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맹수
정율리
하늘에는 울타리가 없다
이 쪽 저 쪽으로 몰려다니는 철새들
초승달로 기러기 행렬이 지나간다
하늘을 맹수라 불러보다 깜짝 놀란다
이동하는 저 철새들의 몇 마리는
땅으로 혹은 바다위로 곤두박질 칠 거다
초승달이 몇 마리 삼키고
구름이나 혹은 비바람이 또 몇 마리 삼키겠지
기러기들 서둘러 달빛을 벗어나려
한밤의 속도로 튕겨져 나온 행렬
어둠에 묻힌 채 날고 있다
하늘은 야생이다
무엇이든 먹어치우려는 난무(亂舞)의 태생지다
밤낮이 자유롭고 계절도 마음대로 바꾼다
낮과 밤은 서로 피해 다닌다
가끔 날아가는 비행기가 지상으로 떨어지고
하늘을 날아오른 집이며 자동차들이
구겨진 채 떨어진다
빈 껍질만 떨어지는 걸로 보아
저 하늘에 포악한 야생의 무리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울타리가 없으니 야생이다
날아가는 것들은 무엇에 쫓긴 듯 서둘러 날아간다
낮과 밤이 맹수다
세상을 돌아다니며 폭식을 하고
낮엔 낮에 보이는 것들을 사냥하고
밤엔 밤에 보이는 것들을 사냥한다
조용한 날들이 없는 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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