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최전방 대청도ㆍ백령도, 인천에서 뱃길 4시간
안보 긴장감에 가려졌던…그 섬들의 비경이 눈에 들어왔다
대청도ㆍ백령도=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서해5도(대청도, 백령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는 항상 바다의 최전방이었다.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가장 먼저 주목받는 것도 이들 섬이었다. 중국 어선들의 싹쓸이 조업도 따지고 보면 남북 대치라는 근본 문제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군사적 긴장을 한 꺼풀 걷어 내면 섬이 가진 본래의 가치가 하나씩 드러난다. 그동안 ‘안보’에 가려 제대로 보지 못한 대청도와 백령도의 비경을 소개한다.
◇서해 바람이 빚은 규암 절벽 ‘서풍받이’
백령도에서 남쪽으로 8km 떨어진 대청도는 여태까지 백령도 여행의 ‘끼워팔기’ 관광지였다. 인천에서 백령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잠시 들르기 때문에 일정도 배 시간에 맞춰 짤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는데, 지난 17일은 달랐다. 260여명 정원의 하모니플라워호 승객 중 절반이 이 섬에 내렸다. 인천관광공사에서 대청도의 속살을 제대로 알리자고 기획한 ‘2018 대청 지오파크 챌린지’ 행사에 참가한 여행객들이다.
대청도는 행정구역상 옹진군 대청면으로 지난해 3월 기준 884세대, 1,583명이 살고 있다. 인천에서 서북쪽으로 202km, 북한 황해도 장산곶에서 불과 19km 떨어져 있다. 해안선은 26km 정도로 걷기에는 크고, 차로 이동하면 작은 섬이다.
대청도 지질 트레킹의 첫 코스는 섬에서 가장 높은 삼각산(343m) 등반이다. 출발지는 서북쪽 매바위전망대, 내려다보는 산세가 매가 날아가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붙은 이름이다. 그 옛날 대청도는 매 사냥으로도 유명했다고 한다. 전망대 바로 아래는 동백나무 자생지다. 육지에서는 충남 서천, 섬에서는 이곳 대청도가 동백나무 자생 한계선이어서 천연기념물 제66호로 지정돼 있다.
산중턱에서 시작하지만 삼각산은 산보하듯 다녀올 만만한 산은 아니다. 소사나무가 빼곡해 제법 숲길이 아늑하다 싶다가도 능선을 걸을 때는 마을과 바다가 까마득하게 펼쳐진다. 특히 방풍림으로 조성한 솔숲이 아담하게 감싸고 있는 서쪽 모래울해변은 이름처럼 아름답다. 일제가 한자로 ‘사탄(沙灘)동’이라 고친 험악한 이름을 최근에 바로잡았다.
백령도 최고 절경은 서북쪽 끝자락 두무진이다. 북한 장산곶과 불과 15km 떨어져 있어 대한민국 최북단이라는 상징적 장소이기도 하다. 두무진(頭武津)은 그 옛날 ‘두모진’이라 불렀다고 한다. 수많은 바위들이 머리카락처럼 뾰족하게 서 있는 형상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모습이라 해석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깝고, 분단 이후에는 군사적 긴장이 최고로 유지되는 지역이라는 특성이 반영된 듯하다.
두무진은 유람선을 타거나 산책로로 돌아볼 수 있다. 각각 50분과 1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안팎에서 해안 절경을 두루 감상하는 것도 괜찮다. 유람선은 두무진 포구를 빠져나가 섬 서쪽 해안을 약 4km 돌아온다. 배에서 본 해안 절벽과 해상 바위 군(群)은 포구에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웅장하다. 잘 생긴 바위 한두 개가 아니라 해안선 전체가 깎아지른 절벽이고 천연 요새다. 배가 이동할 때마다 한 겹 두 겹 비경이 벗어지는가 싶으면, 또 다른 풍경이 겹겹이 다가온다.
섬세하면서도 켜켜이 쌓인 바위 퇴적층이 이 정도 규모로 선명하게 드러난 풍경은 어디서도 보지 못한 것 같다. 광해군이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 칭찬했다는 선대암, 코끼리바위, 형제바위 등 기암괴석마다 줄줄이 이름을 붙였지만, 역시 인간의 상상력이 초라할 뿐이다. 이따금씩 점박이물범이 숨을 쉬기 위해 수면 위로 머리를 내미는 모습도 보이고, 가마우지가 앉아 쉬는 갯바위 너머로는 장산곶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포구에서 두무진 끄트머리로 산책로가 나 있다.
▲두무진 바닷가로 내려가는 산책로. 여행객과 비교하면 바위 퇴적층의 크기가 짐작된다.
▲두무진 해안 작은 동굴에서 보는 풍경.
▲두무진 끝자락 통일기원비 옆에 태극기가 날리고 있다. 바다 건너가 북한 장산곶이다.
두무진 산책 코스는 포구에서 백령도 북단 끝머리로 이어진다. 유람선에서 첫 번째 바위 군상과 만나는 곳이다. 좁고 가파른 바위 틈으로 해안까지 내려갈 수 있도록 길을 냈다. 한 굽이 돌 때마다 10억년이 퇴적된 시간에 감탄 연발이다. 바다에서는 비교할 대상이 없어 크기를 가늠하기 힘들었는데, 산책로를 오가는 여행객이 개미만하게 보인다. 돌아 나오는 길 언덕 꼭대기에는 ‘통일기원비’가 서 있다. 태극기 휘날리는 뒤편으로 북한 땅이 선명하다. 장산곶은 또 어떤 비경을 품고 있을지 기대가 커진다.
◇자연이 들려주는 ASMR, 사곶해변과 콩돌해변
백령도 여객선 터미널인 용기포항 아래쪽으로는 사곶해변과 콩돌해변이 이어진다. 사곶해변은 한때 군부대가 비행장으로 사용했던 곳으로 주민들은 지금도 사곶천연비행장으로 부른다.
일직선에 가까운 3km 해변이 물이 빠지면 폭이 300m까지 넓어진다.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모래알갱이가 단단하고 곱다. 여행객도 관광버스나 차로 드넓은 해안을 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해변 중간쯤 여행객을 떨궈놓은 차량은 약 1km를 되돌아가 기다린다. 바퀴자국 선명한 해변을 걷는 느낌이 색다르다.
▲사곶해변은 모래가 단단해 관광버스가 해변 중간에 여행객을 내려 준다.
▲바퀴자국 선명한 사곶해변.
▲사곶해변과 콩돌해변 사이 모래톱.
▲콩만한 자갈로 뒤덮인 콩돌해변.
▲여행객들이 햇볕에 달궈진 콩돌에서 쉬고 있다.
콩돌해안은 모래와 바위가 자원인 백령도에서 이색적인 매력을 지닌 곳이다. 이름처럼 콩알만 한 돌들이 1km 해변을 가득 덮고 있다. 색깔도 흰색, 갈색, 회색, 적갈색, 청회색 등 다양하다. 볕에 마른 콩돌을 한 꺼풀 벗겨 내면 촉촉하게 물기가 코팅된 콩돌이 햇빛에 반짝인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퍼지는 돌 구르는 소리는 어떻게 형언할 수가 없다. 전자기기에서 듣는 백색소음(자율감각쾌락반응ㆍASMR)이 아무리 좋다 한들 자연의 소리에 비유할 수 있을까. 또 하나, 바닷물이 다소 차더라도 콩돌해변에선 꼭 양말을 벗고 걸어봐야 한다. 지압 효과보다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매끈한 감촉이 낯설고 기분 좋다.
◇백령도ㆍ대청도 여행 정보
▦인천연안여객터미널~백령도 구간에는 하모니플라워호, 코리아킹호, 옹진훼미리호가 매일 1차례 왕복한다. 편도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중 하모니플라워호와 코리아킹호가 오갈 때 대청도에 정박한다.
▦백령도와 대청도 여행은 아직까지 여객선과 숙박을 포함한 패키지여행이 대부분이다. 두 섬을 모두 보는 2박 3일 패키지 가격은 28만원 내외다. 개별 여행객은 섬 안에서 개인택시와 렌터카를 이용할 수 있다. 렌터카 비용은 하루 8만원 선이다.
▲사곶냉면의 ‘반냉면’ 메뉴. 비빔냉면에 육수를 절반만 부어 내온다. 이름에 참 충실하다.
▲백령도의 모든 음식에는 까나리액젓이 기본. 냉면집에도 까나리액젓이 올라와 있다.
▦대청도의 주민 추천 음식은 홍합탕과 성게비빔밥이다. 모두 싱싱한 자연산으로, 섬 안의 대부분 식당에서 판매한다. 백령도에서는 ‘사곶냉면’이 유명하다. 메밀과 육수 원산지를 ‘백령도산’으로 표기해 놓았는데, 맛의 비결은 까나리액젓이다. 백령도에서는 밥 지을 때 빼고 모든 음식에 까나리액젓이 들어간다고 할 정도다. 사곶냉면 식탁에도 겨자와 식초 외에 까나리액젓 통이 함께 차려져 있다. 감칠맛 나는 간장과 비슷해 수육이나 부침개를 찍어 먹어도 좋다. 물냉면과 비빔냉면 외에 ‘반냉면’이 있는데, 비빔냉면으로 먹다가 육수를 붓는 방식이 아니라 아예 육수를 절반 부어서 내온다.
<출처> 2018. 10.30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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