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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양, 조지훈의 주실마을·오일도의 감천마을 가는 길에 위풍당당 모전석탑

by 혜강(惠江) 2020. 2. 3.

                                  

경북 영양

 

조지훈의 주실마을·오일도의 감천마을 가는 길에

위풍당당 모전석탑

 

영양=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01.영양 입암면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반변천 건너 바위 절벽을 병풍 삼아 우뚝 선 모습이 단정하고 단단하다. 영양=최흥수 기자

 

 ‘총인구 16,993, 65세 이상 인구 6,118’. 경북 영양군 홈페이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항목은 이달의 인구 현황이다. 지난해 12월 주민등록 인구는 15면을 다 합해도 도시 지역 1개 동에 미치지 못한다. 울릉군을 제외하면 육지에서 가장 적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만큼 절박하다. 그럼에도 사람 떠난 마을이 스산하지 않은 것은 골짜기마다 문학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02.감천마을 도로 가의 오일도 시비. ‘저녁놀이 새겨져 있다.


03.감천마을 중간에 자리 잡은 오일도 생가. 항일 시인임을 기리듯 대문 앞에 빛 바랜 태극기가 걸려 있다.

   

04. 감천마을 초입의 시 공원 조각에 영양 출신 문인들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영양읍 초입에 감천마을이 있다.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노변의 애가등 주로 슬픈 서정시를 쓴 오일도(1901~1946) 시인의 고향이다. 마을 앞 도로 가에 대표작 저녁놀을 새긴 시비가 세워져 있다.


작은 방안에/ 장미를 피우려다 장미는 못 피우고/ 저녁놀 타고 나는 간다.

모가지 앞은  잊어버려라/ 하늘 저편으로/ 둥둥 떠가는/ 저녁놀!

이 우주에/ 저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또 무엇이랴/ 저녁놀 타고/ 나는 간다/ 붉은 꽃밭 속으로/ 붉은 꿈나라로


 시 공원을 통과해 들판 사이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한가운데에 시인의 생가가 있다. 마을은 양편이 산으로 둘러싸였지만 양지바른 둔덕이어서 왠지 저녁놀이 예쁠 것 같다. 마을에서 강가(반변천)로 나서면 맞은편 절벽에 측백나무 군락지가 있다. 소박하지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마을의 자랑거리다.

 

 오일도와 함께 영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인이 조지훈(1920~1968)이다. 조지훈을 중심으로 쓴 문헌에는 조지훈이 서울의 오일도를 찾아갔다고 표현하지만, 지역에서는 오일도가 조지훈의 재능을 알아보고 발탁했다고 본다. 오일도의 부인이 조지훈의 고향인 주실마을 출신이라는 것도 그렇게 해석하는 이유다.  




05. 주실마을 동구 숲인 시인의 숲지훈 시비가 세워져 있다.


 지훈시비는 1982815일 광복 37년을 기념하여 문하생 500여 명이 뜻을 모아 세웠다. 잘 다듬어진 장방형의 화강암으로 받침을 삼아, 비의 앞면에는 그의 시 <빛을 찾아가는 길>을 새겨놓았다. 

사슴이랑 이리 함께 산길을 가며/ 바위틈에 어리우는 물을 마시면

살아있는 즐거움이 저 언덕에서/ 아련히 풀피리도 들려오누나

해바라기 닮아가는 내 눈동자는/ 자운(紫雲)이 피어나는 청동의 향로

동해 동녘 바다에 해 떠오는 아침에/ 북받치는 설움을 노래하리라

돌부리 가시밭에 다친 발길이/ 아물어 꽃잎에 스치는 날에는

푸나무에 열리는 과일을 따며/ 춤과 노래도 가꾸어보자

빛을 찾아가는 길의 나의 노래는/ 슬픈 구름 걷어가는 바람이 되라 


 시비 뒷면에는 주실 마을의 유래와 지훈의 간단한 행장과 후인들의 추모의 정을 적어 놓았다.


06.도로 건너편에는 21세로 요절한 지훈의 형 조동진 시비가 놓여 있다.

 

 주실마을은 감천마을에서 북측으로 약 15km 떨어져 있다. 조선 중종 14(1519) 이상 정치를 주장하던 조광조 일파를 척살한 기묘사화를 피해 한양 조씨 일가가 정착한 마을이다. 마을에 조지훈의 생가(호은종택)와 문학관, 시비(詩碑) 공원이 조성돼 있고, 옥천종택ㆍ월록서당ㆍ만곡정사 등이 볕 좋은 산자락에 고풍스럽게 자리 잡았다.


 마을 초입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울창한 시인의 숲에 조지훈 시비가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승무가 아니라 빛을 찾아 가는 길이 새겨져 있다도로 건너편 숲에는 그의 형 조동진의 국화가 새겨진 시비가 놓였다.


담 밑에 쓸쓸히 핀 누른 국화야/ 네 그 고독의 자태가 아프다

바람에 불려불려 섧게 울어도/ 기다리는 나비는 그림자도 없고

서릿발 차운 손길에/ 마당가 오동잎새가 한 개 두 개

길게 살아 무엇하리/ 오래 살아 무엇하리/ 끝내 구슬픈 삶일 양이면

오 국화 외로운 내 마음아/ 처량한 마음 소리에 가슴이 째진다.  


 21세로 마감한 그의 짧은 생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 시인의 숲에서 시작해 담장이 예쁜 마을 길, 마을 뒤편 시비 공원까지 20여분 천천히 걸으며 시심에 젖을 수 있다.



07.주실마을 조지훈 생가. 주실마을 입향조 조전의 둘째 아들이 지은 호은종택이다.


08.조지훈 문학관 내부. 가족의 역사와 함께 당대 시인과의 교류 등을 전시하고 있다.


09.주실마을 뒤편에 조지훈의 시와 조각으로 단장한 시비 공원이 있다.

 

 시비공원에는 조지훈의 대표작 <승무>를 비롯하여 지훈의 시를 새긴 돌비들이 줄비하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훠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이 시는 <승무(僧舞)>라는 춤을 통해 세속적인 번뇌를 종교적으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으로, 4음보의 율격이나 소재면에서 전통성을 드러내고 있다. 전체 9연의 이 시는 춤을 추는 동작의 순서에 따라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시인의 마을에 시만 남은 것처럼 영양에는 주인 없는 석탑이 유난히 많다. 정확히 말하면 탑만 있고 절이 없는 경우다. 오일도의 고향 마을과 가까운 일월면 산해리에 오층모전석탑이 있다. 모전석탑은 벽돌처럼 돌을 하나하나 깎아 쌓은 탑이다. 극락 세계를 꿈꾸며 도려내고 쌓아 올린 정성이 층층이 포개진다. 언어를 고르고 다듬는, 시를 쓰는 과정과 닮았다.

 

 이곳 모전석탑은 반변천이 크게 휘어 도는 안쪽에 11.3m 높이로 우뚝 솟았다. 감실에 불상이 없는 것만 빼면 비교적 온전한 모습이다. 어디서 보나 당당하고 규형 잡힌 몸매가 주변 지형과 썩 조화롭다. 주위에 절간 건물이 하나도 없지만 전혀 어색하거나 허전하지 않다. 강 건너편은 깎아지른 절벽이고, 마을은 평평해 한없이 부드럽다. 국보 제187호로 정식 명칭은 산해리 오층모전석탑이지만 온라인 지도에는 대개 봉감모전오층석탑으로 표기돼 있어 다소 혼란스럽다. 탑이 위치한 곳이 봉감마을이기 때문이다.  


10.산해리 오층모전석탑은 볼수록 웅장하고 기품이 넘친다. 절간 건물 하나 없어도 꽉 찬 느낌이다.

 

11.영양은 오염원이 없는 청정지역이다. 깊은 밤이면 오층모전석탑 위로 별이 쏟아진다.

 

12.영양읍 현이동 오층모전석탑. 다소 투박한 모습이 오히려 정감 있다.


13.영양읍 현리 삼층석탑. 멀리 영양 읍내가 보인다.

 

14.현리 삼층석탑에 새겨진 사천왕상. 윤곽이 닳아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

 

 영양읍 현이리에도 이와 꼭 닮은 오층모전석탑이 있다. 산해리 석탑과 비교하면 미적감각이 다소 떨어져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그러나 예술적 안목이 없는 일반인의 눈에는 투박하고 수수한 모습이 오히려 친근하다. 인근에 현리 삼층석탑(보물 제610)도 있다. 넓은 벌판에 자리 잡아 왜소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제법 높다. 기단에 십이지신상과 팔부중상, 탑신에 사천왕상이 각각 새겨져 있다. 윤곽이 희미해진 조각 뒤로 멀리 영양 읍내가 보인다. 부디 사람은 떠나고 탑만 남아 지방소멸의 증거가 되지 않기를.

 

<출처>2020.1. 22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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