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태종대
잊고 지냈던 추억을 찾아 떠나는 여행
부산 태종대로 떠나기 전날 밤, 문득 '내가 태종대를 언제 가봤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너무나 유명한 곳이니만큼 언젠가 다녀왔겠지, 라는 생각에서였다. 한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 신선대에서 바라본 영도등대 *
하지만 왠지 낯설지 않은 느낌, 그 느낌이 쉽게 가시질 않는다. 책이나 신문을 통해 혹은 텔레비전을 통해서 접해본 그런 느낌은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기억이 날 듯 말 듯, 시원스레 나오지 않는 재채기처럼,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자리에 누워서도 쉽게 잠들 수가 없다. 그렇게 한참을 뒤척이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것이 책장 한쪽에 꽂혀 있는 낡은 사진첩이었다. 순간, 부산에서 태어나고 또 짧으나마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으니, 분명 저 사진첩 어딘가에 그 흔적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사진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그 유명한 광고 카피처럼, 내가 지금 당장은 기억해내지 못해도 저 낡은 사진첩 어딘가에는 그 언젠가의 기록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찾을 수만 있다면, 무엇보다 내 추억 속 깊은 곳에 묻혀 있을 태종대를 먼저 만나보고 싶었다. 그래야 이 개운치 않은 느낌을 훌훌 털어버리고, 보다 의미 있는 여행을 떠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다음날 새벽.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각, 전날 저녁에 찾아낸 사진 두 장을 챙겨 차에 올랐다. 여행의 목적이 섰으니 이제는 그곳에 가는 일만 남았다. 추억 여행. 나름대로 정해본 이번 여행의 목적이다. 찢어질새라 조심스레 떼어낸 낡은 사진 두 장을 취재수첩에 가만히 끼워 넣고 시동을 건다. 기분 좋은 엔진 소리 그리고 귀에 익은 올드 팝. 거리계를 '0'에 맞추고 액셀 페달을 밟는다. 왕복 820.6km. 아마 여기에 몇십 km는 더해질지도 모를 긴 여정이다. 하지만 상관은 없다. 30년을 훌쩍 넘긴, 그래서 영원히 잊힐 수도 있었던 추억을 찾아 떠나는 길에 그 정도 거리가 무에 문제겠는가. 지루한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에도, 잠깐잠깐 휴게소에 들러 커피 한 잔 마시는 그 짧은 시간에도, 가슴속 작은 설렘은 소풍 가는 아이의 마음처럼 쉽게 가라앉질 않는다. 추억을 좇아 떠나는 여행의 매력이 바로 이런 것일까.
부산을 대표하는 해안 명승지, 태종대
* 태종대 해안 풍경 *
태종대. 너무나 익숙하지만 그래서 더 낯설게 느껴지는 그곳으로 첫발을 들여놓는다. 차근차근 둘러볼 요량으로 발걸음을 최대한 천천히 내딛는다. 많이 변했다. 아니 변한 것 같다. 어디가 어떻게 변했는지 요목조목 집어낼 수는 없지만 분명 많은 것이 변한 건 사실이다. 멀게는 33년, 짧게는 27년 전에 와본 것이 태종대에 대한 내 기억의 전부이고 보니, 변한 게 없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지 모른다.
태종대는 오륙도와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해안 명승지다. 특히 해안 절벽과 기암괴석이 멋스럽다. 그 아름다움 때문에 예부터 시인과 묵객들이 많이 찾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비단 문인들만이 아니다.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도 이곳 해안의 절경에 심취해 한동안 머물며 활쏘기를 즐겼다 하니, 그 멋스러움에 대해선 더 이상 설명할 필요조차 없어 보인다. 태종대라는 이름 역시 여기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태종대의 또 다른 명물, 다누비 관광열차
* 다누비열차 *
태종대의 대표적 명소를 꼽으라면, 모자상으로 유명한 전망대와 망부석이 있는 신선대 그리고 영도등대 정도다. 하지만 신선대와 영도등대는 거리상 거의 한 장소나 다름없으니, 결국 전망대와 영도등대 두 곳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아마도 내 추억 속 사진에 담긴 장소도 이 두 곳이 아닌가 싶다.
태종대유원지의 명소들을 둘러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깔끔한 순환도로를 따라 걷는 것과 순환열차를 이용하는 것 그리고 유람선을 타고 해상일주를 하는 것이다. 우선은 걸어보기로 한다. 파도가 심상치 않아 해상일주는 포기해야 하지만, 보다 꼼꼼히 둘러보려면 순환열차보다는 걷는 편이 좋겠다는 판단에서다.
한적한 순환도로를 따라 천천히 걷는 기분이 꽤 괜찮다. 4.3km에 이르는 이 순환도로는 지난 2006년 9월 1일 이후 공원 무료화와 함께 일반 차량의 통행을 제한하고 있어 한적하다 못해 적막할 정도. 유원지 입구 안내판에는 순환도로를 한 바퀴 돌아보는 데 1시간 정도 걸린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곳저곳 천천히 둘러보다 보면 2~3시간이 훌쩍 지나가니 신발끈 단단히 묶고 출발하는 게 좋다.
걷는 게 부담스럽다면 순환열차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다누비'라 이름 붙여진 순환관광열차는 한 번에 96명까지 탑승이 가능하다. 일정 요금(어른 1,5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600원)을 내면 지정된 다섯 군데 정류장에서 횟수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타고 내릴 수 있어 보다 효율적으로 유원지 내 명소를 둘러볼 수 있다. 이동 중 구수한 입담으로 들려주는 태종대에 얽힌 다양한 정보는 보너스다.
순환도로를 따라 추억을 좇다
* 남항조망지에서 바라본 풍경 *
얼마나 걸었을까. 남항조망지에서 부산 남항의 다부진 모습을 구경하고 조금 힘들다 싶을 정도로 걸었을 때, 비로소 인자한 모습으로 두 자녀를 품고 있는 모자상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 뒤로는 타원형 전망대가 떡하니 버티고 섰다. 지금은 식당을 비롯해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선 이곳이 바로 자살바위가 있던 곳이다.
* [왼쪽/오른쪽]전망대 / 모자상 *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오롯이 바다밖에 보이는 것이 없다"는 한 관광객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조금은 역설적이지만 '죽음의 두려움을 잊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간직한 곳'이라는 표현이 그리 틀린 말 같지는 않아 보인다. 전망대 밑 좁은 통로로 들어서니 드디어 태종대에 얽힌 내 첫 번째 추억의 장소가 나온다.
* 생도(주전자섬) *
절벽해안도로라고 적힌 표지판을 따라 걸어 내려간 곳. 원형으로 만들어놓은 통로에서 열일곱 살의 나를 만난다. 25년 전, 아마도 꼭 이즈음이었던 것 같다. 수학여행 때 찾은 태종대, 그 중에서도 자살바위로 유명했던 이곳에서 전망대 뒤로 보이는 생도(주전자섬)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속에 내가 있다. 한 손을 들어 생도를 받치고 있는 사진에서 꼭 그 또래의 장난기가 묻어난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사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가슴이 따뜻해진다. 하지만 이젠 걸음을 옮겨야 할 시간이다. 아직 둘러볼 곳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와 태종대의 첫 만남이 이뤄졌던 곳, 내 손에 들려진 한 장의 흑백사진 속 추억을 더듬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섯 살쯤 되었을까. 흑백사진 속 내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 영도등대 *
걸음을 재촉해 도착한 곳은 100년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영도등대. 이곳이 바로 내 사진 속 두 번째, 아니 진정한 의미에선 첫 번째 추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1906년 처음 불을 밝힌 영도등대는 지난 2004년 8월 지금의 모습으로 단장하면서 갤러리와 도서관, 해양영상관, 자연사전시실 등 각종 문화시설을 갖춘 개방형 해양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그 운치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시설이 아무리 현대화했어도 가슴속 추억을 거스를 순 없는 법이니까.
추억을 좇아 망부석이 있는 신선대로 발걸음을 옮긴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사진 속 촬영지를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에서다.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며 카메라 앵글을 확인하는 사이, 어린 아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젊은 엄마의 모습이 시선을 끈다. 두 모자의 모습에서 35년이란 세월을 거슬러 낡은 흑백사진 속에 남겨진 부모님과 내 모습을 보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시간이 흘러 다시 30년이 지난 뒤,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이곳을 추억하게 될까. 멋진 등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될까, 아니면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불어대던 거친 바닷바람을 떠올리게 될까. 무엇이 되었든 지금까지 그랬듯 그리움으로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다시 태종대를 찾을 그날까지….
* 신선대 *
여행정보
1.찾아가는길
* 자가운전
대구부산고속도로 대동IC → 모란고가교 → 백양터널 → 수정터널 → 제5부두 서거리에서 태종대 방면 우회전 → 세관삼거리에서 좌회전 → 부산대교 → 봉래교차로에서 좌회전 → 부산저유소삼거리에서 영도 방면 우회전 → 태종대
* 대중교통
[버스]
서울→부산 : 서울고속버스터미널(1688-4700)에서 1일 46회(06:00~익일 02:00) 운행, 4시간 30분 소요
대전→부산 : 대전복합터미널(1577-2259)에서 1일 6회(08:00, 10:00, 12:40, 15:10, 17:00, 19:00) 운행, 3시간 10분 소요
대구→부산 : 동대구고속버스터미널(1588-6900)에서 1일 26회(06:10~22:20) 운행, 1시간 10분 소요
[기차]
서울→부산 : 서울역(1544-7788)에서 KTX 1일 46회(05:30~23:00) 운행, 2시간 40분 소요
대전→부산 : 대전역(1544-7788)에서 KTX 1일 46회(06:32~22:58) 운행, 1시간 40분 소요
2.맛집
포항물회전문 : 영도구 동삼1동 / 물회 / 051-405-9077
스쿠버횟집 : 영도구 봉래동2가 / 활어회 / 051-413-7530
홍복반점 : 영도구 남항동1가 / 중화요리 / 051-413-0763
제주복국 : 영도구 동삼1동 / 복국 / 051-405-5040
3.숙소
부산비치모텔 : 영도구 동삼2동 / 051-405-3331(굿스테이)
에이플러스(A+)모텔 : 해운대구 우동 / 051-731-5007(굿스테이)
녹천온천호텔 : 동래구 온천1동 / 051-553-1005(굿스테이)
대영호텔 : 중구 부평동2가 / 051-241-4661(굿스테이
- 글, 사진 : 정철훈(여행작가)
<출처> 2012. 9. 4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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