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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수상 및 후보시

2015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탕제원 / 박은석

by 혜강(惠江) 2015. 1. 1.

 

2015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탕제원

                                           박은석

 

탕제원 앞을 지나칠 때마다 무릎의 냄새가 난다
 
용수철 같은 고양이의 무릎이 풀어지고 있던 탕제원 약탕기 속 할머니는 자주 가르릉 가르릉 소리를 냈었다 할머니의 무릎에는 몇 십 마리의 고양이가 들어 있었다. 가늘고 예민한 수염을 달인 마지막 약, 잘못 쓰면 고양이는 담을 넘어 달아난다. 
 
밤이면 살금살금, 앙갚음이 무서웠다. 고양이를 쓰다듬듯 할머니의 무릎을 만졌다 몇 마리의 고양이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던 할머니들이 절룩거리며 나타났다 빗줄기가 들어간 무릎의 통증 등에 업힌 밭고랑 한가득 들어 있는 무릎
 
탕제원 오후는 화투패가 섞인다. 화투 패는 오래 달일 수가 없다 약탕기 안에 판 판의 끗발들이 성급하게 달여지고 있지만 가끔은 불법의 처방이 멱살을 잡기도 한다.

약탕기 속엔 팔짝팔짝 뛰던 용수철 몇 개 푹 고아지고 있는 탕제원, 가을 햇살은 탕제원 주인의 머리에서 반짝 빛난다. 무릎들이 무릎을 맞대고 팔월 지나 단풍을 뒤집고 있다.

 

 

                           

▲ 삽화=류지혜 기자 birdy@busan.com

 

[2015 신춘문예-시·시조 심사평]

 

'탕제원' 대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 잔잔한 감동

 

 

 

 

▲ 강은교, 이우걸, 김경복(왼쪽부터 차례대로)

 

 

올해 투고된 작품은 많았으나 전체적으로 그 수준은 평이했다.  
 
최종 심사에 오른 작품은 시 부분에서는 '대장장이 아버지' '피아노는 왜 뿔을 숨겼나' '최신버전 백신 다운로드하기' '탕제원' 4편이고, 시조 부분에서는 '겨울 꽃밭' '블랙커피를 읽다' '소금꽃' 3편이다.
 
'대장장이 아버지'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성찰과 표현의 아름다움은 돋보였으나, 당대적 현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측면이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 '피아노는 왜 뿔을 숨겼나'는 피아노라는 시적 대상을 통해 현대적 삶의 고단함과 삭막함에 대해 재치 있고 도전적 자세로 표현해내고 있는 점은 주목되었으나 너무 표현의 신기성에 치우친 점, 이해불가의 내용이 상당수 끼어들어 있는 점 등이 지적됐다. '최신버전 백신 다운로드하기'는 젊은 세대의 목소리로 당대 사회적 특성을 담아내고 있고 표현의 참신성이 돋보였으나, 시적 표현의 형식들이 역시 신기성에 머물러 감동을 주지 못했다. 이에 비해 당선작 '탕제원'은 표현의 묘미와 인간에 대한 따뜻한 관점이 주목을 끌었으며 무엇보다 대상을 참신하게 바라봄으로써 신선미와 함께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는 점이 점수를 받았다.

 

시 당선자 박은석(43) 씨는 "감각적인 언어가 어느 순간 심장을 울리는 느낌" 덕분에 시 공부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충남 아산으로 이사를 하면서 각박했던 삶이 고즈넉해졌고 자신의 세계에 빠질 여유도 생겼다. 그는 "결국 고립돼야 뿌리가 내려지는 것 같다"며 "항상 부족하고 고갈되고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시를 만나면서 소박하게, 행복하게 살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논술 교사인 그는 "아이들에게 천천히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을 해 줄 수 있어 너무 고맙다"고도 했다. 내면이 깊어지고 사유가 깊어진 글을 더 많이 쓸 계획이다. 

                                                                                                - 심사위원 강은교·이우걸·김경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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