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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광주. 전남

완도 명사갯길 걷기 - 바다, 백사장 ‘일거삼득’

by 혜강(惠江) 2012. 8. 16.

 

 완도 명사갯길 걷기

숲길, 바다, 백사장 ‘일거삼득’

 

 

글·손수원 기자 / 한준호 기자 

 

 

 

옛 신지 주민들이 걷던 갯길을 정비해, 지난 5월 개통한 완도 명사 갯길 3.8km 완성, 명사십리 바라보는 나무데크 길 백미 

 

 

 

▲ 명사갯길에서는 명사십리 해변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나무데크 길을 걷는다. 파란  하늘에는 구름이 섬처럼 떠 있고, 바다에는 섬이 구름처럼 떠 있다.

 

 

 

  “앗! 뜨거, 뜨거!”

  여름 더위는 사람들의 인내력마저 사정없이 녹여버릴 듯 뜨겁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은 산과 바다로 피서를 떠나느라 여념이 없다. 일 년 중 가장 즐거운 시기이다. 남해안으로 피서를 떠난다면 한번 걸어볼 만한 걷기 길이 새로 개통됐다. 바로 전남 완도의 ‘명사갯길’이다. 2011년 행정안전부 친환경 생활공간 조성사업으로 사업비 5억 원을 들여 옛날 산길을 정비하고 편의시설을 마련해 지난 5월 25일 개통했다.

 

 

  명사 갯길은 신지도의 나지막한 산길을 걸으며 드넓은 다도해가 그려내는 풍경화를 오롯이 바라볼 수 있는 길이다. 뿐만 아니다. 3.8km의 명사십리 해변에서는 사정없이 푸른 바다로 뛰어들어 여름 무더위를 날려버릴 수도 있다. 길 곳곳에서 만나는 작은 포구와 갯바위는 또 어떤가. 미끼 하나 끼우지 않아도 낚싯대만 드리우면 세월이 절로 낚인다. 이렇게 길을 걸으며 ‘멀티 바캉스’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명사갯길이다.

 

 

  명사 갯길은 완도에서 신지대교를 지나 바로 있는 강독휴게소에서 시작한다. 이곳에서 물하태와 명사십리해수욕장까지가 제1구간, 해수욕장(울몰)에서 석화포를 지나 내동마을까지가 제2구간이다. 1구간은 약 7.7km, 2구간은 8.6km로 총 길이는 16.3km 정도다. 

   

숲길과 해변을 함께 걸을 수 있는 멀티 트레킹 코스

 

  요즘 이상기후현상이 문제라더니 휴게소 한편엔 제 계절을 잊은 ‘가을 전령’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휴게소 사장의 말에 의하면 지난 4월만 해도 겨울처럼 춥더니 봄기운을 느낄 새도 없이 바로 여름이 찾아왔다고 한다. 요즘 같으면 사람도 계절을 헷갈려 할 정도니 햇살의 온도만으로 꽃망울을 터뜨리는 순진한 코스모스는 오죽하랴 싶다.

 

  강독휴게소 근방은 옛날엔 강독나루터가 지척에 있던 곳이다. 2005년 완도와 신지도 사이에 신지대교가 놓이면서 이제는 섬 아닌 섬이 되었지만 그 전에는 이 강독나루터와 물하태나루터에서 완도 제1부두까지 철부선이 다녔다. 다리가 놓이면서 교통은 더욱 편리해졌지만 많은 신지도 주민이 완도로 이사하면서 신지도 인구는 그때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이날 안내를 맡은 명사갯길 지킴이단 박종길 대장은 “다리가 생기면서 신지도 사람들이 완도로 많이 나갔지요. 때문에 신지에서는 농번기라도 일할 사람이 없어요”라며 신지도의 현재를 말해 주었다. 섬 사이를 잇는 다리 하나가 토박이들의 삶의 터전을 바꿔놓은 것이다. “왜 자꾸 섬 밖으로 나가려고만 하나요?”라고 물어보고 싶으나 그들의 사정을 모르니 더 이상의 질문은 괜한 오지랖일 것 같아 말을 목구멍 깊이 꿀꺽 삼킨다.

 

 

 

▲ 명사갯길의 출발지인 강독휴게소 뒤편에 때 아닌 코스모스가 만개했다. 출발을 축하하는 꽃 퍼레이드 같았다.

 

   생수며 삶은 달걀 몇 알을 사서 휴게소 뒤편에 나있는 나무계단을 오른다. 이른 아침에 부는 시원한 바람 덕분에 발걸음이 가뿐하다. 5분 정도 계단을 오르면 전망대가 나타난다. 오른쪽으로 펼쳐진 다도해의 풍광에 ‘캬~’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지만 박 대장은 이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고 말한다. 과연 어떤 풍경이 펼쳐지기에?

 

  전망대를 나와 오솔길을 조금 걸으면 바로 명사갯길 이정표가 보인다. 갯길은 어지럽게 나 있지 않고 정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설사 이정표가 없더라도 헤맬 일은 없어 보인다.

 

  갯길이 나있는 낮은 언덕엔 소나무와 굴참나무가 제법 그럴듯한 숲을 이루고 있다. 오른쪽에서 길의 멋진 배경을 만들어주는 바다에서는 짭짜름한 갯내가 코끝을 간질인다. 바다 건너로는 완도항과 완도읍의 풍경이 사진처럼 펼쳐진다. 완도읍 동망봉엔 2008년 9월 완공한 완도타워가 랜드마크처럼 우뚝 서 있다.

 


▲ 코스 곳곳에는 이정표가 잘 설치되어 있어 길을 잃을 걱정은 없다.

 

  이정표를 지나면 길이 좁아진다. 한 사람이 걸으면 꽉 차는 길이다. 오른쪽에는 절벽에 조명탑을 군데군데 세워두었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자꾸만 시선을 빼앗는다. 그 푸른 유혹에 너무 빠져버려 발을 헛디딜까봐 정신을 바짝 차린다. 예쁜 아가씨 훔쳐보듯 흘깃흘깃 곁눈질만 하려니 조금 약이 오른다. 조금이라도 빨리 넓은 장소에 당도하고 싶어져 절로 발걸음이 빨라진다.

 

  지금 걷는 이 길은 섬 주민들이 오가던 갯길이다. 갯길은 바닷가마을에 주로 있는 오솔길을 일컫는다. 주민들이 갯벌로 일하러 나가고 들어오면서, 이웃 마을 친척집에 안부를 물으러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길이다. 역사도 역사지만 섬사람의 희로애락이 물씬 배어 있는 길이다.

 

  조선시대 신지도에는 말을 키우던 목장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그 당시 대표적인 유배지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정조 때 당시 유배지를 기록한 문헌에 의하면 ‘유배지로 수로가 멀기는 추자도와 흑산도, 제주도 삼도를 빼면 고금도와 신지도’라고 했다. 그만큼 한양에서 멀고 외진 섬이었던 것이다.

 

  신지도에는 40여 명이 유배되었다고 전해진다. 문헌상 기록된 최초의 신지도 유배인은 조선 후기(1694년)의 남인 정치가 목내선(睦來善)이다. 당시 좌의정의 자리에 올랐던 목내선은 인현왕후가 복위하고 서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신지도로 유배되어 5년간 위리안치(圍籬安置, 가시나무나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만들고 죄인을 가둠)형에 처해졌다. 이후 조선시대 서예가 이광사, 신유박해로 아우 정약용과 함께 유배형을 받은 정약전도 흑산도로 가는 도중 신지도에서 약 8개월간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철종 때 안동 김씨인 김좌근과 김문근의 세도정치를 비판하다 신지도로 유배된 조선후기의 문신 이세보는 이곳에서의 생활을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신도일록(薪島日錄)>을 남기기도 했다. 종두법으로 잘 알려진 송촌 지석영도 신지도에서 5년여를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좁은 오솔길을 조금 걸으면 도로와 만난다. 도로면에 화살표를 그려놓아 쉽게 방향을 잡을 수 있다. 강독1교를 왼쪽에 두고 조금만 걸으면 오른쪽에 세워둔 이정표를 따라 다시 숲길로 들어서게 된다. 산길 초입이라 약간의 급경사가 이어지지만 이내 평탄한 길이 나타난다.

 

  15분 걸으면 검은 차양막이 덮인 광어 축양장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다시 콘크리트길이 잠깐 나타난다. 왼쪽으로 나가 큰길에서 오른쪽으로 바라보면 다시 언덕으로 오르는 입구가 있다. 이곳을 기점으로 다소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다소 섬 안쪽으로 들어가는 구간이라 바다는 잠시 모습을 감춘다. 잠시 동안은 오롯이 오솔길의 정취를 즐기면서 걷는다.

 

  "이런 곳은 특별한 산이 아니라 달리 이름이없어요. 신지도에서 가장 높은 산은 상산(象山)이에요. 324m 정도 되지요. 명사갯길이 생기기 전에는 상산을 오르거나 상산 둘레를 한 바퀴 돌곤 했어요. 물론 지금도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고요.”

 

  박종길 대장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제법 높은 상산이 눈에 들어온다. 코끼리 상(象)자를 써 ‘코끼리 산’이라고도 부른다. 신지도의 모양새가 코끼리 코처럼 가로로 길게 생겼다 해서 코끼리를 뜻하는 산이 되었다고 한다. 신지도의 옛 이름인 ‘지도’도 본래는 긴섬→진섬→지섬(지도)으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 예전에는 바다 건너 마주보던 섬이었던 완도를 옆에 두고 걷는다. 이제는 완도와 같은 육지가 된 신지도의 옛길은 섬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길이다.

 

신지도 주민들이 다니던 실핏줄 같은 갯길

 

  오르막의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이내 큰 길을 만난다. 바로 이곳이 물하태 나루터 인근이다. 큰길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가면 물하태 선착장 터가 나온다. 과거에는 신지, 고금, 약산 주민들이 완도로 가기 위해 늘 북적이던 곳이었으나 다리가 놓인 이후 선착장 풍경은 시간이 멈춘 듯 한가로워졌다.

 

  명사갯길은 계단 맞은편 콘크리트길로 곧장 올라가면 된다. 도중에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은 상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이정표와 길바닥의 화살표를 따라 직진하면 된다. 숲길을 조금 걸으면 제법 큰 나무데크 쉼터가 나온다.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래고 박 대장이 가져온 참외 한 쪽을 먹으며 기운을 차린다. 휴게소에서 이곳까지 약 3.8km, 소요시간은 쉬엄쉬엄 걸어도 1시간 20분 정도면 충분하다.

 

  쉼터를 조금 걸으면 아담한 나무데크 길이 나오는데, 데크에 들어서기 전 오른쪽을 유심히 살펴보면 작은 약수터가 있다. 파란 바가지가 이정표 역할을 하듯 걸려 있어 찾기에 어렵지 않지만 이 날은 워낙 가문 탓에 목을 축일 수 있을 정도의 물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시원하게 비가 한 번 쏟아지고 나면 맑은 샘물이 솟아난다고 하니 나중에는 이곳에서 물통을 채우면 되겠다. 

 


▲ 끝없이 펼쳐진 명사십리 해변을 걷는다. 3.8km에 이르는 해수욕장 뒤편으로 나무데크 길과 오솔길을 마련했다.

 

  20분 정도 비탈길을 오르면 등대사거리다. 오던 길에서 왼쪽으로 300m 정도 가면 뾰족산 정상과 산동정이라는 정자로 갈 수 있고, 오른쪽으로 700m 정도 가면 등대전망대까지 다녀올 수 있다. 어느 곳도 둘러보지 않고 그대로 직진한다면 명사십리해수욕장 입구까지 1.3km 거리다. 물론 선택은 걷는 사람 마음이다.

 

  기자는 오른쪽 코스를 선택했다. 등대와 어우러지는 풍광을 한번 보고 싶었다. 등대전망대까지 가는 길이 제법 가파르다.  나무데크로 만든 등대전망대에 도착했지만 등대는 보이지 않는다. 등대를 보려면 왼쪽으로 언뜻 보이는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드나드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은 모양인지 길 흔적이 확실하지는 않다.

 

  잡초가 꽤 자란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가면 군용방호시설이 있고 오른쪽으로 조금 돌아가면 하얀색의 서봉각등대가 보인다. 이 등대는 무인등대로 현재는 가동하지 않는다. 등대와 어우러지는 바다의 풍광이 제법 운치 있긴 하지만 굳이 여기까지 내려왔다 다시 올라가는 것을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전망대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정도면 족할 것 같다.

 


<출처> 2012년 8월호 / 월간산 5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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