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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광주. 전남

전남 나주 '영산강 풍경'

by 혜강(惠江) 2017. 4. 5.

 

전남 나주 '영산강 풍경'

 

연둣빛 세상, 실타래처럼 봄이 풀린다.

 

 

나주 = 글·사진 박경일 기자 

 

 

* 나주 영산강 풍경 *

 

 

 

  전남 나주의 영산강 지류 드들강변의 모습. 아직 물가의 버드나무는 새잎을 내지 않았지만 울창한 솔숲 아래 초지에는 초록의 봄기운이 완연하다. 이 강변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작곡가의 손을 거쳐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로 시작하는 김소월의 시가 노래가 됐다.

 가장 서정적인 봄 풍경은 강변에 있습니다. 남도 땅을 적시며 흐르는 ‘봄날의 강’이라면 섬진강이 첫손에 꼽히지만, 영산강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전남 담양에서 시작해 광주, 나주, 함평, 무안 땅을 지나 목포 앞바다에 이르는 강. 섬진강의 봄날이 폭죽처럼 터지는 산수유와 매화, 벚꽃으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다면, 영산강은 버드나무의 신록과 보리밭의 초록으로 소박하고 그윽합니다. 단번에 시선을 휘어잡는 화려함은 없지만, 영산강은 부드럽고 조용하게 봄의 한가운데를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지요.


 나주에는 영산강이 있고, 그 강에 합류하는 지류 지석강이 있습니다. 지석강의 백미는 화순의 능주에서 나주 남평까지 4㎞ 구간입니다. 이 물길에는 따로 ‘드들강’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드들강. 발음해보면 어쩐지 서정적인 강의 모습이 절로 떠오릅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로 시작되는 노래의 서정적인 곡조가 여기서 만들어진 것도 우연은 아닐 겁니다.

 나주의 봄날은 남평의 드들강 풍경으로, 또 세지면의 흐드러진 배꽃으로 환합니다. 적막한 절집에서 저 홀로 눈부시게 물들어가는 신록도, 돌담 아래 수선화 환하게 핀 전통마을도 지금 나주에서 만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게다가 나주에는 곳곳에서 이야기가 실타래처럼 풀려나옵니다. 이런 매혹적인 경관과 이야기를 갖고 있음에도 봄날의 나주는 한적합니다. 나주는 북새통을 이루는 교통체증도, 꽃놀이 행락객도 없습니다. 뒷짐 지고 느긋하게 봄을 완상할 수 있는, 이곳은 전남 나주입니다. 



 

영산강의 물길이 굽이치는 전남 나주의 동강면에는 강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는 강 건너 쪽에 흘러내린 지형의 이름인 ‘느러지’란 지명을 따서 ‘느러지 전망대’라고 불린다.


 



# 드들강, 초록으로 물들다



나주에는 영산강이 있고, 그 물길에 합류되는 지석강이 있다. 전남 화순에서 발원해 능주를 지난 물줄기가 나주호에서 흘러내린 물과 합쳐지면서 이룬 물길이 지석강이다. 나주 사람들에게 ‘지석강’을 물으면, 십중팔구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 드들강’이라고 말을 받는다. 드들강은 지석강이 흐르는 불과 4㎞ 남짓한 짧은 구간을 따로 부르는 이름. 그러나 나주 사람들에게 지석강은 곧 드들강이다. 그건 아마도 드들강이 지석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구간이기 때문이리라.

드들강이란 이름은 마을 주민들의 도움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처녀 ‘드들이’가 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스스로 제 몸을 제물로 바쳐 마을을 구했다는 전설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가 노래가 된 곳도 여기 드들강이다. 드들강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나주 출신의 작곡가 안성현이 김소월의 시에 곡을 붙였다. 드들이의 전설이 깃들어 있어 노래 곡조가 그리 처연한 것일까.

드들강에서 가장 서정적인 풍경을 보여주는 곳이라면 드들강 솔밭유원지다. 철 지난 놀이시설이 연상되는 ‘유원지’란 이름을 이런 그윽한 강변에 붙여놓은 무신경이라니…. 유원지에는 강변의 초록색 초지 위에 소나무 숲이 들어차 있다. 숲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강변 풍경과 썩 잘 어울린다. 솔숲 그늘에 앉아서 보(洑) 위를 넘실거리는 부드러운 강물과 함께 흘러가는 봄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드들강의 물빛이 얼마나 맑았으면 강 안쪽 마을의 이름이 ‘쪽돌(藍石)’일까. 영산강 지류의 마을에서는 한때 드들강의 맑은 물빛을 닮은 쪽 염색이 성행하기도 했다. 홍수 피해가 심했던 영산강 지류에서 대체작물로 쪽을 재배했던 데다 바다가 가까워 염색에 필요한 석회를 만들 수 있는 조개, 굴 등을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봄이 무르익은 따뜻한 봄볕의 강변에서 오래전 마을마다 쪽빛으로 염색한 천들이 나부꼈을 강 풍경을 상상한다. 강 건너에는 이제 막 팝콘처럼 터지기 시작한 벚꽃들이 화려하다.

 

# 메타세쿼이아가 하늘을 찌르는 길



드들강 유원지에서 마주보이는 강 건너편의 산 반대쪽 기슭에 전라남도산림자원연구소가 있다. 연구소 들머리에 심어놓은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양옆으로 도열한 풍경이 인상적인 곳이다.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나무 사이로 자로 잰 듯 반듯한 길이 소실점으로 이어지는 풍경이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이 찾아들자 연구소에서는 아예 일대의 숲을 잘 다듬어서 수목원처럼 꾸며놓았다. 이곳은 봄꽃이 늦게 피는지 이제서야 매화와 산수유가 절정이다. 보름쯤 뒤면 메타세쿼이아 나무도 연두색 잎을 달기 시작하리라.

산림자원연구소 인근에는 전통마을인 도래마을이 있다.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의 피바람이 불 때‘조광조와 과거시험을 같이 치른 동문’이란 이유만으로 화를 입은 풍산 홍씨 일가가 들어와 살며 집성촌을 이룬 곳이다.

도래마을은 인위적으로 전통마을을 복원하지 않고, 슬레이트를 얹은 시골집들과 전통 한옥 고택이 자연스럽게 처마를 잇대고 어우러져 있어 자연스럽다. 시민들의 자발적 기부로 보존가치가 높은 문화유산을 사들이는 내셔널 트러스트 문화유산 기금이 서울 성북구 성북동의 최순우 옛집에 이어 두 번째로 여기 도래마을의 한옥을 사들인 것만 봐도 이 마을의 정취를 짐작할 수 있겠다.

마을에는 작은 연못을 앞에 두고 있는 양벽정이며, 마을 공동정자인 영호정, 그리고 홍씨 가문의 고택 여러 채가 들어서 있다. 수선화 피어난 돌담을 끼고 봄기운 가득한 마을과 고택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다. 



 

봄이면 비자나무와 편백의 초록과 연두색 신록이 한데 어우러지는 나주 불회사. 불회사의 신록은 어찌나 다채롭고 화려한지 한번 보면 쉬 잊히지 않는다. 법당 앞에서 V자로 가지를 뻗어 자라는 단풍나무의 위세가 당당하다.

 


# 뜨거웠던 개혁의 꿈을 증거하다…금사정 동백



영산강변에는 유독 누각이며 정자가 많다. 기록을 뒤적여 보면 영산강 물길을 따라 늘어선 누정이 자그마치 923개였다. 지역별로는 나주에 정자가 가장 많아서 165개에 달했다. 나주 땅에 왜 이리 정자가 많을까. 영산강의 본류와 드들강이 흘러가기 때문이라는 건 지형에 따른 해석. 나주의 수많은 정자는 그만큼 선비들의 교유가 활발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건 인문적인 해석이겠다.

16세기 이후 정치적 상황은 남도 사람들이 정계로 들어가는 것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었다. 사화와 당쟁으로 벼슬에서 물러나거나, 아예 벼슬자리로 나서길 포기한 이들이 교유했던 자취가 바로 누정이었던 것이다. 그 대표 격인 정자가 바로 왕곡면 송죽리의 금사정이다.

중국산 기와에다 함석 처마를 덧댄 금사정은 건축적 아름다움은 고사하고 눈길을 붙잡을만한 주변 경관도 없다. 관리도 허술해서 문 창호지에는 숭숭 구멍이 뚫려 폐가를 겨우 면한 수준이다.

금사정에서 보아야 할 것은 정자의 풍모가 아니라 그 앞에 심어둔 동백나무에 깃든 정신이다.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은 인천 옹진의 대청도에도, 전남 강진의 백련사에도, 충남 서천의 마량리에도, 전남 광양의 옥룡사지에도 있지만, 딱 한 그루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은 여기 금사정의 동백나무가 유일하다. 수형이나 수세도 별 특별할 게 없는 이 동백나무 한 그루는 왜 천연기념물이 된 것일까.

사연은 이렇다. 때는 기묘사화의 피바람이 몰아치던 조선 중종 무렵. 부패한 기득권 관료세력에 맞서서 개혁정치를 꿈꿨던 정암 조광조가 사화의 화를 입어 화순 능주로 유배된다. 정암이 축출되자 당시 성균관에서 공부하며 그의 사상을 좇던 나주 출신의 유생 11명은 구명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조정에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조광조는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고 숨을 거두고 만다. 이상적인 정치를 실현하려던 한 개혁가의 처참한 패배였다. 정암이 죽고 난 뒤 사화의 칼날은 상소를 올린 유생들에게까지 겨눠졌다.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피해 유생들은 개혁의 꿈을 접고 고향 나주로 낙향했다. 나주로 돌아온 유생들은 절의를 지키고자 계를 조직하고 정자 금사정을 지었다. 금사정에서 실패한 개혁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했던 이들은 이상 정치의 도래를 기원하고 절개를 다짐하고자 그 앞에다 동백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금사정 앞의 동백나무가 500년 전 개혁의 시대를 꿈꾸던 사내들의 뜨거운 소망이 깃든 바로 그 나무다. 좌절한 꿈의 개화를 바랐던 11명의 유생들은 이미 세상을 떴고 동백나무 한 그루만 살아남아서 선비들이 품었던 뜻을 해마다 늦은 봄에 선혈처럼 피는 꽃으로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동백나무 발치에는 꽃이 후드득 떨어져 있다.

 

# 가장 아름다운 강변의 정자 벽류정



▲ 전라남도산림자원연구소의 메타세쿼이아 길. 하늘을 찌를 듯 도열해 자라는 나무 사이로 자로 잰 듯한 길이 곧게 이어져 있다. 아직 초록의 잎은 없지만 봄기운을 빨아들인 나무에 물이 올랐다.

나주의 누정 중에서 새겨진 이야기의 깊이로 보면 금사정이 으뜸이지만, 경관의 아름다움으로 서열을 매겨보자면 세지면 벽산리의 벽류정이 단연 맨 앞에 선다. 벽류정은 영산강 지류인 금천 물길 상류 쪽에 있다. 느티나무와 노송이 어우러진 봉긋한 언덕 위에 들어선 벽류정은 먼발치에서 봐도 풍류가 느껴진다. 정자의 사방에다 툇마루를 놓고 그 가운데에 방을 들였는데, 마루와 기둥, 그리고 벽체까지도 모두 나무를 정교하게 짜 맞춰 넣었다. 훤칠한 소나무들이 호위하고 있는 정자의 마루에 앉아 있으면 주위의 신록과 언덕 아래 물가의 풍경이 화첩을 보듯 펼쳐진다.

벽류정을 찾아간다면 세지면 일대 구릉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배밭을 지나게 된다. 배꽃은 벚꽃이 절정일 무렵에 꽃망울을 열기 시작한다. 벚꽃이 늦어서 그럴까. 가지 끝에 다닥다닥 맺힌 꽃망울이 아직 터지지 않았다.

나주에서 배밭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그럼에도 세지면 일대의 풍경이 특별한 것은 배밭 구릉 위로 길이 나 있기 때문이다. 배꽃이 만개할 때 이 길을 달리면 마치 꽃 무더기가 구름처럼 떠 있는 꽃길 사이를 달리는 느낌이다.

영산강변의 정자 장춘정은 현판에 걸어둔 이름의 뜻을 짚어 찾아간 곳이다. ‘감출 장(藏)’에 ‘봄 춘(春)’.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숲이 있고 사시장철 피는 꽃이 늘 봄을 간직한 듯하다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영산강둑 아래 들어선 정자는 근래 손을 보았는지 단정하다. 지금은 강둑으로 막혀 있지만, 정자가 세워질 무렵에는 정자에 앉으면 영산강의 물길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였을 테니 그 풍류가 짐작되고도 남는다. 면앙 송순, 석천 임억령, 고봉 기대승, 백호 임제 등 내로라하는 선비들이 장춘정에 글을 남긴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었다.

정자 옆의 둑방 위에 올라서면 광활한 영산강 습지가 펼쳐진다. 강둑 한쪽에서 벌어지는 공사로 좀 수선스럽긴 하지만 아직 삭지 않은 지난가을의 억새며 갈대밭 사이로 버드나무들이 가지마다 초록의 잎을 내고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영산강의 물굽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최고의 조망을 보여주는 곳이 동강면 옥정리의 느러지 전망대다. ‘느러지’란 나주 8경(景) 가운데 제2경으로 꼽히는 곳으로 강 건너 산자락이 밀가루 반죽을 부은 것처럼 강으로 주르륵 흘러내린 지형에 붙여진 지명이다.

전망대는 야트막한 비룡산 정상에 15m 높이의 철골 구조물인데, 여기 오르면 느러지 일대를 U자로 굽이치는 영산강 물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고요한 강물 위로 이따금 낚싯배들이 오가는 모습이 한가롭다. 전망대는 본래 자전거도로를 이용하는 이들을 위해 만든 것인데, 자전거도로가 차로로도 함께 쓰이고 있어 차를 타고 전망대 앞까지 들어갈 수 있다.

 

# 불회사의 신록, 운흥사의 새소리



봄날의 남도에 어디든 신록이 없을까만, 나주 덕룡산 자락의 신록은 유별난 데가 있다. 산자락에서 자라는 수종 탓인지 절집을 끼고 있는 이쪽 산 능선의 신록은 유독 색이 곱다. 그러니 봄날 나주에서는 절집의 정취를 빼놓을 수 없다. 나주의 절집은 나주호 서쪽의 덕룡산과 용제산의 아랫자락에 몰려있다. 신록이 아름답기로는 불회사가 최고다. 절집으로 드는 길에는 비자나무와 편백나무들이 울창한데,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어둑한 숲길의 이쪽 끝과 저쪽 끝에서 온통 연둣빛 신록을 만날 수 있다. 절집 입구에는 해학적인 모습을 한 한 쌍의 석장승이 서 있다. 사찰의 경계를 삼고자 세워둔 장승이 삿된 것들을 물리치는 위엄은 없고 툭 불거진 눈의 해학적이다. 석장승은 이웃 절집인 운흥사의 들머리에도 있다.

불회사는 날아갈 듯 날렵한 지붕 추녀 끝을 기둥이 꼭 붙들고 있는 대웅전의 풍모가 인상적이지만 아쉽게도 올해 11월까지 해체 보수작업 중이라 대웅전은 공사 가림막 속에 숨겨져 있다. 그러나 연둣빛 신록과 절집 선원 뒤쪽에 불붙은 홍매화의 붉은 빛, 그리고 선원 앞에서 V자로 가지를 펴고 날아오를 듯 자라는 거대한 단풍나무가 새로 낸 잎만으로도 불회사는 가슴이 뛸 만큼 아름답다. 매화에 이어 이달 말쯤에는 절집 주위에 산벚꽃이 가득 피어나는데, 이때쯤 불회사 풍경은 한번보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불회사가 제법 규모가 크고 단정한 풍모의 절집이라면, 덕룡산 반대편 자락의 운흥사는 사방을 산으로 둘러친 자리에 담도 없이 들어선 소박한 절집이다. 법당이며 요사채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어 단정한 맛도 없고 어수선한 듯도 하지만 법당과 법당 사이의 빈 공간을 가득 메우는 새소리 하나만으로도 가볼 만한 곳이다. 사방을 산으로 둘러치고 있는 오목한 절집의 자리가 울림통 역할을 하는지 새소리가 유독 커서 귀가 즐겁다. 새들이 재잘거리며 대웅전 꽃 문살을 쪼아대는 통에 아예 문살을 비닐로 덧대놓았을 정도니 거기서는 봄을 귀로도 들을 수 있겠다.


◇나주 가는 길 = 호남고속도로로 종점까지 가서 산월나들목으로 나와 광주 제2순환도로를 탄다. 순환도로 요금소를 빠져나와 유덕나들목에서 우회전한 뒤 운수교차로에서 좌회전해 13번 국도를 타고 들어가면 나주에 가닿는다. 나주시청에서 빛가람대교를 건너 석천교차로에서 좌회전, 금천교차로에서 우회전해 지석강을 왼쪽으로 두고 달리면 드들강 솔밭유원지가 있다. 내비게이션에 지석교를 입력하고 찾아가면 쉽다. 드들강 솔밭유원지-전라남도산림자원연구소-도래마을-나주호-불회사-운흥사-벽류정-금사정-느러지전망대 순으로 도는 게 동선이 효율적이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나주의 두들마을 한가운데 200년 된 한옥을 잘 꾸며놓은 게스트하우스 ‘산에는 꽃이 피네’(010-4612-4232)가 있다. 게스트하우스라지만, 한옥 체험 펜션에 가깝다. 한옥 방의 한쪽 벽면을 그림으로 단장하는 등 세련되게 단장했고 화장실과 욕실을 들여 불편을 없앴다.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 2인 숙박기준 8만 원.

나주읍에는 나주목사 내아(061-332-6565)가 있다. 내아란 관사의 안채 격인 건물로 전라남도문화재자료 132호인데 지난해부터 일반인들에게 숙박 장소로 공개하고 있다. 나주시청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어 비용도 저렴한 편. 방 크기와 위치에 따라 숙박요금은 5만∼15만 원선이다. 봄 햇살이 비껴드는 대청마루에 앉아 향긋한 차를 마시면 마음이 절로 푸근해진다.

나주 빛가람혁신도시에 최근 신축 호텔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빛가람혁신도시에 새로 문을 연 ‘레이크45호텔’(061-338-8000)은 개업 특가행사 중이라 1박에 5만 원을 받는다. 깔끔한 방에다 침구 등 시설도 좋다. 나주호 인근의 골드스파리조트는 가족단위 여행자들에게 적당한 숙소다. 나주의 먹을거리라면 영산포의 홍어회가 첫손에 꼽힌다. 영산교 부근의 옛 영산포구 일대에는 홍어음식점들이 밀집한 ‘홍어의 거리’가 조성돼 있다. ‘영산포홍어’(061-337-5000 )가 알려진 곳. 외국산 홍어삼합과 홍어튀김, 홍어찜, 홍어 애국 등을 함께 내는 홍어 정식이 2만 원선. 홍어회는 삭히지 않은 것을 쓰는데, 홍어튀김이나 홍어찜은 알싸한 삭은 맛이 강한 편이다.



 

<출처> 2017. 4. 5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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