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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인천. 경기

마니산 정기 서린 강화 정수사(淨水寺)

by 혜강(惠江) 2008. 10. 9.

강화 정수사

마니산 정기 서린 강화 정수사(淨水寺) 

- 함허화상과 그의 부인의 설화가 어린 곳 -

 


글˙사진 남상학



 

* 아래쪽 입구에서 정수사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



 인천광역시 강화군(江華郡) 화도면(幻面) 마니산(摩尼山)에 있는 절로서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우리겨레의 시조로 불리는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했다는 참성단이 지척에 있는 정수사의 본래 이름은 정수사(精修寺)로, 639년(신라 선덕여왕 8) 회정대사(懷正大師)가 창건하였다. 그 뒤 조선시대에 들어 1426년(세종 8) 함허화상(涵虛和尙)이 중건할 때, 법당 서쪽에서 맑은 물이 솟아나는 것을 보고 정수사(淨水寺)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 정수사 중수 표지석과 대웅보전, 그리고 산신각 아래 있는 석중천(石中泉)

 


법당은 정면 3칸, 측면 4칸의 단층 맞배집이며, 1칸은 툇간(退間)으로 되어 청판(廳板)을 깔고 있다. 현존하는 중요문화재로는 아미타불을 비롯한 불상 4위와 탱화 7점, 부도(浮屠;사리탑) 1기 등이 있다. 산신각 밑에 있는 석중천(石中泉)은 모든 다인들이 부러워한다는 물이다. 그렇듯 함허화상이 정수(精修)를 정수(淨水)로 고친 뜻을 알만 하다.

 

 

 * 정수사 경내 모습(상), 삼성각(중), 함허화상의 부도(하)

 

정수사 대웅보전을 왼쪽으로 끼고 돌아 산길로 길을 잡았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좁다란 오솔길을 따라 오르다 언덕배기에 소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그 아래 함허화상의 부도가 있다. 뒤로는 마니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감색의 서해 갯벌이 여인의 젖무덤처럼 솟아있다.



* 경내에 있는 탑신

 


무학대사의 제자이며 다인(茶人)으로도 유명한 함허 대사의 법명은 기화(己和)이고 호는 득통(得通), 당호는 함허다. 어린 나이에 성균관에 입학하여 수학할 정도로 명석했으나, 21세 때 친구의 죽음을 보고 출가의 발심을 내었다고 한다.

 

 

* 정수사 경내(상)와 불교 용품을 판매하며 차를 마시도록 배려한 휴식처

 

 

정수사에서 1km 정도 거리의 산자락(고도 468m)에는 거대한 바위에 ‘함허동천(涵虛洞天)’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곳은 정수사를 중수한 함허화상이 와서 수행하면서 그의 당호를 써서 ‘함허동천’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인연으로 마을이름도 ‘함허동천’으로 부르게 됐다. 함허동천에는 함허대사와 그의 부인에 얽힌 ‘각시바위’ 설화가 있다.

 

- 함허화상은 본디 고려 말 원나라의 한림학사(翰林學士)였다. 함허화상이 결혼 후 고려 땅으로 공부하러 떠나자 함허화상의 부인은 남편을 하루하루 기다리다 남편이 강화도 정수사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역만리 길을 찾아와 남편을 만나기를 청했다. 하지만 수행의 경지가 깊어진 함허대사는 찾아온 부인을 만나주지 않고 대신 동자를 통하여 몇 글자의 편지를 써 주었다.

“태어난 자 반드시 죽고, 만나는 자 반드시 이별하게 되는 것이 인생이 아니겠소. (중략) 깨달음의 경지를 위해 정진하는 수행자가 된 이상 더 이상 부인을 만날 의미는 없어져 버렸소. 부디 야속하다 생각마시고 고향으로 돌아가 주길 바라오.”

편지를 받아 읽은 부인은 “여자가 한 남자와 인연을 맺었으면 죽음이 둘 사이를 갈라놓을 때까지는 헤어질 수 없는 것”이란 생각으로 함허대사가 수도하고 있는 계곡으로 향했다. 부인은 산속 골짜기 넓은 바위 위에 눈을 감고 앉아 수행하고 있는 남편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보, 접니다. 당신의 마음은 이해하겠습니다. 그러나 당신 얼굴이나 한번 보고 떠나겠으니 이쪽으로 얼굴이나 돌려 보세요.”

그러나 함허대사는 부인을 고개 한번 돌리지 않은 채 정과 망치를 들고 계곡 넓은 바위 위로 올라가서 거기에다 글자를 새기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계곡으로 퍼져 나갔다. 글자가 ‘함허동(涵虛洞)’자까지 새겨졌을 때였다. 뒤에서 함허대사의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던 부인이 소리치며 애원했다.

“여보, 수행하는 사람은 자기 부인도 몰라본답니까? 깨달음을 얻어서 무엇에 쓰려고 그러십니까? 정녕 당신 뜻이 그러시다면 제가 아주 먼 길을 떠나겠습니다.”

계곡을 빠져 나온 부인은 바다로 향했다. “여보, 저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하지만 영혼이나마 이곳에 남아 당신이 바라는 깨달음을 얻도록 기도하겠습니다.”

부인은 정수사가 바라보이는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 때 갑자기 바다에서는 큰 물결이 일어나며 거대한 바위 하나가 솟아올랐다. 사람들은 그 바위를 함허대사의 부인의 영혼이 담겨 있다고 하여 ‘각시바위’라 부르기 시작했다.

 

 

* 함허화상이 수행하며 계곡 바위에 새긴 글씨

 

* 원으로 표시한 바위가 각시바위


김포를 거쳐 강화 초지대교를 지나 동막해수욕장 방향으로 끝까지 가면 함허동천이 나온다. 이곳에서 1km를 더 가면 우측에 정수사 이정표가 나온다. 여기서 다시 1km정도를 더 들어가면 분오리돈대가 보이고 그 앞에 펼쳐진 바다를 보면 각시바위가 보인다. 강화읍내에서는 군내버스 14번을 타고 화도면으로 가면 된다. 정수사 (032)937-361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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