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교회
바울이 지금 한국 교회를 본다면...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라”
기민석 침례신학대 구약학 교수
▲15세기 작자 미상. 왼쪽부터 에바브로디도와 소스데네, 아볼로, 게파, 가이사.
사람 사는 집단 어디든지, 서로 간에 편을 갈라 패거리 정치를 하는 추태가 종종 벌어진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사랑과 희생을 가르치는 교회 안에서도 교인들 사이에 편 가르기가 벌어지니 참 부끄러운 일이다. 물론 교인도 사람인지라, 그들이 천사와 성인 같지는 않다. 놀랍게도 성서 시대의 교회 안에서도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성서의 기록에 의하면, 고린도 교회에는 대 사도 바울보다 더 완벽에 가까운 인물이 있었다. 유능한 선생이요 전도자며 학식과 설교가 뛰어났던 아볼로(Apollos)라는 사람이다. 고린도 교회의 첫 담임 ‘목사’인 바울보다 더 인기가 높았다. 그리고는 바보 같은 일이 벌어졌다. 교인들 사이에 바울 편이니 아볼로 편이니 하며 편 가르기가 벌어진 것이다.
성경은 아볼로의 명성을 이렇게 말한다. “알렉산드리아 태생으로 아볼로라는 유대 사람이 에베소에 왔다. 그는 말을 잘하고,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다.”(사도행전 18:24) 당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는 필로라는 유명한 철학자의 영향으로 뛰어난 학풍을 자랑하던 곳이었다. 분명히 아볼로도 그 교육을 습득한 석학이었을 것이다. 필로는 유대 철학자이면서 히브리 사상과 헬라 철학을 잘 융합했던 학자였다. 성서해석을 갑갑하게 문자적로 하기보다는 멋지게 은유적으로 하는 것에 능통했기에, 그의 교육을 받았으면 분명 언변과 논쟁에 출중했을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의 동료 목회자 아볼로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함부로 이 사실을 털어 놓기가 어려웠다. 아볼로가 워낙 인기 많은 목사였기에, 섣불리 말했다간 큰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교인들은 아볼로가 바울보다 더 설교를 잘한다고 대놓고 떠들어댔다. 성숙하지 못했던 그들은 자꾸 바울과 아볼로를 비교하면서 편 가르기를 했다.
말도 잘하고 학식도 높아 예수를 잘 전파했는데, 아볼로의 어떤 점이 바울을 근심케 했을까?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것에 있어 아볼로는 좀 아쉬운 것이 있었다. 예수의 부활과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복음은 강력한 성령의 역사와 함께 전파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아볼로는 그런 경험이 없었던 것 같다. 아볼로는 “이미 주님의 ‘도’를 배워서 알고 있었고, 예수에 관한 일을 열심히 말하고 정확하게 가르쳤다. 그렇지만 그는 요한의 침례 밖에 알지 못하였다. 그가 회당에서 담대하게 말하기 시작하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의 말을 듣고서, 따로 그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하게 설명하여 주었다.”(18:25-26)
인기도 많고 따르는 사람들도 많았으나 그의 불충분한 점은 불가피하게 문제를 야기했다. 아볼로 목사가 사역을 하면 사람들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남는 것이 아니라 아볼로가 남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를 보내면서, 조심스럽게 자신의 근심을 표현했다. “다름이 아니라, 여러분은 저마다 말하기를 ‘나는 바울 편이다’, ‘나는 아볼로 편이다’, ‘나는 게바 편이다’, ‘나는 그리스도 편이다’ 한다고 합니다.”(고린도전서 1:12)
그런데 이 말 자체가 좀 이상하다. 네 부류로 편을 나누었는데, 어떻게 그 중 하나가 그리스도 편일 수 있을까? 그리스도가 그 계파 중 하나라고 말하면서, 인간인 목사가 거의 신 급이라면서 비꼬는 것은 아닐까? 지금 교회로 따지자면 어느 교회에는 A목사 파와 B장로파, 그리고 예수님 파가 있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그야말로 사랑도 명성도 잃어버린 그런 교회가 아닐 수 없다.
바울은 사실 매우 직설적인 사람이다. 갈라디아 교인들에게는 아주 공격적으로 자신이 참 사도라고 항변도 했으며, 심지어 그곳 교인들을 향해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이라고 독설도 날렸다.(갈라디아서 3:1) 하지만 고린도 교인들 앞에서는 매우 조심스러워 했다. 아무래도 동료 목회자를 염려하는 내용이다 보니, 자기가 시기 질투를 하는 것으로 보일까봐 걱정하는 것 같다. 직접적으로 아볼로를 공격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음 말을 들어보라. 그리스도는 바울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게 했는데, “복음을 전하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이 되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17) “말의 지혜”로 하지 않았다는 것은, 빼어난 철학과 은유적 수사법으로 설파하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석학 아볼로를 견제하는 말이 분명하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먼저 와서 목회했던 곳이었다. 이제 바울은 자기를 포함하여 또 다른 목회자 아볼로의 적절한 위치,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적 위치를 지혜롭게 확인시켜 준다.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심는 사람이나 물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요,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3:6-7) 결국 목회자 자신보다는 오직 하나님만이 교회를 통해 드러나야 함을 강조한다.
동시에 자신과 아볼로간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면서, 후임 목회자 아볼로의 행각에 일침을 놓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밭이며, 하나님의 건물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지혜로운 건축가와 같이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 위에다가 집을 짓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집을 지을지 각각 신중히 생각해야 합니다.”(3:9-10)
바울을 칭찬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도 인간적으로는 약점이 많았다. 특히 그의 강한 성깔머리는 성경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목회 결과는 크게 달랐다. 아볼로는 그리스도가 아닌 자신이 남겨지는 목회를 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아볼로에게 밀릴 만큼 자신을 감추었다. 대신 그리스도를 높였다. “그러므로 아무도 사람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상이나, 삶이나, 죽음이나, 현재 것이나, 장래 것이나,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입니다.”(고린도전서 3:21-23)
▲바울의 말은 신약성경을 가득 채웠지만, 아볼로의 말은 성경에 남아있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2018년 한 해를 마무리 짓게 되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살아가는 한국의 교회도 지난 한 해를 보내줘야 할 시기가 되었다. 언론을 통해 드러난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올 한 해를 쉽게 보내주기에는 잃은 것이 너무 많은 우리의 교회다. 뭔가 아쉽다. 작금 한국의 교회는 참 자랑할 것이 많다. 기독교 역사상 유래를 보기 어려울 만큼 크고 빠르게 성장한 한국 교회다. 그러다 보니, 자랑할 것이 너무 많았나 보다. 아마 바울이 지금 한국 교회를 방문한다면 고린도 교회에 했던 다음 말씀을 다시 남길 것 같다.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라.”(1:31)
아볼로는 그리스도보다는 자신을 자랑했다. 바울은 자신보다는 그리스도를 자랑했다. 그 결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리스도를 남겼던 바울의 말은 신약성경을 가득 채웠지만, 자신을 남겼던 아볼로의 말은 단 한 마디도 성경에 남아있지 않다. 바울은 뜻하지 않게 인류 역사의 한 위대한 인물로도 남겨졌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이 그의 글을 통해 어느 누구도 아닌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해의 교회는 지난해의 교회와는 다르기를 기도한다. 자랑할 것이 있다면 오직 교회의 사랑과 희생만이 소문나길. 그 교회를 통해서는 사람이 참 예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2018. 12. 29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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