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방우리
금강 줄기에 방울처럼 매달린 육지 속 섬마을
글∙사진 신성순 여행작가
농원 마을로 들어가는 고갯길에서 굽어본 금강
내도리 앞 강변풍경
무주 내도리는 금강 물줄기가 휘어 돈다고 해서 금회라고 불리다가 내륙 속의 섬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내도리로 바뀌었다. 강변에는 조약돌과 금빛 모래밭이 깔리고 강물 건너편에는 기암괴석과 절벽이 솟아 승경을 연출한다. 여기서 더 들어가면 내도리보다 더 육지 속 섬마을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방우리가 있다.
방우리. 이름부터 특이하고 정겹다. 굽이굽이 돌고 도는 강줄기 바로 옆에 '방울'처럼 매달린 마을이어서 방우리라고 부르는 걸까? 어미 소가 송아지를 끌고 한가롭게 풀을 뜯는 정경이 더할 수 없이 평화롭고 아늑하다. 휴가철에도 손에 꼽을 만큼 찾아오는 이가 드문 한적한 곳으로 민박집도 가게도 식당도 찾을 수 없고 오로지 자연 그대로의 아련한 향수가 가슴을 촉촉하게 적신다.
앞으로는 강이 가로막고 뒤로는 높은 산이 버티고 선 방우리는 육지 속의 외딴 섬마을이나 다름없다. 그런 지형 탓에 행정구역은 충남 금산군 부리면에 속해 있으나 금산 쪽으로 통하는 길은 없고 전북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를 거쳐 빙 돌아가야 한다.
당연히 생활권도 충남이 아니라 전북 무주다. 아이들도 금산이 아니라 무주초등학교를 다닌다. 하기야 금산군도 1963년 이전에는 전라북도에 속해 있었으니 옛 행정구역이 오히려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맨손으로 불모지 개간한 궁벽한 오지
스물다섯 남짓한 가구에 총 인구는 90명도 채 안되는 방우리는 원방우리와 농원 마을로 나뉜다. 두 마을 사이의 거리는 5리가 조금 넘을 정도지만 강물 따라 가자면 30리는 족히 된다. 금강이 무주 쪽으로 호리병처럼 에돌아 휘어진 까닭이다. 그 호리병 주둥이 좌우 끝에 두 마을이 걸려 있다.
경치가 더 아름다운 곳은 '작은 방우리'라고도 불리는 농원 마을이다. 특히 마을로 들어가는 고갯길 절벽 위에서 굽어보는 풍광이 그림 같다. 벼랑 아래로 유유히 흘러가는 금강의 물줄기와 하얀 백사장이 말할 나위 없이 맑고 깨끗하다.
이처럼 온전히 자연이 보존된 것은 워낙 궁벽한 오지인 까닭이다. 지금은 좁으나마 흙길과 시멘트 길이 바깥세상과 마을을 이어주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바깥나들이를 하려면 강을 건너 다녀야 했다.
농원 마을은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이 들어와 정착했다. 강변 불모지를 개간해 논밭을 일군 이 마을 사람들 이야기는 1963년 신영균과 최은희가 주연을 맡고 신상옥 감독이 연출한 영화 '쌀'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 이들은 별다른 장비 없이 거의 맨손으로 절벽에 굴을 뚫어 수력발전소를 만들고 논밭에 물을 끌어들였다.
아담하고 아늑한 고려 고찰 북고사
북고사
방우리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곳의 호젓한 자연미를 알음알음으로 전해들은 낚시꾼들이다. 개중에는 솥과 그릇 따위를 싣고 와 음식을 해먹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방우리 사람들은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미루나무나 느티나무 그늘 아래 앉아 쉬면서 옛 정취 살아 있는 강변 풍경을 조용히 음미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이곳을 찾는 것이 자연과 주민들에 대한 올바른 예의이리라.
방우리 농원 마을에서 쉬다 보면 저 아래로 흐르는 강물이 발길을 유혹한다. 그래서 길도 없는 강변을 따라 내려가노라면 무인지경 오지 정취에 가슴이 울린다. 황혼이 깔리기 시작하는 저녁 어스름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호젓한 강변의 운치를 만끽하며 4㎞ 남짓 내려가면 층암절벽 아래로 호수처럼 잔잔한 물이 흐르는 멋진 풍광이 반긴다. 예로부터 이 절벽을 적벽, 그 아래로 흐르는 금강을 적벽강이라고 불렀다. 높이 30여 m의 우람한 바위가 붉다 해서 적벽이요, 불타는 듯한 가을 단풍이나 저녁노을이 강물을 붉게 물들인다고 해서 적벽강이다.
오가는 길에 아담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무주 북고사에 들러도 좋다. 창건자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무학대사가 경월사라는 본래의 이름을 북고사로 바꿨다는 설화가 전해지므로 고려말 이전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전과 칠성각, 산왕각, 요사채 등이 있고 삼층석탑, 불상 1점, 탱화 2점 등의 유물이 남아 있다.
극락전 안에 있는 아미타여래좌상은 2000년 11월 17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83호로 지정되었다. 1657년(효종 8년) 만들어진 목조 좌불로 크기는 높이 73㎝, 무릎너비 54㎝이다. 역시 극락전 안에 있는 신중탱화는 1831년(순조 31년) 제작되었으며 2000년 11월 17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87호로 지정되었다.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다.
찾아가는 길 향토음식인 어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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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2010. 5. 13 / 주간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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