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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수상 및 후보시

2014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대화 / 김진규

by 혜강(惠江) 2014. 1. 1.

 

 

2014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대화

 

-김진규

 

 

 

관련사진

           일러스트 김경진기자

 


 

메마른 나무옹이에 새 한 마리가 구겨져있다
다물어지지 않는 부리 위를 기어 다니는 어두운 벌레들
작은 구멍에 다 들어가지 않는 꺾인 날개가
바람에 흔들리는 이파리들의 그림자를 쓰다듬고 있다
누군가가 억지로 밀어 넣은 새의 몸을 오래도록 들여다본다
나도 분명 그런 적이 있었을 것이다
어울리지 않았던 것들의 속을 채워보기 위해
아귀가 맞지 않는 열쇠를 한 번 밀어 넣어 보듯이
혼자 날아가지도 못할 말들을 해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둥근 머리통을 한참 보다가 눈이 마주친다
이쪽의 눈과 저쪽에 있는 새의 눈이 마주치자,
여태껏 맞아본 적 없는 햇빛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머리통이 간지러워져서,
나도 어딘가 머리를 드밀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방에서 방으로 옮겨갈 때의 걸음을 생각해보니
나는 언제나 이곳과 저곳의 국경을 넘는 사람인 거 같아
누워있는 사람의 말을 대신 전할 때
구겨진 새의 몸을 손으로 감싸서 누구한테 내밀 듯
나도 어떤 말인지 모를 말들을 했던 것 같아
새의 부리가 날보고 웅얼거리는 것 같아서
내 귀가 어쩌면, 파닥거리다가 날아갈 것 같아서
나무옹이를 나뭇가지로 쑤신다
좀 더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라고
삼키지 못할 것들을 밀어 넣듯이 밀어 넣는다

 

 

<심사평> --------------------------------------

 

 

 

세심한 관찰력… 광경이 감각적인 성찰로 진화

 

 

 

 

관련사진

2014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심사를 맡은 시인 정호승(왼쪽부터), 황인숙, 김정환씨가

응모작들을 살펴보고 있다.

 

 

응모자는 884명이었다. 이분들의 시 4,000여 편을 예심해서 우선 30여 편을 추렸다. 이 시들에는 소위 '미래파'가 많았다. 기존 시단의 미래파가 예비 시인들에게 여전히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징표일 테다. 최종 본심에 김동수('새가 그려준 지도'외 2편), 이재근('토르소' 외 5편), 김진규('나무라기엔' 외 2편)를 올렸다. 다른 분들이 최종 본심에 못 든 이유는 2%가 모자라서다. 미래파건 전통파건, 앞의 '유행'에 젖은 뒤 그것을 돌파해야 하는데, 강력한 경향이랄지 추세에 흔들렸다. '영향에 대한 불안'이 부족해 보였다. 휘둘리지 말고 돌파해야 한다.


이재근의 '토르소'는 시적 논리가 이미지의 다양성을 제압할 만큼 탄탄하고 스케일이 큰 시다. 우리 삶에 대한 긍정적, 남성적 힘이 있다. 그런데 굳이 흠을 잡자면 논리가 과해서 이미지를 밀어낸다. 이 부분을 해결하면 뚝심 있는 큰 시인이 되리라. 김동수는 시를 상당히 많이 써 본 솜씨다. 이미지 전개가 조화롭고 참신하다. 기발하면서도 튀지 않는 시어들로 논리와 이미지 사이가 친근하다. 그런데 전하는 바가 또렷하지 않다. 물론 좋은 시는 해석의 지평이 열려 있게 마련이지만, 시에 허용되는 '모호함'에도 한계가 있다. 두 분 시 모두 이만하게 쓰기 쉽지 않아 아쉽지만, 한 편만 뽑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다른 기회가 주어지리라 믿는다.

김진규의 '대화'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메마른 나무옹이에 새 한 마리 구겨져 있다', 죽은 새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 고통을 '구겨진 새의 몸을 감싸서 누구한테 내밀듯' '좀 더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라고' 같은 시구가 달래준다. 김진규는 관찰력이 뛰어난 시인이다. 세심한 관찰로 잡아낸 광경이 감각적인 성찰로 전화(轉化)한다. 아마도 죽음을 아는 게 성년이리라. '비성년' 이미지에서 시작해 '비성년'을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하는 고통스런 움직임이 고통스러우리만큼 집요하게 그려져 있다. 당선을 축하 드린다. 새로 태어나는 시인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김진규 당선자 인터뷰> ---------------

 

 

"서른살전에 첫시집 내고 싶어"

 

 

 

"세상 모든 것들이 '나'라는 필터를 통해 어떻게 전과 다르게 읽힐 수 있는지, 부지런히, 치열하게 써보고 싶습니다."

2014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인 김진규(25)씨는 현재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캐나다 밴쿠버에 체류 중이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 휴대폰 번호로 원고를 보낸 탓에 당선 소식을 부모님으로부터 문자 메시지로 전해 받았는데, 그때가 마트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동료들과 가진 조촐한 술자리를 끝낸 새벽 두 시였다. "처음엔 휴대폰에 찍힌'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이 열 글자가 너무 얼떨떨해서 저를 속이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한국과 전화 연결이 안 돼 밤새 잠을 자지 못하다가 마침내 당선 사실을 확인했고, 그날 하루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질 정도로 감격의 여운이 오래갔다.

"저는 제가 외로운 적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아니 외로운 사람인 척하며 사는 게 아닌가 여겼었죠. 그런데 당선 소식을 듣고 나니 잊고 있었던 힘든 일들, 서럽던 일들만 떠오르더라고요. 남들에게 말은 안 했지만, 열심히 쓰고 있으면서도 자괴감을 많이 느꼈거든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 김씨는 '문필 신동' 출신이다. 시인인 어머니 김연자씨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매일 일기를 쓰게 했고, 일기에 소재가 떨어질 때면 동시를 대신 쓰곤 했던 게 시작(詩作)의 시작이었다. 시를 진지하게 열심히 쓰게 된 건 안양예고 문예창작과에 입학하면서부터. 새얼백일장, 만해백일장 등 전국의 여러 백일장을 석권했고, 덕분에 경희대 국문과에 문예특기자로 입학했다.

신춘문예 응모는 올해가 세 번째. 두 차례 모두 예심조차 통과하지 못하면서 "아주 어린 나이에 혜성처럼 딱! 하고 문단에 등장할 줄 알았던" 꿈은 "말도 안 되는 꿈이었구나" 깨달았다고 한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찾아 올 9월 캐나다로 건너간 그는 그곳에서 영어학원도 다니고 틈틈이 외국인들과 운동도 하며 이제 막 생활에 적응한 참이다.

"이번에 당선되지 못했다면 내년에 또 응모했을 거예요. 그게 제가 쓴 시들에 대한 예의 같은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낳은 자식들인데 한 번쯤은 누군가에게 읽혀야 하지 않겠어요?"1년 예정의 캐나다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면 그는 "치열하게 시를 쓰며 시 쓰기의 '폼'을 만들기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수줍게 덧붙인 말. "그리고 서른 살 전에는 첫 시집을 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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