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기 및 정보/- 경북. 울산

봉화 승부역, 영동선의 3평 하늘 아래 '소박함' 찾기

by 혜강(惠江) 2012. 9. 1.

 

봉화 승부역

영동선 3평 하늘 아래 '소박함' 찾기

 


 글, 사진 : 한국관광공사 국내스마트관광팀 안정수 취재기자

 

 

 

 빛바래고 녹슨, 그러나 오지 깊은 곳까지 이어진 철도 따라서 눈꽃열차로 유명한 승부역… 여름에도 눈꽃 대신할 매력이 곳곳에 가득.  '슬로우' '천천히' '느림'을 앞에 단 관광 상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왼쪽/오른쪽]역 홈에 있는 우체통 / 승부역

 

 

  세상은 날이 갈수록 빠른 것을 선호하는데 다행히 관광에서만큼은 느림도 대중적 관심을 받는다. 그만큼 각박하고 숨 돌릴 틈 없는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은 이들이 많기 때문 아닐까. 그런 여유를 가지면 걸음걸이부터가 달라진다. 이 걸음에 주목해보면, 사람마다 본디 걷는 속도가 다르다.  

 

  하지만 좁은 인도에서 사람들 사이에 끼어 걷고, 대중교통 또는 자가용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도시인은 자신만의 걸음을 잊은 듯하다. 깜빡이는 신호등 횡단보도에서, 지하철 도착 알림음이 들리는 계단에서, 닫히는 엘리베이터 옆 버튼을 앞두고… 걷질 못하게 만드는 몹쓸 세상 때문이다. 자신의 편안한 걸음은 남이 모른다. 자기 자신만 알뿐. 그 본 걸음걸이를 찾아 떠나는 여행, 승부역이 좋겠다. 

 

  먹고 살자고 일한다면, 잘 먹고 잘살자고 떠나는 게 여행이다. 내가 먹을 도시락 정성스럽게 싸고, 훗날 사진첩 속 추억도 만들기 위해 장롱 속 카메라도 꺼내자. 남들이 패션 빵점이라고 해도 좋다. 내가 편한 복장으로 입자. 그리고 물통도 필요하다.  

 

  승부역으로 가는 열차는 영동선(영주-강릉)이다. 영주 또는 강릉에서 승부역으로 가는 열차를 타야 하는데, 각 역에서 일일 3~4번 승부역에 정차하는 열차가 운행되니 미리 해당 날짜의 운행시각을 확인해 두자. 강원도와 경상북도 경계로 가는 열차 밖 풍경, 태백산맥의 속살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영화처럼 터널을 지나면서 눈부심 속에 서서히 드러나는 풍경도 인상적이다. 승부역이 있는 봉화군은 전체면적의 3/4 이상이 자연 그대로 남아있기에 더욱 좋다.

 

 

* 간이역인 승부역의 선로 *

 


   태백산맥을 넘고 둘러가는 영동선은 간이역이 많다. 그중 승부역이 가장 작은 편이다. 간단히 말해 대기실이 없고 화장실은 공용이며 그 외에 역 내 건물도 없다.  

 

  내릴 역에서 못 내리고 다른 역에 내렸는데 그곳이 승부역이라면, 이런 생각하게 될 것이다. '꿈인가' 상점, 없다. 식당, 없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없다(콜택시 부르는 것은 예외). 주위에 여행객이 없다면, 역 안에 철도직원 1명과 당신이 거기에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 승부역 역세권에서는 자연이 공짜다 *

 


 

  열차에서 내려 작은 역간판, 건물을 둘러보는 사이 열차가 떠나고 정적이 골짜기에 내려앉는다. 이 순간부터 승부역의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된다. 역 홈에 떡하니 큰돌이 자리했다. 낙동강을 등지고 돌에 새겨진 글귀를 읽어본다.  

 

     승부역은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

 

  승부마을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이야기를 1960년대에 승부역에 근무하던 역무원이 남긴 내용이라고 한다.

 

 

* [왼쪽/오른쪽]영암선 준공비 / 승부역 상징석 *

 

 

 

  이런 승부역 이면의 과거,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1949년 4월 영암선(영주-철암)이라는 이름으로 일대 철도와 역이 착공됐으나 한국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됐다. 휴전 이후 다시 진행돼 1955년 12월에 완공. 1956년 1월 1일 영암선 첫 열차가 운행했지만, 이용객이 적었던 승부역은 보통역에서 간이역으로, 간이역에서 신호장으로 격하됐고 여객 취급을 하지 않는 신호장임에도 하루 6번 무궁화호가 정차하는 특이한 역으로 기능했다. 그러다가 1999년 눈꽃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하면서 승부역에 관심이 몰리고 인기를 끌어 신호장에서 보통역으로 전환됐다. 

 

  말 그대로 오지다. 이 험준한 지형을 두른 철도 공사가 상당히 위험했고 높은 난도였을 것이라 쉬이 짐작된다. 당시 영암선 공사는 태백 일대 지하자원을 수송하기 위해 국내 기술진에 의해 건설됐다. 특히 승부역 주위 구간이 최대의 난공사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영암선 개통기념비가 세워진 곳도 승부역이다.

 

  승부역 끝과 끝을 오가며 경치를 즐기면 '하늘 참 좁구나' 싶다. 좁은 골짜기와 양옆으로 가파르게 산세가 솟아 여름에도 해가 빨리 진다. 뜨겁게 달아오른 레일 위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춤을 춘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으니 그 춤사위가 신명나다. 

 

  숙박하는 이들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며 둘러보는 것이 좋겠지만, 무박으로 승부역을 찾은 이들은 타고 떠나야 할 열차 탑승 시각이 정해져 있다. 참고하시라는 차원에서 단거리 동선으로 승부역 근처를 소개한다. 덧붙여 코레일 춘양관리역에서 내일로 티켓을 구매하면 승부역의 숙소를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이 있으며, 역에서 약 1.5km 거리에 펜션이 있다.

 

 

* 낙동강 건너 승부로와 이어지는 두 다리 (왼쪽이 승부현수교) *

 

 


   일단 낙동강을 건너자. 특이하게 역과 연결된 다리가 2개. 하나는 '출렁다리'라고 불리는 승부현수교, 다른 다리는 승부로가 이어져 차량통행이 가능한 무명의 다리다. 근데 승부로와 이어진 다리는 평상시 낙동강 수면에서 약 1.5m 높이로 만들어져 강우량이 많을 땐 건너기 위험할 듯하다. 그런 때를 대비해 만든 것이 승부현수교다. 이 자리에는 원래 목교가 있었으나 2002년 태풍 루사의 영향으로 쓸려 내려가, 쇠로 만든 출렁다리가 생겼다.

 

 

  낙동강 상류 방향으로 걸어가자. 전방에 보이는 다리 '승부교'를 건너 승부역 뒤편 투구봉 숲으로 조금 들어가 보려 한다. 열차가 다니는 터널이 가깝다. 산의 중턱을 깎아 레일을 깔고 보호벽을 두른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니 1950년대 우리 기술력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였음을 알 수 있다. 다리를 건너 약 20m 앞에 약수라고 쓰인 비석과 이정표, 다져진 산길을 따라 약 20분 정도 올랐을까. 약수터가 나온다.

 

 

* 승부교 주위 풍경 *

 

*투구봉 약수 *

 

 

   '투구봉 약수'라고 불리는 샘물이다. 안내판 설명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의병이 후퇴하면서 이곳에 다달했고 병사들은 위장병과 옻이 올라 고생이였다고, 그러던 중 이 샘물을 먹고 바르자 병이 나았고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한다. 승부리 주민은 투구봉 약수에 대해 "물은 참 좋은데 관리가 잘 안 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약수을 마시고 벌겋게 익은 팔에도 물을 끼얹으니 없던 병도 나을 듯한 기분이다. 가져온 물통을 꺼내 약수 채우고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자.
 

 

* [왼쪽/오른쪽승부마을로 가는 길 / 손수 경운기를 몰고 계곡 명당을 알려주신 어르신 *

 

 

  다시 승부교를 건너 삼거리에서 석포방향 오르막길로 가면, 약 15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에 '승부마을'이 나온다. 그늘 하나 없이 하늘과 맞닿은 듯한 마을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비탈진 땅이지만 평평하고 넓다. '거친 산세 속 이렇게 좋은 터가 있다니' 신기하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마을은 워낙 가구 수가 적고 거주민도 대부분 고령의 어르신이다. 오랫동안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을 남겨본다.

 

 

  마을 주민이 추천한 계곡물은 승부역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이 아니다. 승부역 건너편에서 내려오는 작은 계곡물이다.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와 승부역 사이엔 여러 공장이 있고 낙동강이 공업용수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수질이 나빠졌다는 설명이다. 요즘에는 수질이 낳아졌다고 하지만 이곳 주민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아직 부족한 모양이다.

 

 

  낙동강을 따라 내려오면 눈꽃마을이란 비석을 보게 된다. 실제로 존재하는 마을이 아닌, 겨울에만 나타나는 마을이다. 승부역에 눈이 쌓이고 낙동강이 꽁꽁 얼 때 즈음이면 눈꽃열차를 타고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는다. 그 사람들이 이곳에 모이면 눈꽃마을 주민이 되는 것이다. 비석을 지나면 소규모의 야영지가 마련돼 가족 단위로 캠핑하기 좋다. 승부역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근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계곡 옆으로 정자가 있어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기에도 좋다. 

 

 

* [왼쪽/오른쪽]승부역 건너 산골, 낙동강에 합류하는 계곡물이 흐른다 / 투명한 계곡물 *

 

 

 * 좀 더 놀겠다는 아이들, 결국 배고프다는 삼촌이 화를 내자 물에서 나온다 *

 


 물이 너무 투명하다. 그늘진 계곡가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물속에서 작은 고기 수십 마리가 옹알거린다. 철교 건너 방학을 맞아 시골에 내려온 아이들이 깨알 웃음을 터트리며 물장구질이다. 물속이나 물 밖이나 여름 맞은 어린 생명의 조잘댐에 시름이 날아가는 듯하다.

 

 

* "쿠궁 쿠궁" 소란스레 달리는 열차는 이내 터널로 몸을 감춘다 *

 

 

 

  소화할 겸 승부역 근처를 걷던 중 "땡 땡 땡" 종소리가 울리고 곧 웅웅거리는 열차 굉음이 골짜기를 가득 채운다. 산골 오지의 간이역인 '승부역'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다. 철교 쇳덩이를 울리며 터널로 열차가 사라지는데, 아래 낙동강은 미끄럼틀 타듯 태백산맥 골짜기를 타고 영남을 향해 흘러간다.

 

 

* [왼쪽/오른쪽]산그늘 아래 벤치, 열차 기다리는 시간도 낭만적이다 / 다리 중간에 걸터 앉아 풍경을 음미해도 좋다. *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대부분인 승부마을, 열차가 오면 타거나 내릴 승객이 없어도 역전을 살펴보는 철도 직원, 도보여행으로 목적지인 승부역에 도착했다며 기념사진을 찍어달라던 한 부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던가. 승부역에서는 눈만 마주쳐도 인연이다. 어느새 몸이 각성했는지 제 걸음걸이를 찾아낸 듯하다. 다시 빨리 걸어야 하는 시간이 오겠지만. 이 걸음은 마냥 반갑다.

 

 

여행정보  

1.찾아가는길

* 자가운전 : 중앙고속도로 영주IC → 영주시내 → 36번국도 → 옥천 삼거리 → 31번국도 → 육송정삼거리 → 910번 지방도 → 석포리 → 승부리 → 승부역

* 기차 (영동선)

상행선(영주 방면) 하루 4회(08:27 15:27 18:15 20:17) 운행
하행선(강릉 방면) 하루 3회(07:22 14:51 20:18) 운행 

2.맛집

솔봉이(봉화군) : 송이돌솥밥, 송이전골, 054-673-1090
까치소리(봉화군) : 산채비빔밥, 고등어구이정식, 054-673-9777
황소실비(태백시) : 한우 갈비살, 육회, 033-553-0304
경성실비식당(태백시) : 한우 등심, 갈비살, 033-552-9356

3.숙소

하늘세평펜션 :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 054-673-5402
무진파크 : 봉화군 소천면 고선리, 054-673-9988
궁전모텔 : 봉화군 봉화읍 내성리, 054-674-0300
JS모텔 : 태백시 문곡소도동, 033-553-6659
동아모텔 : 태백시 황지동, 033-552-2365
 

 

<출처> 2012. 8. 31 / 한국관광공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