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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수상 및 후보시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진단 / 신동혁

by 혜강(惠江) 2017. 2. 2.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진단

 

신동혁 ·

 

 

머리를 자르면 물고기가 된 기분입니다

나는 종교가 없고 마지막엔 바다가 온다는 말을,

소금기가 남은 꼬리뼈를 믿습니다

훔쳐온 것들만이 반짝입니다

지상의 명단에는 내가 없기에

나는 나의 줄거리가 됩니다

나는 맨발과 어울립니다

액자를 훔치면 여름이 되고 비둘기를 훔치면 횡단보도가 되는

낯선 버스에서 승객들이 쏟아집니다

멀리서 보면 선인장 더미 같습니다

서로를 껴안자 모래가 흐릅니다

모래가 나의 모국어가 아니듯

빈 침대는 바다에 대한 추문입니다

나는 모르는 햇빛만을 받아 적습니다

혼잣말을 엿들을 때 두 귀는 가장 뜨겁습니다

지도를 꺼내어 펼쳐봅니다

처방전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말을 듣습니다

숨을 쉴 때마다

나도 모르게 호주머니가 깊어집니다

 

당선 소감 -------------------


문학은 상상의 세계로 나를 인도해 주는 길잡이

 

  돌이켜 보면 내 마음속에 이러한 낯설고 막연한 꿈들을 심어줬던 건 문학이었다. 내 손을 잡고 매번 나를 가장 먼 곳으로 데려갔던 것도 문학이었다. 사실은 꽤 오랫동안 잊어버린 채 지내고 있었다. 세상과 멀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거나 새로움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붙들고 있었던 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하지만 분명 양치기를 꿈꾸던 그 때의 두근거림을 기억한다. 아직 가보고 싶은 곳이 많다. 실제로는 드넓은 초원도 양떼도 본 적이 없지만 다시 한 번 믿고 싶다. 시가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기를. 

 

  다음 주면 이사를 하게 된다. 2년간 살았던 달동네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선다고 한다. 모두가 떠난 집 앞 골목길에 버려진 가구들이 즐비하다. 익숙한 것들을 버리는 건 참 힘들다.

 

  그러나 어쩌면 삶은 존재보다 더 많은 부재로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곁에 있어준 사람들과 떠난 사람 모두에게 감사하다. 저를 호명해 주신 황현산, 정끝별 교수님 감사드립니다. 오랜 세월 제게 시가 되어 주신 이천호 선생님 그립습니다. 아낌없는 사랑을 주시는 박찬일 교수님, 블랙러시안 같은 오양진 교수님 감사합니다. 이수명 선생님 감사합니다. 늘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부모님과 듬직한 동생 우람이, 나의 피비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1990년 경북 구미 출생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재학

 

 

 

심사평 -------------------

 

새로운 발화… 표현 밀도 높고 대상·심상 결속력 뛰어나

  ‘틀의 변화’는 시대의 화두다. 하지만 시조의 길은 좀 다르다. 선험의 틀을 지키되, 그 속에서 갱신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율 속의 자유, 균제 속의 자재를 이야기한다. 관건은 대상에 대한 낯선 관점, 새로운 해석이다.

 

  숙독 끝에 세 편의 작품이 선자의 손에 남았다. 세 편 다 시의 발화가 새롭고, 시상을 밀고 가는 힘이 좋다. 장윤정의 ‘뭉크의 오후’는 뭉크의 절규 이미지에 노숙의 풍경이 겹친다. 종장의 밀도를 초·중장이 받쳐 주지 못한 게 흠이다. 정영희의 ‘어름사니’는 꽃과 어름사니의 비유를 통해 빛과 어둠의 경계를 짚고 있다. 문제는 시어의 반복이 시상의 전환을 막는다는 점이다. 우리 곁에 온 또 한 사람의 시인을 박수로 맞으며, 모든 투고자들의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박기섭 시인,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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