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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수상 및 후보시

2011 서울신문 시 당선작 : 새장 - 강정애

by 혜강(惠江) 2011. 1. 3.

 

[서울신문 2011 신춘문예-시 당선작] ]

 

 

새장/강정애

 

 

나무 밑 떨어진 이파리들은 모두

누군가 한 번쯤 신었던 흔적이 있다

낡은 그늘과 구겨진 울음소리가 들어있는 이파리들

나무 한 그루를 데우기 위해

붉은 온도를 가졌던 모습이다

저녁의 노을이 모여드는 한 그루 단풍나무 새장

 

새들이 단풍나무에 가득 들어 있는 저녁 무렵

공중의 거처가 소란스럽다.

후렴은 땅에 버리는 불안한 노래가 빵빵하게 들어 있는

한 그루 새장이 걸려 있다

먼 곳을 날아와 제 무게를 버리는 새들

촘촘한 나뭇가지가 잡고 있는 직선의 평수 안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후드득, 떨어지는 새들의 발자국들

모든 소리를 다 비운 새들이 날아가는

열려 있으면서 또한 무성하게 닫혀 있는 새장

허공의 바람자물통이 달려 있는 저 집의

왁자한 방들

잎의 계절이 다 지고 먼 곳에서 도착한 바람이

그늘마저 둘둘 말아 가면

새들이 앉았던 자리마다 새의 혀들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늘이 사라진 자리에는 새의 혓바닥들만 부스럭거릴 것이다

모두 그늘을 접는 계절

간혹, 지붕 없는 새의 빈 집과

느슨한 바람들만 붙어 흔들리다 간다

한 그루 단풍나무가 제 가슴팍에 부리를 묻고 있는 저녁

후드득, 바닥에 떨어지는 나무의 귀

누군가 새들의 신발을 주워 책갈피에 넣는다.

 

 

 

심사평 --------------------------------------

살아있는 생각과 언어의 결

 

 응모작들이 기성 시단의 어떤 흐름에 깊이 감염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말과 말 사이의 공간이

너무 커서 완전한 독해가 어려운 시들이 적지 않았고, 유행하는 소재를 검증 없이 끌어다 쓰는 안

이한 시도 여럿 있었다. 감동을 생산하려는 의지보다 시를 잘 만들려는 욕망이 비대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시의 리얼리티에 대한 배려가 전반적으로 부족해 보였다.

 

▲ 시 부문 심사위원인 안도현(왼쪽) 시인과 백무산 시인이 지난달 16일 최종심사에 오른 작품을 놓고 마지막 조율을 하고 있다.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당선작을 결정하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신성희씨의 ‘신발들이 날아간다’는 가장 읽을 만한

시였다. ‘벌판에 버려진 신발이 하나 있다/그 외발을 벌판의 창문이라고 혼자서 불러보았다’는 첫

머리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다. 현란하고 강렬한 이미지들이 시 읽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다만 지나

치게 궤도를 이탈한 몇몇 불안한 표현에 꼬투리를 잡지 않을 수 없었다. 참 아깝다. 머지않아 좋은

시인으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강정애씨는 시적 대상을 객관화하면서도 충분히 자기 말을 할 줄 아는 시인이다. 당선작 ‘새장’은

생각과 언어의 결이 살아 있는 시다. 자칫하면 상투성의 늪으로 빠질 수 있는 나무나 새와 같은 소

재를 붙잡고 묘한 긴장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무엇보다 감정을 자제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대상

을 자기 안으로 바짝 잡아당겨 시를 쓰는 사람이라는 방증이다. 앞으로 서정의 지평을 크게 넓히는

시인으로 성장하리라 믿는다.

시 부문 본심 심사위원 백무산·안도현

예심 심시위원 유성호·손택수

 

 

당선소감 ---------------------------------------

생일날 찾아온 가슴뛰는 당선

 

 

 먼 곳의 숲을 쓸고 온 바람이 나무의 귓전에서 쉬고 있습니다. 식물들의 언어란 저렇듯 손가락을 귀에 후비듯 만들어지는지 나무줄기 끝 빈 고막이 키득거림으로 가득 차는 것을 봅니다. 물고기의

씨앗을 품은 구름이었을까요?

낮달을 돌아 우회하는 구름이었을까요?

언덕에 사다리를 걸쳐 놓고 몸을 접는 호수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는 군요.

 시는 왜 굳이 나에게 찾아와 단추가 되려 했는지 의문이 드는 날들이었습니다. 불안한 꿈은 늘 잠을 앞질러 가곤 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가끔 옥타비오 파스의 단추를 읽었습니다. 그때 시는 제 옆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뒤집힌 풍뎅이를 집어 바로 놓듯, 그동안 알고 지내던 시를 뒤집어 놓고 싶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웬 공부가 그리 바쁘냐는 핀잔도 간혹 있었습니다. 등으로 날아다니는 것들, 그러나 그 등 때문에 버둥거리고 있다는 것을 보는 마음을 간신히 찾았습니다. 참 고맙고 고마운 늦은 발견입니다.

“생일 축하해.”

생일 날 당선 소식을 접했습니다.

심사를 보신 백무산 선생님과 안도현 선생님의 축하 전화를 받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눈물과 함께 쓴 알약 같은 긴 시간들이 흰 눈발로 날리고 있었습니다. 그렇듯 당분간은 아프지 않은 시를 만날 것 같았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선생님들 앞에 큰절 올립니다. 그리고 내 심장과 같은 남편과 두 아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얼굴들을 다 말할 수 없지만 시의 첫 걸음마를 가르쳐주신 박제천 선생님. 우문(愚問)을 들고 가면 늘 현답(賢答)으로 지도해 주신 박해람 선생님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경운서당 학우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약력

-1959년 전북 장수 출생

-부산여자대학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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