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 비수구미 마을, 파로호가 감춰놓은 오지마을

강원도 화천 비수구미 마을

파로호가 감춰놓은 오지마을

 

완보(緩步)와 미학(美學)의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곳 -

 

 

화천=김우성 기자

 

 

 

  목요일 흐림, 금요일 흐림, 토요일 일요일 몽땅 흐림. 대한민국은 9월도 비구름으로 시작한다. 그래도 어디론가 숨고 싶다면? 파로호반에 있는 이름도 예쁜 비수구미 마을로 가보시라. 폭우가 쏟아지거든 춤추는 숲을 보고, 맑거들랑 호수에 얼굴 비춰보며 가을을 맞을 일이다.

  비수구미 마을은 강원도 화천 파로호변에 있다. 설(說)이 많지만 그 어원은 아무도 모른다. '구미'는 몽골, 여진어로 '물이 육지로 둥글게 굽어들어 간 곳' 정도를 뜻한다는 것까지만 나와 있다. 산길 따라 세 시간을 걷거나 배를 타야 닿는 마을이다. 다시 말해, 비수구미는 오지 마을이다.

 

 

         

            ▲ 1 비수구미 마을 초입. 6㎞ 산길을 제외하면, 비수구미로 들어설 수 있는

             유일한 뱃길이다. 2 화천 비수구미 계곡 3 비수구미 마을 사람들. 장윤일씨

             의 배 '윤일호'에서 찍었다.

 

◆비수구미 들어가는 길은 깊다

  깊이는 세 단계로 나뉜다. 첫째, 460번 지방도를 타고 강원도 특유의 굽잇길을 달린다. 조금만 달려도 막 지나온 길은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둘째, 벼랑을 깎아 만든 비포장도로를 지난다. 파로호 수위보다 아주 조금 높은 길이다. 벼랑에선 군데군데 폭포수가 모여 길을 침범한다. 길은 결국 물속으로 사라진다. 마지막은 물 위다. 늦여름 비를 먹고 수위 높인 물은 전봇대의 뿌리를 집어삼켰다. 배 타고 그 풍경 지나 5분쯤 질주하면 멀리 집 한 채가 보인다. 비수구미 마을의 최연장자 심금산(81)씨 집이다.

  이 마을, 작다. 정확하게 말해, 사람이 차지한 공간이 작다. 딱 네 가구 산다. 멀어야 걸어서 5분 거리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 뒤론 온통 산이다. 계곡 물소리와 매미 소리만 우렁차다. 그래서 도시 사람들은 비수구미를 아껴뒀다가 사람이 내는 소음에 지칠 무렵 이곳에 숨어든다.

  네 가구 가운데 심금산·이옥선 부부는 인제·춘천 출신, 김상준·이명애 부부는 강원 평창·경기 여주 출신, 장윤일·김영순 부부는 춘천·원주 출신, 이혜자씨는 파주 출신이다. 고향 다른 사람들이 산골짜기에 모인 이유는 하나다. 화전(火田). 치부(致富)가 아니라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다. 그 기억을 지우지 못해 지금도 김영순씨는 "가을이면 무조건 쌀 20가마는 사 놓는다"고 했다.

  이들뿐이었을까. 아홉 살 때 부모님 손잡고 여기 와 자리 잡은 김상준씨는 "한때 여기서 같이 초등학교에 다녔던 이들이 80~90명 정도 됐다"고 했다. 그 많던 집들이 모두 떠나 세 가구로 줄었다가 2008년 다시 한 집 늘었다.

 

◆사람 사라진 비수구미는 자연이 채웠다

  놀거리? 이렇게 논다. 느리게 걷고, 느리게 먹고, 느리게 대화한다. 순식간에 하루가 지나간다. 먼저 느리게 걷기. 비수구미에서 해산령까지 오르는 길이다. 총 길이 6㎞. 배로 비수구미를 갈 생각이 아니라면 이 길을 걸어야 한다. 평화의댐 공사 때 작업도로로 쓰였던 길이다. 영구자연휴식년제로 지정돼 오로지 걷기만 할 수 있다. 원초적인 자연이 그대로 보전돼 있다는 이야기다. 때로 물길이 겹치고 때로 자갈밭이 이어진다.

  길 찾기는 쉽다.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계곡 따라 걸으면 된다. 길섶엔 온갖 야생화가 피었다. 가파르지도 낮지도 않다. 도시에서 빨랐던 걸음걸이는 서서히 낮춘다. 거센 계곡 물줄기는 내내 출렁이는 소리를 내며 길 좌우를 오간다. 길과 계곡이 교차할 때마다 에어컨 바람 못잖은 냉풍이 분다. 딱 한 구간에선 신발을 벗어야 한다. 맨발에 와 닿는 계곡물은 차고 맑다.

  이 길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은 따로 있다. 길은 비수구미의 시간을 닮았다. 느린 걸음걸이에 맞춰 산은 적절한 깊이의 시야를 안긴다. 울창한 산림으로 시야를 가리지도, 그렇다고 허탈하게 트여 있지도 않다. 눈앞에서 나무의 근경과 숲의 원경이 차곡차곡 쌓인다. '첩첩산중'이라는 단어를 풍경으로 다시 옮기면 바로 여기다.

  완보(緩步)와 미학(美學)의 희열 다음에는 미각(味覺)을 즐길 차례다. 김영순씨가 내놓는 산채정식은 방금 겪은 숲의 먹을거리로 빼곡하다. 더덕, 무 장아찌, 엄나무 순, 고들빼기 무침, 취나물, 싸리버섯, 깻잎, 벌나무로 끓인 물…. 나물은 대부분 남편 장윤일씨가 봄에 캐온 것이고 싸리버섯은 요즘 캔 것이다. 여기에 김씨가 오랫동안 담근 장이 버무려져 무구한 밥상이 완성되니, 한참 동안 잊고 살던 그 맛이다.

 

 

 

              

 

              

 

                              

 

◆밤이 내렸다

  비수구미는 밤 또한 깊다. 깊은 밤은 대화를 나누기 좋은 시간대다. 동행한 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군것질거리 싸 들고 주민 집 찾아가 말을 건네기도 좋다. 긴 세월 이곳에 함께 살아 닮았으면서도 서로 다른 얘기를 비수구미 주민들은 품고 있다.

  예컨대 이런 얘기들. 집은 가장 허름해도 매년 겨울마다 전국 혹은 중국으로 떠나는 동네 최연장자 심금산·이옥선 부부 이야기. 아홉 살 때 부모 따라 이사와 지금은 이장과 집배원을 겸직하고 있는 김상준씨의 어릴 적 이야기. 봄이면 나물, 여름·가을엔 버섯을 캐고 겨울엔 장작을 패 아들딸 시집 장가보내고도 비수구미를 못 떠나는 장윤일씨의 사계절 이야기…. 그러다 밤이 사라지고, 물안개 자욱한 아침 파로호변을 거닐어보라. 혹은 우산 없이 장대비 속에 도시 때 다 떨어져 나가는 신비한 경험을 해보시라. 작은 마을 비수구미는 큰 이야기를 품고 있다.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춘천IC에서 인제·양구 방면으로 나와 46번국도를 탄다. 배후령길 지나 간척사거리에서 화천·오음 방향으로 좌회전, 461번 지방도를 탄다. 구만교를 지나 평화의 댐 방향으로 460번 지방도를 타고 직진. 해산터널 지나 10㎞쯤 가면 비수구미 표지판이 나온다. 여기서 우회전해 들어간다. 길에 차를 대놓고 비수구미 주민들이 타고 오는 배를 이용해 들어간다. 배는 사람 수에 상관없이 한 배에 왕복 3만원. 서울에서 출발했을 때 길 안 막히면 3시간 정도다.

◎ 잠잘 곳

마을의 4가구 중 2가구가 민박을 한다. 예약 필수. 장윤일씨 (033)442-0145, 김상준씨 442-0962. 1박 3만원. 두 집 모두 산채 정식을 내놓는다. 1인 7000원. 비수구미 숙박의 행운을 놓쳤다면 화천읍내에 숙소를 정하고 비수구미는 당일치기로 놀 수밖에 없다. 화천읍내 파로호펜션(www.paroho.kr), 해산관광농원펜션(www.haesan.com), 다래하우스펜션(daraehouse.com) 등에 숙소를 정할 것.

 

 

                  

 

                  

 

◎ 평화의 댐과 비목공원

  파로호는 6·25 때 중공군을 격파한 곳이다. 그때 중공군 3만 명이 수장됐다. 그래서 이름이 '오랑캐를 깨뜨린' '破虜湖'. 상류에는 평화의 댐이 있고, 주변에는 가곡 '비목'에서 테마를 따온 비목공원이 있다.

◎ 추천 숙소 및 관광코스 문의 화천 관광 홈페이지(tour.ihc.go.kr)

 

 

 

<출처> 2010. 9. 2 /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