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돋보기의 공식
- 우정남
접힌 표정이 펴지는 사이, 실금이 간다
시간이 불어가는 쪽으로 슬며시 굽어드는 물결
무심코 바라본 먼 곳이 아찔하게 흔들리고 가까운 일은 그로테스크해지는 것이다
다래끼를 앓았던 눈꺼풀이 좁쌀만 한 흉터를 불쑥 내민다 눈꼬리는 부챗살을 펼친다 협곡을 따라 어느 행성의 분화구 같은 땀구멍들, 열꽃 흐드러졌던 웅덩이 아직 깊다
밤이라는 돋보기가 적막을 묻혀온다 달빛이 슬픔을 구부린다 확실한 건 동근 원 안에 든 오늘뿐, 오무래미에 샛강이 흘러드는 소리, 쭈뼛거리는 머리카락이 먼 소식을 듣고 있다 몰라도 좋을 것까지 확대하는 버릇을 나무라지 않겠다
웃어본다 찡그려본다 쓸쓸한 표정을 지어본다
눈(目)에도 자주 눈물을 주어야겠다고,
청록 빛 어둠이 내려앉는 저녁
지금 누가 나를 연주하는지
주름이 아코디언처럼 펴졌다 접어진다
분청다기에 찻잎을 우리며
실금에 배어드는 다향(茶香)을 유심히 바라본다
먼 어느 날의 나에게 금이 가고 있다
무수한 금이 금을 부축하며 아득히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문학관련 > - 수상 및 후보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 그림자 필경사 / 이철주 (0) | 2018.01.02 |
---|---|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정망 먼 곳 / 박은지 (0) | 2018.01.02 |
2018 영주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 저전거 소개서 / 이예인 (0) | 2018.01.02 |
2018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 이원하 (0) | 2018.01.02 |
2018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 이중섭의 팔레트 / 신준희 (0) | 2018.01.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