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금오산
남해 봄마중, 봄빛이 쪽빛에서 나온다
박 경 일 기 자
▲ 차를 타고 오른 경남 하동 금오산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남쪽 바다 풍경. 한눈에 바다가 들지 않을 정도로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의 풍광이 눈과 마음을 다 씻어내는 듯하다. 멀리 남해도와 창선도가 건너다보인다. 아래 사진은 형제봉 오르는 길에서 만난 버들강아지. 빗방울이 보석처럼 매달려 있다.
경남 하동이라면 누구든 화개장터와 무르익은 봄날, 벚꽃잎이 분분히 날리는 10리 벚꽃길을 떠올리시겠지요. 여기다가 화개의 차밭과 쌍계사, 그리고 섬진강변의 정취와 ‘최참판댁’이 있는 악양들판을 보태고 나면 여행지로서의 하동의 알려진 매력은 대략 다 짚은 듯합니다. 인터넷이나 책자에 소개된 여행정보도, 샅샅이 훑는다는 여행상품의 일정도 다 여기까지입니다. 벚꽃잎이 파르르 날리는 화개골의 눈부신 아름다움이나 느릿느릿 흘러가는 섬진강 정취의 빼어남이야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그러나 하동에는 그것 못지않게 감격적이고 아름다운 곳들이 숨어 있답니다.
하동이 끼고 있는 남쪽바다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금오산을 ‘하동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의 첫머리에 올립니다. 정상의 전망데크에서 내려다본 남해의 경관 앞에 서면 그야말로 ‘높이가 주는 감동’이 느껴집니다. 쪽빛 바다와 자그마한 포구들, 점점이 떠있는 섬과 푸른 보리밭…. 그 아름다움은 봄날 화개의 벚꽃터널과도 능히 바꿀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마침 봄비가 속살거리는 날, 지리산 자락 형제봉 오르는 길에서 뒤돌아 섬진강이 피워올리는 자욱한 봄안개를 놓치신다면 두고두고 아쉬워해도 모자랄 듯합니다. 형제봉을 오르는 남쪽 자락에는 마치 겨울을 건너뛴 듯 지난 가을의 자취가 오롯이 남아 있습니다. 바짝 마르긴 했으되 지난 가을의 낙엽들이 아직 나뭇가지에 붙어 있고, 계곡에는 진즉에 얼음이 풀려 맑디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새로 난 버들강아지는 솜털이 보송보송한데, 그 끝에 맺힌 빗방울이 보석처럼 반짝였습니다. 금오산과 형제봉은 두 곳 모두 차로 오를 수 있는 곳입니다. 금오산에는 제법 잘 갖춰놓은 전망대가 있고, 형제봉에는 활공장이 들어선 까닭입니다.
여기서 한 곳을 더 보탠다면 옥종면 문암리 일대의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 행로를 따라가는 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13년 전인 1597년. 삼도수군통제사 직을 박탈당하고 사형선고를 받았던 이순신 장군이 감형돼 백의종군하기 위해 경남 합천의 권율 도원수 진영으로 가던 길이랍니다. 지금 그 길은 ‘백의종군 길’로 이름 붙여져 복원되고 있습니다. 덕천강변에 문암 비석과 몇 개의 정자만 남아 있어 그닥 보고 느낄 것은 없다지만, 그저 그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백의종군의 심정이 헤아려질 것도 같습니다. 게다가 이즈음 그 길가의 마을에서는 한창 제철을 맞은 딸기 향내가 진동하고 있습니다.
봄 여행의 특급 목적지라면 단연 섬진강을 끼고 있는 전남 광양과 경남 하동입니다. 지난주에 ‘매화 없는 광양’에 대해 말했다면, 이번에는 ‘벚꽃 없는 하동’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굳이 벚꽃을 빼고서 하동에 대해 말하는 이유는, 지난주에 ‘매화 없는 광양’을 이야기한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이번 주에도 똑같은 당부를 덧붙입니다. 화창한 봄날, 벚꽃을 보러 하동에 가신다면 부디 이런 곳들을 놓치지 말고 둘러보셨으면 합니다.
벚꽃이 다가 아니더라… 하동의 감동 명소
섬진강 안개 머금은 형제봉… 봄꿈 머금은 버들강아지…
▲ 봄비가 속살거리는 날, 이른 아침의 섬진강변. 밤새 섬진강이 피워올린 자욱한 물안개로 이쪽 하동과 저쪽 광양 땅의 풍경이 마치 수묵화처럼 떠올랐다. 봄이 더 깊어지면 강변의 매화며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꽃망울을 터뜨린다.
딱 알맞은 높이 … 금오산 정상의 비경
‘쇠 금(金)’에 ‘자라 오(鰲)’자를 쓰는 ‘금오산’은 경북 구미에도, 전남 여수에도 있지만 경남 하동에도 똑같은 이름을 쓰는 금오산이 있다. 알려지기로는 구미나 여수의 금오산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그 산정에서 내려다보는 맛을 순서대로 꼽는다면 하동의 금오산을 단연 ‘첫손가락’에 꼽아야 하지 싶다. 금오산에서 내려다보는 비경은 단연 바다 쪽 전망이다. 지리산의 연봉들이 물결치는 북쪽 사면도 좋긴 하지만, 그보다 남사면의 바다 쪽 풍경이 훨씬 더 매혹적이다.
하동 금오산의 고도는 해발 849m. 하동이야 해발 1000m를 훌쩍 넘는 연봉들이 물결치는 지리산에 안겨 있는 곳이라 이 정도 높이는 그닥 대단치 않다. 하지만 바다를 끼고 있어 해발고도는 수준점 0m부터 차고 오르는 셈이니, 정작 정상에 올라보면 그 높이의 까마득함이 새삼스럽다.
하동 금오산의 매력이라면 무엇보다 차를 타고 쉽게 가닿을 수 있다는 점. 진교면에서 포장도로를 타고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7㎞쯤 차로 오르면, 남쪽바다의 다도해가 말 그대로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산정에 가닿는다. 길은 제법 잘 다듬어져 있어 간혹 좁은 길에서 마주 오는 차들을 비킬 곳만 염두에 둔다면 쉽게 오를 수 있다. 산정에는 남쪽의 바다를 향해 잘 다듬어 만든 널찍한 나무데크 전망대가 있다.
금오산에서 내려다보는 바다의 모습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것은 아마도 ‘꼭 알맞은 정도의 거리’ 때문이리라.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풍경은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다. 해안 풍경을 알맞은 정도로 배치한다면 꼭 이만큼의 거리가 되지 않을까. 동력선이 남기는 긴 물살의 흰꼬리가 눈에 들고, 점점이 뜬 섬들은 알맞게 공간에 배치돼 있다. 남쪽 바다의 아름다움을 머릿속에 그려 화폭에 담는다 해도 이만큼의 거리가 딱 알맞을 듯싶다.
한폭의 산수화, 지리산 자락 형제봉
높이가 주는 감동으로 치자면 형제봉도 못지않다. 지리산의 남부능선이 섬진강에 잠기기 전에 우뚝 솟아오른 봉우리인 형제봉은 해발 1115m에 달한다. 등산로를 따라 짚어 올라가자면 외둔삼거리에서 출발해 고소성을 거쳐 오르면 꼬박 3시간30분이 걸린다. 워낙 가파른 능선을 따라 올라야 하니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장딴지 근육이 탱탱해지는 것쯤은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형제봉은 차를 타고도 쉽게 오를 수 있다. 산 정상에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설치되면서 산 정상까지 길을 닦아놓았기 때문이다. 산길을 따라 오르면 소박한 산촌마을들을 지난다. 도무지 집이 들어설 것 같지 않은 비탈에도 산촌의 집들이 들어서 있다.
형제봉으로 오르는 길가의 숲에는 지난 가을이 오롯이 남아 있다. 활엽수 나뭇가지 끝에는 마르긴 했으되 붉은빛이 선명한 나뭇잎이 아직까지 붙어 있다. 해가 잘 드는 남쪽 사면으로 길이 나 있기 때문일 터다. 소나무는 싱그럽고, 푸릇푸릇한 신우대들은 밝은 초록빛으로 빛난다. 이런 풍경을 보노라면 마치 아예 이곳에는 겨울이 거쳐가지 않은 듯하다.
형제봉의 정취는 봄비가 촉촉이 내린 뒤에 가장 황홀하다. 정상에 오르면 섬진강은 보이지 않지만 중턱 무렵에서 뒤를 돌아보면 섬진강이 피워올린 물안개가 산자락을 적시며 올라온다. 산 정상 쯤에 걸린 안개가 풀어 흩어지는 모습을 대하노라면 마치 먹으로 찍어 그린 농담 짙은 산수화 앞에 선 느낌이다. 이즈음에는 산길 양옆으로 물오른 붉은 가지에 보송보송 솜털이 달린 버들가지가 한창 피어나고 있다. 버들강아지 솜털에 빗방울이 매달려 보석처럼 빛난다. 굳이 정상까지 다 오르지 않아도 좋다. 한쪽에 차를 대놓고 붉은 수피의 소나무 숲을 걷거나 바람에 바스락거리는 신우대 소리와 돌돌거리는 물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역사의 자취 …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하동읍의 서남쪽 옥종면 일대는 이렇다 할 볼거리가 없어 관광객들이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 그러나 옥종면 정수리와 덕천강변의 문암리 일대에는 이순신 장군이 이른바 ‘백의종군’했던 길이 있다. 제주의 올레길이 각광을 받으면서 전국 곳곳에 옛길들이 발굴되거나 이어지고 있지만, ‘난중일기’에 생생하게 기록된 이 길만큼 역사의 자취가 뚜렷한 곳도 없으리라. 일기의 기록이 선명한 만큼 400여년 만에 그 길을 걷는 감회도 유독 짙다.
때는 정유재란 와중이던 1597년. 주위의 모함으로 삼도수군통제사 직을 박탈당한 이순신 장군은 한성(서울) 의금부에 투옥돼 사형선고를 받은 뒤 감형돼 풀려나자 곧바로 권율 부대에 합류하기 위해 합천으로 향한다. 그 길이 바로 관직을 박탈당하고 흰 옷을 입은 채 떠난 ‘백의종군의 길’이다. 그해 4월1일 출옥해 한성을 떠난 장군은 5월26일 하동 악양면에 당도했다. 이어 옥종면을 거쳐 금남과 운암을 지나 진주 땅으로 들어서 산청을 지나 합천에 당도한다. 그때의 일기를 들춰보자.
‘6월1일 비. 일찍 떠나 청수역(하동군 옥종면 정수리) 시냇가 정자에 이르러 말을 쉬게 하고 저물어 박호원의 농사 짓는 종의 집에 들어갔다. 주인이 반갑게 접대하기는 하나 잘 방이 좋지 못해 간신히 밤을 지냈다.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기름종이 하나, 장지 2축, 백미 1섬, 참깨 5말, 들깨 3말, 꿀 5되, 소금 5말, 미지 다섯을 하동 수령이 보내주었다.’
관직을 박탈당하고 떠난 길. 장군은 하동 수령의 마음씀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보내준 물품들을 일기에 촘촘히 적어두었다. 장군이 그 물품을 받고 하동을 가로질러 가던 길이 정수리에서 문암리까지의 길이다. 마침 경남도에서 백의종군로의 복원을 시작해 드문드문 백의종군로임을 알리는 비석이 서 있다.
다국적 기업 다니다 지리산서 펜션 운영여민호씨
“갑보다 을의 입장이 편하다는 걸 전원서 배웠죠”
대학과 대학원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대기업 연구소를 거쳐 다국적 기업에서 프로덕션 매니저 일을 하던, 스스로 생각해도 도회지의 삶이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한 남자가 6년 전 겨울, 도시에서의 삶에 미련없이 사표를 던지고 경남 하동의 지리산 깊은 자락으로 찾아들었다. 칠불사로 드는 깊은 계곡가에 펜션 ‘아름다운 산골’을 지어 운영하는 여민호(46)씨. 그는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어 시작한 전원에서의 삶을 ‘새로운 사업’이라고 표현했다.
사실 지리산 자락에는 여씨처럼 도회지 생활을 버리고 찾아드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누구는 산이 좋아서, 누구는 전원에서의 느린 삶을 동경하다 지리산 자락의 마을에 터를 잡곤 한다. 그러나 여씨는 다른 이들과는 좀 달랐다. 그는 “직장생활보다 고되지만 종래에는 다른 것을 얻을 수 있겠다 싶어서 이곳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그는 “이곳에 내려온 뒤부터 지금까지 아직도 도전하는 삶이고, 해야 할 것들로 가득하다”고 웃었다.
그가 자리잡은 터는 인근에서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부친이 가꿔오던 소박한 정원이었다. 2001년 부친이 작고한 뒤부터는 가족들의 별장처럼 쓰였다. 화개에서 깊숙이 들어서 칠불사로 드는 길가 계곡을 끼고 자리잡은 정원은 어느 때 찾아와도 풍광이 빼어났다.
“이곳에만 내려오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없었어요. 도회지 생활에서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었죠. 노후에 이곳으로 내려오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그 시기가 많이 앞당겨졌지요.”
대기업의 연구소에서, 또 다국적 화학업체에서 원소기호에만 몰두하던 ‘이공계에서의 삶’이 한순간에 전원에서 자연과 접하며 사는 ‘인문계의 삶’으로 바뀐 것에 대해 사실 그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늘 ‘갑의 입장’에 서 있다가 ‘을의 입장’이 되고서야 마음이 편해졌다”는 그의 말도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와의 오랜 이야기 끝에 ‘손수 몸과 마음을 써서 유지하는 삶’에 대한 갈망이 읽혔다.
그렇게 그는 인부들과 함께 손수 황토를 나르고 집을 지었다. 노동에 익숙지 않은 몸이 비명을 질렀지만, 그는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낙향 6년 만에 그는 14채의 황토집을 거느린 ‘펜션 사장님’이 됐다. 황토방에 히노키로 욕탕을 만들고 방에는 따로 찜질방을 들였다. 인근 차밭을 임차해서 손수 차를 따고, 덖어 차를 낸다.
그저 ‘수익만을 바라는 장삿속’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는 이 공간을 “문화의 향기로 가득한 곳으로 만들어내겠다”고 했다. 그는 “정직하게 운영하면서 사업에 성공하고 말겠다”고 했다. 삶이 곧 사업이 되고, 사업이 곧 삶이 되는 그런 생활. 그것이 바로 여씨가 도회지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내려온 이유이기도 하고, 또 그가 꿈꾸고 있는 삶이기도 하다.
가는 길
화개에서 쌍계사나 칠불사로 드는 쪽에 새로 들어선 펜션들이 즐비하다. 칠불사로 드는 길에 가장 눈에 띄는 펜션이 ‘아름다운 산골'을 갖추고 있다.
형제봉 아래 부춘마을 일대에도 최근에 들어선 운치 있는 펜션들이 있다. 섬진강을 끼고 있는 하동은 재첩국과 참게탕이 명물이다. 재첩국은 여여식당(055-884-0080)과 하동할매재첩식당(055-884-1034)이, 참게탕은 개화식당(055-883-2061)이 알아주는 맛집이다.
묵을 곳 & 먹을 거리
화개에서 쌍계사나 칠불사로 드는 쪽에 새로 들어선 펜션들이 즐비하다. 칠불사로 드는 길에 가장 눈에 띄는 펜션이 ‘아름다운 산골’(055-883-7601)이다. 제법 규모도 크고 구들찜질방과 히노키탕, 벽난로, 다실 등을 갖추고 있다.
형제봉 아래 부춘마을 일대에도 최근에 들어선 운치 있는 펜션들이 있다. 섬진강을 끼고 있는 하동은 재첩국과 참게탕이 명물이다. 재첩국은 여여식당(055-884-0080)과 하동할매재첩식당(055-884-1034)이, 참게탕은 개화식당(055-883-2061)이 알아주는 맛집이다.
<출처> 2010. 3. 3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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