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운규1 영화 이야기(3) : 민족 울분 표현한 시대의 흥행작 ‘아리랑’ 민족 울분 표현한 시대의 흥행작 ‘아리랑’ “의열단 폭탄 던진 듯”… ‘아리랑’ 인파에 극장 문짝 부서져 조재휘 영화평론가 ▲1918년 명동학교에 입학한 나운규가 교복을 입고 있는 모습. 독립기념관 제공 무성영화 시절은 변사의 전성시대였다.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변사의 해설이 어떤가에 따라 듣는 내용은 얼마든지 달라지곤 했다. 단성사의 인기 변사 성동호는 이러한 변사의 특권을 십분 활용할 줄 안 사람이었다. 당시 극장에는 임검석(臨檢席)이라 하여 종로경찰서 보안계에서 파견한 순사가 앉아 영화나 공연을 감시하고 내용을 검열하는 좌석이 따로 있었다. 조선 영화 한 편을 상영하는 날, 임검석이 비어있는 걸 본 성동호는 평소의 무난한 내용을 버리고 다음과 같이 해설했다고 한다. “3.1 운동이 있은 후 받은 고.. 2019. 3. 16.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