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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고문2

나주, 2천년의 이야기를 간직한 영산강의 보석 전남 나주 2천년의 이야기를 간직한 영산강의 보석 한국관광공사 제공 ▲영산강 유채꽃 전남 담양군 용면에서 발원해 광주, 나주, 영암을 지나 목포의 서해바다로 빠져나가기까지 350리를 굽이치며 흐르는 영산강. 작은 지류들을 만나며 굴곡을 더욱 크게 하고 강의 품을 넓게 열어 살찌운 땅이 바로 나주다. 전주와 나주의 앞글자를 따서 전라도라는 명칭이 만들어졌을만큼 나주는 불과 한세기 전까지만 해도 전라도 땅의 중심지였다. 영산강변의 영산포는 남해바다에서 올라 온 해산물들과 나주평야에서 모아진 곡물들이 모이는 호남 지역 최대의 물자교류지였다. 일제시대에는 호남지역의 곡물들이 영산포를 통해 일본으로 공출되면서 수탈의 거점이 되기도 했던 아픈 역사도 갖고 있다. 1977년까지도 배가 드나들었으나 1981년 영산강 .. 2011. 5. 10.
‘천년목사 고을’ 나주(羅州)의 문화유산 둘러보기 ‘천년목사 고을’ 나주(羅州)의 문화유산 둘러보기 - 남고문, 정수루, 목사 내아와 금성관, 나주향교, 고분 - 글·사진 남상학 나주는 강진, 해남, 완도로 가는 길목으로 여기고 여러 차례 지나친 적은 있지만 관광의 목적지로 정한 적이 없었다. 그러던 차 모처럼 기회를 얻어 나주의 속살을 얼핏이나마 둘러볼 기회를 얻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왜냐 하면 나주는 거의 천년 동안 교통ㆍ군사ㆍ행정의 중심지로서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어 당 시대의 문화유산을 많이 지니고 있었기에 말이다. 비록 짧은 시간 주마간산격으로 둘러본 나주의 모습이지만 예사롭지가 않았다. ‘천년목사 고을’ 나주 영산강 삼백 리 어머니 같은 젖줄이 있어 선사인들은 이 유역에 등을 붙일 자리를 잡았겄다. 돌창과 돌도끼, 석검, 돌화살촉 하나.. 2007. 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