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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에세이/아름다운 동행

미주 LA지역, 시카고 지역,‘숭의동문회’ 순방

by 혜강(惠江) 2011. 7. 13.

                                                                            

미주지역 ‘숭의동문회’ 순방

 

미주 LA지역, 시카고 지역 방문기

 

 

 ·남상학 

 



 

▲  LA 숭의동문모임 총회를 마치고 기념 촬영 

 

 

   2003년 재미 숭의동문회의 초청을 받고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재미 남가주숭의동창회와 시카고숭의동창회는 그 동안 미주지역동문회의 발전에 기여하였다는 의미로 퇴임에 즈음하여 남가주(LA) 숭의동문회 총회에 맞춰 우리 부부를 초청한 것이다. 그러나 다음해 숭의 개교 100주년 행사에 미주지역 동창들이 대거 참가하는 것이 계획되어 있어서 아내 대신 후임 유재영 교장과 동행했다. 해외 동문과의 원활한 협력을 위해서는 후임 교장과 미리 상견례를 하는 것이 좋을 듯했기 때문이다.

  비행기 창문의 차단막을 올리니 눈부신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LA공항은 미국 서해안 최대의 국제공항답게 규모가 엄청났다. 오후 3시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11시간의 비행 끝에 같은 날 오전 10시 LA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한국과 미국의 시차 때문이다. 1월이지만 다행히 그리 춥지 않았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대합실에 나오니 동문회 임원(’59년 졸, 2대 회장 김인옥)과 직접 가르친 제자(’76년 졸업생)들이 먼 길을 왔다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A. 남가주(L.A) 지역 숭의동문회



   1995년에 창립된 남가주동문회는 역대회장에 초대 오경순(1회, 55년), 2대 김인옥(5회, 59년졸), 3대 한정복(6회, ’60년졸), 4대 홍정자(11회, 65년 졸)로 이어지면서 남가주 지역 숭의 동문들의 결속과 유대를 위해 노력하는 한편 이신덕 교장 기념장학회 기금을 마련하여 모교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일을 해왔고, 남가주 숭의코러스를 조직하여 활동하는 일들을 추진해 왔다. 그리고 숭의개교 100주년에 즈음하여 뉴욕동문회, 시카고동문회와 협력하여 기념조형물을 새로 건축한 숭의여중고 교문 입구에 세우기로 합의했다.

  저녁에 총회가 있으므로 짧은 일정을 효과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며 로스앤젤레스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유니버셜 스튜디오로 우리를 안내했다.  이곳은 세계 최대 규모의 영화 테마 파크답게 각종 명작영화의 세트를 비롯해 놀이기구와 볼거리들로 가득했다. 인포메이션 부스에서 스튜디오 지도와 어트렉션 스케쥴을 얻어서 시간 배분을 고려하여 선별적으로 관람했다. 구내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트램을 타고 스튜디오 투어를 했다. 스튜디오 투어는 4량으로 편성된 트램을 타고 마술과도 같은 영화의 세계를 흠뻑 맛볼 수 있는 묘미를 지니고 있었다.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져 큰 물줄기를 이루는 장면, 기차가 터널을 통과할 즈음 지진으로 무너져 내리는 흙더미 등 실제 영화 촬영이 이루어졌던 스튜디오 및 세트들을 감상하면서 여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었다

  유니버셜스튜디오를 돌아본 우리는 숙소이며 총회가 열리는 래디슨 윌셔 프라자호텔로 이동했다. 한인타운 중심가에 위치한 이 호텔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한국 관광객이 즐겨 찾는 호텔인 듯했다. 드디어 저녁 6시, 이 호텔 그랜드볼륨에서 남가주 숭의동문회(회장 ‘65홍정자) 제8대 정기총회를 겸하여 신년모임이 개최되었다. 동문회 임원들은 같은 날 옆 장소에서 경남여고 동창회가 열리는데 숫적 열세를 염려하는 듯했다. 그러나 결과는 전연 딴판이었다. 전직교사를 포함하여 100명 넘는 인원이 한 자리에 모였던 것이다. 이민 사회의 특성상 낮에는 일을 해야 하고, 먼 거리에 흩어져 있어서 모이기 힘든 악조건을 무릅쓰고 먼 곳에서 구름 떼처럼 몰려 왔던 것이다.      

  홍정자 회장의 사회로 시작된 1부는 오경순(’55년졸) 이사장의 임원소개가 있었다.  이어 유재영 교장의 기도, 김금자(’69)의 특송에 이어 내가 격려사를 겸한 신년메시지를 전했다. 마침 숭의 개교 100년인 동시에 미국 이민 100년의 뜻 깊은 해였으므로, 믿음으로 순종한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 낯선 땅으로 이주하여 ‘복의 근원’ ‘믿음의 조상’이 되었음을 상기하면서, ‘기회의 땅’ ‘약속의 땅’으로 이주해 온 이민자의 후예들이 미국 주류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듯이 숭의동창들도 이곳에서 대망의 꿈을 이뤄 빛과 소금이 되자는 취지였다.  

  이어 2부에는 고성은(’76년졸) 총무가 사회를 맡아 기별로 참석자들을 소개하고, 유 교장이 학교 근황을 프리젠테이션으로 알렸다. 이어 숭의코러스(지휘 ’80 이선경)의 특별순서로 이어졌다. 맑고 고운 화음은 회의장을 가득 메운 숭의가족을 일시에 매료시켰다. 3곡 연주하려던 계획이 이어지는 앙코르 덕분에 두 곡이 더 추가되었다. 숭의코러스는 1998년 남가주 거주 숭의동문 26명으로 창단, 매주 화요일을 연습일로 정하고 50마일 혹은 100마일이 넘는 먼 거리를 각자 운전하고 와서 연습을 했다. 이후 숭의코러스는 L.A 한인 사회의 크고 작은 행사에 초청되어 연주했고, 2001년 7월 제1회 정기연주회를 개최했다. 현지 언론은 이 연주회를 가리켜 “오랜만에 들어본 잘 다듬어지고 어우러진 여성 합창” “밝은 표정과 수준급 이상의 표현력, 분명한 가사 전달” “L,A 교포사회에 생기를 더해 준 신선한 충격” 등의 극찬을 받으며 해외에서도 여성합창의 명문인 모교의 전통을 이어간 것이다.


  이것은 숭의 동문들의 남다른 애교심이 바탕이 되었지만, 이화여대 재학 중 도미하여 시카고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현지 감리교 선교단 및 교회에서 지휘를 맡고 있는 이선경 동문의 열정적인 헌신이 뒷받침되었다. 이어 계속된 3부에는 유명 MC 조창식의 사회로 게임과 장기자랑이 이어졌고, 교가 합창으로 행사를 마쳤다.              
  
  행사를 마친 우리는 다음날 L.A영락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영락교회에는 남가주숭의동문회 1회 회장이었던 오경순(’56) 동문 내외와 장로로 시무하는 김희렴 선생(전 숭의여중 교사)의 영접을 받았다. 예배 후에는 예배 중 광고를 듣고 찾아온 졸업생들을 다수 만날 수 있었다. 오경순 동문의 점심대접을 받고나서 나는 ’76년에 졸업한 동문들 - 김경아, 고성은, 신자연, 이명혜와 함께 맨스 차이니스극장 앞을 중심으로 할리우드 블러바드의 보도, 유명 뮤지션의 이름이 새겨진 별 모양의 브론즈 2,500여 개가 약 5킬로에 걸쳐 깔려 있는, 이름 하여 스타의 거리를 걸었다. 그리고  LA 최대의 자연공원인 그리피스 공원을 산책하고, 할리우드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는 'HOLLYWOOD"의 글자가 정면으로 보이는 산언덕에 오르기도 했다. 이어 저녁에는 홍정자 회장이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만찬에 참석했다.  

  그리고 동창회 주선으로 1박 2일에 걸친 멕시코 관광에 참여했다. 짧은 일정이지만 멕시코 국경을 넘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가는 길에 아름다운 해변 도시 샌디에이고(San Diego)시내를 둘러보고 미국 서부의 해군기지와 거대하고 아름다운 요트 선착장들을 볼 수 있었다. 이어 2중으로 둘러쳐진 철조망을 바라보며 멕시코 국경을 버스로 넘었다. 철조망을 사이에 둔 두 나라의 풍경은 전연 달랐다. 멕시코 국경도시 티화나(Tijuana) 풍물시장에 들어서니 미국에서는 절차가 까다로워 쉽게 구입할 수 없는 비아그라를 비롯한 각종 약품들을 쌓아놓고 파는 약국들이 많았다. 우리는 바하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남으로 달려 멕시코의 휴양도시 엔시나다(Ensenada)에 도착했다. 이미 날이 저물고 있어서  저녁식사를 마친 뒤  엔시나다의 야경과 상점들을 둘러보았다.  

  이튿날 아침, 서둘러 L.A로 돌아오는 길에 오랜지카운티의 한 식당에서 ’74년 졸업한 동문들과 저녁식사 모임을 가졌다. 허은숙. 서윤경, 곽은희, 남옥화, 박미아, 김은숙, 김은심, 최명인, 김옥진, 유하혜 등 동문들은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만난 학생들로 나와는 관련이 깊은 동문들이었다. 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진 뒤 숙소로 돌아와 L.A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격려사를 경청하는 참석자들

 

 총회장소에서 기념 촬영(좌측에 선 사람이 숭의동문합창단 지휘자 이선경)

 

 

 '74년 졸업(재건 20기) 동문들과 함께(뒷쪽 왼쪽부터 허은숙,서윤경,김은희,최명인, 곽은희,박미아, 유재영 교장,본인, 김은심,남옥화,유하혜)

 

 

B. 시카고 숭의동문회

 

   22일 오전, 시카고 숭의동문회의 초청으로 시카고로 떠나는 날이다.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 공항에 도착하니 시카고 동문회 한인순(’64년 졸) 회장 등 임원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시카고숭의동문회는 창립된 지 얼마 안 되지만 의욕적으로 활동하며 우리를 분에 넘치도록 환대해 주었다. 시카고숭의동문회의 창립은 2001년 숭의 100주년 숭의동문회지 <빛보라>의 필진을 섭외하는 과정에서 시카고에 거주하는 오신애(’72년졸) 씨와 전화로 연결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오신애 씨는 대학을 졸업한 후 한국은행 비서실에서 근무하다 1977년 도미하여 칼빈신학대학을 졸업한 후 시카고 한인사회에서 남편과 함께 열심히 활동하면서 숭의 동문들과 자주 모임을 갖고 친목을 도모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L.A와 뉴욕에 숭의동문회가 조직되어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소식에 고무된 그는 서로 연락 가능한 동문들이 20여명 가까이 되므로 당장이라도 선배들과 협의하여 동문회를 조직할 수 있다고 알려왔다. 이후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2002년 창립총회를 열고 시카고 동문회를 발족시킨 것이다. 회장은 한인순(’64년 졸), 부회장 김은희(’65년졸), 총무는 오신애(’72년 졸), 감사는 황춘옥(’88년 졸)이었다.

  시카고동문회는 내가 남가주동문회의 초청을 받아 미국에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 시카고도 방문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해 왔다. 이미 9일간의 일정으로 남가주동문회와 약속이 되어 있고, 후임 교장의 학사 일정상 더 이상 일정을 늘이기가 어려운 점을 들어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랬더니 시카고동문회에서 남가주동문회에 요청하여 3일(만 이틀)을 넘겨받아 우리를 초청을 하였던 것이다.

 

  시카고에 도착한 날 점심은 회장단이 초대해 주었고, 저녁에는 동문이 경영하는 음식점에서 시카고 거주 동문들과 학창시절의 추억과 시카고에서의 생활 등을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헤어지는 것이 섭섭했던 우리는 오신애 총무의 집으로 자리를 옮겨 밤늦도록 차를 마시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환담을 나눴다.

  다음날 오전 우리는 시카고기독교방송국에 출연하여 숭의 100주년 역사와 이를 기념하는 행사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방송국장인 김순철 목사님은 동문회 황춘옥 감사의 남편이셨기에 우리를 방송에 출연시켰던 것이다. 이어 오세은(’61년졸) 동문의 남편인 이종민 목사님이 시무하는 레이크 뷰(Lake View) 한인교회를 방문하고 한때 세계 최고층 건물로 기록됐던 시어스타워(110층, 442m) 최고층 레스토랑에서 미시간 호수를 바라보며 우아한 점심을 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시카고 시내 관광에 참여했다.

  시카고는 미시간의 호반도시로 세계 유명 건축가들의 경연장이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건축으로 가득 찬 도시였다. 건축물의 디자인이 하나도 동일한 것이 없고, 스카이라인이 멋있게 보였다. 1871년 대화재는 시카고를 건축 도시로 거듭나게 했다. 시카고의 건축물을 제대로 보려면 건축협회의 시카고 강 보트 투어가 좋다고 하는데, 시간이 없는 우리는 미시간 호 주변에 있는 애들러 천문대 앞 광장에서 시카고 다운타운을 배경으로 멋진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현지 방송인터뷰를 위하여 시카고기독교방송국에 들러서(왼쪽부터 방송국장 김순철 목사님, 동창회 김은희(’65년졸, 재건 11회)부회장, 한인순 회장(’64년 졸, 재건 10회), 유재영 교장, 본인, 김순철 목사님은 감사인 황춘옥(’88년 졸)의 남편으로 시카고지역 복음화의 숨은 공로자로 활동 중)

 


  이튿날 우리는 100주년 기념식 때 본교에서 다시 만날 것을 다짐하면서 시카고동문회의 뜨거운 환송을 뒤로 하고 비행기 트랩에 올랐다.  

 

 

 

* 출처 :  졸저 <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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