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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타기 / 정호승

by 혜강(惠江) 2020. 9. 10.

 

 

파도타기

 

- 정호승

 

 

눈 내리는 겨울밤이 깊어갈수록
눈 맞으며 파도 위를 걸어서 간다.
쓰러질수록 파도에 몸을 던지며
가라앉을수록 눈사람으로 솟아오르며
이 세상을 위하여 울고 있던 사람들이
또 이 세상 어디론가 끌려가는 겨울밤에
굳어 버린 파도에 길을 내며 간다.
먼 산길 짚신 가듯 바다에 누워
넘쳐버릴 파도에 푸성귀로 누워
서러울수록 봄 눈을 기다리며 간다.
다정큼나무숲 사이로 보이던 바다 밖으로
지난 가을 산국화도 몸을 던지고
칼을 들어 파도를 자를 자 저물었나니
단 한 번 인간에 다다르기 위해
살아갈수록 눈 내리는 파도를 탄다.
괴로울수록 홀로 넘칠 파도를 탄다.
어머니 손톱 같은 봄눈 오는 바다 위로
솟구쳤다 사라지는 우리들의 발.
사라졌다 솟구치는 우리들의 생(生)

 

 

-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1979) 수록

 

 

◎시어 풀이

*다정큼나무 : 장미과의 상록 활엽 관목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폭설이 내리는 현실을 ‘파도타기’를 통해 이겨 나가듯이, 혹독한 현실이 앞을 가로막더라도 앞날에 대한 믿음과 희망으로 폭압적인 현실을 극복해 낼 것이라는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화자는 ‘우리’로 폭설이 내리는 한겨울로 대변되는 혹독한 현실에 처해 있으며, 이 부정적인 현실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있으며, 혹독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한다.

 

  이 시의 제목인 ‘파도타기’는 폭설이 내리는 한겨울을 헤쳐나가는 시적 화자의 몸짓을 의미하며 폭압적인 현실이 밀려와 시적 화자를 가로막더라도 밝은 미래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극복해 나가겠다는 것을 전달하고 있다.

 

  이 시는 ‘겨울밤’, ‘눈사람’, ‘봄눈’과 같은 상징적인 소재를 통해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간다’ 등 특정 시어를 반복적으로 제시하여 시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으며, ‘솟아오르며’, ‘솟구치는’ 등 역동적인 이미지를 활용하여 생동감을 자아내고, 통사 구조가 같은 구절을 대응시켜 운율감을 조성하고, 명사로 시행을 끝맺어 시적 여운을 주고 있다.

 

  겨울 눈이 지닌 혹독한 현실이라는 이미지를 사용해서 현실 극복의 의지를 형상화하고 있는 걸 보여주고 있는데, 화자는 첫 부분에서 ‘눈 내리는 겨울밤이 깊어갈수록/ 눈 맞으며 파도 위를 걸어간다’라고 한다. 여기서 ‘겨울밤’은 부조리한 현실로 화자가 처한 현실이며, ‘눈’은 현실의 어려움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화자는 현실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겪고 있다.

 

  그러나 화자는 3~10행에서 고통스런 현실 가운데서 희망을 발견하고 희망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냉혹한 현실인 ‘눈의 파도’에 몸을 던지며, 고통이 더해갈수록 고통에 굴하지 않은 채 희망으로 당당하게 맞서는 ‘눈사람’으로 솟아오르겠다고 한다. 그뿐이 아니다. 이 세상의 불합리와 모순에 대항하던 사람들이 어디론가 끌려가는 겨울밤에는 ‘굳어 버린 파도에 길을 내며 간다’고 한다. 여기서 ‘길’을 내는 행위는 냉혹하고 억압적인 현실을 방관하지 않고 극복하기 위한 희망의 길이다. 그리고 새로 돋아날 푸성귀를 꿈꾸며 희망의 ‘봄눈’’을 기다린다.

 

  이어 11~16행에서는 앞선 이들이 굳센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고 부조리한 사회와 싸웠음을 기억하며 화자도 ‘단 한 번 인간에 다다르기 위해’ 현실 극복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여기서 ‘지난 가을 산국화’나 ‘칼을 들어 파도를 가를 자’는 모두 현실 극복의 의지와 투쟁 정신을 지닌 자들로, 이들은 인간다운 삶과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해 저항하다 희생된 자들이다. 이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억하는 화자는 ‘살아갈수록 눈 내리는’ ‘괴로울수록 홀로 넘칠’ 파도를 탄다. 이것은 통사 구조가 같은 구절을 대응시켜, 갈수록 냉혹해지는 현실을 헤쳐나가겠다는 화자의 의지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17~19행에서는 ‘어머니 손톱 같은 봄눈 오는 바다 위로/ 솟구쳤다 사라지는 우리들의 발/ 사라졌다 솟구치는 우리들의 생’이라는 표현으로 시상을 마무리하고 있다. 즉 희망을 이미지인 ‘봄눈’을 기대하며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하기 위한 노력을 ‘우리’ 모두가 역동적으로 치열하게 전개해야 할 것임을 임을 드러내고 있다.

 

 

▲작자 정호승(鄭浩承, 1950 ~ )

 

  시인. 경남 하동 출생.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첨성대>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반시(反詩)》 동인으로 활동했다. 사회적 소외계층의 어려운 삶에 관한 관심을 토대로 해서 비극적인 세계 인식과 유한한 존재로서의 고독한 인간의 외로움과 슬픔을 정제된 언어로 노래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1979), 《서울의 예수》(1982), 《새벽 편지》(1987), 《별들은 따뜻하다》(1990), 《흔들리지 않는 갈대》(1991),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1997), 《외로우니까 사람이다》(1998), 《위안》(2003), 《내가 사랑하는 사람》(2004), 《포옹》(2007), 《수선화에게》(2015),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2017)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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