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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수상 및 후보시

2015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갈매새, 번지점프를 하다 / 박복영

by 혜강(惠江) 2015. 1. 1.

 

 

                         2015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갈매새, 번지점프를 하다

 

 

                                                      - 박복영

 

 

 

 
그림=권휘원
 

 

 

          아찔한 둥지난간에 올라 선 아직 어린 갈매새는 주저하지않았다.
          굉음처럼 절벽에 부딪쳐 일어서는 파도의 울부짖음을
          두어번의 날갯짓으로 페이지를 넘기고
          어미가 날아간 허공을 응시하며 뛰어내린 순간,
          쏴아, 날갯짓보다 더 빠른 속도로 하강하던 몸이 떠올랐다.

          한 번도 바람의 땅을 걸어본 적 없으므로 가는 발가락은 오므린 채 가려웠다.
          하강은 추락을 꿈꾸지 않는 법.
          가슴 깃털을 헤집고 파고드는 처녀비행의 속도는 두려움이 되지 않았다.

          끊임없이 밀려와 절벽에 부딪쳐 부서지는 파도소리를 꽉, 물고
          허공에 길을 찾는 갈매새가 잠시 수평선을 읽었다.
          굽은 부리에서 거친 파도의 현이 흘러나오자
          휜 바람줄을 따라 기우는 날개가 다시 팽팽해졌다.

          태어나서 처음 바람을 거스르는 동안 갈매새는 바람의 부피를 다 가늠할 수 있을까.
          포물선의 꼭지점에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슬아슬한 궤적이 허공에서 지워지고 바람줄을 따라가며
          바람이 풀어놓는 행의 단서를 찾는 동안 가슴 가득 차오르는 생의 씨앗들.

          의문들이 빠져나올 때마다 날개가 책장처럼 펄럭였다.
          갈매새가 날개를 당기며 내려다 본 벼랑 끝엔
          벗어둔 신발 같은 텅 빈 둥지 옆으로
          누군가 방생한 키 작은 해국들이
          코카콜라 병뚜껑 같은 머리에 노랗게 흰 뼈를 우려내고 있었다.

 

 

 

[2015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소감]

 

 

 "혹평 아끼지 않은 아내에 감사" / 박복영

 

 

때늦은 전화를 받고 무작정 걸었습니다. 어금니 깨문 바람이 흩뿌리는 눈발의 서사와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으로 버팅기는 앙상한 마른 이파리의 둥근 몸 같은 메타포처럼. 점퍼에 말아 넣은 몸을 구부려 그렇게 한참을 걸었지요. 시린 무릎이 저려올 때까지.

내가 찾는 말은 무엇일까. 나뭇가지에 흔들림을 주는 바람의 유혹이며, 흔들리며 화답하는 나뭇가지의 언어임을 알았지요. 흔들리거나 흔들림을 주는 우리네 삶처럼.

시의 자유 속에 등뼈를 세우고 방향을 가르쳐 주신 이향아 시인님, 이동희 시인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고맙게 잘 자라준 아이들과 어둡다며 밝은 시를 써 보라고 혹평을 아끼지 않은 아내와 빈터 동인들, 수원의 김, 윤, 홍 시인과 원주에서 늘 서두르지 말라고 다독여주신 임일진 선생님께 이 감사를 전합니다.

 

 

 

[2015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심사평]

 

 "밀도·울림 있어 신뢰할 만한 작품"

 

 

 

생명력을 가진 것들은 도태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도전하고 실험합니다.

문학 역시 그러한 것은 생명체라는 증거일 것입니다. 독자들은 새로운 문학의 모습을 신춘문예 당선 작품을 통해서 발견하려고 기대합니다. 그 기대에 부응하려는 듯 올해에도 참신한 방향을 궁구하고 모색하려는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크게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무모하다 싶은 실험, 일체감과 통일성이 부족한 작품도 있었습니다. 안이한 타성에 젖어 있거나 목적의식이 두드러져 보이는 주제, 수사적 표현에서 독창성이 의심되는 작품들도 있었습니다.

예선을 거쳐 올라온 아홉 사람 중에서 이정희 씨와 박복영 씨가 최종까지 남게 되었습니다.

이정희 씨의 ‘손이 만평이다’는 여유 있는 호흡과 적절한 전환이 돋보이지만 처음 3행에 걸었던 기대가 아무런 암시도 없이 끝나버린 아쉬움이 컸습니다. ‘칼’은 은유와 생략으로 간결미를 보인 반면 그만큼 추진하는 에너지가 부족했습니다.

이에 박복영 씨의 ‘갈매새, 번지점프를 하다’가 최종 당선작으로 무난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박복영 씨의 다른 시들, ‘점묘화법’, ‘소리의 걸음을 읽다’ 등도 비슷한 밀도와 울림을 보여주어 더욱 신뢰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용도 없이 시끄럽고 현란한 작금의 세상에서 응답도 보상도 없는 문학을 사랑하고 추구하는 여러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부디 여러분이 걸어가는 문학의 길에 눈부신 광명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이양아, 이동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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