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보성 '만춘 여행'
초록-분홍 어우러진 '화사한 봄'
스포츠조선=김형우 기자
만춘에 접어든 이즈음 초목은 푸르름을 더해가고 산야를 수놓는 들꽃들의 자태는 더욱 강렬하다. 이맘때 훌쩍 떠날 만한 여행지로는 전남 보성이 제격이다. 곡우와 입하(5일)를 지나고 보성을 찾게 되면 초록의 차밭과 핑크빛 철쭉이 발산하는 '2색 향취'에 흠뻑 젖어 들 수 있다.
싱그러운 녹차밭에서는 이 무렵 연중 가장 좋은 품질의 차를 수확한다. 또 일림산-초암산 등 보성의 산야에서는 화사한 철쭉이 요원이 불길처럼 산정을 향해 불타오른다. 화사한 철쭉 군락이 이뤄낸 환상의 꽃밭 속을 거닐다 보면 어느덧 봄의 절정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보성의 차밭은 호남정맥 분수령인 활성산(465m) 기슭에 주로 자리 잡고 있다. 보성읍과 율포 바닷가를 잇는 고갯길인 봇재 부근은 동양다원, 대한다원, 꽃다원 등 수십만 평에 이르는 차밭이 장관을 이룬다. 그중 대표격이 대한다원. 파도처럼 밀려드는 진초록 차나무 이랑엔 생동감이 넘친다.
어린 아이 키보다 작은 차나무가 줄지어 산비탈에 빽빽이 들어서 있고, 수만 그루의 삼나무가 30만평의 차밭을 경호하듯 빙 둘러싸고 있다. 아침이슬을 먹고 자란 연두빛 새순을 곡우 전에 일일이 손으로 따서 찌고 덖으면 맛과 향이 일품인 우전차(雨前茶)가 된다. 올해는 지난달 20일을 전후해 첫 수확을 했다.
녹차밭 산책은 해뜨기 전후가 가장 좋다. 안개속에 잠긴 고즈넉한 차밭을 거닐면 초록의 싱그러움속에 저절로 시상이 떠오른다. 비경에 취해 차나무 사이 길을 걷다가 아무 곳이나 배경을 삼아도 멋진 사진이 나온다. 삼나무 가로수로 둘러싸인 시멘트길이 S자를 그리며 차밭을 가로질러 산 너머로 사라진다. 어디서 많이 본 그림 같은 풍경. 수녀와 비구니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CF의 한 장면이다. 각종 드라마, 영화도 이곳이 단골 배경이다. 녹차방에서 대하는 정갈한 차맛. 은은하고도 구수한 다향이 머릿속을 맑게 해준다.
보성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18번 국도변 봇재다원도 빼놓을 수 없는 비경이다. 봇재 고개 다향각은 광활한 차밭과 보성만을 한눈에 굽어보는 전망대로 부드러운 초록의 차밭이랑 문양이 인상적이다. 멀리 영천제 담수가 봄 햇살에 일렁이면 더욱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겨울이면 녹차밭트리로 멋진 야경도 연출한다.
▶=보성의 봄은 꽃 천지이다. 초봄은 벚꽃과 진달래, 만춘은 화사한 철쭉이 산야를 붉게 물들인다. 차밭이 푸르름을 더해갈 즈음 일림산 철쭉은 마치 '녹차미인'처럼 고운 자태를 자랑한다.
철쭉의 만개시기, 제암산과 사자산으로 연결되는 능선의 철쭉군락지 길이만 12.4㎞. 100만평 규모의 불타는 철쭉밭이 장관을 이룬다. 일림산은 4월 말부터 붉은 꽃 사태를 만난다. 진분홍의 철쭉꽃이 마치 요원의 불길처럼 온 산을 점령해간다.
2000년 잡목과 고사목을 제거한 치산사업 이후 일림산 철쭉꽃의 자태는 더욱 부각됐다. 일림산 철쭉은 키가 크다. 또 색깔이 붉고 선명해 빼어난 자태를 자랑한다.
일림산 가는 길은 운치가 있다. 이른 새벽 짙은 안개를 뚫고 달리는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이 그렇고, 산행로 입구의 용추골 편백나무 숲을 흐르는 맑은 계곡수 소리도 청아하다. 등에 땀이 꼽꼽하게 밸 정도로 이어지는 임도도 한참 새순을 내밀어 봄기운을 물씬 풍긴다. 숲 속으로 쏟아지는 넉넉한 아침햇살에 이끌려 낙엽으로 다져진 부드러운 산길로 내딛는 걸음마다 기분 좋은 촉감이 묻어난다.
한치재와 일림산의 중간쯤에 자리 잡은 해발 627m의 이름 없는 봉우리까지는 1시간. 연분홍으로 물든 부드러운 능선이 일림산 너머 작은봉과 제암산으로 이어진다. 일림산의 철쭉은 어른 키만큼 큰데다 매서운 해풍을 맞고 자라 더욱 붉고 선명하다. 일림산 정상에 오르면 철쭉꽃의 풍광 속에 제암산, 월출산, 무등산과 득량만, 보성읍이 한눈에 펼쳐진다.
초암산 철쭉도 유명하다. 초암산은 겸백면과 율어면의 접경지에 위치한 576m 높이의 산으로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 가을이면 억새가 아름답다. 일림산-제석산에 비해 아직 덜 알려져 임도를 따라 나서는 철쭉기행에서 호젓함을 맛 볼 수 있다.
초암산은 연중 철쭉이 만개하는 5월 초가 가장 아름답다. 특히 정상 주변 철쭉 군락지가 장관이다. 올해는 개화가 늦어 정상부는 10일 경부터 절정의 자태를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겸백면사무소~초암산~무남이재~주월산~방장산~오도재로 이어지는 5~6시간 코스 산행도 무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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