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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충청남도

충남 금산 보곡산골, 꽃눈이 5월 산골에 내리다

by 혜강(惠江) 2010. 5. 4.

 

충남 금산 보곡산골

꽃눈, 5월 산골에 내리다

 

글 사진 : 박경일 기자

 

 

 

▲ 금산 보곡산골에서 활짝 피어난 산벚꽃이 연초록 신록과 어우러져 반짝이고 있다. 총연장 9㎞에 달하는 임도는 꽃을 보며 걷기에 더없이 좋다. 숲 사이에 ‘보이네요’란 현판을 달고 있는 정자가 보인다. 산벚은 곧 지고 말겠지만, 그 뒤에도 이쪽 산자락에는 병꽃나무, 국수나무, 산딸나무, 자귀나무들이 앞다퉈 피어난다.

 

 

 봄꽃이 아름답기로는 여러 곳이 꼽히지만, 금산의 꽃들이 각별한 이유는 그 꽃들이 죄다 산자락에서 저 스스로 피어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즈음 금산의 꽃들은 하루가 다르게 물들어 가는 신록의 숲그늘 아래 고요히 피어나고 있습니다. 뻐꾹새 울음소리가 그윽한 산길에 무더기로 불 붙은 숲속 봄꽃들의 정취와 향기를 어디 감히 줄 맞춰 심어진 거리의 꽃에 비하겠습니까. 이른바 ‘꽃놀이의 명소’라 꼽히는 곳들이 대개 만취한 행락객과 떠들썩한 상인들의 좌판으로 가득하지만, 이쪽은 소박한 산골마을의 고요만 가득할 뿐입니다.


 금산에서 가장 화려한 봄꽃은 보광리, 상곡리, 산안리 쪽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마을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보곡산골’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상곡리쪽에서 시작해 산안리 자진뱅이마을로 이어지는 산중턱의 9㎞ 비포장 임도를 따라가면 무려 660만㎡(약 200만평)의 산자락에 흐드러진 산벚과 복사꽃의 꽃무더기를 볼 수 있습니다. 신록으로 물들기 시작한 산등성이에서 반짝이며 피어난 산벚꽃이며 복사꽃 사이를 걷다 보면 ‘아 좋다’는 탄성쯤은 무시로 터져나올 겁니다.

 산 아래 거리의 벚꽃은 진즉 지고 말았지만, 보곡산골의 꽃들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은 이곳이 깊은 산중이기 때문입니다. 금산은 600∼700m의 높은 산지가 주변을 두르고 있어 대전보다 평균기온이 2도쯤 낮고, 금산에서도 첩첩산중으로 꼽히는 보곡산골은 기온이 4∼5도가 더 낮습니다. 게다가 산벚은 다른 벚꽃보다 개화시기가 늦으니 아직도 보곡산골의 산벚은 성성하게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지요.


 금산에는 또 유독 조팝나무가 많습니다. 조팝나무는 어느 곳이든 논두렁에서 흔히 보는 꽃이지만, 이 꽃들이 한데 모여 물결치며 피어 있는 모습은 금산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절집 신안사 부근의 화원골. 예부터 꽃이 많아 ‘꽃동산(花園)’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 마을에는 조팝나무들이 논두렁을 벗어나 묵은 논이며 밭으로 슬금슬금 기어들어가 아예 너른 논밭과 마을 전체를 뒤덮고 있습니다. 조팝나무꽃들이 만발한 마을 풍경은 마치 밤새 눈이 내려 소복이 쌓인 듯합니다.

금산에는 또 때묻지 않은 산촌과 강변의 오지마을이 곳곳에 있습니다. 비포장 산길을 굽이굽이 넘어가서 만나는, 오래전의 삶의 방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깊은 장선이’가 산촌마을이라면, 금강이 굽이 돌아가는 물방울처럼 생긴 지형의 ‘방우리마을’은 강변의 오지마을입니다. 그 오지의 호젓한 숲과 강변 길에도 자주괴불주머니, 애기통풀, 양지꽃, 금낭화 같은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습니다.

금산에 대해 말하자면 구구단처럼 튀어나올 것이 ‘인삼’이 아니라, ‘봄꽃’이어야 할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숨막히는 분홍빛 복사꽃…  금산) (錦山)이라 ‘꽃비단’ 둘렀나

 

 

▲ 금산 땅이되 전북 무주를 거쳐서 들어가야 하는 ‘작은 방우리’마을의 복숭아밭. 연분홍 복사꽃 색깔이 어찌나 밝은지 주변이 다 환하다. 복숭아밭 뒤로 나 있는 길은 금강변으로 이어진다. 걷는 이들에게는 마치 축복 같은 길이다.

 

 

# 정갈하고 소박한 산벚꽃이 9㎞의 산길을 뒤덮다

  어찌 이렇듯 온 산에 번지는 산벚꽃이 꼭꼭 숨어 있었을까. 충남 금산의 천태산과 산을 둘러치고 있는 깊은 산간마을인 보광리, 상곡리, 산안리(보곡산골)의 산벚꽃 자생군락지가 알려진 것은 불과 4~5년 전쯤이다. 당시 금산군청 공무원들이 마을 숲가꾸기 사업을 벌이다가 이곳 마을의 산벚 식생 분포를 보고 깜짝 놀랐다. 무려 660만㎡(약 200만평)의 산지에 산벚나무들이 그득했던 것. 늘 그 풍경을 대했던 마을주민들은 무덤덤했지만, 외지 사람들은 군락지 가득 산벚이 피어나는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산벚 군락지에 올해도 봄꽃의 물결이 밀려 닥쳤다. 전화기 저쪽에서 금산군청 직원은 “날씨가 좋지 않아 늦게 피었다가 그만 꽃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고 했다. 아쉬움이 뚝뚝 묻어 나왔다. 1주일 전쯤의 문의에서는 “아직 산벚이 피지 않았다”는 전갈을 받은 터였다. 그런데 그 1주일 만에 꽃이 다 지고 말았다니…. 전화기 이쪽에서도 아쉽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내친걸음이었다. 산벚이 분분히 진다고 해도 그 뒤로 산딸나무, 병꽃나무, 국수나무꽃들이 앞다퉈 피어날 터이니 그것만으로도 족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산간마을을 찾아간 날, 신록으로 물든 산 사면에 지천으로 피어난 산벚꽃을 마주하고는 깜짝 놀랐다. 산허리를 따라 난 9㎞의 임도를 밟으며 감탄을 연발했다. 분분히 꽃잎을 날리며 지는 것도 ‘다 피지 않고 져 가고 있다’는 게 이런 모습이라면, 예년에 활짝 피어났을 무렵의 모습은 어땠을까. 도무지 짐작조차 가지 않을 정도다.

  산벚은 꽃송이가 작다. 꽃송이도 가지에 듬성듬성 달린다. 소담스럽기로는 이미 다 지고만 산 아래쪽의 왕벚꽃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산벚은 꽃빛이 유독 깨끗하고 정갈하다. 가지가 찢어질 듯 꽃을 매단 왕벚이 화려하다 못해 좀 헤픈 모습이라면, 산벚은 청초하고 수수한 시골 처녀라 할 만하다. 군데군데 함께 피어난 분홍 복사꽃과도 잘 어우러진다. 산중의 복사꽃도 과수원에서 복숭아나무의 꽃과는 다르다. 이른바 진분홍 개복숭아인데 이 역시 과수원의 것보다 훨씬 정갈하다.


# 자연의 신록과 어우러져 입체로 빛나는 꽃의 색감

  산안리의 자진뱅이를 지나 매넴이산 자락을 따라 비포장 임도를 오르는 길. 산벚이 흐드러진 오솔길을 따라 교목 숲을 지나면 곳곳에 자그마한 누각들이 세워져 있다. 누각들은 마을의 봄꽃을 관광거리로 개발하면서 근래 세운 것들이다. 누각의 편액에 내걸린 멋부리지 않은 이름이 소탈하기 그지없다. 하나하나 들르는 이름을 짚어 본다. ‘산꽃 세상’ ‘봄처녀’ ‘보이네요’…. ‘봄처녀’ 정자에 앉으면 발 아래쪽으로 자그마한 계곡을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청명하고, ‘보이네요’ 정자에 오르면 산 아래 마을을 둘러친 조팝꽃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 아래의 왕벚나무가 연출해내는 가로수로의 경관이 인공적이고 단선적인 반면, 이쪽의 산벚나무는 입체적이고 자연스럽다. 백 번 말로 이야기한들 이런 감흥이 전해지기나 할까. 실제로 임도를 따라 꽃길을 터덜터덜 걷는다면 그 맛을 느낄 수 있다.

  농번기가 시작되면서 임도가 시작되는 산 아래쪽의 산안리며 보광리, 상곡리마을의 주민들은 아침 일찍 논에서 써레질을 하랴, 밭에 파종을 하랴 눈코 뜰 새 없다. 집을 비운 마을 쪽은 적요한데 강아지 몇 마리가 졸고 있고, 마실 나온 노인네 몇이 툇마루에 앉아 봄볕을 쪼이고 있다. 슬레이트 집의 흙돌담 위로 피어난 복사꽃이 하나둘 꽃잎을 떨구고 있다.

  산벚꽃 자생군락지에서 남쪽으로 고개 하나를 넘어가면 절집 신안사가 있다. 신안사 인근에는 화원골이 있다. 예부터 꽃이 좋기로 이름난 곳이라 ‘화원(花園)’이란 이름이 붙여졌단다. 화원골은 조팝나무가 말 그대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논둑마다 드문드문 피는 조팝나무가 슬금슬금 묵은 논과 밭으로 기어들면서 아예 꽃사태를 이뤘다. 개나리처럼 낭창낭창한 가지마다 작은 흰꽃이 다닥다닥 피어나는 조팝나무가 군락을 이룬 모습은 마치 폭설이 내려 쌓인 것 같다. 그 눈사태를 배경으로 분홍빛 산벚꽃이며 복사꽃이 피어 있는 모습은 마치 ‘봄날의 환희’를 그려 보여주는 듯하다. 절정을 넘어선 산벚은 이번 주말이라면 늦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쉬워할 것이 없는 게 산벚이 진 뒤에도 이쪽 마을에는 산딸나무, 병꽃나무와 국수나무, 쪽동백꽃들이 줄지어 피어나기 때문이다.


# 깊은 장선이, 큰 방우리… 봄볕 가득한 오지마을들

  금산은 산이 깊다. 산이 깊은 만큼 곳곳에 오지마을이 있다. 오지 중의 오지마을로 꼽히는 곳이 바로 ‘깊은 장선이’마을이다. 제원면에서 신안사로 향하는 길에서 개울에 놓인 자그마한 다리 곡교를 건너 비포장 숲길로 사뭇 달려야 만날 수 있는 마을이다. 천태산의 5분능선을 따라 산허리를 감으면서 마을로 향하는 길에는 야생화가 지천이다. 그 길에서는 잠깐 고개를 숙이기만 해도 자주괴불주머니, 제비꽃, 애기똥풀, 금낭화, 꽃다지, 꽃마리, 양지꽃 같은 우리 꽃들이 도처에 피어 있다.

  깊은 장선이마을은 천태산에서 내려온 자그마한 계곡물을 끼고 모두 일곱 가구가 들어서 있다. 징검돌 없이도 팔짝 뛰어 건널 수 있는 작은 도랑이 마을을 충청북도와 충청남도로 가른다. 계곡 서쪽이 충남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이고, 도랑 건너편은 충북 영동군 양산면 가선리다. 다닥다닥 붙은 일곱 채의 집 중에서 세 집이 충남 금산에, 네 집이 충북 영동에 속해 있다. 마을주민들은 마실을 나가는 길에도 몇 번씩 충남과 충북을 가로지르는 셈이다. 행정구역이 다르긴 하지만, 마을의 전기는 충북 영동군에서, 전화선은 충남 금산군에서 끌어다 쓴다. 사정이 이러니 충남사람은 전기료를 충북에 내고, 충북 사람은 전화비를 충남에다 내고 있단다.

  마을은 장수 황씨가 대대로 살아온 집성촌이다. 임진왜란때 가선대부 벼슬을 했던 이가 처음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마을주민 황의선(83)씨는 “한창 번성했을 때는 20여호나 됐다”며 “농사가 많아 타지에서 놉(일꾼)을 얻어다 썼을 정도”라고 자랑스러워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손바닥만 한 마을이었으리라.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흙담벽 집이며, 대나무 울타리를 둘러친 자그마한 텃밭, 외양간도 없이 매어 놓은 황소까지, 한두 세대 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구태여 이런 벽촌을 안내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그 마을에 들면 조바심할 것도, 욕심부릴 것도 없이 그저 자연이 주는 대로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순한’ 삶을 목격할 수 있다.

  금산 땅에는 금강의 휘감아 도는 물길 끝의 오지도 있다. 이름하여 ‘방우리’마을이다. 물이 휘감아 돌아 땅의 모습이 마치 방울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방우리는 금산군의 땅이되, 정작 금산쪽에서는 들 수 없다. 전북 무주로 가서 다리 건너 앞섬을 지나서 들어가야 한다. 방우리는 ‘큰 방우리’와 ‘작은 방우리’로 나뉘어 있는데, 예전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큰 방우리’건 ‘작은 방우리’건 마을이 작기로는 우열을 가릴 수 없다. 방우리 일대의 강변마을은 금강이 빚어낸 최고의 절경으로 꼽히는 곳. 무주의 앞섬마을부터 강변길을 오르내리며 방우리쪽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의 정취는 제주의 ‘올레길’ 못지않다. 작은 방우리마을 끝에는 복숭아밭이 있는데 복사꽃이 어찌나 환하게 피어났던지 주위가 온통 밝아지는 것 같다.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판암갈림목에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금산나들목에서 내리면 된다. 나들목을 나와 제원면 소재지 제원삼거리에서 추부 방향으로 좌회전해 길곡리, 신안리를 지나면 신안사에 가닿는다. 신안사에서 짧은 비포장도로로 고개를 올라서면 산벚 군락지가 있는 보곡산골이다. 보곡산골의 임도는 9㎞ 남짓. 걸어서 둘러보면 2~3시간이 걸린다. 차를 타고 돌아볼 수도 있다. 신안사 못미처 오른쪽으로 조팝나무 군락지가 있는 화원동마을이 있다.

묵을 곳&먹을 것

  금산읍내의 인삼호텔(041-751-6200)이 가장 추천할 만한 숙소다. 깔끔한 데다 평일 숙박비가 4만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금산은 금강을 끼고 있어 민물고기로 만든 음식이 유명하다. 천내강변에 있는 원골식당(041-752-2638)은 이름난 어죽전문점이다. 걸쭉하게 끓여낸 어죽도 좋고, 빙어를 튀겨 고추장양념을 올린 도리뱅뱅이(사진)도 별미다. 어죽은 5000원, 2~3인분인 도리뱅뱅이도 6000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추부의 마전인삼추어탕(041-752-5049)은 인삼을 넣고 끓여낸 추어탕으로 유명하다. 한우마을 단지인 복수면 복수한우집(041-753-2059)도 알려진 곳이다.

 

 

<출처> 2010. 5. 4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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