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포천 명성산
가을 가시는 길… ‘억새의 눈물’
글·사진 엄주엽 기자
▲명성산 억새군락은 이미 억새꽃이 져서 고적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억새의 한창 때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 등반객들이 평일임에도 억새군락을 찾아 깊어가는 가을을 즐기고 있다. 사진 위 왼쪽은 산정호수의 조각공원, 오른쪽은 삼각봉 가는 능선길.
억새 끝물에 명성산(922.6m)을 찾았다. 알려진 대로, 억새군락지로 유명한 명성산(鳴聲山)은 ‘울음산’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이 가을에 ‘짠’한 울림이 있는 산이름 아닌가. 그런데 고인이 된 고복수씨가 부른 국민애창곡인 ‘짝사랑’의 “으악새 슬피우니…”의 ‘으악새’는 억새의 방언이다. 울음산과 억새와 ‘짝사랑’은 무언가 한 묶음 같다.
바람에 무리져 누우면 곱게 빗은 머리칼처럼 은빛으로 반짝이던 명성산 억새는 이번 주초에 가보니 거의 쑥대머리가 돼 있었다. 봄철 꽃처럼 억새도 잠깐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고 무상하게 흩어져 버린다. 이날 머리가 희끗희끗한 초로의 등산객들이 억새 밭 한가운데 둘러앉아 막걸리를 걸치고 “아∼, 으악새 슬피우니…”를 목청껏 불러젖히고 있었다.
명성산이 있는 산정리에는 태봉국을 세운 궁예와 관련된 지명이 여럿이다. 우선 울음산이 그렇고, 패주(敗走)골, 항서(降書)받골, 야전(野戰)골, 망봉(望峯) 등이 모두 궁예와 관련된 지명으로 보고 있다. 물론 전설에 의지하는 것이지만, 부하였던 왕건에 쫓겨 궁예가 최후를 맞이한 지역이 이곳 주변이다보니 그저 생긴 이름은 아닐 것이다. 망국의 한을 안고 죽음에 몰린 궁예가 산이 울리도록 울었다는 울음산은 그의 ‘미륵사상’을 믿고 따랐을 민초들의 설움이 담겨있는 이름이다.
어쨌든 이달 중순 열흘간 억새축제 기간에 80만명이 여기를 찾았다니 포천시로서는 명성산 억새군락이 지역경제의 효자로 떠올랐다. 원래 산줄기의 북쪽에 자리한 명성산 정상은 강원 철원군에 속하지만, 산정호수와 명성산의 남동쪽 자락 억새 군락지는 대부분 경기 포천시에 속해 있어 포천시가 억새축제를 주최한다. 철원군으로서는 간발의 차이로 도계가 갈려 상당히 아쉬울 것 같다.
철원군 갈말읍 방향에서 보면 명성산은 평범한 육산이다. 남북으로 뻗은 명성산 긴 능선의 동쪽사면 역시 비교적 완만하고 나무나 억새가 우거진 육산의 모습이지만, 서쪽·남쪽 사면은 깎아지른 기암절벽의 화강암 슬랩(slab·크고 넓은 바위)을 형성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서쪽 즉 포천시 영북면에서 바라보는 산의 풍광이 더 웅장하면서도 아기자기하다. 따라서 명성산의 들입목은 거의 산정호수 위쪽 구천동 계곡의 초입을 택하게 된다. 구천동계곡은 공식 이름은 아닌 듯한데, 등반객들이 그렇게 부르고 일부 지도에도 구천동계곡으로 표기돼 있다.
40대 이상 중년이라면 학창시절 MT장소로 한 번은 찾았을 산정호수 주변은 과거보다 상가들이 더욱 늘면서 추억의 민박집들은 알아 볼 수가 없어 좀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호반에 조각공원을 꾸며놓아 볼거리가 많다.
책바위와 여우봉 사이의 구천동계곡 초입의 비선폭포를 바로 지나면 세 갈래로 등반을 할 수 있다. 가운데 계곡으로 죽 올라가는 길이 나름대로 계곡을 감상하며 오를 수 있는 코스다. 등룡폭포를 지나 왼편 능선으로 원을 그리며 붙으면서 억새군락지를 만난다. 가장 완만한 코스다.
비선폭포를 지나 오른쪽 능선으로 거북바위와 흔들바위를 지나 여우봉(710m)을 거쳐 안부를 타고 억새밭 입구에 닿는 코스가 두번째다. 가장 길지만 여우봉까지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세번째는 비선폭포에서 왼쪽 책바위 암릉을 타는 코스다. 입구부터 코스가 험하니 아마추어들은 오르지 말라는 경고판이 붙어있다. 책바위는 여우봉 방면에서 보면 마치 책을 펼쳐 세워놓은 듯 암반이 펼쳐져 있어 그 같은 이름이 붙었다. 겨울철에 눈이 오면 피해야겠지만 로프와 나무계단이 갖춰져 있어 누구나 오를 만하다. 이 코스는 험하지만 빨리 정상에 닿고, 산정호수를 바라보면서 오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아예 들입목을 계곡입구에서 300m 정도 아래에 있는 자인사 입구로 택하면 억새군락만 보고 내려오고자 하는 등반객에게는 제일 빠른 코스다. 다소 가파르지만 책바위 코스보단 급하지 않고 한 시간 못미쳐서 억새군락에 닿을 수 있다. 명성산 억새군락은 군부대가 포사격장을 위해 나무를 베고 정리했던 곳에 뜻하지 않게 억새가 자리잡으면서 생겨났다. 자연의 힘이라니. 포연이 자욱하던 탄착지대조차 생명의 도약 앞에서는 아름다운 억새군락으로 금세 변한 것이다.
억새군락지 상부 능선에는 팔각정이 세워져 있는데, 지도를 보고 산을 찾은 사람들이 여기서 좀 헛갈린다. 지도상에는 팔각정에서 10여분 거리, 바로 바라보이는 봉우리가 삼각봉(893m)으로 표기돼 있기 때문이다. 지도상으로 삼각봉에서 명성산 정상까지는 45분 정도 걸리는 것으로 표기돼 있다. 그런데 최근 삼각봉의 위치가 바뀌었다. 지도상에 강원도와 경기도의 도계 위에 있는 910고지(실제 906m)로 표기된 봉우리가 포천시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한 실사결과 실제 삼각봉으로 확인된 것이다. 아직 지도상에는 바뀌어져 있지 않고 일부 표지판도 그대로다. 전에는 삼각봉과 정상의 거리가 2.7㎞로 표기됐지만 이젠 620m에 불과하다.
포천시는 지난 6월 이곳 새 삼각봉에 해태상을 세웠다. 그 아래 동양최대의 사격훈련장이 있어 산불을 예방하고자 한 것이다. 사격훈련이 있는 날을 이 지역 출입이 통제되므로 미리 산정호수관광지부( 031-532-6135 )에 연락을 해보는 게 좋다. 명성산 정상에서 하산코스가 조금 난감하다. 서쪽 산안고개로 바로 하산할 경우 아래에 별다른 교통편이 없어 족히 30분은 도로를 걸어 출발지로 돌아와야 한다. 이를 피하자면 다시 왔던 코스를 되돌려서 팔각정을 지나 자인사 코스로 내려오면 된다.
등산코스
▲비선폭포 ~ 등룡폭포 ~ 억새군락 ~ 등룡폭포 ~ 비선폭포 (8㎞, 3시간30분)
▲비선폭포 ~ 등룡폭포 ~ 억새군락 ~ 팔각정 ~ 삼각봉 ~ 팔각정 ~ 자인사 (10㎞, 4시간)
▲비선폭포 ~ 등룡폭포 ~ 억새군락 ~ 팔각정 ~ 삼각봉 ~ 명성산 ~ 산안고개 (14㎞, 6시간)
교통
▲버스 = 상봉터미널, 동서울종합터미널, 전철 4호선 수유역, 의정부고속시외버스터미널
에서 직행버스로 운천 하차, 운천에서 30분 간격 명성산행 버스 이용
▲승용차 =서울-43번 국도-의정부-포천읍-성동리-문암리에서 우회전-산정 호수 방향
(78번 지방도로)- 산정리
<출처> 2008-10-31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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