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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수상 및 후보시

2015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 감히 / 윤은주

by 혜강(惠江) 2015. 1. 1.

 

 

 

[2015 每日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감히 / 윤은주
 
 
 
윤은주
 
민변도 (시조시인)

 

 

장미꽃 한 바구니가

배달 된 어느 저녁

향기에 얹혀있는 이름이 퍽, 낯설다

아무리 헤아려 봐도

내 몫은 이미 아닌,

나 모르게 꽃은 피고

나 모르게 가버린 봄

한동안 달뜬 나를 단번에 주저앉히는

스물 몇, 딸 나이 뒤로

내 얼굴이 지고 있다

 

 

 

◇당선소감   

 

 첫 단추를 채우며…"늘 애만 태워드렸던 이승은 선생님 고맙습니다"

 

 

윤은주

 

1953년 강원도 삼척 출생

서울 마포구청 공보과 객원기자, 마포지역 라디오방송 MC

2013`2014년 중앙일보 지상백일장 월 장원

 

 

당선 소식을 듣는 순간 아득히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아, 기쁨이기 전에 놀라움이 앞서 목소리가 가라앉았습니다. 제가 감히, 시인의 관문을 통과해도 되는 것인지? 지금도 먹먹합니다.

이 ‘꽃바구니’의 주인공 딸아이가 일곱 살쯤 되었을까. 늦은 밤,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을 손잡고 걸어가면서 무섭지도 심심하지도 말라고 흥얼거렸던 ‘하여가’와 '단심가'가 불현듯 떠오릅니다. 그때의 율격과 안정된 시조의 형식이 늘 헛헛한 내 영혼에 자양분이 아니었을까를 새삼 생각합니다.

늘 꿈꾸던 이 길을 멀리서만 바라보면서, 부모님 모시고 아이들 키우느라 머리에 쑥물이 앉았습니다. 그러다 번쩍, 정신이 들었습니다. 3년 전부터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시조의 이정표를 따라왔습니다. 좁고 가파른 길을 가느라 뒤뚱거리고 넘어지던 저를 몇 번이나 일으켜 세우고 용기와 힘과 질책까지 아끼지 않으셨던 선생님.

내심 소식을 기다리던 제게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어떤 결과라도 신의 뜻이다"라고 말씀하신 선생님께 뜨거운 마음을 올립니다. 신의 뜻이라면 더 열심히 제2의 인생을 다시 열겠습니다. 늦깎이라고 기죽지 않고 훌륭하신 선배님들께서 닦아놓으신 이 길에 누가 되지 않도록 바람만 바람만 살펴 걷겠습니다.

장미 꽃바구니보다 천 배는 진하고 아름다운 선물을 참으로 감히, 제가 받습니다. 나 모르게 피고 진 꽃들의 시간과 나를 이렇게 두고 가버린 봄을 탓하지 않겠습니다.

늘 애만 태워 드렸던 이승은 선생님, 고맙습니다.

쓸쓸하고 건방진 마음 한 조각을 은쟁반에 얹어주신 심사위원님, 고맙습니다.

이날까지 묵묵히 지켜준 우리 가족의 얼굴이 환히 피어나는 저녁, 당당히 시조의 세계로 한 발자국 들어갑니다.

첫 단추를 이제야 채웁니다. 참말 행복합니다.

 

 

 

◇심사평     새바람 일으킬 신인 발굴에 방점

 

…단아한 민족시의 진면목 잘 살려

 

 

아직도 진행형인 신춘문예는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결코 배제시킬 수 없는 중요한 자리매김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문학 지망생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관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단 한 차례의 평가에서 최상의 효과를 노려야 하는 절차의 형식상 과대포장이나 모작 내지 위작의 판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작자나 심사자 모두 모험보다는 안전성을 택하다 보면 신춘문예가 겨냥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가 어렵기 마련이다. 그래서 소위 ‘신춘문예류’라는 신조어를 낳게 되었다. 예의 그 ‘신춘문예류’를 깨고 문단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신인을 찾는 데 초점을 맞추고 심사에 임했다.

이번 시조 부문은 응모편수나 기량 면에서나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였다. 하지만 좋은 시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전제로 바라보면 지나치게 말초적인 감각과 논리에 묶인 경향이 짙다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다.

마지막까지 선자의 관심을 끈 작품은 「겨울, 남한강 어부마을에서」, 「무당거미, 해를 물다」, 「감히,」 등 세 편이었다. 「겨울, 남한강 어부마을에서」는 민물고기를 잡아서 생계를 잇는 어부의 애환을 그렸으나 얕은 감상에 그쳤고, 「무당거미, 해를 물다」는 무당거미를 통해 삶의 질곡을 투영시킨 상징성과 감각이 돋보였으나 지나치게 작위적인 외형묘사로 감동의 요인을 끌어내지 못하였다.

그에 비해 「감히,」는 예의 신춘문예 작품들과 확연히 다른 색깔과 맛을 지닌 가작이었다. 딸을 통해 잃어버린 자신을 되돌아보는 어미의, 기쁘면서도 억울한 감정이 애잔하게 전달되고 있다. 소품이면서도 단아한 민족시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이번 당선을 계기로 시조단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주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민병도(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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