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식당발굴기
엄마랑 아들이 손질하고 구워주는 곱창집
글 이정훈(월간외식경영 외식콘텐츠마케팅연구소 실장)
사진 변귀섭(월간외식경영 기자)
<곱창나라 : 서울 도봉구 마들로 724 109호, 02-955-8300>
젊은 소리꾼 남상일의 창작 판소리 가운데 '노총각 거시기가’가 있다. 중간쯤 "달밤에 곱창으로 줄넘기 하고 앉아있는 소리 하고 있네”라는 아니리가 나온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레 곱창으로 줄넘기 하는 모습이 연상되고, 다음 순간 풉~ 웃음을 뿜게 된다. 풍자와 해학을 본령으로 하는 판소리의 힘이다. 한참 웃고 나면 허기가 돌면서 곱창에 소주 한 잔 생각이 절로 난다. 도봉구 <곱창나라>는 꼼꼼하게 직접 손질한 양질의 곱창을 파는 서민형 곱창집이다.
작고 소박해도 손맛 빼어난 곱창집
시골서 상경해 만두 집에서 일하는 ‘거시기’라는 노총각은 돈도 빽도 없다. 있다면 순박하고 착한 심성과 성실함 정도다. 아버지의 간청에 따라 신붓감 구하러 서울에 왔건만 여자들은 한결같이 돈 많고 세련된 매력남만 원한다.
"춥지라이... 어디 가갔고 꼽장볶음에 쇠주라도 한 잔 드실라요?"
큰맘 먹고 상대 여성에게 어렵게 꺼낸 거시기의 소박한 제안. 그의 제안은 이 도시에서 공허할 뿐이다. 오히려 ‘곱창으로 줄넘기하는 소리’라고 면박만 당한다. 그래서 웃음 끝이 살짝 쓰다. 시골 총각 거시기가 첫눈에 반한 여성과 함께 가고자 했던 그곳, 아마 <곱창나라> 쯤 될 것 같다.
이 집은 작고 소박한 변두리 곱창집이다. 그러나 곱창 맛은 중심지 유명 곱창집에 뒤지지 않는다. 주인아주머니 손맛이 예사롭지 않은데다 곱창과 대창 양깃머리를 직접 손질해 깨끗하고 냄새가 나지 않는다. 최근에 문을 닫은 마포의 30년 된 추어탕집이 주인아주머니의 친정집이다. 친정에서 갈고 닦은 솜씨로 반찬이며 음식을 장만한다. 밑반찬은 물론이고 곱창 소스 만들기, 굽기, 서빙까지 젊은 총각인 아들과 둘이 손발을 척척 맞춘다.
곱창집의 대표메뉴인 곱창구이, 대창구이, 막창구이 모두 200g 1만5000원이다. 사람 심리는 어슷비슷한 법. 대부분의 손님들은 이 셋을 골고루 다 맛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세 가지를 한꺼번에 먹을 수 있는 모듬구이를 내놨는데 200g 1만7000원이다. 모듬구이에는 곱창, 대창, 막창 외에 양과 염통도 추가로 들어가 모두 5종의 내장구이를 먹을 수 있다.
간장과 고추장 소스에 찍어 ‘곱창 한 마당’ 얼씨구~
상차림이 화려하지 않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의외로 실속이 있다. 편하고 싼 맛에 쓰는 저렴한 기성품 반찬이 하나도 없다.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담근 갓김치와 겉절이며 나박김치는 자칫 느끼하기 쉬운 곱창을 담박하게 먹도록 도와준다. 갓김치는 본시 삼겹살과 찰떡궁합인데 의외로 곱창과도 잘 어울린다.
슴슴한 나박김치는 그릇째 들고 국물을 마셔야 제 맛이다. 목구멍을 통과한 나박김치 국물은 식도, 위, 소장, 대장을 훑어 내려가면서 장벽에 낀 기름기를 말끔히 지운다. 이내 속이 개운해진다. 다음 순간 또 다시 눈과 손은 지체 없이 쫄깃한 곱창을 향한다.
무료로 제공하는 간과 천엽도 싱싱하다. 간과 천엽은 시장 봐온 당일에만 제공하므로 나오지 않는 날도 있다. 개인적으로 간과 천엽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다. 설을 앞둔 섣달그믐께. 할아버지께서 장을 봐오시면 그날 밥상에는 언제나 간과 천엽이 올라갔다. 참기름이랑 소금과 함께. 어린 나로서는 이게 도무지 먹을 수 없는 혐오식품이었는데 어른들은 몸에 좋다며 강제로 먹이셨다.
당근, 파, 양파, 콩나물 등을 넣고 무친 부추무침을 불판에 넉넉히 올려 곱창, 대창, 막창과 함께 익혀 먹는다. 주인아주머니의 아들인 젊은 총각이 이리저리 저을 때마다 칙칙 소릴 내면서 익어간다. 총각이 “익는 순서가 염통, 양깃머리, 막창, 곱창, 대창 순서”라고 귀띔한다. 마음이 급해도 곱창과 대창은 충분히 익은 뒤 나중에 먹으라는 얘기다. 구수한 냄새와 함께 노릇노릇 익어가는 곱창, 대창, 막창은 소주의 오랜 벗이었다. 곱창과 소주는 매화와 달빛의 조합만큼이나 환상궁합이다.
곱창 맛은 신선도, 깨끗한 손질 여부, 그리고 소스가 좌우한다. 이 집은 일반적인 참기름장 외에 간장소스와 고추장소스, 이렇게 두 가지가 더 있다. 둘 다 과일을 갈아 넣어 단맛이 나는데 간장소스는 새콤한 맛을, 고추장 소스는 묵직한 고추장 맛을 품었다. 잘 익은 곱창을 집어 고추장 소스에 묻혀 입에 넣었다. 고소한 맛은 자진모리로, 달콤한 맛은 진양조로 오래 입에 남았다.
곱창 다 먹고 나면 양밥 같은 볶음밥도
곱창이 고소한 건 곱창의 기름 때문이다. 그 기름에 밥을 볶으면 당연히 맛있다. 곱창을 다 먹어 가면 볶음밥(3000원)으로 볶아먹는다. 당근, 양파, 김치, 감자, 버섯에 양을 넣어 양밥 스타일로 볶아준다. 어느 정도 익으면 달걀을 풀어 골고루 비빈 뒤 먹는다.
볶음밥과 함께 식사 메뉴인 시래기내장탕(7000원)은 그 자체로 좋은 식사이면서 안주가 부족할 때는 훌륭한 마무리 안주가 돼준다. 부드러운 시래기와 함께 곱창, 허파, 양 등 내장을 넉넉히 넣어 아주 푸짐하다. 된장을 풀어 구수한 맛이 난다. 의외로 얼큰하지 않은데, 주인장이 일부러 매운 음식들과의 조화를 위해 맵지 않게 끓였다.
잔여육을 넉넉히 넣고 끓인 미역국(6000원)과 동치미국수(4000원)도 곱창 먹은 뒤의 속을 깔끔하게 씻어주는 식사 메뉴다. 상가 지하주차장이 무료이고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문을 연다.
제 곱창에 찬바람 지나가본 적 있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곱창의 참맛을 안다. 가끔은 씹어도 씹어도 끝내 넘기지 못할 서글픔이 남는 음식. 그럴 때면 소주의 도움 받아 질긴 서글픔 목젖 너머로 밀어 넣어야 하는, 곱창은 그런 음식이다. 요즘 달밤이면 곱창으로 줄넘기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다들 곱창 맛도 제대로 모르면서···.
[출처] 2017. 2, 10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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