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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수상 및 후보시

2013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쏘가리, 호랑이(이정훈)

by 혜강(惠江) 2013. 1. 1.

 

2013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쏘가리, 호랑이

 

                               -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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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개성의 탄생… 신화적 상상력의 눈부신 질주 보는 듯



세 명의 심사위원이 투고작 전부를 나눠 읽고 거기서 추린 작품을 토대로 논의를 거듭한 결과 '쏘가리, 호랑이'(이정훈)를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합의했다.

'쏘가리, 호랑이'를 비롯해 이정훈의 작품은 요즘 우리 시단에서 보기 힘든 신화적 상상력의 눈부신 질주를 보여준다. 그 상상력은 강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산맥을 치달리는 호랑이로 치환시키는 마법을 가능케 한다. 우리 민족 고유의 향토적 풍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시는 마치 이 땅에 산업사회가 도래한 적이 없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언어의 구체성과 밀도를 획득하고 있다. 이 독특한 개성의 탄생을 축하하며 다만 그의 시편들에 내포된 일종의 아나크로니즘(의도적인 시대착오성)을 앞으로의 시작을 통해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모색해주길 바란다는 권고를 덧붙이고 싶다.

'단풍나무 빵집'의 손현승은 심사위원들에게 오랜 망설임의 시간을 강요한 응모자였다. 대화체를 적절히 활용한 이 시는 대상이 되는 빵-빵집-빵집 여자에 범용한 일상성을 뛰어넘는 서정적 후광을 씌워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 삶을 바라보는 따스하면서도 원숙한 시선이 인상적인 이 시는 읽다보면 고소한 빵냄새가 주변에 감도는 듯한 풍미를 선사한다. 심사위원 구성이 조금만 달랐다면 최종 결과가 다르게 나왔을지도 모를 만큼 이 작품이 주는 매혹은 상당했다.

'곰이 돌아왔다'의 장유정도 아까운 응모자였다. 투고작 전부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한 견고한 시적 형상화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미지의 조형이나 어조의 완급조절에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시적 발상이 새롭지 않다는 난점을 갖고 있었다.

이밖에 '누군가의 단검'의 김지연, '애플파이 레시피'의 고태관, '골목은 모퉁이를 돌면 막혀 있다'의 유병현, '불룩한 체류'의 이문정 등도 기억에 남는 작품을 선보인 응모자들이었다. 이들 모두에게 건필의 응원을 보낸다.

 

● 심사위원 황현산(문학평론가) 황지우(시인) 남진우(문학평론가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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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 도리질했는데… 두 아이 이름 적어놓고 또 밤길을 줄여갑니다"



세상의 하고많은 배역 중
왜 제게는 나귀 한 마리와
끝없이 걸어야 하는 길이 주어졌는지

밤마다 손바닥을 들여다봅니다
후벼서 미안하다는 듯 흐르는 이 강을
오늘은 애수라고 불러봅니다
내가 강가에 마을 하나 지어 놓으면
밤나무 두 그루와 낡은 슬레이트 지붕이 떠갑니다
뇌운 용항 도돈 판운 멀리 주천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여울 가 삐익 삑,
노루새끼 호드기 붑니다

고지를 받았을 땐 지실고개를 넘고 있었습니다
아니요, 세 번 도리질 했는데
네 번 맞다고 해서 박달재를 넘을 땐
말씀으로 수태한 처녀 같았습니다
딱!
밤톨 떨어지는 소리가 만종처럼 울려
다릿재 꼭대기 노을을 몰고 시속 팔십 킬로미터
붕붕 서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립고 고마운 이름이 왜 없겠습니까만
나경 해오니 두 아이의 이름 울금빛으로 적어놓고
또 밤길을 줄여야합니다

고형렬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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