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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무주 금강벼룻길 : 초록빛 천국… 오매, 내 마음도 초록물 들것네

by 혜강(惠江) 2010. 5. 12.

 

                           전북 무주 ‘금강벼룻길’

 

     초록빛 천국… 오매, 내 마음도 초록물 들것네 ∼

   

                                                김광일 기자

 

 

 

▲ 금강을 따라 이어지는 금강벼룻길은 고요한 강변의 신록으로 가득한 강변 오솔길이다. 숲도 강도 모두 연초록으로 물든 이 길에서는 꽃향기와 새소리까지 따라온다.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오감이 다 파르르 떨린다.
▲ 금강벼룻길에서 만난 으름꽃. 이 꽃 몇송이만으로도 주위는 온통 진한 꽃향기로 가득찬다.

  신록의 강을 따라 걷는 길에 이렇게 빼어난 아름다움이 감춰져 있었다니요. 전북 무주의 으름꽃 향기 짙은 금강변 벼룻길을 걷다가, 꽃을 떨군 벚나무들이 도열한 비포장 강변길을 걷다가 그만 연초록 신록과 물빛에 반해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 신록과 물빛 사이로 새소리와 꽃향기까지 겹쳐지고,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흙길의 탄력있는 감촉까지 더해지니 무엇 하나 부족할 것이 없었습니다.

  간혹 빼어난 아름다움이나 정취와 마주칠 때면 마음속에 담아둔 소중한 이들을 데려오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강변 길이야말로 길 가다 마주친 낯선 이들까지도 손목을 잡아 끌고픈 그런 길이었습니다. 걷기 열풍으로 전국 곳곳에 걷는 길이 만들어지고 있고, 그 길들을 수없이 걸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금강변의 이 길에 비길 만한 곳을 좀처럼 떠올릴 수 없었습니다. 늦봄이란 계절에 국한해 본다면, 이 길에 감히 어떤 길을 비교대상으로 올려놓을 수 있을까요.

  그 길은 한걸음에 다 이어지긴 하지만, 하나씩 나누어 보자면 모두 3개의 길입니다. 그 첫번째가 전북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에서 율소마을로 이어지는 이른바 ‘금강벼룻길’입니다. 고요한 강변의 벼랑을 깎아 놓여진 길은 한 폭의 풍경화 속으로 드는 길입니다. 신록이 물든 활엽수의 이파리들이 순한 초록으로 빛나고, 그 연초록이 고요한 강물에 반영됩니다. 두번째 길은 잠두마을의 강 건너편으로 이어진 탄력있는 숲길입니다. 이제 막 꽃을 떨구고 새 잎을 돋아내는 벚나무들이 도열한 그 길에 오르면 오른쪽 발 아래로 맑은 강물이 흘러갑니다. 오래 묵은 흙길의 탄력이 발바닥으로 느껴지고, 새소리가 귀를 간질입니다. 세번째 길은 용포다리를 지나 소이진 나루가 있었다던 대차리 마을의 강 건너편으로 이어지는 강변길입니다. 터덜터덜 걷는 길에서 콧노래가 절로 나왔습니다.

  그 길을 주르륵 다 이어보니 대략 15㎞쯤 됐습니다.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3곳의 길만 보자면 모두 2㎞ 남짓의 짧다면 짧은 길입니다. 다 이어서 길게 걸어도 좋겠고, 하나씩 짧게 구간별로 걸어도 좋겠습니다. 어떤 길에 오르던 오감(五感)이 다 파르르 떨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임을 장담합니다. 혹 너무 수다스럽다고 나무라지 않으실지요. 그러나 그 길을 걸어본다면 아마도 흔쾌하게 동갑하실 겁니다. 단, 조건이 있다면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되도록 일찍 찾아가셔야 한다는 것뿐입니다.
  

                         산따라 강물이 흐르고…

         강따라 샛길이 흐르고… 강따라 샛길이 흐르고…

 

 

▲ 강물을 끼고 있는 벼랑을 따라 눈부신 신록 속을 걷는 대소리의 금강벼룻길. 본래 굴암리의 대뜰에 물을 대기 위해 강변의 벼랑에 농수로를 놓으면서 생겨난 길이다. 이 길은 지금 으름꽃 향기로 가득하다.
▲ 잠두마을을 지나는 37번 국도 건너편의 강변 옛길. 보름 전쯤의 모습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이 길에 반해서 무주의 금강 옛길을 찾아나섰다. 지금은 이 길에 꽃은 졌지만 벚나무의 신록이 눈부시다.
▲ 잠두마을의 벚나무 강변길과 대차리의 옛 신작로길은 비포장이되 한때 버스가 다녔던 길이다. 이동수단으로써 길의 목적은 폐기됐지만, 탄력있는 비포장길은 걷기에 더없이 좋다.
  금강을 끼고 있는 무주의 옛길들은 다 그렇다. 길은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금강 위로 다리가 놓이면서 옛길은 한순간에 죄다 흐려지고 말았다. 산 깊은 무주에서 금강 물줄기는 제법 가파른 벼랑을 치고 간다. 옛길은 당연히 그 벼랑의 비탈면을 따라 마을과 마을을 이었다. 강물 위로 거대한 콘크리트 다리가 놓이자 동시에 옛길이 쓰임새를 잃고 만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본래 ‘이쪽과 저쪽을 잇는 것’이 길의 목적이라면 불편하기 짝이 없던 옛길은 마을사람들의 추억 속에나 남아있을 것이었다.

  금강의 옛길이 아름다운 것은 그 때문이다. 옛길은 차근차근 넓혀져 대로가 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이리저리 손을 대다 헝클어져 버리지도 않았다. 다만 어느 날 한순간에 강에 다리가 놓이면서 한꺼번에 송두리째 잊어지고 말았다. 마치 빙하기에 멸종된 공룡처럼 또는 켜켜이 지층 속에 고스란히 담긴 유물처럼…. 그렇게 옛길은 시간이 딱 멈춰버린 것처럼 시간 속에 잠겨버리고 말았다.

  한순간에 옛길을 잠가버린 ‘시간의 지층’을 알고 본다면, 무주의 금강변에서 옛길을 찾아가는 길은 사실 간단하기 짝이 없다. 지도를 펴고 금강을 건너는 다리를 다 지워버리면 강변의 마을과 마을사이에 모두 옛길이 있었다고 보면 된다. 그 옛길은 희미한 자취로 남아있으되, 경관은 무릎을 칠 정도오 빼어나다. 강변의 옛길이 워낙 거친 지형을 타고 넘기도 하거니와, 번듯한 아스팔트 도로가 최단거리를 고집하느라 훌쩍 지나쳐버리는 깊숙한 곳들의 아름다움을 그 길은 오롯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벼룻길이라함은 곧 ‘강변 벼랑길’을 뜻하는 말이리라. 벼룻길의 출발지점은 전북 무주군 부남면 소재지인 대소리. 면사무소 앞에서 교회 뒷길을 물어 콘크리트도로를 따라 구릉을 오르면 사과밭 곁에서 포장도로가 딱 끊긴다. 여기서부터 벼룻길은 시작이다. 들머리는 거칠다. 뾰족한 잔돌들이 밟히고, 나뭇가지와 넝쿨들이 슬금슬금 길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 숲을 헤치고 잠깐이면 철쭉이 만발한 제법 뚜렷한 길이다.

  왼쪽으로 금강을 끼고 산비탈의 좁은 소로를 따라 걷는 길이다. 원래 이 길은 벼룻길 너머 굴암마을의 대뜰에 물을 대기 위해서 일제강점기에 놓았던 농수로였다고 했다. 농수로는 곧 길이 됐다. 율소마을 앞의 대티교가 놓이기 전까지 율소마을의 주민들이 부남면 소재지로 가려면 이 길밖에 없었다. 주민들은 대소리에 서는 오일장을 보러 이 길을 걸었을 것이고, 아이들도 이 길로 면소재지의 학교에 다녔을 것이다.

  벼룻길은 고작 1.2㎞ 남짓으로 짧아서 아쉬운 길이다. 그러나 그 길에서 몇번을 멈춰섰는지 셀 수조차 없다. 길에 들어서자마자 코끝에 짙은 꽃향기가 확 풍긴다. 으름덩굴에서 피워올린 몇송이의 꽃이 어찌 이리도 진한 향기를 내뿜는지. 이 길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강변의 나무들이 온통 피워올린 신록이다. 멈춰서서 온 길을 뒤돌아볼라치면 나무들의 신록이 그대로 강물에 반영돼 선경을 펼쳐보인다.

  벼룻길 중간을 넘어서면 강변에 불쑥 바위가 서 있다. 이름하여 ‘각시바위’다.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이른 새벽 아무도 몰래 집을 나온 며느리가 앉아 기도를 하자 바위가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다가 시어머니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멈추고 말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벼룻길은 각시바위 아래의 10여m 길이의 동굴을 지난다. 벼룻길을 막아선 바위를 정으로 쪼아서 낸 동굴이라 했다. 바위를 뚫고 길을 내는 것은 강물만이 아니다. 타들어가는 논바닥을 보다못한 농민들의 우직하고 고된 노동도 능히 바위를 뚫어 길을 낸다.

  벼룻길이 끝나는 밤소마을을 지나면 대티교 삼거리다. 여기서 직진해서 상굴교를 지날 때까지는 도리없이 아스팔트 포장도로에 올라야 한다. 상굴교를 건너서 굴암슈퍼 쪽에서 다시 강변으로 내려선다. 강을 건넜으니 이제 강은 오른쪽으로 따라온다. 이쪽의 강변길은 강과 같은 높이로 딱 붙어서 지난다.

  여기서부터는 햇볕이 그려내는 세상이다. 굴암리를 지나온 금강이 황새목 절벽을 만나서 이룬 큰 소(沼)를 지나고, 다시 강물이 노고산을 만나 빚어낸 깎아지른 석벽도 지나면 너른 강변이 펼쳐진다. 강변에는 새 잎을 환하게 내놓은 버드나무들이 햇빛에 반짝이는 강물과 한데 어우러진다.

  잠두교 교각 아래를 지나서 잠두마을로 접어들면 두번째 길이 기다리고 있다. 사실 2주 전에 무주에서 이 길을 가장 먼저 만났다. 충남 금산의 오지마을로 들었다가 우연히 마주친 이들로부터 ‘잠두마을의 옛길이 좋다’는 귀띔에 찾아나선 길이었다. 그 길의 들머리에 섰을 때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신록과 벚꽃이 어우러진 그 길의 범상찮은 아름다움이라니…. 끝간 데 없이 길을 따라 심어진 벚나무마다 꽃이 흐드러지게 매달려 있었다. 그 길에서는 한발짝 한발짝을 내딛기가 아쉬웠을 정도였다. 무주의 다른 강변길을 찾아나선 것도 따지고 보면 그 길의 아름다움에 반해서였다.

  그리고 2주가 지난 뒤 찾은 강변 벚나무길은 이번에는 온통 신록으로 칠해졌다.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무주와 금산을 잇는 번듯한 비포장 국도였으나 잠두교가 놓이면서 잊어진 길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마저 가릴 수는 없었으니 해마다 벚꽃이 피는 봄날이면 알음알음 사람들이 찾아든다.

  벚나무 길에서 다시 아스팔트로 내려서서 새로 놓인 용포대교 교각 아래를 지나면 옛 용포교에 닿는다. 여기서 다리를 건너지 말고 콘크리트도로를 따라 200m쯤 가다보면 차량 교행을 위해 도로를 넓혀놓은 곳이 두 곳 있다. 두번째 폭을 넓힌 콘크리트도로 바로 위쪽으로 희미하게 길의 자취가 남아있다. 여기가 바로 세번째 강변길이다. 일제강점기이던 1938년에 용포교가 놓이면서 잊어진 곳이다. 강 건너편으로 널찍한 포장도로가 나고, 다리가 놓여 휙휙 건너다니니 옹색한 강변길은 아무데도 쓸모가 없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길은 갈수록 또렷해진다.

  이 구간의 강변길은 강 건너편 길에 포장공사가 시작돼 다른 두 곳의 길에 비해 정취가 덜한 편이다. 그러나 발 아래로 내려다보는 강물과 숲에 집중해서 걷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모자람이 없다. 강 건너 멀리 내다보면 너른 들녘과 사과나무 과수원들이 펼쳐져 있어 색다른 맛을 주기도 한다. 게다가 대차리에 드는 강변에 합수머리가 있어 강물의 흐름이 훨씬 더 힘차다.

  마을 주민들은 이전에는 금산에서 무주로 가던 버스가 잠두마을 벚꽃길을 지나서 이쪽 강변길을 거쳐 배에 올라탄 후 대차리 마을의 소이진 나루터로 건너가 무주로 향했다고 했다. 지금은 자취마저 희미한 오솔길이라 믿어지지 않지만, 그때만 해도 버스가 다닐 정도의 신작로였던 셈이다. 버스 운행이 끊긴 뒤에도 한동안 강을 건너는 섶다리가 놓여 있었지만, 그마저도 다 쓸려내려가 버렸고 지금은 시멘트로 지은 낡은 세월교만 남아있다. 부남면 대소리에서 출발해 옛길을 따라 이렇게 다 걸어서 세월교를 건너 대차리로 들면 15㎞의 강변길은 아쉽게도 끝이 난다.

가는 길

  무주의 금강변 길을 찾아가려면 무주군 부남면 소재지인 대소리로 가는 것이 순서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 비룡갈림목에서 호남고속도로 지선방면으로 나간 뒤 산내분기점에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로 갈아탄다. 금산나들목으로 내려선 뒤 금산 방면으로 가다가 우체국 사거리에서 중앙로, 종합운동장 방면으로 죄회전하여 홍도삼거리에서 무주 방면으로 다시 좌회전해 8㎞쯤 가면 부남면 대소리다. 여기서부터 강변을 따라 걷는 15㎞ 남짓의 길이 시작된다.

 

 

<출처> 2010. 5. 12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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