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아들을 둘이나 잃은 다윗왕의 비극
기민석 침례신학대 구약학 교수
▲ 마치에요프스키 성경 안의 삽화. 이복 오빠 암논에게 겁탈을 당하고 문밖으로 쫓겨나가는 다말.
유부녀를 빼앗아 임신시키고 그 남편을 전장서 죽게 한 다윗왕
그 범죄가 낳은 비극은…
다윗의 아들인 압살롬은 이복형 암논을 죽이고
자신은 반란을 일으켰다가 피살
2년간 복수의 칼을 갈다가 드디어 암논을 살해했다. 자기의 친 여동생 다말을 성폭행한 죄 값을 치르게 한 것이다. 칼은 암논을 찔렀지만, 마음의 분노는 사실 아버지 다윗 왕에게 향했다.
아프다고 속여 다말을 침실로 유인하고서는 겁탈을 했다. 그리고는 종들을 시켜 문밖으로 쫓아낸 놈이 암논이었다. 다말의 오빠 압살롬은, 당장은 참았다. “얘야, 암논도 네 오라비이니, 지금은 아무 말도 입 밖에 내지 말아라. 이 일로 너무 근심하지 말아라.” (사무엘하 13:20) 암논은 압살롬과 다말의 배다른 형제였다. 그래서 가족의 우두머리요 왕궁의 치리자인 아버지 다윗이 정의로운 판단을 내리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조치는 미미했고, 2년의 시간은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다윗의 소외받은 아들, 압살롬
압살롬은 살인과는 거리가 먼 듯한, 성경이 공인한 꽃미남이었다. “온 이스라엘에, 압살롬처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흠 잡을 데가 하나도 없는 미남은 없다고, 칭찬이 자자하였다.” (14:25) 이국적으로 긴 머리를 흩날리며 그는 눈에 띄게 자기의 외모를 자랑했다. 실제로 그의 어머니는 이방 사람 아람의 공주였다.
▲16~17세기 카렐 반 만더 작. 암논을 죽이는 압살롬의 하인들.
그의 잘난 프라이드는 이방 공주의 후손이라는 사실과 함께 썩 좋지 못한 화학작용을 일으켰다. 암논과 다른 형제들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이스라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압살롬은 커가면서 어느 순간 왕궁 안의 서늘한 기류를 느꼈을 것이다. 잘나기로는 왕자들 가운데 어느 누구 못지않았지만, 그는 결코 ‘성골’이 될 수 없었다. 소외와 수군거림, 따돌림이 어쩌면 압살롬 남매의 일상이었을 수도. 그럴수록 압살롬은 아버지의 따듯한 말 한마디가 고프지 않았을까? 그러나 다윗은 아들 압살롬에게 냉랭하기만 했다.
결국 이복 형을 죽이고, 압살롬은 어머니 고향으로 도망간다. 정통성이 없는 아들이기 때문에 다윗은 압살롬이 싫었을까? 어찌 아비가 그러겠는가. 혈통이 중요한 남유다 왕국에서 어차피 소외될 압살롬을 애써 마음에 두지 않으려 했던 것이겠지. 살갑게 대해봤자, 나중에 왕위 계승을 두고 왕자들의 난이라도 일어나게 되면 박하게 대할 수밖에 없는 아들이 압살롬이기 때문이다.
다윗, 압살롬을 다시 불러들이다
그래도 아들은 아들이었다. 압살롬을 못 본지 3년이 지나갈 때, “다윗 왕은 암논을 잃었을 때에 받은 충격도 서서히 가라앉았고, 오히려 압살롬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점점 간절해졌다.”(13:39) 결국 다윗은 도망간 아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불러들인다. 당연히 돌아와 아버지를 볼 줄 알았으나, “왕의 지시는 단호하였다. ‘그를 집으로 돌아가게 하여라. 그러나 내 얼굴은 볼 수 없다.’ 그리하여 압살롬은 아버지에게 인사도 하지 못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14:24)
그러고도 2년을 더, 다윗은 압살롬을 보지 않았다. 이때 압살롬의 행실에 뭔가 삐딱한 조짐이 드러난다. 온 이스라엘이 그가 잘생겼다고 칭송할 때, 그는 머리를 길러 일년에 한번 밖에 자르지 않았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압살롬에게는 아들 셋과 딸 하나가 있었다. 그 딸의 이름은 다말인데, 생김새가 아주 예뻤다.” (14:27) 한없이 아끼는 자기 딸을, 지켜주지 못했던 여동생의 이름으로 불렀다. 사무친 고통에 대한 나름의 치유였을까? 손녀의 이름이 다말이라는 소식을, 다윗은 어떻게 들었을까?
견디다 못해 아들 압살롬이 먼저 터트려 버렸다.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자기를 예루살렘으로 다시 데려온 장군의 집 밭에 불을 지르고 이렇게 호소한다. “이것 보시오. 여기에서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그 곳에 그대로 있는 것이 더욱 좋을 뻔 하였소. 이제 나는 임금님의 얼굴을 뵙고 싶소. 나에게 아직도 무슨 죄가 남아 있으면, 차라리 죽여 달라고 하더라고 말씀을 드려 주시오.”(14:32) ‘아버지를 보고 싶다’, 아니면 ‘차라리 죽여 달라.’ 가족이라 사랑하고 가족이라 미운가 보다. 그리고는 아주 짧게 성경은 이렇게 보고한다. “왕이 압살롬을 불렀다. 압살롬이 왕에게 나아가서, 왕 앞에서 얼굴이 땅에 닿도록 절을 하자, 왕이 압살롬에게 입을 맞추었다.”(14:33) 이건 아버지와 아들간의 인사법이 아니었다.
압살롬, 아버지에게 복수하다
이후 압살롬의 행각은 아버지에 대한 처절한 복수극이다. 백성들의 마음을 요동시켜 아버지를 몰아내는 쿠데타에 성공한다. 자기 아들에 의해 쫓겨나고 나서, 아버지 다윗은 그제야 압살롬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여느 아버지가 그러하듯이 아들의 비행을 아들 탓으로 보려 하지 않았다. “압살롬과 함께 반역한 사람들 가운데는 아히도벨도 끼여 있다는 말을 전하자, 다윗이 기도하였다. ‘주님, 부디, 아히도벨의 계획이 어리석은 것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15:31) 모사꾼 아히도벨 탓을 하며, 심지어 자기 사람들에게는 새 임금 압살롬을 잘 섬기라고 당부한다. “이제까지는 임금의 아버지를 섬기는 종이었으나, 이제부터는 그의 아들, 새 임금의 종이 되겠다고 말하시오. 그것이 나를 돕는 길이고, 아히도벨의 계획을 실패로 돌아가게 하는 길이오.”(15:34)
실로 아히도벨의 계획은 참람했다. 아버지 다윗 왕의 후궁을 사람들이 훤히 보는 ‘옥상’에서 범하라고 압살롬에게 조언한다. 아버지에 대한 극악한 모독이며, 왕권을 찬탈했다는 공개적 선포였다. 아히도벨은 다윗을 뒤쫓아 죽일 계획도 제안한다.
그러나 함께 피난길에 오른 다윗의 측근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반역자들을 처치하고 예루살렘 재입성을 노렸을 것이다. 그래도 다윗은 자신을 능욕하고 목숨마저 노리는 아들을 향해 여지없는 아비의 심정을 또 드러낸다. 싸우러 나간 장수들에게 이렇게 부탁한다. “나를 생각해서라도, 저 어린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하여 주시오. 왕이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하여 달라고 모든 지휘관에게 부탁하는 말을, 온 백성이 다 들었다.”(18:5)
마침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가다가 그의 긴 머리가 나뭇가지에 걸리고 만다. 그리고는 공중에 매달리게 되었다. 이를 알게 된 다윗의 장수는 “투창 세 자루를 손에 들고 가서, 아직도 상수리나무의 한가운데 산 채로 매달려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꿰뚫었다.”(18:14) 다윗이 그토록 부탁했지만, 정치에는 조금의 은혜도 없었다.
압살롬의 죽음
누군가 소식을 전하러 온다는 말을 듣고, 다윗은 무언가 불안했는가 보다. 여러 번 이렇게 말한다. “그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전하러 올 것이다.”(18:27) 반역자들을 퇴치했다는 말에 다윗의 첫 물음은 역시 아들걱정이었다. “그 어린 압살롬이 평안하더냐?”(18:32) 부모에겐 다 큰 아들이란 없나보다. 비보를 들은 다윗을 성경은 이렇게 묘사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파서, 성문 위의 다락방으로 올라가서 울었다. 그는 올라갈 때에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에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고 울부짖었다.”(18:33)
▲작자 미상 14세기작. 머리카락이 나무에 걸린 체 살해당하는 압살롬.
아버지를 보지 못하면 차라리 죽겠다던 아들이었다. 아들은 정말 죽었고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아비는 차라리 자신이 죽었어야 했다고 울부짖는다. 그토록 서로 보고 싶어 했으면서. 이제야 다윗은 ‘내 아들 압살롬’을 많이도 부른다. 살아 생전 압살롬이 아버지로부터 그토록 듣고 싶어 하던 말이었다. ‘내 아들 압살롬.’ 이제야 그토록 부르짖은들 죽은 아들이 어찌 듣겠는가.
다시 다윗은 왕궁을 차지한다. 암논도 압살롬도 죽고, 결국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태어난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한다. 다말 겁탈 사건 보다 앞서 있었던 사건에 의하면, 밧세바는 왕궁 옆에 살던 유부녀였는데 ‘옥상’ 위를 거닐던 다윗이 보고는 왕궁으로 불러 관계를 맺었다. 다윗은 ‘참람한 계략’으로 그녀의 남편을 전장에서 죽게 한다. 위에 언급한 모사꾼 아히도벨이 바로 밧세바의 할아버지다. 이 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시길.
<출처> 2018. 6. 2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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