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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수상 및 후보시

2015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 달빛 길어 올리기 / 오은주

by 혜강(惠江) 2015. 1. 1.

 

                                  [2015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달빛 길어 올리기

 

                                                     오은주

 

 

 

 

 

                      바람마저 돌아누운 달빛 아래 한지를 뜬다

                      고마운 천형天刑처럼 물질하는 늙은 손이

                      물속에 내려앉은 달, 달의 속살 건져낸다

 

                      백번을 흔들어야 항복하는 닥의 껍질,

                      아린 숨결 본떠내고 별빛 고이 아로새겨

                      하얗게 거듭난 한지, 숨소리가 따뜻하다

 

                      얇고도 질긴 근성은 민초의 마음일까

                      바람의 웃음마저 곱게 다져 걸러내면

                      어디서 묵란墨蘭 한 송이 꽃피는 소리 들린다

 

 

 

 

[2015 신춘문예] 시조 당선 소감

감각으로 민족문학 꽃피우는 밀알 되고파

 

 

그림 전시회에 갔습니다. 그림을 그릴 줄은 모르지만, 관람은 좋아해서 가끔 먼 거리의 전시회도 찾아다니곤 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전시회에 제 작품이 걸려 있었는데 그 작품이 팔리고 없었습니다. 액자의 빈자리, 굵은 붓으로 크게 쓴 '' 자를 보았습니다. '어머나, 내 그림도 팔리는구나' 생각하며 놀라 깨었는데 꿈이었습니다.

 

원고를 우체국에서 발송한 날 저녁이었습니다. 아마 꿈 같은 소식을 미리 암시해준 듯합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요. 저에게도 12월의 어느 멋진 날이 오네요. 많이 행복하고 가슴 두근거립니다. 두렵고 멈칫거려지기도 합니다.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자유시를 쓰고, 동시, 수필을 썼습니다. 그러다 혼자 습작하던 시조. 백일장을 계기로 저의 마음을 몽땅 들여 놓았습니다. 조금씩 움을 틔우고, 잎도 달아보고 꽃도 피워 보았습니다. 짝사랑하던 시조! 짝사랑이 아니란 화답을 받아 더욱 가슴 설렙니다. 시조의 율격은 신선하고 아름다운 구속이었습니다.

 

조금은 더디더라도 새로운 시야로, 젊은 감각으로 민족 문학의 꽃을 피우는 데 작은 씨앗이 되겠습니다.

 

시는 문자를 통한 고도의 상징이며, 사건이나 물상을 통한 진리의 발견을 삶의 행위 안으로 녹여 화해하고 소통하는 일이라고 어느 시인이 말씀하셨습니다. 가슴 깊이 명심하고 걸어가겠습니다.

 

부족한 제 작품에 힘과 용기의 날개를 달아 주신 심사위원께 큰절 올립니다. 안개 같던 제 마음에 등대를 켜주신 국제신문 관계자분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가슴 속 그리움의 대명사인 양쪽 부모님, 고인이 되셨어도 뜨거운 축하 보내주실 줄 압니다. 많이 그립고 사랑합니다. 또 변함없는 첫 마음으로 소중하게 아껴주는 남편과 우리 보물 송근, 재근이와 함께 기쁨 나누고 싶고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약력=1967년 경북 경주 출생. 9회 백수 정완영 전국시조 백일장 장원. 현재 경주에서 피아노학원 운영.

 

 

 

   

[2015 신춘문예] 시조 심사평

 

한지 뜨는 과정 정교한 언어로 서정의 세계 그려내

 

 

금년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응모한 362편의 작품을 읽으면서 해마다 질적 수준의 높이를 더해가는 현상을 보며 기쁜 마음으로 심사에 임했다. 시조의 정형률은 언어를 간결하게 보석처럼 다듬는 시의 최상의 관문이다. 엄격한 기율이 터놓은 시적 해방 공간의 자유를 향유할 수 있도록 운필의 공력을 쌓아가야 한다.

 

여기에 이르는 많은 작품이 가려지면서 마지막으로 남은 네 분의 작품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한껏 갈고 닦아 적공의 흔적이 나뭇결처럼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박성민 씨의 '타임머신', 김범렬 씨의 '삼효문을 읽다', 한경정 씨 '겨울, 과원에 들다', 오은주 씨 '달빛 길어올리기' 등은 오랜 시간 토론을 거듭하게 한 역작들이다.

 

'타임머신'은 주제의식이 앞서 언어의 결을 다듬는 과정이 남은 세 작품보다 부족한 점이 흠이었다. 시는 언어예술이라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분발하시길 바란다.

 

김범렬, 한경정, 오은주 씨의 작품을 두고서 어느 분 작품을 당선작으로 낙점하느냐 심의가 시간을 오래 끌었다. '삼효문을 읽다'는 전통성을 근간으로 한 미학적 탐구가 빼어났고, '겨울, 과원에 들다'는 겨울 과원의 과동하는 인고와 삶에 대한 꿈과 예지가 이미지로 잘 여과되었고, '달빛 길어올리기'는 한지를 뜨는 과정을 섬세한 감성으로 관찰하며 정교하게 언어를 다듬어 서정의 무늬를 그려나간 솜씨가 탁월했다.

 

그러면서 한지의 얇고도 질긴 근성을 민초의 삶으로 응시하는 시선이 선자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당기고 있었다. 토론을 거듭하고 고심한 끝에 우리는 오은주 씨의 '달빛 길어올리기'를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 합의를 보게 된 것이다.

세 분 시인은 실망하지 말고 더욱 정진하여 좋은 날을 맞기 바란다. 당선자 오은주 시인은 당선작을 능가하는 작품 활동으로 현대시조의 새 지평을 열어가길 당부하며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정해송 전일희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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