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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인천. 경기

수원 효원공원 일대와 나혜석 거리 산책

by 혜강(惠江) 2018. 12. 4.

 

 

수원 효원공원 일대와 나혜석 거리 산책

 

 

글 · 사진 남상학

 

 

 

 아침저녁으로 제법 싸늘한 기운이 돌면서 어느 새 초겨울에 접어든 기분이다. 수원으로 가벼운 나들이에 나섰다. 수원시청역에서 가까운 예술공원(야외음악당), 경기문화예술회관, 효원공원, 월화원, 공원 주위에 있는 나혜석 거리를 탐방하기로 했다.

 

 수원시청역 주변에는 3개의 넓은 공원이 있다. 수원시청 맞은편의 올림픽공원, 대각선의 인계예술공원(수원제1야외음악당) 그리고 경기문화의전당과 이어지는 효원공원이다. 올림픽공원과 인계예술공원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고 효원공원은 거기에 비하면 평지위주의 공원이다.

 

수원의 자랑, 인계예술공원 (수원제1야외음악당)

 

 

 

 지하철을 타고 분당선 수원시청 역 1번 출구로 나와서 7~8분 직진하면 먼저 인계예술공원에 닿는다. 수원제2야외음악당은 만석공원에 따로 있다. 수원시의 팔달구에 자리한 인계예술공원에 들어서니 공원 스피커에서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주변은 아파트 단지지만, 한 발짝 떨어진 이곳은 숲 속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든다. 잔디 광장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야외음악당이 나온다. 야외음악당은 인계예술공원에 백미다. 1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드넓게 펼쳐지는 잔디 광장의 어디에 앉아 있어도 공연을 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야외음악당 건물 내부에는 수원시립교향악단, 시립합창단의 전용연습실과 분장실 등이 있고 각 홀의 구조와 스피커가 조화를 이루어 잔디광장의 어디서나 최고의 음향을 느낄 수 있다. 1996년에는 한국 건축 문화 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야외음악당 앞으로 다소 경사가 있는 넓은 잔디밭 뒤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잘 조성되어 있고 군데군데 벤치가 놓여 잇어 한 바퀴 산책하며 휴식하기에도 좋다. 공원 중간에는 현충탑이 있고 전란에 목숨 바쳐 싸운 사람들을 기르기 위한 탑과 동상들이공원을 우두커니 지키고 있다. 

 

 

 

 

 

 

 

 

 

 

 

 

문화·예술의 복합 시설, 경기도문화의전당

 

 예술공원에서 육교를 건너면 경기도문화의전당이다. 경기도문화의 전당은 1991년 6월에 개관했다. 경기도 문화예술을 활성화시키고 도민에게 다양한 문화혜택을 제공하고자 건립되었다. 행복한대극장, 아늑한소극장을 비롯하여 꿈꾸는컨벤션센터‚ 신나는야외공연장‚ 빛나는갤러리, 소담한갤러리 등이 있다.

 

 이곳에서는 콘서트부터 연극, 뮤지컬, 발레, 클래식, 어린이 공연 등 퀄리티 높은 공연들이 관객들의 일상을 풍요롭게 채워 주고 있다.

 

 마침 소극장 무대에서는 합창뮤지컬 ‘오! 솔레미오!’를 더욱 탄탄한 스토리로 재구성한 세미뮤지컬 ‘SING! SING! SING!’과 서간도 지역의 항일 독립운동 기지 신흥무관학교를 배경으로 암흑의 시대를 지내면서도 우정, 신념을 지키고 숭고한 희생의 삶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항일무장투쟁 이야기를 생생하게 펼쳐낸 뮤지컬 ‘신흥무관학교’를 공연하고 있었다.

 

 

 

 

 

 

 

 

 

효(孝)를 테마로 한 수원 효원공원

 

 1994년 효(孝)를 상징하는 각종 기념물을 세워 조성하였다. 어머니상 등 어린이들에게 효에 대한 마음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조각상을 관람할 수 있다.

 

 

 

 

  잔디밭은 무료결혼식장으로도 활용된다. 각종 경기장을 갖춰 청소년들이 많이 찾는다. 1998년 7월 16일에는 청소년들을 위한 푸른쉼터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한편 공중화장실은 도내에서 가장 쾌적하고 아름다운 화장실로 손꼽힌다.

 

 1999년 6월, 자매도시 제주시를 상징하여 조성된 제주거리는 길이 160m, 너비 3m로 돌하르방과 제주탄생신화의 주인공인 설문대할망상·해녀상 등이 있고 제주도 전통초가 모형과 한라산 노루상·정낭 등이 설치되어 있다. 거리주변은 제주도 나무로 조성하였으며 길도 제주도의 돌로 포장하였다.

 

 공원 내에는 동물모형 토피어리가 있다. 토피어리는 자연 그대로의 식물을 자르고 다듬어 여러 가지 모형을 만드는 작품을 말한다. 2014년 조성한 토피어리원에는 공룡, 돌고래, 물고기, 거북이, 새, 오리, 꿩, 토끼, 고니, 여우, 악어 등 다양한 동물 모양의 토피어리가 흥미를 끈다. 향나무를 다듬어 동물의 형태을 만들었다.

 

 중앙광장으로 발길을 옮기자 오색 바람개비가 바람을 타고 돌고 있다. 여러 가지 색깔이 어울려  돌아가는 모습과 바람개비가 돌아가면서 내는 소리 등은 어린아이들에게는 색다른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복음성가의 음악소리를 따라가니 ‘아가페나눔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 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었다. 차량 앞 의자에는 20~30여 명의 노인들이 무료급식을 기다리고 있다.

 

 

 

 공원 서쪽으로는 중국 전통 정원 월화원이 있다. 규모 6026㎡: 1,820평의 월화원은 경기도와 중국 광동성의 우호협력 증진을 위해 경기도와 수원시가 2005년 건립했다. 중국 영남(남쪽)지역의 전통정원으로, 중국 명조말~청조 초기에 남아있는 민간의 정원 형식을 기초로 현대기술과 결합하여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정원은 산과 물, 각종 나무가 어우러진 것이 특징이다. 호수와 정자가 자연의 조화를 이루었다. 

 

 정문에는 문지기를 대신한 사자 한 쌍이 앉아 방문객을 맞이한다. 안으로 들어서면 마치 광동성의 어느 정원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든다. 정원 안쪽은 연못과 연회장 휴게실로 꾸며져 있다. 대나무가 많은 광동성에 걸맞게 뒤뜰에는 대나무 숲이다. 연못 뒤 언덕에는 정자가 있다.

 

 연못 안쪽의 월방이란 건물은 중국 원림의 대표 건축물 중 하나라 하는데, 수경과 잘 어울리고, 월화원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우정'은 두 개 층의 지붕이 돋보이며 언덕으로부터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은 폭포인듯 한데 물이 흐르지 않아 아쉬웠다. 작은 정원이지만 이국적인 분위기 덕에 CF나 드라마가 촬영되기도 하며 산책하기 좋다.

 

 

  

 

 

 

 

 

 

 

 

 

 

 

 

 

 

 

 

 

 

 

 

 

 

  

 

 

  

 

 

 

 

 

 

 

 

개화 초기의 선각자, 나혜석 거리

 

 효원공원을 둘러보고 길을 건너면 나혜석거리다. 이 거리는 수원에서 출생하여 우리나라 첫 여성 서양화가가 된 나혜석(羅蕙錫, 1896∼1948)을 기념하여 조성한 곳이다.

 

 나헤석은 오빠의 권유로 미술을 시작했으며 일본으로 유학하여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공부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야수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소설가로도 활약했다. 조선미술전람회 제1회부터 제5회까지 입선했고, 1921년 경성일보사 내청각에서 조선 여성 최초로 개인 전시회를 열었다. 작품으로는 <농부>,〈스페인 국경〉, 〈스페인 해수욕장〉, 〈무희〉, 〈파리 풍경〉, 〈나부〉, <자화상> 등이 있다.

 

 

 

 

 

▲나혜석과 연보 일부, 작품 <풍경>, <스페인 해수욕장>

 

 고등교육을 받은 그녀는 당시 남녀차별 문제는 매우 불합리하게 여겨, 일찌기 조선인 유학생 잡지인 〈학지광(學之光)〉에 양부현부(良夫賢夫)에 대한 교육은 없으면서 현모양처(賢母良妻)에 대한 교육만 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는 내용의 글을 기고하는 등 여권신장을 옹호하였고, 1921년에 <매일신보>에 발한 '인형의 가(家)'는 가부장제 아래서 억압된 자신을 빗대어 "노라를 놓아주게"라며 항변하기도 했다. 이토록 여권신장, 여성해방을 주장한 그녀는 3.1운동에 참가했다가 투옥되는 등 진보적인 활동을 하기도 했다.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다양한 국가를 여행하면서 야수파 형식의 그림을 그렸고 귀국 후에는 전통적 인습에 구속 받는 정조 관념을 비판하는 ‘이혼 고백서’(1934)와 ‘신생활에 들면서’(1935)를 잇달아 실어 사회에 저항하는 글로 큰 파장을 일으켰으나 무시당했다.

 

 이후 나혜석은 계속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지만 과거와 같은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수덕사 등 여러 사찰들에 머물렀고, 양로원에 몸을 의탁하는 신세가 되었고, 나혜석이란 이름은 서서히 잊혀졌다. 생활고에 시달려 각지를 돌아다니며 유랑 생활을 하다 생을 마감했다.

 

 문화관광부는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작가였고, 민족주의자였으며, 또 시대를 앞서 여성해방론과 성 평등을 선구적으로 주창한 선각자였음을 평가하여 나혜석을 2000년 2월의 ‘문화 인물’로 선정했다.

 

 보행자 전용 도로인 나혜석거리에는 그의 조형물이 서 있고, 조명과 음향시설을 갖춘 만남의 광장과 분수대, 음악이 흐르는 화장실, 조경수가 잘 조성되어 있다. 길 좌우로 벤치와 카페·레스토랑 등이 들어서 시민들의 도심 휴식터로 각광을 받는다. 거리 공연과 같은 다양한 볼거리, 주변의 전문식당가로 먹거리가 산재해 있어 많은 젊은이들이 찾는 문화와 만남이 공존하는 거리가 되고 있다.

 

 

 

 

 

 

 

 

 

 

 조형물에는 정월 나혜석의 시 <인형의 가(家)>(1921. 4. 3 / 매일신보)가 새겨져 있다. 여성 해방 운동의 기폭제로 평가되는 이 작품은 유교 삼종지도를 비판한다.

 

  1

내가 인형을 가지고 놀 때 기뻐하듯

아버지의 딸인 인형으로 남편의 아내 인형으로

그들을 기쁘게 하는 위안물 되도다

 

2

남편과 자식들에게 대한 의무같이

내게는 신성한 의무 있네 나를 사람으로 만드는

사명의 길로 밟아서 사람이 되고자


3

나는 안다 억제할 수 없는 내 마음에서

온통을 다 헐어 맛보이는 진정 사람을 제하고는

내 몸이 값없는 것을 내 이제 깨닫도다

 

4

아아 사랑하는 소녀들아 나를 보아

정성으로 몸을 바쳐다오 맑은 암흑 횡행(橫行)할지나

다른 날 폭풍우 뒤에 사람은 너와 나

 

(후렴) 노라를 놓아라 최후로 순순하게 엄밀히 막아 논

장벽에서 견고히 닫혔던 문을 열고 노라를 놓아 주게

 

  <노라를 놓아주게> 등에서 그는 가부장제 하에서 아버지만을 따르고, 남편만을 따르고, 아들만을 따라야 된다는 것이 잘못임을 비판하였고 아버지의 착한 딸, 남편의 착한 아내, 아들의 좋은 어머니 역할을 인형에 빗대어 표현하였다.

 

 

 

 

 

 

 

 

 2006년 경기도는 이 지역을 음식문화 시범거리로 지정 삼계탕, 왕갈비, 냉면 등 향토음식을 맛볼 수 있도록 했다. 이 거리에선 음식 문화 축제도 열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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