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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및 정보/- 이스라엘(해외성지)

시온산, '거룩한 산' 혹은 '여호와의 산'으로 비유되는 산

by 혜강(惠江) 2009. 7. 27.

 

성지순례 (30) : 시온산

 

'거룩한 산' 혹은  '여호와의 산'으로 비유되는 산

 

-  최후의 만찬 다락방, 다윗의 가묘, 가야바의 집, 베드로 통곡교회 등이 자리 함 -

 

 

·사진 남상학




 

* 마가의 다락방과 베드로통곡교회가 자리 잡은 시온산 *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시 2:6)
    “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시 9:11)



   위의 표현에서 보듯, ‘시온’이라는 말은 구약성서에는 시적인 표현으로 많이 등장하는데  ‘거룩한 산’ ‘여호와의 산’ 등으로 비유되기도 했다.

  또 시온이라는 말은 ‘시온의 딸’이라는 표현 속에도 등장하는데, 이는 예루살렘 시민을 시적으로 표현하는 말로 해석되기도 한다. 스가랴 2장 10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와서 네 가운데 머물 것임이라.”에서 볼 수 있다.

 

  신약성서에서도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히 12:22)에서 보듯  ‘하나님의 도성’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온은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적으로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이사야 10:24, 계 14:1)


  이 시온의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그들이 나라를 잃고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할 때나 로마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에 이 시온은 넓은 의미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잃어버린 조국의 땅 전체를 의미하게 되었다. 이것은 훗날 시온주의로 발전하여 그들의 신앙과 조국 땅의 해방을 위한 운동으로 결집되어 결국 현재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 건국하게 되는, 실지 회복(失地回復)의 사상적 원천이 되기도 했다.    

  이렇듯 친근한 표현의 ‘시온’이란 말이 붙은 시온산은 예루살렘성 남서쪽 지역인 시온문 밖의 언덕을 지칭하고 있다. 성전과 붙어 있고, 그 사에는 집들이 붙어 있어 산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으나 이곳의 높이는 해발 765m에 이른다. 힌놈 계곡에 의해 서쪽과 남쪽이, 그리고 동쪽으로는 중앙 계곡에 의해서 삼면이 경사를 이루고 있다. 헤르몬산을 가리키는 시온산과는 구별된다.

  지금 시온산이라고 불리는 지역은 역사적으로 조금씩 바뀌어 왔다. 고고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현재의 시온산이 구약시대의 시온산이 아니고 다윗성이 발견된 성전산 부근이 구약의 시온산임을 확인하였으나 신약시대 이후 예루살렘의 서남쪽에 있는 언덕(현재의 시온산)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서기 4세기 기독교가 공인된 비잔틴 시대에, 예루살렘의 서남쪽 언덕에 시온산교회로 명명된 웅장한 교회가 세워졌고, 이후로 오늘날까지 그 언덕은 시온산으로 불려지고 있다.


  이 지역에는 본래 물을 공급하는 수원이 전혀 없었는데, 여러 가지 연구에 의하면 시온산 지역이 좋은 주택지였고 대제사장의 저택도 있었다고 추정되는 점으로 볼 때, 이 지역이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히브리 대학의 역사 학자 하임 타드모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예루살렘 성벽을 쌓았던 건축가의 실수 때문입니다. 서기 1500년대 중엽에 팔레스타인을 지배하던 오스만 터키 제국의 술레이만 황제는 황폐해진 예루살렘의 성벽을 새로 쌓게 했습니다. 이때 성을 설계한 사람의 착오로 시온산 지역이 성벽 안쪽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후에 이 사실을 안 황제는 크게 노해서 그 건축 설계가를 처형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독립한 1948년부터 6일전쟁이 일어난 1967년까지는 구예루살렘 지역을 장악한 아랍측과 시온산을 장악한 이스라엘 사이에 시온문을 사이에 두고 팽팽한 긴장이 이어졌고 6일전쟁 때는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있기도 했다. 지금도 시온문에는 당시 전투에서 생긴 수많은 총탄자국이 남아 있다.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가 시온산을 방문했다. 이때 그의 방문을 위해 시온산으로 오르는 새로운 길이 만들어 졌고 '교황의 길'이라 이름을 붙였다.

  이곳 시온산은 신약 시대에 와서 대단히 중요한 곳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현재 시온산 지역에는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이 있었던 마가의 다락방이 있는 곳으로, 오순절 날 성령이 강림함으로 초대교회가 최초로 시작되는 발생지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최후의 만찬 다락방, 다윗의 가묘, 마리아 영면교회,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 베드로 통곡교회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시온산의 위치*

 

 

* 위치를 달리하여 찍은 시온산 전경 * 


* 시온산은 예루살렘 성의 시온문과 바로 연결되어 있다. 6월전쟁 때  아랍측과 이스라엘 간의 격전으로 총탄자국이 선명하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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