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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여행기 및 정보/- 남해

통영 욕지도, 나를 알려 떠나는 곳

by 혜강(惠江) 2010. 10. 17.

통영 욕지도

나를 알려 떠나는 곳

 

하늘과 바다 사이, 속세와 극락 사이, 그대와 세상 사이… 그 섬이 있다

 

 

욕지도(통영)= 글·사진 박경일기자

 

 

▲ 통영항을 출항한 페리호가 노대도를 지나 욕지도로 향하고 있다. 통영에서 욕지도에 이르는 남쪽 바다는 온통 불교의 연화세계를 뜻하는 이름을 가진 섬들로 가득하다. 가을의 한복판으로 들어서는 이즈음 남해안의 뱃길에서는 높은 푸른 하늘에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이 자주 걸린다.

 

 

 욕지도에 다녀온 이들이 모두 그러듯이, 욕지도에 대해 말하자면 도리없이 그 이름이 지닌 뜻부터 이야기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바랄 욕(欲)’에 ‘알 지(知)’. 운율을 담아 뜻을 풀어 보자면 ‘알려 하거든’입니다. 목적어도 없이, 문장이 툭 끊긴 그 이름이 어찌나 매력적이었던지요. 섬을 닮은 사물이나 방위쯤으로 멋대가리 없이 지은 다른 섬의 이름과는 아예 격이 다릅니다. 알 듯 모를 듯. 어찌 보면 잘 풀리지 않는 화두와도 같은, 그 뜻이 단단한 자물쇠로 잠겨져 있을 것만 같은 이름입니다. 섬에서 만난 한 면사무소 직원이 그랬습니다. “글쎄, 섬 이름에 이끌려서 찾아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니까요.”



경남 통영에서 뱃길로 1시간 남짓. 통영 삼덕항에서 욕지영동고속호를 타고 가는 쪽빛 바다 위에는 불교의 ‘연화세계’를 꿈꾸던 이름들이 섬이 돼서 떠있습니다. 연화도, 욕지도, 두미도, 세존도, 거기다가 미륵도와 반야도까지…. ‘연화세계’는 아미타불의 극락정토가 있는 세상을 말함이지요. 지극히 안락하고 아무런 걱정이 없다는 곳. 구태여 종교를 따지지 않더라도 누구든 이르고 싶은 세상입니다. 한려수도 다도해 통영의 남쪽 바다 섬들이 연화세계를 꿈꾸고 있다면, 그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300t 남짓의 철선인 욕지영동고속호는 번잡한 사바세계에서 피안의 극락정토로 중생들을 건네 주는 반야바라밀의 배인 ‘반야용선’이라고나 할까요.



욕지도로 건너가는 날. 때마침 통영의 가을 바다는 더없이 맑았고, 깨질 듯 새파란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피어올랐습니다. 욕지도로 가는 내내 뱃전에 서서 푸른 하늘과 구름, 맑은 바다, 그리고 그림처럼 떠있는 섬들에 마음을 빼앗겨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모습이 좀 호들갑스럽다 싶었던지 곁에 선 욕지도 주민은 “가을 무렵 남쪽 바다의 풍경이 자주 이렇다”고 하더군요.



욕지도는 어떤 방법으로 만나도 좋은 섬입니다. 차를 싣고 섬으로 들어서 섬의 8분 능선을 잘라서 낸 순환도로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돌아도 좋겠고, 내키는 대로 느긋하게 타박타박 걸어서 돌아봐도 좋습니다. 섬 한가운데에 솟은 해발 392m의 천왕봉과 해안도로를 한데 묶어 트레킹을 하는 것도 좋은 선택입니다. 약과봉 아래 매바위(호랑바위)에 오르면 발 아래로 펼쳐지는 욕지항의 전경이나, 저물녘 섬 서쪽 도동의 벤치에서 멀리 망망대해 끝머리쯤의 여수와 금오도쪽으로 지는 낙조의 풍경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멋진 풍광입니다. 혹시 청사마을에서 도동마을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가 해가 지는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 첩첩이 겹쳐진 노대도, 사이도, 모도, 봉도, 적도, 우도, 연화도가 푸른 어둠으로 잠기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 묵직한 아름다움에 갑자기 울컥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묻고 물어서 알아낸 욕지도란 이름의 뜻인 ‘알려 하거든’에서 생략된 목적어는 ‘처음과 끝’이었습니다. 그러나 거기다가 제멋대로 ‘나를’이라는 말을 끼워넣습니다. ‘나를 알려 하거든’. 욕지도는 여럿이 떠들썩하게 다녀오는 것보다는 혼자 떠나는 여정이 썩 잘 어울린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도동마을의 해안끝 벤치에서 저물도록 혼자 앉아 사색에 잠겨 있던, 도보여행 중인 도회지 젊은이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림같이 펼쳐진 섬들… 고요한 어둠, 짙푸른 황홀

 

 

▲ 욕지도 도동마을 인근 ‘석양이 아름다운 쉼터’에서는 정작 낙조 풍경보다는 해 지는 쪽 반대편의 전경이 더 서정적이다. 해가 지고 나면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떠있는 바다 풍경이 어둠 속에서 푸르게 빛난다. 손을 내밀면 푸른색이 묻어날 것만 같은 바다 위로 등불을 켠 고깃배가 미끄러지고 있다.

 

 

▲ 약과봉 북쪽 자락의 매바위(호랑바위)에서 내려다본 욕지도 항구의 모습. 욕지도는 외벽을 흰색으로 칠한 집들이 많은 데다 이즈음 섬 곳곳에 낭만적인 외양의 펜션들까지 속속 들어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 욕지도…‘처음과 끝을 알고자 한다면’

 

 욕지도에서 가장 먼저 궁금증을 일으키는 것은 그 이름이다. 욕지(欲知). ‘바랄 욕(欲)’에 ‘알 지(知)’. 뜻을 풀어 보자면 ‘알려 하거든’이다. 선문답 같은 이름. 과연 누가 무엇을 알려 한다는 것일까. 욕지도로 향하는 여정은 이 수수께끼를 푸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이름의 연유를 캐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욕지도 주민들을 붙잡고 묻고 또 물어서 얻은 이야기 한 토막. 연산군의 폭정을 피해 한 도사가 통영의 남쪽 섬으로 숨어들었단다. 그는 속세에 발을 디뎠으되 남은 생은 섬에 머물면서 몸 한번 더럽힘 없이 보살행으로 향기롭게 살다가 입적했다. 그가 남긴 마지막 유언은 바다에 수장해 달라는 것. 마을 주민들이 수장을 하자 그 자리에서 연꽃 한 송이가 피어나더란다. 그곳이 바로 욕지도의 통단마을 끝에서 건너다보이는 연화도다.

 

 그리고 400여년이 지난 뒤 쌍계사 조실로,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고산 스님이 도사가 머물며 수도했다는 산자락에 절집 ‘연화사’를 창건하고 예부터 전해 오는 시구에다 일대의 섬이름을 달아 고쳐 썼다. 통영의 바다에 떠있는 섬인 욕지도(欲知島)와 두미도(頭尾島), 한산도의 문어포(問於浦), 세존도(世尊島)의 이름이 그대로 시가 됐다. ‘욕지연화장두미문세존(欲知蓮華藏頭尾問世尊)’ 뜻을 풀어 본다. ‘연화장 세계의 처음과 끝을 알려 한다면 세존께 물어보라.’ 연화장(蓮華藏)이란 불교에서 비로자나불이 원력으로 만들었다는 세계를 뜻한다.

 

 욕지도로 향하는 여정의 정취는 뱃길에서 만나는 섬들이 절반쯤 만들어 준다. 욕지도는 한려수도의 가장 남쪽 섬. 그 섬으로 이르는 뱃길에서는 연화도와 우도, 상노대도와 하노대도, 두미도 같은 섬들이 큰 그림을 그리고, 그 안에 납도와 비상도, 막도, 사이도, 봉도, 적도, 모도 같은 작은 섬들이 오밀조밀 풍경을 빚어낸다. 뱃길에서 만나는 섬들의 정취로 1시간 남짓의 배시간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 욕지도, 과거의 영화가 낡은 추억으로 남은 곳


욕지도는 남쪽 해안과 북쪽 해안의 풍경이 완연하게 다르다. 수많은 섬들이 파도를 막아내는 북쪽은 부드러운 능선이지만, 반대쪽 망망대해의 거친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남쪽 해안은 깎아지른 절벽과 바위들로 절경을 이루고 있다. 욕지도행 여객선이 닿는 항구는 섬 북쪽의 우뚝 솟은 천왕봉 아래 오목하게 들어서 있다. 산자락의 언덕에는 유독 외벽을 희게 칠한 집들이 많다. 과장을 좀 보탠다면 지중해의 섬마을 같은 느낌이랄까.

 욕지도는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 어업 전진기지이자 부산과 마산을 잇는 뱃길의 중간기착지로 흥청거린 부촌이었다. 섬 앞으로 구로시오 난류가 흘러들어 그물이 찢길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다. 파시가 열릴 무렵이면 선창에 늘어선 작부집들에는 밤새 불이 꺼지지 않을 정도였다. 육지와 사뭇 떨어진 섬이었음에도 1930년대에 상수도가 들어왔고, 1976년 우리나라 섬 중에서는 최초로 자가발전소가 들어섰다. 자석식 전화가 욕지도에 들어온 것도 1969년으로, 섬 중에서는 최초였다. 지금이야 낙도 취급을 받지만, 당시만 해도 욕지도는 육지의 통영읍보다 더 위세가 당당했다.

 그러나 어장이 쇠퇴하고, 뱃길도 끊기면서 욕지도는 버려졌다. 비탈진 밭마다 고구마를 심어 연명하는 날들이었다. 그나마 최근에는 단맛이 강한 욕지고구마의 명성에다가 도동 일대에 양식장 등이 들어서면서 그럭저럭 살 만해졌다. 게다가 호젓하면서도 아름다운 섬의 정취가 외지인들에게 차츰 알려지고 찾아드는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곳곳에 펜션들이 들어서고 있다.
 
 

# 해안 일주도로를 걷다 만난 ‘가장 아름다운 집’
 

 욕지도에 막 당도했다면 섬을 따라 도는 일주도로에 오르는 것이 순서다. 욕지도의 해안선 길이는 31㎞ 남짓. 이 중에서 섬 서쪽의 통단부터 야포까지 700m 구간을 제외하고는 차로가 놓여 있다. 욕지도를 찾는 관광객들은 대개 차를 배에 싣고 섬에 들어 일주도로를 달리지만, 구불구불 고갯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 드문드문 운행하는 터덜거리는 마을버스를 타기도 하면서 마을과 마을을 넘어가는 편이 열 배쯤 더 낫다. 육계도, 고래머리, 삼여도, 촛대바위를 바라보며 고구마 황토밭 사잇길을 걷는 것이야말로 욕지도 여행의 참맛이다.

 해안 일주도로에서 가장 빼어난 구간이 바로 개미목이라는 잘록한 지형 너머로 촛농처럼 흘러내린 욕지도의 서쪽 해안.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10가구가 채 안 되는 해안가 마을이 발 아래로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이 길의 백미는 통단마을 못미처 오른편으로 펼쳐지는 풍경이다. 깎아지른 바위 아래 숨어 있는 수정같이 고운 물빛의 오목한 해안이 내려다보이는데, 해안의 절벽 위로는 칡넝쿨로 뒤덮인 양철지붕의 폐가 한 채가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내로라하는 외국 휴양지의 이름난 리조트보다 더 아름다운 자태로 서 있는 집이다. 누군가 ‘바닷가에 가장 낭만적인 집’을 지으라 한다면 딱 이곳에 이런 모습으로 지어야 하리라. 벼랑 끝에서 저 아름다운 풍경을 방안으로 들여놓고 살던 이는 누구였을까. 인근 마을을 수소문하니 주민들은 “그 험한 데서 누가 살겠느냐”며 “일찌감치 비워진 집”이라고 했다. 곧 생각을 거두기는 했지만, 잠깐 ‘그 집을 살 수 있을까’를 셈해 봤다. 그만큼 욕심이 절로 나는 풍경이다.


 
 
# 욕지도에 해가 질 때 반대편을 봐야 하는 이유 
 

 욕지도에는 남쪽과 북쪽에 빼어난 전망을 자랑하는 공원이 하나씩 있다. 먼저 북쪽의 대풍바우쉼터. 해안 바위언덕에 올라선 자그마한 공원의 돌로 된 테이불에 앉으면 통영쪽 앞바다에 떠있는 섬들의 전경이 활짝 펼쳐진다. 가벼운 도시락 하나만 챙겨 간다면 최고의 전망 속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북쪽에 대풍바우쉼터가 있다면 욕지도 정남쪽의 일주도로변에는 새천년기념공원이 있다. 이쪽에 서면 욕지도의 서쪽 모습이 제법 웅장하게 내려다보인다. 깎아지른 해벽 아래에는 거북바위와 펠리칸바위가 웅크리고 있다. 시야가 동남쪽으로 터져 있어 내초도와 외초도 너머로 떠오르는 일출도 볼 수 있다. 새천년기념공원 인근에는 주민들이 욕지도에서 첫손으로 꼽는 절경인 삼여도가 있다. 세 개의 여가 있어 삼여도라고 불리는 곳이다. 바다에서 솟은 바위가 그려내는 모습이 빼어나긴 하지만, 주민들의 자랑만큼은 아닌 듯싶다.

 욕지도에서는 이런 풍경을 다 빼놓더라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도동마을에서 청사마을쪽으로 이어진 해안도로에서 보는 일몰 풍경이다. 욕지도에 가서 이것 하나만 만나고 온대도 그리 아쉽지는 않으리라. 해안도로 한쪽에 자그마한 공간이 있고 그곳에 돌로 된 벤치가 놓여 있는 곳. 이름도 팻말 하나 없이 그저 ‘석양이 아름다운 쉼터’로 불리는 곳이다.

 멀리 여수와 금오도 뒤로 탁 트인 바다로 지는 낙조의 풍경도 좋지만, 그보다는 해가 넘어간 뒤에 반대편으로 펼쳐지는 풍광이 더 서정적이다. 가까이로는 상노내도와 하노대도, 모도가, 그 뒤로 사이도와 막도, 납도, 봉도, 적도가, 또 그 뒤로는 연화도와 우도가 겹겹이 떠있는 바다. 해가 지면서 바다와 섬은 온통 푸른빛이 감돈다. 어둠이 다 내리도록 그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다 뭉클해진다. 저무는 바다에서 욕지(欲知)의 뜻을 되새긴다. ‘알고자 하거든’. 무엇을 어떻게 알아야 한다는 것일까. 먼 뱃길을 따라 욕지도를 찾아든다면 무엇을 알고 돌아갈 수 있을까.
 

가는 길

 욕지도를 가려면 우선 경남 통영까지 가야 한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판암갈림목에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통영까지 간다. 통영-욕지도간을 운항하는 카페리호는 두 곳에서 뜬다.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는 욕지도행 카페리호가 하루 5번 운항하는데 연화도를 거쳐 간다. 삼덕항에서 가는 배는 곧바로 욕지도까지 연결된다. 통영항에서 욕지도까지는 배편으로 1시간10분 남짓 걸린다. 욕지도에는 천왕봉을 오르는 등산 코스가 조성돼 있다. 부두쪽에서 출발해 일출봉과 노적, 혼곡을 지나 대기봉, 태고암 약과봉, 대풍바위로 이어지는 가장 긴 코스는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묵을 곳 & 먹을 것

 여객선터미널 부근에 욕지횟집(055-641-0466), 늘푸른횟집(055-642-6777) 등 횟집들이 몰려 있다. 상차림이나 가격이 거의 같아서 딱히 추천할 만한 곳은 없다. 횟집에서는 갓 잡은 자연산 회를 맛볼 수 있는데,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맛볼 수 없는 삼치와 고등어가 이즈음 제철이다. 숙소로는 미진장여관(055-644-8890), 부산여관(055-642-5209) 등이 있는데, 여관보다는 민박이나 펜션을 찾는 편이 낫
다. 

 

 <출처> 210. 10. 13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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