이 드라마를 보면서 받은 그 느낌을 그대로 떠올릴 수 있는 곳이다. 드라마의 제목은 ‘sunshine’의 당시 발음표기인 ‘션샤인’을 썼지만, 스튜디오는 현재 발음 표기인 ‘선샤인’을 사용하고 있다. ‘선샤인 스튜디오’에서 눈에 띄는 곳은 쿠도 히나가 운영하는 ‘글로리호텔’이다. 호텔로 가기 전 만나는 담벼락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촬영지 전체 모습을 올려다볼 수 있다.

 등장인물들이 운명적 만남을 하고, 낭인들이 혈투를 벌이고,악역 ‘츠다’를 응징한 장소 홍예교가 눈에 들어온다. 주위로 구동매 등 낭인들이 걷던 진고개 일본인거리와 한옥, 일본식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스튜디오 반대편에 ‘대안문’이 보이지만, 그리 멀어 보이진 않는다. 눈길 가는 장소를 볼 때마다 드라마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세트장 전체를 보는 이 장소는 일종의 예고편이다.

 

 

 

선샤인 스튜디오에선 유진 초이, 고애신, 쿠도 히나 등 드라마 등장인물의 옷을 입고 인증샷을 남길 수 있다.

 

 드라마 본편에 몰입하려면 글로리호텔부터 시작해야 한다. 1층은 드라마에 나온 오르골, 유진 초이와 고애신이 찍은 사진, 쿠도 히나가 입은 옷 등 소품이 전시돼 있다. 드라마와 현실이 헷갈리기 시작한다. 드라마에 나온 소품인데, 마치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처럼 느껴진다.

 2층은 ‘가베(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있다. 카페 난간은 세트장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역할도 겸한다. 난간에서 내려보면 홍예교 옆으로 ‘불란셔 제빵소’가 보인다. 홍예교 아래로는 김희성이 ‘그대(고애신)를 위해 준비’한 전차도 있다. 전차의 모든 표를 구매한 김희성은 고애신에 “나만 듣고 싶었소. 그대의 얘기를”이라며 고애신과 짧은 전차 데이트를 즐기며 속마음을 얘기한다. 단 둘이 영화 같은 장면을 연출하긴 쉽지 않다. 다른 여행객들이 둘만 앉아 있게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전차에 올라탄 구동매처럼 말이다.

 글로리호텔에서 내려와 홍예교를 건너 ‘대안문’ 방향으로 향하면 드라마에 나온 배우들의 옷을 빌려 입을 수 있는 양품점이 있다. 원하는 옷을 빌려 유진 초이, 고애신, 쿠도 히나 등 등장인물로 변신해 어떤 포즈를 취해도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감초 역할을 한 해결사들이 차린 만물상 겸 흥신소 ‘해드리오’.

 

 홍예교 옆엔 고애신의 방과 칼잡이 구동매가 운영하던 화월루 등이 있다. 화월루 건너편으로 한성전기, 드라마에서 감초 역할을 한 해결사들이 차린 만물상 겸 흥신소 ‘해드리오’가 간판을 내걸고 있다. 해드리오 안엔 ‘편집장 김희성’ 명패가 놓인 책상이 한켠에 놓여 있다. 세트장은 그리 크지 않다. 모든 건물은 드라마 촬영에 최적화된 위치에 설치됐다. 한 바퀴를 둘러보는데 30∼40분이면 충분한 공간이지만, 실제 시간은 2∼3시간은 족히 잡아야 한다. 다른 지역에 있는 관광지로 개방된 촬영장이 그저 둘러보고 끝나지만, ‘선샤인 스튜디오’는 곳곳이 인증샷 장소다. 한성전기 건물에 있는 유진 초이 책상에 앉아 기념 촬영을 하려면 한동안의 기다림은 기본이다.

 나가는 길에도 쉽게 내보내질 않는다. 유진 초이가 고애신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기차와 그가 묻힌 한성 외국인 묘지 촬영지가 있다. 드라마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며 자연스레 대사 한 줄이 생각난다. ‘씨 유 어게인.’

 

 

‘선샤인 스튜디오’를 나와선 옛 군대 시절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서바이벌 체험관이다. 실감나는 음향과 함께 시가지에서 실제 전투를 벌이는 듯하다.

 

 서바이벌 체험장 옆으로는 한국전쟁이 끝난 195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영화 세트장도 있다. 서울 종로 일대를 재현했다. 정병희 한국관광공사 대전충남지사장은 “선샤인랜드는 단순한 드라마 촬영지가 아니라 한류와 첨단기술이 접목된 복합문화공간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고즈넉한 분위기에 빠져드는 고택

 

 전국에 많은 고택이 있지만, 논산 명재고택은 품고 있는 얘깃거리와 풍광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다. ‘선샤인 스튜디오’가 북적되는 곳이라면, 명재고택은 고즈넉한 분위기에 빠져들기 제격이다.

 명재고택에 대해 얘기하려면 조선시대 당쟁을 벌인 노론과 소론을 얘기 안 할 수 없다. 노론을 대표하는 인물이 송시열이라면 소론을 대표하는 인물은 성리학자 명재 윤증이다. 명재고택은 윤증의 아들과 손자가 지은 집이다. 실제 윤증이 거주했는지가 확실하지 않아 명재고택은 한자로 오래됐다는 의미의 ‘고택(古宅)’이 아닌 인연이 있는 옛집이라는 의미로 ‘고택(故宅)’으로 표기한다.

 

 

명재고택은 위엄을 살리는 솟을대문과 담이 없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정원을 지나면 바로 바깥주인이 거주한 사랑채가 나온다.

 

 명재고택 앞에 서면 고택이 뒤편 노성산과 어우러진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고택 지붕의 선과 노성산 봉우리들이 같이 너울을 치고 있다. 고택은 위엄을 살리는 솟을대문과 담이 없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정원을 지나면 바로 바깥주인이 거주한 사랑채가 나온다. 솟을대문과 담이 없는 건 당쟁의 결과다. 윤증이 소론을 대표하던 인물이었기에 고택을 오가는 사람들이 누군지 동태를 살피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고택 오른편에 공자를 기리는 사당 궐리사는 명재고택을 내려다보고 있다. 집권세력인 노론에서 지은 이 사당뿐 아니라 고택 옆의 향교 역시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항상 소론의 거두를 감시하는 노론의 눈초리가 있었을 것이다. 이에 감시에서 벗어나고자 대문과 담을 높이는 대신 아예 없애버렸다. 부끄러울 것 없으니, 당당히 개방해 누구든 받아들이겠다는 포용성을 보인 것이다.

 

 

명재고택 사랑채 누마루 창은 가로세로 비율이 16:9로 TV화면 비율과 같다.

 

 사랑채 앞에 들어서기 전 건물 오른편에 놓인 수백개의 장독이 눈에 들어온다. 가지런히 줄 맞춰 있는 모습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명재고택의 또 다른 매력은 사랑채에 있다. 사랑채 안에서 창을 활짝 열어 보는 바깥 풍광은 TV화면을 보는 듯하다. 사랑채 누마루 창문의 가로세로 비율은 16:9로 TV화면 비율과 같다. 유명 전자회사 임원이 사랑방에 머문 후 풍광과 창 비율을 보고 감탄을 했다고 한다.

 

 한옥을 얘기할 때 바깥 풍경을 집안으로 가져온다는 의미로 차경이란 말을 쓰는데, 사랑방 창에서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정면뿐 아니라 정사각형 형태의 옆 창문, 마루의 창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액자에 담긴 한 폭의 그림이다. 매일 달라지고, 계절별로 다른 모습을 담을 수 있으니 한 편의 자연 다큐멘터리가 생방송으로 방영되고 있는 것이다. 방문객들이 이 풍광을 담으려면 사랑채에서 숙박을 해야만 가능하다.

<출처> 2018. 12. 6 /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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