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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숭늉 냄새가 그립다(어머니날에)

by 혜강(惠江) 2020. 1. 18.


<출처 : 다음 블로그 '섬진이의 탈피'>



숭늉 냄새가 그립다
-어머니날에

                                                                    남상학



숭늉 냄새를 맡을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난다.
부산한 햇빛이 하얀 목련의 눈을 틔우는 아침나절이거나
뒷마당에 하얀 빨래가 뒤척이는 저녁나절이거나
긴 겨울밤 다림질하는 황홀한 밤중이거나
어머니는 온 집안을 숭늉 냄새로 채우셨다.

찔레꽃 덩굴 넘어
아버지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때에도
학교 간 철없는 어린것들을 목 늘여 기다리던 때에도
풋풋한 사랑을 활활 불꽃으로 피우면서
뜨거운 가슴으로 숭늉을 끓이셨다.

가난이 땅거미처럼 몰려오고
사람이 목메게 그리운 밤에는
연인의 편지를 몰래 읽다 들킨 듯
곤히 잠든 사 남매의 기척 소리에 놀라
설설 끓는 주전자의 뿌연 김 속에
부끄러운 얼굴 감추고
목련이 지는 소리를 들으며 긴 밤을
하얀 빨래를 손질하며 지새우셨다.

그 날밤
어둠을 환히 밝히던 어머니는
숭늉 끓이는 주전자 속에
당신의 고뇌를 얼마나 풀어 끓였을까?
다림질하는 기진한 손끝에서
치마폭 구석구석 몸져누운
외로움과 아픔의 자국들을 얼마나 지웠을까?

구수한 냄새 속에 살아나는
어머님의 얼굴,
거룩한 교훈은 어제나 오늘이나
연탄 냄새, 석유 냄새가 아닌
쇠솥을 달구어 맛을 내는
마른 소나무의 활활 타오르는
관솔불 같은 것

그 교훈 내 가슴에 영원히 살아
출렁이는 세월의 강물 건너
오늘도 사 남매의 뜰에
목련처럼 피어나는 크나큰 사랑

오늘 밤 나는
숭늉 냄새가 그립다.
어머니가 몹시 그립다.


*모친의 35주기가 되는 어머니날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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