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이오덕 작은 문학관 및 테마 길

 

청송 이오덕 작은 문학관 및 테마 길

 

우리말, 우리글을 바로 가르친 아동문학가

 

 

글 · 남상학

 

 

 

 

 

 

  “이 비 개면/ 학교 가는 고갯길엔/ 뻐꾹채꽃이 피고/ 살구나무 푸른 잎 사이/ 새파란 열매들/ 쳐다보이겠다// 이 비 개면/ 산기슭 참나무 숲에서/ 장난꾸러기 꾀꼬리들/ 까불대는 금빛 목소리/ 차랑차랑 울려 오겠다.//… (중략)… // 이 비 개면/ 흙담 위 앵두나무/ 짙푸른 잎사귀/ 그 속에 새파란 열매들/ 쳐다볼 수 있겠다.”

 

   - 이오덕의 「이 비 개면」에서

 

  이 글은 산골교사, 아동문학가, 아동문학 평론가, 우리말 지킴이, 우리말 운동가, 여기에 꼭 따라붙는 것이 참교육자요, 한국의 페스탈로치로 평가받는 이오덕(李五德, 1925~2003)의 동시 작품이다.

 

  그간 이오덕이 출생한 청송군 현서면 덕계리에서는 이오덕을 기리는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2016년부터 ‘이오덕 문학축제’가 관 주도가 아닌 현서면민 중심으로 이어져 왔으며, 최근 ‘덕계리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이오덕작은문학관(이하 이오덕문학관)이 건립되고, 이와 아울러 이오덕 문학테마길이 조성되었다.

 

  이오덕 문학 테마길은 문학관에서 이오덕 생가(구평길 13-1)까지 약 160m 거리에 담장벽화로 단장한 길이다. 담장벽화는 이오덕의 작품에 나오는 다양한 장면과 글을 그려놓아 이오덕의 문학적 향기를 맛볼 수 있도록 조성하였다.

 

 

 

 

  이 길은 앞으로 권정생의 외가 마을이자 ‘몽실언니’의 배경지인 윗마을 댓골까지 가칭 ‘오래된 편지’ 둘레길로 조성된다면 의미 있는 문학 테마길로서 사랑을 받을 전망이다. 생가는 현재 개조된 채로 타인이 살고 있어서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문학관 앞마당에는 과거 현서면 삼거리 한 주유소 입구에 있었다던 이오덕의 시 '우리 고향 화목'이 새겨진 시비가 있다. 자세히 읽어 보니 이오덕의 고향에 대한 특별한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오덕작은문학관은 자그마한 규모이다. 총 841㎡(254평) 부지에 전체면적 130.74㎡(40평)로서 그것도 덕계리 구평경로당과 함께 운영되고 있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이오덕이 일생을 통한 문학적 활동과 우리말 가꾸기에 애쓴 노력을 짐작하기에 부족함이 없이 각종 전시물로 가득하다.

 

 

 

 

  이오덕은 청송 화목 공립 심상소학교를 졸업한 후 가난해서 2년간 농사를 짓다가 2년제 영덕 공립농업 실수학교에 들어갔다. 학창 시절 봄, 여름, 가을에는 밭을 매고 채소를 가꿨으며, 비가 오면 교실에서 공부했다. 농업학교에서 그는 “땀 흘리며 일하는 것과 밥을 해서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을 배웠다.

 

  농업학교를 졸업하고, 1944년 교원시험에 합격하여 청송 부동 초등학교에 부임한 뒤, 1986년 명예퇴직 때까지 교사, 교감,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동화와 동시를 쓰고, 한국말과 글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다듬는 일을 해서 우리말 지킴이로 불렸다. 43년간 교직에만 전념했으나 1986년 전두환(全斗煥) 군사정권의 교육행정에 대한 반감으로 스스로 퇴직하였다.

 

 

 

 

 

  1955년 『소년세계』에 동시 「진달래」를 발표하며 문단 활동을 시작하여,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꿩」이 당선되어 본격적인 아동문학가로 나섰다. 이후 『별들의 합창』(1966), 『탱자나무 울타리』(1969) 등의 동시집을 출간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동심을 옹호하면서도, 구어체적 서술로 어린이들의 생활 장면에 주목하는 글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특히 그는 문학적 관념성이나 교육의 권위주의적 요소 등을 배척하고, 어린이들의 삶을 억압하는 각종 현실적 조건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에 따라 그의 문학적 생애는 아동문학 작품의 창작보다는 평론 활동에 역점을 두었고, 글의 형식성에 역점을 두는 글짓기 교육보다는 어린이들의 삶을 중시하는 글쓰기 교육에 치중하였다.

 

  그는 한국 문단 내 리얼리즘 어린이(아동) 문학의 정초를 놓은 이원수 문학의 실천적 계승자로서, 당시 문단 내 주류였던 동심천사주의를 일거에 뛰어넘어 리얼리즘 어린이 문학의 계보를 확고히 구축한 인물로 회자되기도 한다.

 

 

 

 

 

  이오덕은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즐겨 쓰고 가르치며 이를 널리 퍼뜨려야 한다고 믿었던 교육자다. 우리가 우리의 아름답고 쉬운 말을 즐겨 씀으로써 글쓰기 혁명을 일으키자고 열변을 토했다. 평생 이오덕은 그렇게 살았다. 쉬운 말, 강아지도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글을 쓰는 글쓰기 혁명을 일으키지 않고선 한국 사회가 사람다운 사회,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없다고 확신했다.

 

  1983년 교사들을 모아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등 여러 단체를 조직하고 동조세력을 규합하여 문학(교육)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며, 지식인은 물론 일반인 사이에도 널리 퍼져 있던 번역 말투와 일본 말투의 잔재를 지적하고, 이를 걸러내기 위해 힘썼다.

 

  주요 저서로는 동시집 『별들의 합창』(1966), 『탱자나무 울타리』(1969), 『까만 새』(1973), 『개구리 울던 마을』(1981), 동화집 『종달새 우는 아침』(1987), 『아기별이 사는 세상』(1987), 평론집 『아동시론』(1973), 『시정신과 유희정신』(1977),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1984), 『우리말 바로쓰기』(1990), 『우리 문장 바로쓰기』(1992), 『우리 글 바로 쓰기 (1-4)』(1989-2009) 등이 있다.

 

 

 

 

 

  한국아동문학상(1976), 단재상(1988),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상(1999), 은관문화훈장(2002)을 받았으며, 2003년 8월 충북 충주시 신리면 광월리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이오덕은 생전에 어린이 문학가 이원수를 가까이에 모셨으며, 근무하던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살던 동화작가 권정생을 발굴하여 문단에 널리 알리기에 힘썼다. 1970년대 초 「강아지똥」의 작가 권정생을 만나러 안동을 찾아간 그는 12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평생지기가 되었다. 두 작가는 어린이문학에 대한 고민, 세상에 대한 성찰,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분노 등을 서로 위로하고 북돋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3년에는 두 작가가 쓴 편지가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 (한길사)라는 책으로 나왔다.

 

 

 

 

 

  이오덕의 무덤에는 이오덕이 남긴 ”내 무덤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권정생 시비 하나만 세워다오"라는 유언에 따라 권정생의 「밭 한 뙈기」와 이오덕의 「새와 산」이 적힌 시비가 무덤가에 마주 보고 서있다.

 

   “참 아무것도 모른다./ 밭 한 뙈기/ 논 한 뙈기/ 그걸 모두/ "내"거라고 말한다.// 이 세상/ 온 우주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내"것은 없다.// 하느님도/ "내"거라고 하지 않으신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아기 종달새의 것도 되고/ 아기 까마귀의 것도 되고/ 다람쥐의 것도 되고/ 한 마리 메뚜기의 것도 되고// 밭 한 뙈기/ 돌멩이 하나라도/ 그건 "내"것이 아니다./ 온 세상 모두의 것이다.”

 

    - 권정생의 「밭 한 뙈기」

 

   “새 한 마리/ 하늘을 간다.// 저쪽 산이/ 어서 오라고/ 부른다.// 어머니의 품에 안기려는 아기같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날아가는구나!”

 

    - 이오덕의 「새와 산」

 

 

 

 

 

 

  “밖에서 들어온 잡스런 말을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으니, 첫째는 중국글자말이요, 둘째는 일본말이요, 셋째는 서양말이다. 이 세 가지 바깥말이 들어온 역사도 중국글자말-일본말-서양말의 차례가 되어 있는데, 중국글자말은 가장 오랫동안 우리 말에 스며든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일본말은 중국글자말과 서양말을 함께 끌어들였고 지금도 끊임없이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그 깊은 뿌리와 뒤엉킴을 잘 살펴야 한다. 정말 이제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넋이 빠진 겨레가 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겠다."

 

    - <우리글 바로쓰기〉의 ‘들어가는 말’에서

 

  노년에는 한글에 남아 있는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바로 쓰는 작업에 매달렸다. 그가 제출한 문학적 의견이나 벌였던 여러 운동은 어린이들의 순수한 영혼과 삶이 훼손되는 사태를 막으려는 교육자적 책임감의 실천이었다.

 

 

 

 

 

 

 

  이오덕의 유고시 가운데 야만의 시대, 절망의 시대를 살아갔던 아픈 마음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 하나.

 

  "노년에 가르치면서/ 시를 믿고/ 시에 기대어 살아가도록/ 나는 가르쳤다/ 그러나 내 가르침을 받은 아이들은/ 모두가 한 포기 풀같이 한 그루 나무같이/ 꽃같이/ 순하고 순한 짐승같이/ 자라나기를 빌었다// 그들과 헤어진 30년 뒤, 40년 뒤,/ 들려온 슬픈 소식들…/ 지금 내가 들어야 하는 소식은 무엇인가/ 내가 알게 된 글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나// 이른 봄 담 밑에 돋아나는 새파란 풀싹 같고/ 가을날 눈부시게 고운/ 하늘빛으로 하늘 해 쳐다보던 달개비 꽃 같던/ 그 고운 마음들 다 짓밟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시도 말도 죽어버린 이 쓸쓸한 땅에// 오늘도 얼어붙은 이 겨울/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잿빛으로 덮인 빙판길을/ 쫓기는 짐승처럼 엉금엉금 기어가듯 한다.// 이제는 우리말 우리 목숨 살펴야 하는/ 이 기막힌 일을 하자고 가는/ 나는 멀미가 나는구나./ 아, 땅이 흔들려 멀미가 난다.“

 

  이오덕, 그는 이 땅의 어린이를 사랑한 참 교육자였다. 교육자로서 이오덕의 아픔을 느끼게 하는 그의 시를 음미하며 발길을 옮긴다.

 

  이오덕문학관과 멀지 않은 곳에 ‘이오덕 학교’가 있다. 이 학교는 대안학교로서 2003년 이오덕의 장남 이정우 교장이 선친의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자연주의적, 아동중심적 교육을 실천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