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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인천. 경기

가평 호명산, ‘어흥~’ 호랑이 노닐던 산길따라 어슬렁

by 혜강(惠江) 2008. 8. 9.

 

경기도 가평 호명산

‘어흥~’ 호랑이 노닐던 산길따라 어슬렁~

 

 

글·사진 엄주엽 기자

 

 

 

▲ 호명호 전망대에서 바라본 호명산 능선.

 

 

▲ 안전유원지 코스의 휴게터에서 내려다본 청평댐.

 

 

▲ 호명산에서 장자터로 가는 능선길 중 한 장면. 한북정맥의 지맥을 통해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이 능선길은 옛적에 태백산 호랑이가 이곳까지 어슬렁거렸을 법하게 숲이 우거지고 호젓하다.

 

 

우리나라에는 호명산(虎鳴山)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 여러 군데 있다. 말 그대로 ‘범 울음소리’라는 의미인데, 경기 가평과 파주 그리고 충북 단양 부근에도 같은 이름의 산이 있으며 아마도 전국적으로는 더 많을 것 같다.

이 산들은 모두 높지가 않은데, 이는 예전에 우리나라에선 민가에서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릴 만큼 그 수가 적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금도 한국호랑이가 남아있다고 믿는 한국야생호랑이보호연구소 임순남 소장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 저들에 의해 잡혀 죽은 호랑이만 100여마리라고 하니까, 아주 오래전 일도 아니다.

수도권에서 기차로 쉽게 닿을 수 있는 산 중 하나인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청평리에 있는 호명산(632.4m) 주변 지명은 여러 가지로 호랑이와 관련이 많다. 호명산 정상에서 장자터고개로 가는 중간에 619m 봉우리는 아갈바위봉으로도 불리는데 ‘범 아가리’에서 온 이름이고, 그 방향으로 오른쪽 호명리에서 장자터고개까지의 계곡은 범울이계곡이다.

그 계곡 건너 입구에 ‘범울이’라는 마을이 지금도 있고, 현재 호명리란 이름 자체도 예전에는 ‘범우리’라 불리다 한자 이름으로 바뀐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00m도 안 되는 산에 뭔 호랑이가 살았으리오’ 할지 모르지만 지금도 한북정맥의 지맥을 통해 우리 국토의 등줄기로 이어지는 호명산 능선길을 걷다보면 이름의 유래가 실감이 가기도 한다.

남쪽으로 청평댐과 청평호를 내려다보는 호명산은 ‘물’(水)과도 인연이 깊은 산이다. 산의 서쪽 청평역 방면으로는 명지산에서 시작하는, 물살이 급해 종종 물놀이객의 익사사고가 발생하는 조종천이 감싸고 흐른다. 장자터고개 너머에는 국내 최초의 양수식발전소를 위해 조성된 인공 산정(山頂) 호수인 호명호(虎鳴湖)가 있다. 또 호명호 전력홍보관에서 동쪽을 보면, 경기도와 강원도를 가르며 가평을 경유해 내려오는 북한강 줄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호명산 자체가 물에 둘러싸이고 물을 머리에 이고 있는 셈이다.

호명산은 이처럼 산과 물이 어우러지고, 수도권에서 접근성이 좋은 데다, 등산코스도 다양해서 한나절 여유있게 즐길 수 있는, 꼭 권해보고 싶은 산이다. 지난 4일 찾았을 때는 휴가철이지만 평일이어선지, 산 아래 청평호반과 조종천에는 피서객들이 붐볐지만 등산로는 가끔 사람을 마주칠 정도로 한산했다. 청평역이나 터미널에 내려 호명산을 오르는 코스는 안전유원지를 통해 오르는 코스나 대성사 일주문을 지나 우무내골로 오르는 코스, 좀 더 이동해서 범울이계곡 입구 호명리 마을회관에서 오르는 코스 등 세 갈래가 있다. 또 아예 경춘선 상천역에서 내려 호명호로 직접 오른 뒤 능선을 타고 호명산에 이르는 코스도 선호된다. 대표적인 코스는 안전유원지와 상천역 코스다. 이날은 안전유원지 코스를 택했다.

청평역에서 조종천을 끼고 안전유원지로 들어가다보면 천을 건너는 철판다리와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나오는데, 그 건너에 바로 들입목이 있다. 그런데 징검다리 한두 군데가 유실돼 있는 데다 요며칠 계속된 비로 수량이 늘어 건너기 힘들었다. 이 경우 조종천을 500m 정도 더 거슬러 올라가 만나는 기차철교로 건너야 한다.

안내판이 있는 들입목에서 20여분 오르다 보면 수도꼭지로 틀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샘터가 나온다. 수도꼭지에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을 만큼 물이 차고 맛이 좋다. 여기서 시원한 물을 받아 가면 된다. 다시 10여분 오르다 보면 휴게터가 나오는데 여기가 잠시 땀을 식히면서 청평댐을 조망하기 가장 좋은 장소다.

여기부터 20여분 오르는 정상까지의 길은 조금 가파르다. 아주 가파른 길은 로프를 걸어놓았다. 들입목에서 넉넉히 한 시간이면 호명산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 서면 남쪽으로 청평댐 건너 화야산의 뾰루봉이 지척으로 서있고, 그 너머 용문산이 머리를 드러낸다. 서북쪽으로는 깃대봉, 축령산, 서리산이, 북쪽으로는 청우산, 대금산, 매봉 산줄기와 그 너머 명지산과 화악산, 국망봉 등 경기도의 고봉들도 눈에 들어온다. 이처럼 조망이 좋아 예전엔 이곳에 봉화터도 있었다는 얘기도 전하는데 그 흔적을 찾을 순 없었다.

여기서부터 3㎞ 남짓 될 능선길이 큰 굴곡 없이 잔잔하면서도, 아직 등반객들의 발길이 너무 훑고 지나지 않아 호젓하다. 호명산이 전망도 좋고 산정호수도 좋고 하지만, 이 능선길도 빼놓을 수 없다.

장자터고개에서 철망으로 가려놓은 문을 하나 지나면 수리봉이 나오고 그 너머에 호명호가 있다. 산 정상 부근에서 갑자기 눈앞에 펼쳐지는 꽤 큰 호수를 만나니 역시 감동이 색다르다. 백두산 천지(天池)를 흉내내 별칭을 천지연(天池淵)으로 붙여놓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조성된 이 인공호수는 그동안 일반 등반객의 접근을 막지는 않았지만 최근 주변을 새로 정비해 지난달 개장했다.

전에는 낚시시설물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 같은 시설은 철거했고 지금은 깔끔한 호수공원으로 가꾸어 놓았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팔각정 모양의 전력홍보관과 전망대도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다. 관광객 유치에 정성을 쏟고 있는 가평군이 가평·청평터미널에서 하루 각각 5대씩 총 10편의 버스(운행요금 1000원)를 정상까지 운행하고 있다. 이 호수는 3∼10월에만 개방한다고 한다.

하산은 상천역 방향을 택했다. 전망대에서 조각공원 방향으로 내려오면 큰골능선 코스를 통해 하산할 수 있다. 코스는 비교적 가파른 편이다. 청평역에서 출발해 상천역으로 내려오는 이 코스가 호명산-호명호를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코스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상천역은 직원이 배치되지 않은 간이역으로 경춘선이 하루 5차례밖에 정차하지 않는 게 아쉽다. 그 앞 정류장에서 1330-2번 버스를 타고 청평역에 내려 기차로 갈아타거나 그대로 청량리까지 갈 수 있다.

호명산은 주요 코스와 갈림길에 가평군에서 이정표와 안내지도를 만들어 놓았지만, 그 옆에 누군가 개인적으로 만든 것이 분명한 기차·버스 시간표, 산과 코스에 대한 상세한 설명서가 덧붙어 있다. ‘호명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돼있는 이 고마운 사람은 가평이 고향이며 지금도 안전유원지에 거주하는 장인길(57)씨로 수 백번 오른 호명산이 좋아 이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지역을 사랑하는 사람의 정성이 타지에서 온 등산객들에게 흐뭇한 마음을 갖고 돌아가게 한다.

<등산코스>

▲청평역~안전유원지~ 정상~장자터고개~호명호~큰골능선~상천역(8㎞, 4 ~ 6시간)
▲청평역~대성사 일주문~ 우무내골~호명호~장자터고개~정상~안전유원지 (9㎞, 4~5시간)

<대중교통>

▲버스 : 상봉터미널 ~ 청평(직행), 동서울터미널 ~ 청평(직행)
▲기차 : 청량리역 ~ 청평역, 상천역


 

 


<출처> 2008-08-08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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