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기 및 정보/- 전라북도

무주 뒷섬마을 ‘학교 가던 길’, 멱 감고 알밤 주워먹던 놀이터

by 혜강(惠江) 2010. 10. 21.

무주 뒷섬마을 ‘학교 가던 길’

 

타박타박 1시간 반… 멱 감고 알밤 주워먹던 놀이터

 

 

글·사진 박경일기자

 

 

 

▲ 향로봉 정상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내도리 일대의 풍경. 금강의 물굽이가 크게 감아돌면서 만들어진 물방울 모양의 땅이 앞섬마을이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다리 건너편이 뒷섬마을이다. 뒷섬마을 아이들의 ‘학교 가던 길’은 오른쪽 강변의 기슭을 따라 이어진다'

 

▲ 뒷섬마을에서 무주읍으로 이어지는 ‘학교 가던 길’은 징검다리를 딛거나 물수제비도 뜨면서 느릿느릿 걸어야 제맛이다.

 

 

# 산과 물로 닫힌 마을에 남아있는 추억의 길


   도대체 앞은 어디고, 뒤는 또 어딜까. 금강 물줄기가 크게 굽이쳐 빚어낸 물방울 같은 지형의 전북 무주 ‘앞섬마을’이야 그나마 알려진 곳. 그렇다면 ‘뒷섬마을’은 또 어딜까. 지도를 짚어보니 뒷섬마을은 금강을 건너 들어선 앞섬마을에서 또 한번 물을 건너 들어가는 곳의 마을이었다. 섬이 아님에도 이 두 마을이 앞뒤의 ‘섬마을’로 불리는 것은 마을이 금강의 물과 첩첩이 이어진 산으로 꼭꼭 닫혀있기 때문이다. 마을 이름은 무주읍에서 먼저 닿는다 해서 앞섬, 뒤에 닿는다 해서 뒷섬이라 붙여졌다. 새겨보자면 앞섬과 뒷섬의 ‘앞’과 ‘뒤’는 ‘전(前)과 후(後)’가 아니라, 곧 ‘선(先)과 후(後)’를 말함이다.  

 

   그러므로 뒷섬마을은 앞섬마을보다 더 먼 곳일 밖에…. 금강을 건너는 다리가 놓이기 전의 앞섬마을은 배를 타지 않고는 건널 수 없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그러니 앞섬마을에서 또 한번 강을 건너야 하는 뒷섬마을은 더 말해서 무엇할까. 사정이 이러니 뒷섬마을 주민들은 무주읍에 가려면 나룻배로 물길을 두 번이나 건너서 에둘러 돌아가야 했다. 그나마 비라도 내릴라치면 강물이 불어 길은 수시로 끊겼다. 차라리 석벽으로 우뚝 솟아있는 깎아지른 벼랑길을 따라 향로봉의 낮은 목을 타고 넘어가는 편이 더 나았다. 뒷섬마을에서 무주읍내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학교 길’이 만들어진 연유가 이랬다. 

 

 뒷섬마을의 까까머리 아이들이 학교를 가기 위해 넘나들던 길. 뒷섬마을 주민들은 그 길에 ‘학교 길’이란 이름을 붙였다. 무주읍으로 닿는 외길이었으니 꼭 학교에 가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겠지만, 그 길을 오전, 오후 무시로 넘어다니던 것은 등·하굣길의 아이들이었다. 학교 길은 애초에 있던 길이 아니라 일제시대 무렵 주민들이 손수 만들어낸 것이다. 자식을 학교에 보내고자 했던 부모들이 강변에 솟아있던 질마바위를 일일이 정으로 쪼아내서 그 사이로 길을 만들어 이었다. 그러곤 가파른 길을 눕히고, 무너지는 길에는 시멘트를 발랐다. 질마바위를 지나자마자 바닥에 발라놓은 시멘트에 새겨놓은 ‘1971년 5월20일’이란 날자가 뚜렷하다.  

 

# 깊어가는 가을에 느릿느릿 그 길을 걷다
 
 

 

  뒷섬마을에서 시작하는 강변 학교 길은 그저 ‘빼어나다’는 탄성 외에 더 빼거나 보탤 것이 없다. 후도교에서 출발하는 길의 시작은 금강의 벼랑을 따라 이어진 적요한 강변길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길이라 덩굴들이 자주 발목을 붙잡지만, 이곳은 손대지 않아서 더 빛난다.

 

  고즈넉한 강변 흙길을 따라 터덜거리며 걷는 길. 단풍소식은 아직 설악산 부근에서 머물고 있다지만, 이곳의 강변에는 가을이 하루하루 깊어가고 있다. 강변의 숲에는 아직 초록이 짙지만, 길 옆의 벼랑에 매달린 담쟁이 이파리들은 벌써부터 핏빛으로 물들고 있다. 길바닥에 후두둑 떨어진 잘 영근 산밤도 발길에 채고, 풀섶에는 쑥부쟁이며 벌개미취, 구절초 같은 가을꽃들이 환하게 피어났다.  30∼40년 전 책가방을 메고 이 길을 걷던 까까머리 뒷섬마을 아이들도 꼭 이랬으리라. 가을볕에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거나 하릴없이 납작한 돌을 쥐고 물수제비도 떠보고, 징검다리를 딛고 피라미떼 유영하는 강물 속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학교 길은 바삐 걷는 것보다 이렇듯 해찰하며 걷는 것이 딱 제맛이다.

 

  강변을 따라가던 길은 흐려지다가 곧 경사면의 숲길로 차고 오른다. 향로봉의 낮은 목을 따라 넘는 길이다. 여기서 자그마한 절집 북고사까지는 줄곧 오르막길이다. 숲 길에 들면 강변 길에서와는 사뭇 다른 정취가 느껴진다. 나무도 그다지 크지 않고, 숲도 짙지 않지만, 새소리를 들으며 탄력있는 흙길을 딛고 오르는 맛이 그만이다. 오르막이 끝나면 이내 절집 북고사다. 조선 개국 직후 무학대사가 무주의 지세를 보완하고자 세웠다고 전해지는 절집이다. 절집에서 나와 능선을 이어 넘어가면 곧 길은 곧 무주읍에 가닿게 된다. 학교 길은 여기까지다. 느릿느릿 걷는다면 편도 1시간 30분 남짓. 길이 짧아 아무래도 아쉽다. 그렇다면 북고사쯤에서 학교길에서 벗어나 향로봉의 정상을 밟고 내려오는 코스를 택하는 편이 더 낫다. 향로봉 정상이 품고 있는 빼어난 풍경은 그곳만으로도 충분한 여정이 된다.

 

# 향로봉 정상에서 금강의 물굽이를 내려다보다


     북고사에서 향로봉 정상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온통 소나무들로 그득하다. 향로봉에서 북고사까지는 길은 1㎞ 남짓. 향로봉 일대는 주민들을 위한 등산로로 정비돼있어 길이 좋고, 안내판도 잘 돼있다. 북고사에서 촘촘한 소나무 숲길을 따라 오르면 이내 갈림길을 만난다. 오른쪽으로는 가파른 흙길이고, 왼편으로는 부드러운 숲길이다. 둘다 향로봉에 이르는 길이지만, 왼쪽의 오붓한 숲길이 훨씬 더 운치있다. 숲으로 드는 두 뼘 남짓 넓이의 오솔길은 구불구불하되 순하다. 이 길을 걷다가 다시 갈림길이 나오면 향로봉 정상 표지판을 따라 우회전하면 정상의 전망대에 이른다. 

 

   향로봉 정상의 전망대에 서면 금강의 물길이 창암절벽을 감아도는 모습이 발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안동 하회마을이나 예천의 회룡포 못지않은 절경이다. 아침 안개가 피어날 무렵이면 정취는 더 하다. 멀리 후도교와 그 다리 끝에서 걸어온 강변 학교 길이 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에서 고개를 들어 서남쪽을 바라보면 첩첩이 이어진 산능선이 달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첩첩한 능선을 바라보노라면 산 깊은 땅이 무주에 있다는 것이 새삼 실감난다. 전망대에서 고개를 뒤로 돌리면 적상산이 우람하게 솟아있고 그 아래로 무주읍내의 전경이 펼쳐진다. 전망이 어찌나 빼어난지 무주를 찾았다면 이곳 하나만을 목적지로 삼는다 해도 손색이 없겠다. 

 

  내친 김에 길을 더 늘려서 길게 걷고 싶다면 향로봉에서 다시 북쪽으로 등산로를 따라 활공장까지 이어지는 숲길을 따라가도 좋겠다. 향로봉에서 명산 자락의 활공장까지 이어지는 1.8㎞ 남짓의 숲길은 금강 물줄기의 직벽의 능선을 따라간다. 능선길 곳곳에서 시야가 트여있는 지점에 서면 발 아래로 탄성이 터지는 풍경이 펼쳐진다. 활공장 부근에 도착하면 시야가 270도 각도로 펼쳐진다. 정상 부근에는 열매를 매단 산초나무들이 지천이어서 알싸한 향이 코끝에 스친다. 활공장까지 갔다면 길을 되짚어나오는 것보다 임도를 따라 19번 국도변의 밤숙골마을 쪽으로 내려오는 것이 낫다.  

 

# 신선이 노니는 암봉을 넘어 장보러 가는 길

 

  무주의 뒷섬마을에 ‘학교 길’이 있다면 무주군 설천면 두길리의 벌한마을에는 ‘장에 가는 길’이 있다. 벌한마을은 소위 무진장(무주·진안·장수) 지역에서도 가장 오지에 꼽히는 곳. 덕유산 북쪽 거칠봉 자락의 깊고 깊은 산중 마을이다. 마을은 북향이지만 어찌나 산이 깊은지 능선의 자락들이 칼바람을 막아줘 오히려 아늑한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벌한(伐寒)이란 지명도 풀어보자면 추위(寒)를 물리친다(伐)는 뜻이다.

 

 벌한마을 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서북쪽을 가로막은 능선의 사선암을 넘어서 무풍장에 다녔다. 등산로나 다름없는 가파르고 거친 길이었지만, 마을 주민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순한 길을 찾자면 설천면까지는 10리 골짜기를 빠져나가서 20리를 더 가야 했고, 무주읍까지는 자그마치 60리가 넘는 길이었다. 그러니 콩 한 말을 팔려 해도, 간고등어 한 손을 사려 해도 거친 사선암 옛길을 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마을주민들에게 사선암 고갯길을 넘어 무풍장에 가던 옛 이야기를 묻자, 죄다 손사래를 쳤다.

 

 옛길은 흐려져 다른 계절에는 어림없지만, 그래도 이즈음에는 버섯을 캐러 다니는 주민들의 발자취 덕에 그나마 길이 다져져 옛길을 디뎌 찾아갈 수 있다. 마을 뒤편에서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가파른 산길을 따라 능선에 올라서면 옛 고갯길의 정상인 사선암(四仙岩)이 있다. 능선에 우뚝 솟아오른 집채보다 큰 바위는 마치 일부러 기계로 깎아서 세운 듯 반듯하게 모가 져있다. 사선암에는 이름 그대로 네 명의 신선들이 노닐던 곳이란 전설이 전해지는데, 노닐던 이가 신라의 화랑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밧줄을 타고 바위 정상에 오르면 멀리 도마령과 각호봉 민주지산, 석기동, 삼도봉이 주르륵 펼쳐진다. 그 봉우리를 바라보면서 너른 화강석 암반 위에 새겨진 바둑판에서 바둑이라도 한 판 둔다면 그대로 신선이 될 듯하다.  

 

가는길

 

   수도권에서 출발하자면 경부고속도로 비룡분기점에서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산내분기점에서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로 갈아탄다.  학교 길을 찾아가려면 무주나들목으로 나와 19번 국도를 타고 무주읍으로 들어 무주1교를 건너 내도방면으로 고갯길을 넘어가면 된다. 앞섬다리를 건너서 내도를 들어선 뒤 직진해 후도교를 넘자마자 오른편으로 학교 길이 시작된다. 벌한마을은 무주읍에서 37번 국도를 타고 라제통문 쪽으로 향하다가 구산마을 표지판을 보고 우회전해 들어가면 된다. 

 
묵을 곳 & 먹을 것
 
 무주의 숙소라면 단연 무주리조트다. 무주리조트의 티롤호텔은 덕유산의 자연과 이국적인 정취를 함께 느낄 수 있는 단연 최고의 숙소다. 이즈음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덕유산 설천봉에 오르면 울긋불긋 물들어가고있는 단풍을 즐길 수 있다. 무주에서 첫손 꼽히는 먹을거리라면 단연 금강에서 잡은 물고기로 끓여낸 어죽이다. 읍내의 금강식당(063-322-0979)과 내도리로 건너가는 앞섬다리 부근의 앞섬마을(063-322-2799), 뒷섬마을의 큰손식당(063-322-3605) 등이 이름났다.

 

 

<출처> 2010. 10. 20  / 문화일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