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DMZ…평화를 품은 대자연
강화에서 고성까지 접경지역 '평화 관광지' 5곳
최흥수기자
▲ 조명이 꺼진 철원 노동당사 건물 위로 별빛이 쏟아지고 있다. 민간인통제선이 북측으로 이동하면서 누구나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곳이 됐다.
남북 간 팽팽한 긴장이 흐르는 대치의 장소 비무장지대(DMZ)가 뜬다. 그동안 인천, 경기, 강원 접경지역 관광지 앞에는 으레 ‘안보’라는 수식이 붙었으나, 4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자연스럽게 ‘평화’라는 단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18~20일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앞두고 서해에서 동해까지 한국관광공사에서 추천하는 ‘한반도 평화관광지’ 5곳을 소개한다. 가을 서정이 짙어지는 추석 연휴 가족끼리 나들이하기에도 적당한 곳이다.
●가슴 뭉클한 평화 역사 여행, 강화평화전망대
강화도는 인천에서 북녘과 가장 가까운 동시에 수많은 역사ㆍ문화 유적을 품고 있다. 강화평화전망대와 교동도를 비롯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부근리지석묘, 강화성당과 용흥궁 등을 함께 둘러보면 하루 나들이가 풍성해진다.
▲ 강화평화전망대에서는 임진강과 예성강이 합류해 더 넓어진 한강 뒤편으로 북녘 땅이 선명하게 보인다.
▲강화평화전망대의 ‘그리운 금강산 노래비’ 너머로 북한 땅이 선명하게 보인다.
강화평화전망대는 섬의 최북단 양사면 철산리 민통선 지역에 세워졌다.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이 서해와 만나기 전 바다같이 넓어진 물줄기를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북녘 땅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맑은 날엔 송악산, 개풍군 들판이 망원경 없이도 선명하게 보인다. 가을걷이를 준비하는 북한 주민도 눈에 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매시 정각 진행하는 해설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주변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접경지역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태양광 시설을 설치한 북한의 신식 거주지며, 해마다 찾아오는 실향민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다 보면 분단의 아픔이 가슴으로 전해진다. 강화 출신 작곡가 최영섭의 ‘그리운 금강산’ 노래비와 망배단을 보면 분단 국가의 서글픔이 밀려온다. 전망대를 나서기 전 ‘통일 염원소’에 들러 소망 종이에 평화와 통일에 대한 바람을 적어 보는 것도 뜻 깊은 추억이 될 듯하다. 전망대는 민통선 지역에 있어 신분증을 꼭 지참해야 한다.
▲ 1970년대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교동도 대룡시장.
▲ 고풍스런 한옥 외관에 바실리카 양식으로 내부를 꾸민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전망대에서 약 15km 떨어진 교동도는 한국전쟁 때 피란 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황해도 주민들이 터를 잡은 곳이다. 고향을 지척에 둔 실향민의 아픔이 절절하다. 현재 실향민 1세대는 대부분 작고하고 후손들이 살고 있지만, 황해도 연백시장을 재현한 대룡시장과 마을은 197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시장 골목 옛날 다방에서 달걀 노른자가 동동 뜬 쌍화차 한 잔을 시켜놓고 추억에 젖어 봐도 좋겠다. 교동도는 2014년 다리로 연결되고, 최근에는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여행안내소 ‘교동제비집’과 추억 체험 시설 ‘교동스튜디오’ 등이 문을 열어 여행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곳 역시 교동대교를 건너기 전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
교동도에서 돌아오는 길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강화 부근리지석묘(사적 137호), 최초의 한옥 성당인 강화성당(사적 424호)과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았던 용흥궁을 들르면 더 알차게 여정을 마무리할 수 있다. 강화군이 목~일요일 40분 간격으로 시티투어 버스인 ‘타시겨버스’를 운행한다. 갑곶돈대와 강화중앙시장, 화문석문화관, 강화평화전망대, 강화역사박물관 등을 순환하며 요금은 3,000원이다.
●’평화의 바람’을 찍다, 파주 임진각평화누리
파주 임진각국민관광지는 한국전쟁의 역사를 기리는 성격이 강했으나, 임진각평화누리(이하 평화누리)가 들어서며 여행의 풍경도 바뀌었다. 평화누리는 푸른 하늘과 넓은 잔디밭, 오붓한 산책로에 그림 같은 카페까지 갖췄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길 예쁜 사진을 찍기 좋은 조건을 두루 갖췄다. 그늘이 없는 게 단점이지만, 가을에는 청명함이 두드러진다.
▲ 다양한 설치작품을 세워 사진 찍기 좋은 공원으로 꾸민 임진각평화누리.
평화누리의 또 다른 매력은 설치 작품이다. 최평곤의 ‘통일 부르기’가 상징적 작품이다. 대나무로 엮은 3~11m 인물상이 땅에서 솟으며 차례로 전진하는 형상이다. 김언경의 ‘바람의 언덕’은 3,000여개 바람개비로 이루어졌다. 바람이 불 때마다 ‘파드닥’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모습이 환상적이다. SNS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작품이다. 이경림의 ‘솟대 집’은 녹슨 철로 만든 작품으로 안에서 밖을 보면 오려낸 솟대 모양의 창으로 하늘이 겹친다.
그 곁의 ‘소망나무’에는 이산가족의 애틋한 마음을 담은 리본이 바람에 날린다. ‘디브런치안녕’ 카페 앞에는 ‘피스핀(Peace Pin)’으로 부르는 빨간색 대형 압정이 꽂혀 있다. 배우 이광기의 작품으로 ‘평화의 시작이 이곳에서’라는 부제가 붙었다. 평화누리엔 그늘이 없는 대신, 일출부터 일몰까지 개인적으로 고정하지 않는 그늘막을 설치할 수 있다.
주차장 뒤편 임진각은 지상 3층, 지하 1층 건물로 실향민의 설움을 달래는 상징적인 장소다. 옥상 전망대에 오르면 평화누리와 자유의 다리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유의 다리는 휴전 협정 뒤 국군과 유엔군 포로가 건너오고, 7ㆍ4남북공동성명 때 양측 대표가 오간 다리다. 한국전쟁 당시 파괴돼 교각만 남은 옛 경의선 선로 ‘독개다리’에는 길이 105m, 폭 5m의 스카이워크 ‘내일의 기적소리’를 설치했다. 증기기관 객차를 재현한 과거 구간, 철로와 강이 내려다보이는 현재 구간, 2층 스카이워크의 미래 구간으로 이어진다. 스카이워크에서는 전쟁 당시 총탄 자국이 남은 교각이 보인다. 증기기관차(등록문화재 78호)는 반세기 넘도록 DMZ에 방치된 것을 옮겨 왔다. 1,020발이 넘는 총탄 자국이 치열한 전투를 증언한다.
임진각국민관광지에서 제3땅굴 견학(평일 오전 9시20분~오후 3시, 주말은 오후 3시30분까지)을 신청하면 셔틀버스를 타고 도라전망대와 제3땅굴, 도라산역, 통일촌을 돌아볼 수 있다. 왕복 3시간 정도 걸리며, 신분증을 필히 지참해야 한다.
●그때는 총탄 지금은 별빛, 철원 노동당사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 환송 행사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왔다. 1994년 발표한 이 곡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곳이 바로 철원 노동당사(등록문화재 22호)다. 노동당사는 철원읍 관전리 민통선에서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출입이 제한된 곳이었다가, 2000년 민통선을 북쪽으로 옮기면서 지금은 누구나 자유롭게 갈 수 있다.
▲ 철원 노동당사 부근엔 빛 공해가 적어 별을 관측하기에도 좋다.
▲철원노동당사 현관에 세운 굵은 원기둥이 인상적이다. 옛 소련의 건축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노동당사는 철원이 북한 땅이던 1946년, 조선노동당이 철원군 당사로 지었다. 소련의 영향을 받아 현관에 돌로 만든 원기둥 두 개를 세웠고, 전면은 상승감을 강조한 아치 장식으로 멋을 부렸다. 시대상을 반영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 건축물이라는 지금의 평가와 달리, 당시 주민에게 네모 반듯한 3층 건물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실제로 한국전쟁이 발발하기까지 수많은 반공 인사가 이곳에서 고초를 겪었다. 노동당사 좌우에는 경찰서와 법원이 있었다.
노동당사는 빈 성냥갑처럼 외벽만 남았지만, 2002년 5월 그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고, 이후 통일기원예술제나 음악회 등 다양한 평화 기원 행사가 열렸다.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는 철원의 특산물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철원DMZ마켓이 열린다. 고석정국민관광지에서 열리던 토요장터가 이름을 바꿔 노동당사 광장으로 옮겨 온 것이다.
멋진 야경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오후 8시부터 자정까지 경관 조명이 일제히 불을 밝히면, 뼈대만 앙상한 건물에 부드러운 빛이 물감처럼 스민다. 주변에 빛 공해가 없어 사진작가들 사이에선 별과 은하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노동당사 맞은편에는 ‘소이산생태숲녹색길’이 조성돼 있다. 노동당사에서 시작해 소이산(362m) 산허리를 따라 걷다 노동당사로 돌아오는 원점 회귀 코스다. 길은 지뢰꽃길(1.3km), 생태숲길(2.7km), 봉수대오름길(0.8km)로 구성된다. 안내판에는 전체 4.8km라고 표시됐지만, 노동당사에서 들고나는 거리를 더하면 2km 정도 늘어난다.
소이산 정상 전망대에서는 철원평야와 평강평야, 백마고지와 김일성고지가 한눈에 담긴다. 노동당사는 백마고지역에서 가까운데, 현재 신망리~대광리 구간이 공사 중이어서 12월 1일까지 운행이 중단된 상태다. 대신 연천역에서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동두천역~연천역 구간 경원선에는 하루 14회 통근열차가 왕복하고 있다.
●금강산 맑은 물 흐르는 DMZ 생태, 양구 두타연
두타연은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이 깊고 푸른 소(沼)를 이룬 양구의 대표 관광지다. 50여년 만에 민간에게 빗장을 열어 자연생태가 오롯이 살아 있다. 멸종 위기 야생동물 1급 산양이 뛰놀고, 2급 열목어가 서식하는 청정 지대다.
▲ 양구 두타연은 청정한 자연이 살아있다.
남한 땅에서 금강산에서 발원한 계곡물에 처음 손을 담글 수 있는 곳도 두타연이다. 상류에 오염원이 없어 물이 맑고 투명하다. 내금강에서 흘러내린 수입천은 굽이굽이 휘돌다가 두타연에서 높이 10m 폭포로 떨어진다. 입구에는 맑고 시원한 물에 사는 열목어 서식지임을 알리는 조형물을 세웠다. 두타연 주변은 생태탐방로와 조각공원을 조성했다. 탐방로는 두타연을 내려다보는 전망대와 정자, 계곡을 건너는 징검다리와 출렁다리(두타교) 등으로 연결돼 남녀노소 누구나 걷기 좋다.
전망대에서 보는 풍광도 근사하다. 한반도 모양으로 흐르던 물살이 소에 떨어지며 하얗게 부서진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탐방로 옆으로 ‘지뢰체험장’이 나온다. 센서가 움직임을 감지하면 지뢰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고, “펑!” 하는 폭음과 함께 작은 플라스틱 알갱이가 투명한 구체 안에 와르르 퍼진다. 실제만큼 강력하진 않지만 지뢰의 폭발력을 실감할 수 있다. 탐방로를 걷고 주변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는 데까지 1시간 남짓 걸린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느긋하게 즐겨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걷기 여행자라면 두타연 평화누리길을 따라 ‘금강산 가는 길’ 입구까지 걸어보기를 추천한다. 계곡을 끼고 이어져 호젓하다. 두타연에서 1시간(3.6km)쯤 걸으면 옛 국도 31호선 종점인 하야교삼거리에 닿는다. ‘금강산 가는 길’이라는 구름 모양 이정표 뒤로 아직은 굳게 닫힌 철문이 가로막고 있다. 여기서 내금강까지는 불과 32km, 곧 금강산 트레킹의 출발점이 되리라는 희망에 설렌다.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두타연까지는 약 150km, 승용차로 2시간30분 정도 걸린다. 마음의 거리보다 가깝다. 두타연은 2004년부터 일반에 개방했고, 2013년부터는 당일 신청으로도 출입할 수 있다. 양구문화관광 홈페이지에서 사전 출입 신청을 하면 편리하고, 그러지 못했다면 여행 당일 이목정안내소나 비득안내소에서 신청서를 작성하면 된다. 신분증을 제시하면 출입용 목걸이를 받고, 차량 점검 뒤 두타연으로 들어간다. DMZ에 가까워졌다는 실감이 나지만, 막상 두타연에 도착하면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광에 긴장이 스르르 풀린다.
●짙푸른 바다 내달리면 어느새 해금강, 고성 통일전망대
푸른 동해를 벗 삼아 북으로 끝없이 달리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길의 끝자락, 고성 통일전망대는 대한민국 최북단에 위치한다. 통일전망대는 1984년 분단의 아픔과 망향의 한을 달래기 위해 금강산과 가까운 이곳에 설치됐다. 휴전선의 동쪽 끝이자, 민간인출입통제선 북쪽 10km 지점이다. 통일전망대에 오르면 한국군과 북한군 초소가 대치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불과 600m도 안 되는 거리다. 남과 북이 철책으로 갈라선 현장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팽팽하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현실이 실감 난다.
가슴 아픈 풍경만 있는 건 아니다. 시선을 돌리면 시리도록 아름다운 금강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일만이천 봉우리 가운데 아홉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구선봉과 바다의 금강산이라는 해금강이다. 때 묻지 않은 자연과 북녘을 바라보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전망대에 설치된 망원경을 이용하면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북녘의 모습을 세세히 볼 수 있다.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도로도 선명하다. 과거 금강산 관광객을 실어 나르던 길이었고, 얼마 전에는 이산가족이 지났다.
현재 오래된 통일전망대 옆에는 해돋이통일전망타워의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완공되면 통일전망대 관광이 한층 편리해질 것으로 보인다. 전망대 왼편에는 거대한 조각상이 두 개 있다. 1988년 설악산 신흥사에서 세운 13.6m 통일미륵불과 1986년 천주교에서 세운 10.5m 성모마리아상이다. 미륵불은 엄숙한 표정으로 기원문을 외고, 성모상은 간절한 마음으로 평화를 기도하는 듯하다.
주차장 끝에 마련된 6ㆍ25전쟁체험전시관은 사진과 유물로 한국전쟁을 만나는 공간이다. 북한의 남침, 피란 길, 학살 등 전쟁의 순간순간을 사진으로 보여 준다. 컴컴한 체험실은 전쟁 당시 고성의 야간 공방전을 재현했다. 포탄이 쏟아지는 소리와 총 쏘는 소리가 울려 퍼져 긴장감을 더한다. 남북한의 전투력을 비교한 자료와 전사자의 유물도 볼 수 있다. 통일전망대에서 나오는 길에 DMZ박물관과 화진포도 꼭 들러야 할 곳이다.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 이승만 별장, 이기붕 별장 등이 있고, 울창한 송림과 어우러진 호수와 에메랄드 빛 바다가 환상적이다.
통일전망대로 가려면 약 10km 아래 통일안보공원에서 출입 신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탑승자와 차량 정보를 기재하고 입장료 3,000원을 지불하면 출입증을 준다. 시청각 교육 후 정해진 시각에 각자 차량을 이용해 통일전망대로 향한다.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ㆍ자료제공 한국관광공사
<출처> 2018. 9. 11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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