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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부산. 경남

거제 '남파랑길', 바람이 몸 비비는 소리 들으며 대숲터널로 들다.

by 혜강(惠江) 2018. 10. 21.

거제 '남파랑길'

 

바람이 몸 비비는 소리 들으며 대숲터널로 들다. 

 

 

글·사진 박경일 기자

 

 

 

경남 거제 구조라리 ‘샛바람 소리길’ 초입의 신우대 숲길. 바람이 불 때마다 ‘쏴아’ 하는 소리를 내며 신우대가 이리저리 흔들리면 터널 같은 숲길이 어두웠다 환해졌다를 반복한다. 마치 비밀의 공간으로 이어지는 터널 같다.

 

 

 경남 거제는 손꼽히는 관광 명소임에도 이름난 도보 코스가 하나도 없습니다. 거제에서는 구태여 걷기 길을 만들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평범한 해안도로만 달려도 빼어난 해안 경관이 주르륵 펼쳐지니, 굳이 경치를 찾아 깊은 곳까지 걸어 들어갈 이유가 없어서 그렇겠지요. 한창 조성 중인 코리아 둘레길의 ‘남파랑길’ 코스를 짚어보다가 문득 거제에 놓일 길이 궁금했습니다. 코리아둘레길의 남해안 구간인 남파랑길은 부산 오륙도에서 전남 해남까지 자그마치 1700㎞에 달합니다. 거제의 빼어난 자연경관이야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 거제에서는 걷는 길의 정취 또한 훌륭할 것임을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 비밀의 공간… 샛바람 소리길

 거제에는 ‘샛바람 소리길’이 있다. 거제에서 가장 이름난 해수욕장이 있는 구조라 마을 포구에서 구조라성 망루가 있는 성벽으로 이어지는 그리 길지 않은 오솔길이다. 이 오솔길은 ‘길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길은 구릉의 밭과 밭을 구분하는 기능을 하기도 하고, 길섶에 쌓아둔 낮은 돌담이 샛바람을 막는 방풍벽 역할도 한다. 다목적 길인 셈이다.

 샛바람 소리길이 시작되는 포구 앞에는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적은 안내판이 있다. 읽어보자. “옛날에 겁이 억수로 많은 아∼들은 여 있는 시릿대 밭에 거시기해서 들가지도 못했는데…(중략)…입담 좋은 동네 어른들이 여름밤 돗자리에 누워 이야기해주던 전설거치 샛바람에 한 매친, 아이 귀신들이 울어대는 거 맨커로 등골이 오싹해지가꼬 엄청시리 겁났네요.”

 샛바람 소리길 초입의 울창한 신우대 숲에 귀신의 전설이 깃들어 있어 겁많은 아이들은 얼씬도 못 했던 모양이다. 안내문의 마지막 문장은 길 걷기를 권하는 청유형으로 끝난다. “인자는 다 알아삐 갖고 겁은 좀 덜 나는데, 그래도 혼자 가모 쪼깬 그시기해니 우짜든가 둘이 드가서 댕기 보이소.”

 안내판의 권유대로 샛바람 소리길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샛바람 소리길로 들어섰다. 들머리의 신우대 숲에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다. 길에는 키 높이의 족히 두세 배쯤 되는 신우대들이 꽉 차 있었다. 깊고 어두운 숲은 비현실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길은 대숲이 이룬 높은 벽의 터널과도 같았는데, 걷는 내내 ‘비밀의 오솔길’로 들어선 듯한 느낌이었다. 숲은 특히 바람이 불 때가 압권이었다. 신우대가 바람에 몸을 비비며 만들어내는 소리가 마치 빗질 소리와도 같았다. 이 길에다 붙여준 샛바람 소리길이라는 이름은 얼마나 적절한가. 바람은 길 위의 빛도 흔들어댔다. 신우대가 바람에 물결처럼 휘청거릴 때마다 오솔길은 환해지거나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신우대 숲길을 지나면 이내 구조라성에 닿는다. 복원된 성벽으로만 남은 성은 작고 소박하다. 구조라성을 딛고 올라서 마을을 보면 좁은 목을 가운데 두고 왼쪽에 구조라 해수욕장이, 오른쪽에 구조라 항구가 펼쳐진다. 해수욕장과 항구 사이에 들어선 구조라 마을이 앞으로, 뒤로도 바다를 두고 있는 형상이다. ‘딱 하나 짧다는 것만 빼고는 아쉬울 게 하나도 없는 길.’ 샛바람 소리길을 걸어본 소감이 그랬다.

 

 

거제의 둔덕기성에서 내려다본 통영 일대의 야경. 둔덕기성은 고려 의종이 무신정변으로 폐위된 뒤에 쫓겨와 살았던 곳이다. 둔덕기성은 차로 성곽 바로 아래까지 오를 수 있어 야경을 감상하기 좋다.

 

 

고운 흙·진한 솔향·구르는 몽·트인 바다, 5시간 '4감(感) 산책'

 

 

# 천주의 신앙을 목숨으로 지키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거제에는 ‘천주교 순례길’이 있다. 천주교 박해를 피해 거제도로 건너와 움막을 짓고 지내다가 순교한 윤봉문의 자취를 따라 걷는 길이다. 순례라는 명분이 아니더라도 거제에서 추천할 만한 명소인 서이말 등대와 공곶이를 들른다는 것만으로도 걸어볼 가치가 충분한 코스다.

 순례길은 길다. 다 걸으려면 7시간 이상이 걸리는데 힘도 들뿐더러 지루하기도 하 다. 그러니 이렇게 코스를 정리하자. 우선 순례길의 출발 지점인 지세포의 윤봉문 성지는 차편을 이용해 따로 방문하고 나머지 구간도 경관이 아름다운 구간만 골라서 걷는다. 도보 순례의 출발 지점은 와현 해수욕장 끝인 예구마을이 좋겠다. 여기서 걷기 시작해 해안 숲길을 따라 공곶이와 돌고래 전망대, 서이말 등대를 둘러보고 와현 봉수대에 올랐다가 예구마을로 다시 되돌아온다. 이렇게 코스를 정한다면 걷는 시간이 4시간쯤 된다. 짧지 않은 코스지만 줄곧 바다를 끼고 걷는 완만하고 푹신한 흙길인 데다 솔향도 짙어 즐겁게 걸을 수 있다.

 순례길을 걷기 전에 먼저 윤봉문 성지부터 들르자. 병인박해를 피해 일본으로 건너가려고 부산에서 거제로 이주해 온 윤봉문은 거제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순교했다.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모함을 받아 통영 관아에 체포된 그는 모진 고문을 당하며 배교를 강요당했지만, 진주로 압송돼 교수형에 처해지는 순간까지도 천주의 신앙을 끝까지 지켜냈다.

 윤봉문 성지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이 ‘십자가의 길’이다. 이탈리아 카라 지방의 대리석을 깎아 예수의 일생을 조각한 부조 14개가 울창한 대숲과 편백 숲속에 있다. 늘 푸른 대숲과 편백 숲 사이로 난 길은 종교를 떠나서 묵상하면서 걷기 좋다. 십자가의 길이 끝나는 곳에 지세포의 바다를 굽어보는 전망대가 있고 그 옆에 순교를 상징하는 기념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조형물은 형틀을 형상화했는데, 이 조형물 아래에 그의 시신을 모셔뒀다. 본래 그의 묘는 진주에 있었는데, 거제 옥포로 이장했던 것을 다시 이곳 지세포로 옮겨온 것이다.


 

샛바람 소리길이 지나는 구조라성에서 내려다본 모습. 왼쪽이 구조라 해수욕장이고, 오른쪽이 구조라항이다.

 

 

 

 

# 거제 바다를 끼고 걷는 순례길

 와현 해수욕장 길 끝의 예구마을에서 순례길 걷기를 시작한다. 마을 뒤편의 언덕을 차고 올라서면 이내 공곶이다. 한 노부부가 평생 피땀으로 일궈낸 농원이 있는 공곶이는 거제 8경 중 마지막 8번째 비경으로 꼽히는 곳이다. 부부는 호미와 삽, 곡괭이로만 비탈진 황무지를 일궈서 동백나무와 종려나무, 수선화, 조팝나무, 팔손이 등을 길러냈다. 종려나무 잎을 장식용으로 따서 팔고, 수선화를 꽃시장에 냈으니 부부에게 농원은 수목원이나 꽃밭이 아니라 ‘경작지’인 셈이다.

 공곶이의 매력이 바로 거기에 있다. 공곶이는 조경이나 볼거리를 위해 만든 눈요깃거리 공간이 아니라, 생계로 심은 나무와 꽃들이 풍경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그래서 공곶이는 장식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대신 자그마치 50년에 걸쳐 노부부가 고된 노동으로 만들어낸 소박한 경관이 그곳에 있다. 수선화 만발하는 봄이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로 북적이지만, 이즈음 공곶이는 한적하기 이를 데 없다. 작은 섬, 내도의 마을이 건너다보이는 공곶이를, 지금 가득 채우고 있는 건 파도 소리와 새 소리뿐이다.

 공곶이를 지나면 바다를 끼고 솔숲의 오솔길이 길게 이어진다. 해안가의 바위와 바위 사이에는 도저히 내려갈 방도가 없는 전인미답의 몽돌해변도 있다. 드나드는 파도가 해안의 몽돌을 굴려 만들어내는 자갈 구르는 소리의 운치가 그만이다. 그렇게 걷다 보면 ‘돌고래 전망대’에 당도한다. 탁 트인 바다가 조망되는 해안 바위 위에다 나무 덱을 설치한 전망대인데, 4월 초부터 5월 중순까지 이 일대에서 돌고래와 대형 고래의 출몰이 잦다.

 돌고래 전망대를 지나면 길은 바다를 뒤로 두고 비탈면을 타고 오른다. 순례길 지도에는 그곳에 ‘전원교회’가 있다는데, 온통 잡초로 뒤덮인 폐건물 몇 채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다. 길은 동쪽 끝으로 이어져서 순례길의 종점인 서이말 등대에 닿게 된다. 서이말 등대에서는 맑은 날이면 대마도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이곳을 두고 거제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 펼쳐진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서이말 등대가 서 있는 자리는 박해를 피해 들어온 순교자의 형인 윤경문이 움막을 짓고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서이말 등대까지 가서 갔던 길을 차근차근 되밟아 나올 수도 있지만, 포장도로를 따라 와현 해수욕장 입구까지 되돌아나오는 길을 택하면 와현 봉수대를 다녀올 수 있다. 8년 전쯤 희망 근로자 50여 명이 바위와 방부목을 나르는 노동으로 다듬어낸 봉수대다. 봉수대에 오르면 외도와 내도, 지심도는 물론이고 해금강 일대의 풍경까지 한눈에 다 들어온다.


# 역사가 스미다… 폐왕성

 

 거제에는 성(城)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고려 말 조선 초 왜구의 잦은 침입으로 거제 전역이 늘 전쟁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성은 조망이 뛰어난 요지에다 짓는 법이니 그 자체로 훌륭한 걷기 코스가 된다. 옥포성, 지세포성, 가배량성, 고현성…. 대충 헤아려봐도 거제의 성은 스무 개에 육박한다. 성을 쌓은 수많은 돌이 실은 백성의 고된 노동 위에 고인 것이라고 보면, 당시 거제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는지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거제의 수많은 성 중에서 다른 성과는 좀 다른 내력의 성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폐왕성이라고도 불리는 둔덕기성이다. 둔덕기성의 내력을 짚어보려면 고려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시작은 고려의 18대 왕인 의종이다. 의종은 왕으로 있으면서 지금으로 치면 ‘사무직 공무원’쯤 되는 문신을, 군인인 무신보다 우대했다. 의종의 무신 홀대는 노골적이었다. 1170년 어느 날, 의종은 문신들과 밤새 술을 마시며 놀았다. 그것도 일주일 동안이나…. 이들이 흥청거리며 노는 동안 군인들은 경계를 서며 담 밖에서 추위에 떨었지만, 여기까지는 뭐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술자리를 파한 의종은 문신들과 지금의 경기 북부 지역에 있었던 보현원으로 행차를 했다. 이 과정에서 실랑이가 벌어져 문신인 한뢰가 대장군 이소응의 뺨을 때렸다. 지금으로 치면 중앙부처 과장급 공무원이 별 셋 장군의 뺨을 때린 셈이었다. 더할 나위 없는 모욕. 군인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4성 장군 격인 상장군 정중부의 지휘 아래 군인들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신하를 도륙했다. 이게 바로 ‘정중부의 난’이었다.

 의종은 왕의 자리에서 쫓겨났다. 이른바 ‘폐왕’이었다. 폐왕은 거제도로, 그리고 그의 맏아들인 태자는 진도로 유배됐다. 비참하게 쫓겨난 왕이었지만, 그래도 거제 백성은 폐왕을 맞기 위해 둔덕면 거림리의 우봉산 정상에다 성을 쌓았다. 둘레 550m, 면적 5000평 남짓한 성이었다. 이 성이 거제의 둔덕기성이다.

 거제는 섬이니 거제에 닿으려면 통영에서 배를 타야만 했다. 유배길의 의종이 거제로 건너가기 위해 배를 탄 통영의 포구를, 임금을 부르는 ‘전하(殿下)’에 ‘건널 도(渡)’ 자를 써서 ‘전하도’라 불렀는데, 그게 견하도로 변했다가 지금의 견내량이 됐다고 전한다. 의종을 호송한 건 반씨 성을 가진 장군이었다. 그는 호송을 마친 뒤에도 개성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의종을 폐위한 뒤에 화를 일으킬 만한 작은 불씨마저 살려두려 하지 않았으니, 개성으로 돌아갔다면 죽임을 당할 게 뻔했다. 반 장군의 후손들이 아직 거제에 살고 있는 건 이런 연유다.

 의종이 거제로 유배돼 둔덕기성에서 살았던 건 3년 남짓이다. 의종 복위를 주장하는 세력의 도움으로 의종은 거제를 탈출해 경주까지 갔으나, 난이 진압되면서 목을 베여 죽었다. 의종의 유배와 비참한 최후는 수많은 정치적 원인이 쌓인 결과겠지만, 겉으로 드러나기로는 사소하다면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술 취한 신하의 뺨 한 대’가 가져온 일대 사건이다. 술자리에서의 작은 사건 하나가 권력 찬탈과 처참한 도륙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200여 년이 지나 조선이 건국되면서 둔덕기성에는 망한 고려의 왕족들이 쫓겨왔다. 통영 일대의 해안이 내려다보이는 둔덕기성의 성벽을 따라 걸으며 쫓겨난 왕과 왕족이 누렸던 덧없는 권력을 생각해본다.

 

한화, 15년만에 새 리조트… 거제에 470개 객실 규모 '벨버디어' 개관


 

 

 

 

 한화리조트가 지난 15일 경남 거제에 새 리조트를 개관했다. 지난 2003년 제주 리조트를 지은 이후 무려 15년 만이다. 새로 들어선 거제의 리조트는 한화리조트 거제 벨버디어로 명명됐다. 벨버디어는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 전망’이라는 뜻이다.

 오래 기다린 만큼 거제 벨버디어는 규모부터 시설까지 나무랄 데 없다. 12만2300㎡(3만7000여 평) 부지에 연면적 9만1900㎡(2만7800평) 규모의 리조트를 짓는 데 자그마치 2700억 원 이상의 총 사업비를 투입했다. 객실은 470실 규모. 크기에 따라 패밀리, 스위트, 로얄 등으로 구분된 일반 객실이 372실이고, 기존 브랜드와 차별화된 프리미엄 객실이 98실이다. 단연 눈길을 끄는 건 프리미엄 객실이다. 저층 프리미엄 객실에는 객실당 하나씩 전용 풀을 갖춘 테라스가 딸려 있고, 상층 프리미엄 객실에서는 바다 전망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프리미엄 객실은 가장 작은 것이 119㎡(37평형), 큰 것은 182㎡(55평형)이다. 프리미엄 객실은 회원들만 독점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낭만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옥상의 인피니티 풀도 사실상 프리미엄 객실 회원들에게만 개방된다.

 거제 벨버디어 시설에서 특히 돋보이는 건 자녀동반 가족 고객을 겨냥한 엔터테인먼트 시설. 뽀로로를 캐릭터로 내세운 키즈 클럽을 비롯해 아이들이 자유로운 놀이처럼 미술수업을 할 수 있는 드로잉카페, 어른도 탄성을 지를 정도인 블록 장난감 놀이 공간, 온몸으로 뛰노는 대규모 실내 트램펄린 시설 등을 들여놓았다. 이곳에 거제 외포리의 양지바위횟집, 통영의 불곰횟집, 언양불고기로 이름난 갈비구락부, 부산의 수복돼지국밥, 고메밀면, 다리집 등이 입점했다.

 

 

<출처> 2018. 10. 17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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