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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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성규
색 바랜 무단폐기물 이름표 목에 걸고
벽돌담 모퉁이서 늙어가는 자전거 하나
끝 모를 노숙의 시간 발 묶인 채 졸고 있다
뒤틀리고 찢긴 등판 빗물이 들이치고
거리 누빈 이력만큼 체인에 감긴 아픔
이따금 바람이 와서 금간 생을 되돌린다
아무도 눈 주지 않는 길 아닌 길 위에서
금이 간 보도블록에 제 살을 밀어 넣을 때
산 번지 골목 어귀를 밝혀주는 애기똥풀
먼지만 쌓여가는 녹슨 어깨 다독이며
은륜의 바퀴살을 날개처럼 활짝 펼 듯
페달을 밟고 선 풀꽃, 직립의 깃을 턴다
▲ 일러스트: 윤문영
<심사평>
참신한 시적 발상과 시상을 풀어내는 솜씨 자유로워 |
- 이근배 |
모국어의 높은 벽을 뛰어넘는 눈부신 도약을 신춘문예 시조에서 본다. 글감 찾기에서부터 말 고르기, 그리고 시조의 틀에 얹힌 가락을 뽑아내는 솜씨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새로움을 더해가고 있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은 이미 일정한 수준의 기량을 갖추고 있어 그 우열을 가리기 위해 거듭 읽어야 했다.
올해는 경주에서 열리는 국제 펜 대회에서 시조가 주제로 채택되어 세계의 문학인들에게 우리 모국어의 정체성이며 한국시의 정체성인 시조의 참모습을 펼쳐보이게 된 만큼 이 땅의 시재가 있는 신인들이 시조쓰기에 골몰하고 있음을 크게 반기지 않을 수 없다.
당선작 <애기똥풀 자전거>는 시적 발상이 참신하면서도 시상을 풀어나가는 솜씨가 자재롭다. 수명을 다해 버려진 자전거를 한 생명체로 되살려 놓으면서 “애기똥풀”을 등장시켜 빛나는 비상을 이끌어내는 생각의 힘이 4수의 시조에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색 바랜 무단 폐기물 이름표 목에 걸고”로 운을 떼고서 “페달을 밟고 선 풀꽃, 직립의 깃을 턴다” 의 마무리까지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바로 마지막 종장을 이 시인의 날개 펼 시조의 내일이 되리라 믿는다.
끝까지 겨뤘던 작품으로 ‘유배의 섬을 간다’ ‘바퀴의 질주’ ‘무당거미의 아침’ ‘먼지의 산란’ ‘늦은 장마’ 등도 각기 기성의 벽을 넘을 역량을 담고 있었으나 한 자리에 밀려났음이 못내 아쉽다.
이근배
- 1940년 충남 당진 출생
- 1961~64년 경향, 서울, 조선, 동아, 한국 5개 일간지 시, 시조, 동시 신춘문예 당선.
- 시집 <사랑을 연주하는 꽃나무>, 시조집 <동해바닷속의 돌거북이 하는 말>, 장편서사시집 <한강>, 기행문집 <시가 있는 국토기행> 외 다수
- 중앙시조대상, 한국문학작가상, 육당문학상, 월하문학상, 편운문학상, 만해대상, 은관문화훈장 등 수상
- 한국시조시인협회, 한국시인협회 회장 등 역임
- 현 만해학교 교장, 문학의 문학 주간, 신성대학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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