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예산 덕숭산
천년 고찰 수덕사를 품은 ‘호서(湖西)의 금강산’
예산 / 정혁수기자
▲수덕사 전경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자리잡고 있는 덕숭산(德崇山)은 찾아가는 길부터 색다르다. 험한 산골을 넘거나 넓고 깊은 강을 건너지 않아도 된다. 온천으로 유명한 덕산을 지나 야트막한 고개를 가로지르는 지방도를 따라 들어가면 쉽게 다다를 수 있다. 가족 관광객과 나들이 산행객이 즐겨 찾는 이유다.
덕숭산은 차령산맥이 서해로 달려가다 마지막쯤에 기운을 모아 힘껏 솟구친 산이다. 해발 495로 작고 아담하지만 두루뭉술한 인근 산과는 달리 힘찬 산세를 지니고 있다. 정상에 오르면 안면도와 서해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고 울창한 숲과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예로부터 ‘호서(湖西)의 금강산’이라 불렸다.
한반도 13정맥의 하나인 금북정맥의 등줄기인 덕숭산의 고개는 낮은 편이라 내포지방과 서해 바닷가 사람들의 주요 내왕로 역할을 했다.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가장 살기좋고 인구밀도가 높았던 지역들이 덕숭산을 중심으로 위치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나라 시인 유우석은 “산이 높다고 다가 아니요, 선풍(仙風)이 있어야 명산”이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덕숭산은 명산이다. 이웃의 가야산(678)보다 낮은데도 수덕사라는 천년고찰의 본산이 됐기 때문이다. 덕숭산은 동쪽의 수암산부터 시작해 용봉산·홍동산·삼준산·연암산·뒷산·가야산에 이르기까지 260~678 높이의 크고 작은 산들로 빙 둘러싸인 가운데 오롯한 바위산으로 솟아 한 송이 꽃의 형상을 하고 있다.
덕숭산의 자랑거리는 산의 남쪽에 자리잡은 수덕사(修德寺)다.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에는 우리나라 불교계 4대 총림중 하나인 덕숭총림이 자리하고 있다. 수덕사는 1308년 창건됐다. 고려말 공민왕때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대웅전은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등과 함께 국내 대표적인 목조 건축물로 손꼽힌다. 건립 연대가 뚜렷해 고건축의 기준이 되기도 하며 국보 49호로 지정돼 있다.
▲스님들의 참선 도량인 정혜사. 앞마당에 서면 용봉산과 수암산 그리고 멀리 해미읍내가 손에 잡힐 듯하다.
수덕사 부근 계곡을 따라가면 소림초당·향운각·금선대·견성암·전월사·선수암·망월대·금강암·계루암·정혜사 등 수많은 불교 유적을 만날 수 있다.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한 기와지붕과 불룩한 배흘림기둥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수덕사 뒤쪽 등산로를 오르다보면 정혜사와 견성암 등 암자가 보이는데, 옛날 경허와 만공 등 고승들이 수도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수덕사는 ‘3덕(德)’이 모인 곳이기도 하다. 산 이름 ‘덕숭’(德崇)과 절 이름 ‘수덕’(修德), 마을 이름 ‘덕산’(德山)에 ‘덕’이 들어있다. 그래서 ‘덕을 숭상한다’는 산의 의미가 절로 느껴진다.
덕숭산 정상 부근에 있는 능인선원은 100여년전 만공 스님이 금선대라는 초가를 지은 게 시초가 됐다. 능인선원은 근대 선의 등불을 밝힌 ‘한국불교의 태산’ 경허·만공 선사와 선농일여(仙農一如)를 실천한 벽초의 선맥을 잇는 ‘선지종찰’의 대표적인 선원이다.
덕숭산은 조선시대 사실상 명맥이 끊기다시피 한 선(禪)을 되살려 근현대 한국불교를 개창한 경허 선사의 가르침을 잇는 곳이다. 수덕사의 산내 말사인 정혜사에는 경허의 제자인 혜월·만공 선사가 머물렀던 곳으로 수많은 비구·비구니들이 몰려 들기도 했다.
산의 북쪽 능선은 가야산으로 이어진다. 두 산은 주변에 많은 문화유적과 아름다운 경치를 담고 있어 1973년 3월6일 덕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덕산온천과 윤봉길 의사 사당인 충의사, 천주교 성지인 해미읍성,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등이 가까이 있어 사시사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돌계단·능선 따라 ‘참선 산행’
덕숭산 산행은 수덕사에서 시작된다. 수덕사 주차장을 지나 5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일주문에 들어선다. 왼편에는 수덕여관이 눈에 들어온다. 동양화가 고암 이응노 화백(1904~1989)이 살던 곳으로 유명한 수덕여관은 최근 새 단장을 마치고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신했다. 이 화백이 생전 직접 써서 걸어놓았다는 현판과 뜰 앞 바위에 새긴 암각화가 남아있다.
일반적인 산행코스는 수덕사 대웅전 옆에서 정혜사까지 이어진 1020개의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다. 수행·정진하는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한걸음씩 옮길 때마다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느껴볼 만하다.
처음에는 견성암을 향해 오른다. 암자의 돌담길과 헤어질 때쯤에는 오른쪽 임도로 들어선다. 그 끝에는 한적한 공터에 부도와 해태상이 서 있다. 거기서부터는 가파른 능선길이 이어진다. 10여분쯤 오르면 만공 스님(1883~1946)이 참선을 위해 거처하던 소림초당이 한 눈에 들어온다.
위로는 만공이 세웠다는 7.5의 거대한 미륵불입상이 있다. 만공탑 왼편 길을 따라 100 정도 올라가면 스님들의 참선 도량인 정혜사가 고즈넉히 자리하고 있다. 정혜사 앞마당은 덕숭산 제일의 조망터로 용봉산과 수암산이 내려다 보이고 멀리 해미읍내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하지만 그곳이 정상은 아니다. 정상까지는 바위와 흙으로 이뤄진 등산로가 기다리고 있다. 정혜사를 출발한 지 10여분쯤 지나면 능선 갈림길에 들어서게 된다. 오른쪽 길을 따라 5분 정도 더 올라야 정상이다. 북쪽 45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우람하게 솟은 가야산의 모습과 그 오른편으로 예당평야가 끝없이 펼쳐진다. 하산길은 완만해 어렵지 않다. 정상 표석에서 정확히 북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오는 게 편하다. 중간중간에 빨간색으로 쓰인 ‘산불조심’ 깃발을 만나면 안심해도 된다.
<출처> 2008년 03월 06일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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