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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의 도시, 리버풀, 그들이 비틀스를 되살려냈다

by 혜강(惠江) 2009. 12. 2.

 

           

                                         비틀스의 도시, 리버풀
 
               그들이 비틀스를 되살려냈다

 
           리버풀 시민, 끊임없이 새 상품 만들며 매니아 유혹… 매년 관광객 늘어
           비틀스 스토리·매튜 스트리트·캐번클럽… 도시 전체가 비틀스 테마파크
 
  지난 10월 23일 오후 영국 리버풀 외곽의 어느 주택가. 인적이 드문 데다 먹구름도 잔뜩
끼어 으스스한 기분마저 드는 이곳에 30명 남짓한 이들이 모여들었다. 콜롬비아, 캐나다,
미국, 영국 등  다양한 출신에 어린 아이부터 중년 여성까지 연령대도 천차만별이라 공통
을 종잡기 어렵다. 붉은 벽돌집이 줄지어 선 이 거리를 걷다 까만 문에 ‘12’라 쓰인 집에
멈춰선 이들은 짧게 탄성을 내지르곤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평범하고 낡은 이 주택의 주소는 리버풀 웨이버트리 아널드 그로브 12번지.  1960년대
악으로 전세계를 뒤흔들었던 비틀스의 멤버 조지 해리슨이 태어난 곳이다. 당연히, 이
곳을 찾은 30여명에게도 공통점은 있다. 바로 비틀매니아(beatlemania)의 후예들이라는
것.


  인구 45만명의 크지 않은 항구도시 리버풀은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실제로 리버풀 거리를 걷다 보면 ‘페니 레인’과
‘스트로베리 필즈’는 물론 ‘하드 데이스 나이트’ 호텔, ‘엘리노어 릭비’ 호텔, ‘러버 솔’ 술집
등 비틀스 노래나 앨범 제목을 딴 곳들을 마주칠 수 있다. 꼭 그들의 노래 속을 걷는 것 같
다.

  그 때문일까. 조지 해리슨이 태어난 곳을 비롯해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가 어린 시절 살
았던 집까지, 아무리 평범해 보이는 곳도 리버풀에서는 1년에 수만 명이 찾는 명소가 된다.
비틀스 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 ‘비틀스 스토리’는 12.5파운드(약 2만5000원)라는 고가의
켓에도 불구, 작년 한 해에만 18만8000여명이 이곳을 찾았다. 리버풀의 한 연구기관에
르면 지난 2005년 비틀스 때문에 리버풀을 찾은 관광객 수가 60만명이며 2000만파운드
(392억여원) 규모의 관광수익을 창출했다.

  그러나 단지 비틀스의 고향이라고 해서 리버풀을 찾는 이가 많다고 생각해선 곤란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그들의 흔적을 느끼기 위해 리버풀을 찾는 이는 거의 없었다. 잊혀
지던 그들의 흔적을 되살려 도시 전체를 ‘비틀스 테마파크’로 바꾼 건 바로 리버풀 시민들
이다.

  10월 24일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로 붐볐던 매튜 스트리트는 비틀스 테마파크의 핵심이
다. 1961년 당시 무명밴드였던 비틀스가 처음에 단돈 5파운드를 받고 공연했던 ‘캐번클럽
(the cavern club)’을 중심으로, 거리 곳곳엔 비틀스의 흔적이 가득했다. 1997년 세워진
존 레넌의 동상이 캐번클럽 맞은편에 삐딱하게 서서 관광객들을 지켜보고 있었고 존 레넌
이 아르바이트를 했던 건물엔 ‘레넌 바’가 생겨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동상 옆 벤치에
앉아 귀에 이어폰을 꽂고 캐번클럽을 바라보던 멕시코 여성 산티 델리오(Shanti Delrio·24)
씨는 “비틀스가 공연했던 이곳 거리에 내가 있다는 게 믿기질 않는다”며 “제일 좋아하는
 ‘애비 로드’ 앨범을 들으며 여기 세 시간째 앉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비틀매니아들의 꿈은 매튜 스트리트 입구에 위치한 ‘하드 데이스 나이트
호텔’에서 하루를 묵는 것이다. 리버풀 시의회의 지원하에 지어져 작년 2월 문을 연 이곳은
전세계 유일한 비틀스 테마 호텔. 로비에 들어서면 비틀스 음악이 흘러나오고 계단을 따라
비틀스의 희귀 사진이 걸려있다. 닐 생키(Neil Sankey) 호텔 매니저는 “미국, 일본, 네덜란
드, 이탈리아 등 외국인 숙박객이 절반쯤 된다”며 “이곳은 최근 리버풀이 비틀스 관광문화
에 얼마나 관심을 쏟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 매튜 스트리트 입구에 있는 ‘하드 데이스 나이트 호텔’은 작년 2월 문을 연, 세계 유일의 비틀스 테마호텔이다. 방마다 비틀스 멤버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비틀스 스토리’ 5년 새 관람객 50% 증가

  리버풀에서 비틀스 관광산업이 시작된 것은 ‘비틀스 스토리’가 생긴 1990년쯤이다. 그때
부터 20년 가까이 흘렀지만 비틀스를 위해 리버풀을 찾는 관광객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해서 늘고 있는 추세다. 끊임없이 비틀스 관련 관광상품을 만들어내는 리버풀의 능력
때문이다.

  비틀스 스토리는 지난 6월 본관에서 1㎞쯤 떨어진 곳에 1000㎡ 규모의 분관을 세웠다.
1024일 찾은 이곳에선 존 레넌의 첫 번째 아내 신시아(Cynthia)와 아들 줄리안(Julian)
소장품을 전시한 ‘하얀 깃털(white feather)’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관 옆엔 40석
규모의 작은 극장이 있다.

  중년 관광객 10여명을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이 까만 입체안경을 나눠줬다. 영화 제
목은 ‘Fab4D’. 비틀스의 별명 ‘전설적인 4인방(fab 4)’을 딴 제목이다. 리버풀의 한 청년이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내용의 이 단편 애니메이션은 비틀스 노래들을 따라 흐르는 ‘4차
여정’이었다. ‘Yellow Submarine’ 노래가 나오며 노란 잠수함이 물속에 잠기자 관람석
앞에서 물이 튀었고 실제 비누거품이 눈앞에 아롱거렸다. 앨범 제목을 딴 페퍼 상사가 모는
버스가 도로를 질주할 땐 관람석이 땅으로 푹 꺼졌다. 이 영화를 관람한 러시아인 알렉스
멜레브(Alex Chemelv·31)씨는 “리버풀에 올 때마다 새로운 비틀스 관광상품이 있다”며
리버풀에 온 게 이번이 벌써 네 번째”라고 했다.

‘비틀스 성지순례’의 필수코스로 자리잡은 리버풀은 이렇게 한 번 왔던 관광객을 새로운 비
스 아이템으로 다시 유혹했다. 비틀스 스토리의 경우 2004년 12만명이던 관람객 수가
2007년 15만명, 작년 18만명으로 지난 5년간 50% 이상 늘었다. 제리 골드만(Jerry Goldm-
an) 관장은 “개관 초기 9명이었던 직원 수가 지금은 91명”이라며 “리버풀의 비틀스 산업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 꼭 1960년대로 돌아온 것 같다. 지난 10월 24일 저녁 리버풀 캐번클럽에선 비틀스와 똑같은 복장을 한 트리뷰트 밴드가 공연을 펼쳤다. 모든 이들이 한 목소리로 그들의 노래를 따라불렀다.
 
‘제2의 비틀스’ 꿈꾸는 거리 악사들의 도시

  물론 ‘비틀스 관광산업’의 핵심은 바로 비틀스 음악이다. 1960년대 하나의 거대한 사회현
상으로 나타난 그들 음악의 힘은 세대를 넘어서 지금까지도 건재하다. 실제로 리버풀에서
만난 관광객들은 연령은 물론 좋아하는 노래도 모두 달랐다. 아버지 손을 잡고 비틀스 스토
리를 찾은 토드 데이비드(Todd David·9·영국)군은 ‘help’를, 비틀스 투어버스인 ‘매지컬 미
스터리 투어’에서 마주친 20대 여성 소피 해밀턴(Sophie Hamilton·21·캐나다)씨는 ‘Yellow Submarine’을, 미국 시카고에서 온 50대 히긴스 부부는 ‘Hey Jude’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
다.

  이처럼 음악의 힘을 잘 아는 리버풀에선 저녁이 되면 거리 곳곳에 음악이 울려퍼진다. 매
스트리트에서 통기타 하나 들고 거리에서 공연하는 톰 맥피(Tom Macfie·21)씨는 “유럽
문화수도로 지정된 작년엔 거의 365일 내내 음악 축제가 열렸다”며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주톤스(the Zutons)나 레이디트론(Ladytron) 모두 리버풀 출신”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리
비풀은 기네스북이 지정한 ‘팝의 수도’이기도 하다. 같은 규모의 도시 중 제일 많은 1위곡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제2의 비틀스’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도 진행되고 있었다. 25일 오후, 비틀스가 2년간 274
번 공연하며 세계에 유명세를 떨친 캐번클럽에선 앳된 얼굴의 소년들이 마이크 내어리
(Mike Nairy)씨의 기타 안주에 맞춰 비틀스 노래 ‘I feel fine’을 따라 불렀다. 지난 10월 19일
부터 열린 ‘록 스쿨(Rock School)’ 10주 과정에 참여한 학생들이다. 과정이 모두 끝난 뒤엔
비틀스뿐 아니라 롤링 스톤스, 퀸, 엘튼 존, 오아시스 등 내로라 하는 밴드들이 연주한 무대
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날 ‘walking’이라는 자작곡을 선보였던 매튜 브린(Matth-
ew Breen·14)군이 말했다.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클럽인 이곳에서 노래를 배운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영감을 주는
일이에요. 제 꿈은 물론 제2의 비틀스가 되는 겁니다.”  


/ 리버풀(영국)= 김우성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raharu@chosun.com

 

      <출처> 2009. 11. 30 / 주간조선 20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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