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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비, 바닷바람이 빚은 속살… 자린고비가 모신 ‘밥도둑’

by 혜강(惠江) 2018. 9. 19.

 

굴비

 

바닷바람이 빚은 속살… 자린고비가 모신 ‘밥도둑’

 

- 차례상의 터줏대감 

 

 

▲ 노릇노릇하게 해풍에 잘 말려진 굴비. 한가위 차례상을 빛내주는 주인공으로 명절에 앞서 이웃들 간에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선물로도 좋다


각지서 조기 잡아 법성포 보내 
천일염·천혜환경·노하우 결합, 명품 ‘영광 굴비’ 다시 태어나 

穀雨 무렵 잡힌 조기가 최상품 
소나무 장대서 숯불·해풍 건조, 항아리속 ‘보리굴비’ 만들기도 

참조기 머리뼈엔 ‘소위 계급장’ 
부세·수조기·강달이 등과 구별, 굴비 고를 땐 생산자 정보 확인
 

 오곡백과 풍성한 중추가절. 천고마비 계절에 우리 식탁도 풍요로워진다. 가을 향기가 물씬 담긴 햅쌀밥에 짭조름하며 구수한 굴비 속살 한 점. 찰떡궁합이 따로 없다. 그래서 예로부터 조상 어르신들을 위한 한가위 차례상에도 굴비는 빠지지 않고 올라오는 터줏대감이었다. 

 조기는 석수어(石首魚)로 불리기도 한다. 머리에 밥풀처럼 하얗고 단단한 두 개의 돌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탄산칼슘이 주성분인 이 단단한 돌의 정체는 헤엄을 칠 때 균형을 잡도록 하는 이석(耳石)이다. 중국에서는 약용으로 쓰기도 한다. 조기는 콧구멍도 두 개 있고 울음소리도 낸다. 옆줄은 물의 미세한 흐름이나 압력 차이 같은 물리적 변화를 감지한다. 대열을 이루며 이동할 때 유용하게 쓰는 감각기관이다. 멸치처럼 작은 물고기나 새우를 먹이로 하며 30㎝가 넘게 자라기도 한다. 대부분은 25㎝ 전후 크기로 자란다. 

 조기는 달력 따라 정확하게 한 해 한 바퀴씩 무리를 이루어 서해를 돈다. 서해안 위도에 살구꽃이 필 때면 산란을 앞둔 조기가 모였고, 전국 각지에서 어선이 몰려들어 만선의 기쁨을 누렸다. 위도 파시에서 거래된 조기를 법성포에서 굴비로 만들었다. 인근 염전에서 나오는 품질 좋은 소금이 있었고, 바닷바람에 건조하기도 좋은 천혜의 조건을 갖고 있었다. 여수나 부산에서 잡힌 조기도 법성포로 가져와 굴비로 가공했다. 좋은 생선을 품질이 우수한 굴비로 가공한 오랜 노하우 덕분에 영광은 굴비 생산의 중심지가 돼 지금도 대를 이어가며 명품 굴비의 맛과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노릇노릇 구운 굴비. 모락모락 김이 나는 하얀 속살. 따뜻한 밥 한 숟가락에 올려 먹으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짭조름하고 담백한 맛, 꼬들꼬들하고 쫀득한 식감으로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좋아한다. 구웠을 때 생선 결이 깔끔하게 떨어져 맛있게 즐기기에 그만이다. 굴비는 간장게장, 어리굴젓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밥도둑으로 불린다.

 굴비는 성장기 어린이와 소화력이 떨어지는 노인들의 원기회복에 좋다. 굴비는 할아버지 밥상에 먼저 올랐다. 할머니는 손자 숟가락에 굴비 살이 부스러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올려주었다. 한 두름씩 엮여 곳간에 걸린 굴비. 굴비는 마음을 전하고 이어준다.

굴비 하면 자린고비 이야기가 떠오른다. 밥상 위에 매달아 밥을 먹을 때 한 번씩 쳐다보며 먹었다는 이야기. 두 번을 쳐다보면 혼이 났다는 대목에 이르러서야 자린고비의 절약 정신에 탄복을 하게 된다. 삵이 닭을 물어가는 것을 보고 원통해했던 자린고비가 결국 깨달음을 얻어 나눔을 실천했다는 미담도 전해진다.

 24절기 중 하나인 곡우(穀雨)는 음력 3월 중순(양력 4월 20일쯤) 무렵인데 비가 와서 백곡을 이롭게 한다는 절기다. 이 무렵에 드는 사리를 곡우사리라고 부르는데 이때 잡힌 조기로 만든 굴비가 최상품이다. 영광군에서는 ‘곡우사리 영광굴비축제’를 개최하고 4월 20일을 ‘굴비 먹는 날’로 정했다.  

 굴비라는 이름의 유래는 1126년 영광 법성포로 귀양 온 이자겸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바닷바람에 말린 조기를 임금에게 진상품으로 올리면서 ‘비겁하게 굴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굴비(屈非)’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설명이다.

 과거에는 딱돔, 중딱돔, 오가잽이, 장대 등 굴비 크기에 따라 다른 이름을 붙였다. 지금은 값이 10만 원대 이상인 ‘프리미엄 굴비’, 1만 원대에서 10만 원 정도 가격을 형성하는 ‘참굴비’라는 이름으로 유통이 된다. 큰 굴비는 섶간 방식을 이용해 소금을 직접 뿌려 염장을 하지만 작은 굴비는 엮어서 소금물로 염장한 후 건조기로 말리는 방식을 쓰는 곳이 많다. 소금을 적게 써서 저염 굴비로 만들어도 냉장, 냉동 유통하기 때문에 위생상 문제가 없다. 

 전통적인 굴비 건조 방법은 소나무 장대를 이용해 바닷가에 원형 건조장을 만들고 숯불과 해풍에 말리는 것이었다. 해풍을 맞는 가운데 생선의 이취와 비린내가 줄어든다. 비린내의 원인은 트리메틸아민인데 온도가 10도 이상이면 쉽게 휘발한다.

 과거에 냉장, 냉동 보관시설이 없었을 때 굴비를 오래 저장하기 위한 방법으로 항아리 속에 통보리와 굴비를 층층이 쌓아 보리굴비를 만들었다. 항아리 속에서 수분 활성도가 낮아져 어떤 미생물도 번식할 수 없는 장기저장품이 된다.

 장을 보러 가면 여러 가지 조기와 굴비가 있어 어떤 것을 고를지 망설여질 때가 많다. 조기는 민어과에 속하는데 전 세계 바다에 분포하고 있고 유사한 어종이 많다. 참조기, 부세, 수조기, 보구치, 강달이류 등이 우리나라에서 잡힌다.

 참조기와 부세는 둘 다 배가 황금색이고 노란 지느러미를 갖고 있다. 두 어종을 구분할 때 머리에 있는 다이아몬드 문양을 보라고 한다. 껍질 안쪽 머리뼈 한가운데에 소위(少尉) 계급장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마름모 모양이 보인다. 속은 벌집처럼 비어있다. 그 위로 껍질이 덮여있다. 부세는 대개 몸집이 커서 껍질이 두툼해 염장해도 그 문양이 드러나지 않는다. 몸통에 나 있는 옆줄 차이도 알아두면 좋다. 부세는 옆줄이 가늘고 선명한 점선으로 보이는데, 조기는 옆줄이 살짝 도드라져 있어 두 줄 점선처럼 보인다.

 수조기, 보구치, 강달이류 등은 참조기와 쉽게 구별이 가능하다. 수조기는 작은 흑색점이 퍼져 있다. 보구치는 은백색을 띠어 백조기라고도 하는데 아가미에 검은 점이 크게 붙어 있다. 강달이류는 크기가 작아 젓갈을 담그는 데 쓰인다. 황석어젓이라 불리는 젓갈이다.  

 서해안에서 회유하는 조기의 원산지를 둔갑시키는 부정행위는 큰 처벌을 받는다. 굴비와 민물장어에 대해서는 원산지 표시 위반에 대한 처벌이 특히 엄격하다. 농협유통 수산팀의 김종태 팀장은 원산지가 확실한지 먼저 점검하고 포장에 있는 수산물 이력을 확인해 보라고 조언한다.  

 또 굴비를 고를 때도 생산자 정보를 적극 활용하라고 말한다. 수십 년간 노하우를 축적한 장인이 만든 굴비는 눈 감고 어느 것을 집어도 좋다는 설명이다. 참조기로 만든 국산 굴비를 다른 어종으로 만든 것과 구분하기 위해 참굴비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굴비는 구워 먹으면 맛있다. 연탄불이나 숯불에 구워야 제맛이지만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생선그릴에 직접 굽거나 전분을 살짝 묻혀 기름에 노릇노릇하게 구워도 좋다. 굴비를 튀기면 열량은 높아지지만 기름기가 돌면서 맛있다. 쪄먹어도 좋고 간장으로 조려 먹어도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요즘은 전자레인지에 간단하게 데워먹을 수 있는 굴비 제품도 나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굴비 살을 발라 찹쌀고추장에 숙성시킨 굴비장아찌도 맛있다. 통통한 햇고사리가 날 때면 갓 잡은 알밴 생조기를 함께 넣어 만드는 고사리조기찌개도 별미였다.

 굴비로 가공하면서 수분은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단백질 함량이 높아진다. 글루탐산 등 몇 종의 유리아미노산이 굴비의 독특한 맛을 구성한다. 한식당 경복궁 울산삼산점 박용준 조리사는 굴비를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굴비찜 요리를 권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레몬, 통후추, 생강, 월계수 잎, 청주를 넣고 20분 정도 쪄내면 끝이다. 갓 지은 흰쌀 밥에 녹차 물과 함께 먹으면 깊은 여운을 남기는 짭조름한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신구대 식품영양과 교수 

 

<출처> 2018. 9. 19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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