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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 DMZ), 피로 얼룩진 공존과 평화의 땅

by 혜강(惠江) 2024. 1. 25.

 

비무장지대 ( DMZ)

 

피로 얼룩진 공존과 평화의 땅

 

글 · 남상학

 

 

  한반도의 근현대 역사는 강대국의 힘의 대결에 얼룩진 아픔의 기록이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의 기쁨을 맛본 것도 잠시, 국토는 38선을 기준으로 소련과 미국 관할로 분할되었다. 당시만 해도 독립 국가 설립의 과정으로 간주했으나, 이후 6·25전쟁의 포화는 결국 한반도의 허리를 휴전선으로 갈라놓았다.

  1953년 7월, ‘한국휴전협정’에 의하여 임진강에서 동해안까지 총 1292개의 말뚝을 박았다. 이를 기반으로 약 248㎞에 걸쳐 가상의 선을 군사분계선(MDL)으로 정한 다음, 남북으로 각각 2㎞ 범위를 완충지대로 하여 비무장지대를 설정했다.

  그 결과 휴전선은 서쪽의 예성강과 한강 어귀의 낙도인 교동도에서부터 개성 남방의 판문점을 지나 중부의 철원과 금화를 거쳐 동해안 고성의 명호리에 이르는 248km(600리)의 길이로 한반도를 가로지르게 되었다. 이는 6·25전쟁 이전의 38선에 비해 서해안의 옹진군이 북한으로, 그리고 중동부의 철원·금화·인제·고성군의 일부가 대한민국에 넘어오게 되었고, 38선 대신 군사분계선이 국경 아닌 국경선이 되어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나누었다.

  이에 비무장지대의 북쪽 경계선을 ‘북방한계선’(NBL), 남쪽 경계선을 ‘남방한계선’(SBL)으로 불린다. 그러나 북한이 1968년 협정을 어기고 북방한계선 남쪽으로 철책을 설치하면서 이에 맞대응으로 우리 군(軍)도 철책을 전진 배치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한반도의 비무장지대는 영어로 DMZ(Demilitarized Zone)이라고 약칭된다. 비무장지대는 적대국의 무력 충돌을 방지하거나 국제적인 교통로를 확보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비무장지대에는 글자 그대로 군대 주둔이나 무기 배치, 군사 시설의 설치가 금지되고, 군사 활동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비무장지대 설치 의도가 무색하게 비무장지대 내에서는 수많은 무력 충돌이 감행되면서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았다. 유엔군 초소를 공격하는가 하면, 비무장지대를 통하여 무장공비를 남파시켜 왔으며, 비무장지대 안에 진지를 구축하기도 하였다. 적에게 가장 가까운 곳이기 때문에, 가장 살벌한 대치와 대결이 이루어져 왔다.

  비무장지대는 원칙적으로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지만, 비무장지대 출입에 관한 협의에 근거하여 비무장지대에 한국 주민 거주의 대성리 ‘자유의 마을’과 북한 주민 거주 기정리 ‘평화의 마을’이 생겼다. 비무장지대의 출입은 군사정전위원회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비무장지대는 이처럼 출입이 제한적이고 금지되는 지역이지만 특히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시위원단이 있는 판문점 구역은 쌍방이 공동으로 경비하는 비무장지대 안의 특수지역이다. 그래서 쌍방의 경비병이 군사분계선을 자유로이 드나들었으나 1976년 북한군의 도끼 만행사건 이후 금지되고 있다.

 

 

  비무장지대의 길이는 동서로 155마일 (약 250㎞)에 걸쳐 있다. 양측 모두 철조망 등의 장벽을 세우고 서로에 대해서 철저하게 감시 활동과 첩보전을 벌이는 곳이며, 그동안 크고 작은 무력 충돌도 빈번하게 발생한 곳이다. 그런 이유로 김포반도 북단, 파주, 연천, 철원, 양구, 인제, 고성으로 이어지는 지역에는 한국전쟁 당시의 격전지가 많고, 71년이 지난 지금도 긴장 속에 경계를 늦출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비무장지대는 40여 년간의 출입통제구역으로 묶여 있었기에 환경 오염이나 파괴가 거의 없어 자연상태가 잘 보존된 다양한 생태계의 서식지가 되었다. 1급수 어류뿐만 아니라, 저어새, 재두루미, 고니 등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동식물도 다수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생태 보고로 평가받게 되었다.

  따라서  비무장지대는 한반도의 평화와 생태계 보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지역으로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볼거리가 많아 사람들의 집중 관심을 받는 곳이 되었다. 관광은 물론 자연생태계 연구의 학술적 대상으로 지목된 것이다.

 

 

  현재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는 그 특성상 제3땅굴, 도라 전망대, 노동당사 등 안보관광과 함께 철원평야, 두타연 계곡, 향로봉, 송지호 등 생태 관광 지역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제 비무장지대는 남북 분단의 중요한 상징이자 남북 간 평화와 화해를 촉진할 수 있는 잠재적 요소이다. 이제 비무장지대는 분단을 상징하는 공간에서 남북이 교류하고 협력하는 공간, 세계 평화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변화되어야 하며, 생태계를 보전하는 동시에, 주변 지역 주민들의 생활과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지역으로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시인 박봉우 (1934~1990)는 그의 시 <나비와 철조망>에서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철조망과 벽, 피로 상징하고 그것을 극복해 나아가려는 열망과 의지를 ‘나비’와 ‘기(旗)’로 표상함으로써 강렬한 현실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지금 저기 보이는 시퍼런 강과 또 산을 넘어야 진종일을 별일 없이 보낸 것이 된다. 서녘 하늘은 장밋빛 무늬로 타는 큰 눈의 창을 열어… 지친 날개를 바라보며 서로 가슴 타는 그러한 거리에 숨이 흐르고.

  모진 바람이 분다. 그런 속에서 피비린내 나게 싸우는 나비 한 마리의 생채기. 첫 고향의 꽃밭에 마지막까지 의지하려는 강렬한 바람의 향기였다.

  앞으로도 저 강을 건너 산을 넘으려면 몇 ‘마일’은 더 날아야 한다. 이미 그 날개 피에 젖을 대로 젖고 시린 바람이 자꾸 불어간다. 목이 바싹 말라 버리고 숨결이 가쁜 여기는 아직도 싸늘한 적지(敵地).

  벽, 벽… 처음으로 나비는 벽이 무엇인가를 알며 피로 적신 날개를 가지고도 날아야만 했다. 바람은 다시 분다. 얼마쯤 날면 아방(我方)의 따스하고 슬픈 철조망 속에 안길.

  이런 마지막 ‘꽃밭’을 그리며 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설픈 표시의 벽, 기(旗)여…”

 

 

  남북 분단과 첨예한 군사적 대치의 상황에서 이상향인 꽃밭을 찾아가는 나비! 이는 비극적인 전쟁의 상처를 받으면서도 평화와 통일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상징이다. 전쟁으로 인해 분단된 현실의 심각성이 날카롭고 차가운 금속성 이미지에서 묻어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생채기 나고, 날개가 피로 적신다 해도 민족이 하나로 통일되고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염원할 수밖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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