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틀스의 도시, 리버풀
- 그들이 비틀스를 되살려냈다
- 리버풀 시민, 끊임없이 새 상품 만들며 매니아 유혹… 매년 관광객 늘어
비틀스 스토리·매튜 스트리트·캐번클럽… 도시 전체가 비틀스 테마파크
- 지난 10월 23일 오후 영국 리버풀 외곽의 어느 주택가. 인적이 드문 데다 먹구름도 잔뜩
- 끼어 으스스한 기분마저 드는 이곳에 30명 남짓한 이들이 모여들었다. 콜롬비아, 캐나다,
- 미국, 영국 등 다양한 출신에 어린 아이부터 중년 여성까지 연령대도 천차만별이라 공통
- 점을 종잡기 어렵다. 붉은 벽돌집이 줄지어 선 이 거리를 걷다 까만 문에 ‘12’라 쓰인 집에
- 멈춰선 이들은 짧게 탄성을 내지르곤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평범하고 낡은 이 주택의 주소는 리버풀 웨이버트리 아널드 그로브 12번지. 1960년대 - 음악으로 전세계를 뒤흔들었던 비틀스의 멤버 조지 해리슨이 태어난 곳이다. 당연히, 이
- 곳을 찾은 30여명에게도 공통점은 있다. 바로 비틀매니아(beatlemania)의 후예들이라는
- 것.
인구 45만명의 크지 않은 항구도시 리버풀은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실제로 리버풀 거리를 걷다 보면 ‘페니 레인’과
- ‘스트로베리 필즈’는 물론 ‘하드 데이스 나이트’ 호텔, ‘엘리노어 릭비’ 호텔, ‘러버 솔’ 술집
- 등 비틀스 노래나 앨범 제목을 딴 곳들을 마주칠 수 있다. 꼭 그들의 노래 속을 걷는 것 같
- 다.
그 때문일까. 조지 해리슨이 태어난 곳을 비롯해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가 어린 시절 살 - 았던 집까지, 아무리 평범해 보이는 곳도 리버풀에서는 1년에 수만 명이 찾는 명소가 된다.
- 비틀스 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 ‘비틀스 스토리’는 12.5파운드(약 2만5000원)라는 고가의
- 티켓에도 불구, 작년 한 해에만 18만8000여명이 이곳을 찾았다. 리버풀의 한 연구기관에
- 따르면 지난 2005년 비틀스 때문에 리버풀을 찾은 관광객 수가 60만명이며 2000만파운드
- (392억여원) 규모의 관광수익을 창출했다.
그러나 단지 비틀스의 고향이라고 해서 리버풀을 찾는 이가 많다고 생각해선 곤란하다. - 1980년대까지만 해도 그들의 흔적을 느끼기 위해 리버풀을 찾는 이는 거의 없었다. 잊혀
- 지던 그들의 흔적을 되살려 도시 전체를 ‘비틀스 테마파크’로 바꾼 건 바로 리버풀 시민들
- 이다.
10월 24일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로 붐볐던 매튜 스트리트는 비틀스 테마파크의 핵심이 - 다. 1961년 당시 무명밴드였던 비틀스가 처음에 단돈 5파운드를 받고 공연했던 ‘캐번클럽
- (the cavern club)’을 중심으로, 거리 곳곳엔 비틀스의 흔적이 가득했다. 1997년 세워진
- 존 레넌의 동상이 캐번클럽 맞은편에 삐딱하게 서서 관광객들을 지켜보고 있었고 존 레넌
- 이 아르바이트를 했던 건물엔 ‘레넌 바’가 생겨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동상 옆 벤치에
- 앉아 귀에 이어폰을 꽂고 캐번클럽을 바라보던 멕시코 여성 산티 델리오(Shanti Delrio·24)
- 씨는 “비틀스가 공연했던 이곳 거리에 내가 있다는 게 믿기질 않는다”며 “제일 좋아하는
- ‘애비 로드’ 앨범을 들으며 여기 세 시간째 앉아 있다”고 말했다.
- 그러나 무엇보다 비틀매니아들의 꿈은 매튜 스트리트 입구에 위치한 ‘하드 데이스 나이트
- 호텔’에서 하루를 묵는 것이다. 리버풀 시의회의 지원하에 지어져 작년 2월 문을 연 이곳은
- 전세계 유일한 비틀스 테마 호텔. 로비에 들어서면 비틀스 음악이 흘러나오고 계단을 따라
- 비틀스의 희귀 사진이 걸려있다. 닐 생키(Neil Sankey) 호텔 매니저는 “미국, 일본, 네덜란
- 드, 이탈리아 등 외국인 숙박객이 절반쯤 된다”며 “이곳은 최근 리버풀이 비틀스 관광문화
- 에 얼마나 관심을 쏟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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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튜 스트리트 입구에 있는 ‘하드 데이스 나이트 호텔’은 작년 2월 문을 연, 세계 유일의 비틀스 테마호텔이다. 방마다 비틀스 멤버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 '비틀스 스토리’ 5년 새 관람객 50% 증가
리버풀에서 비틀스 관광산업이 시작된 것은 ‘비틀스 스토리’가 생긴 1990년쯤이다. 그때 - 부터 20년 가까이 흘렀지만 비틀스를 위해 리버풀을 찾는 관광객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 계속해서 늘고 있는 추세다. 끊임없이 비틀스 관련 관광상품을 만들어내는 리버풀의 능력
- 때문이다.
비틀스 스토리는 지난 6월 본관에서 1㎞쯤 떨어진 곳에 1000㎡ 규모의 분관을 세웠다. - 10월 24일 찾은 이곳에선 존 레넌의 첫 번째 아내 신시아(Cynthia)와 아들 줄리안(Julian)
- 의 개인 소장품을 전시한 ‘하얀 깃털(white feather)’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관 옆엔 40석
- 규모의 작은 극장이 있다.
중년 관광객 10여명을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이 까만 입체안경을 나눠줬다. 영화 제 - 목은 ‘Fab4D’. 비틀스의 별명 ‘전설적인 4인방(fab 4)’을 딴 제목이다. 리버풀의 한 청년이
-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내용의 이 단편 애니메이션은 비틀스 노래들을 따라 흐르는 ‘4차
- 원 여정’이었다. ‘Yellow Submarine’ 노래가 나오며 노란 잠수함이 물속에 잠기자 관람석
- 앞에서 물이 튀었고 실제 비누거품이 눈앞에 아롱거렸다. 앨범 제목을 딴 페퍼 상사가 모는
- 버스가 도로를 질주할 땐 관람석이 땅으로 푹 꺼졌다. 이 영화를 관람한 러시아인 알렉스
- 멜레브(Alex Chemelv·31)씨는 “리버풀에 올 때마다 새로운 비틀스 관광상품이 있다”며
- 리버풀에 온 게 이번이 벌써 네 번째”라고 했다.
‘비틀스 성지순례’의 필수코스로 자리잡은 리버풀은 이렇게 한 번 왔던 관광객을 새로운 비 - 틀스 아이템으로 다시 유혹했다. 비틀스 스토리의 경우 2004년 12만명이던 관람객 수가
- 2007년 15만명, 작년 18만명으로 지난 5년간 50% 이상 늘었다. 제리 골드만(Jerry Goldm-
- an) 관장은 “개관 초기 9명이었던 직원 수가 지금은 91명”이라며 “리버풀의 비틀스 산업은
-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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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꼭 1960년대로 돌아온 것 같다. 지난 10월 24일 저녁 리버풀 캐번클럽에선 비틀스와 똑같은 복장을 한 트리뷰트 밴드가 공연을 펼쳤다. 모든 이들이 한 목소리로 그들의 노래를 따라불렀다.
- ‘제2의 비틀스’ 꿈꾸는 거리 악사들의 도시
물론 ‘비틀스 관광산업’의 핵심은 바로 비틀스 음악이다. 1960년대 하나의 거대한 사회현 - 상으로 나타난 그들 음악의 힘은 세대를 넘어서 지금까지도 건재하다. 실제로 리버풀에서
- 만난 관광객들은 연령은 물론 좋아하는 노래도 모두 달랐다. 아버지 손을 잡고 비틀스 스토
- 리를 찾은 토드 데이비드(Todd David·9·영국)군은 ‘help’를, 비틀스 투어버스인 ‘매지컬 미
- 스터리 투어’에서 마주친 20대 여성 소피 해밀턴(Sophie Hamilton·21·캐나다)씨는 ‘Yellow Submarine’을, 미국 시카고에서 온 50대 히긴스 부부는 ‘Hey Jude’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
- 다.
이처럼 음악의 힘을 잘 아는 리버풀에선 저녁이 되면 거리 곳곳에 음악이 울려퍼진다. 매 - 튜 스트리트에서 통기타 하나 들고 거리에서 공연하는 톰 맥피(Tom Macfie·21)씨는 “유럽
- 문화수도로 지정된 작년엔 거의 365일 내내 음악 축제가 열렸다”며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 주톤스(the Zutons)나 레이디트론(Ladytron) 모두 리버풀 출신”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리
- 비풀은 기네스북이 지정한 ‘팝의 수도’이기도 하다. 같은 규모의 도시 중 제일 많은 1위곡을
- 배출했기 때문이다.
- ‘제2의 비틀스’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도 진행되고 있었다. 25일 오후, 비틀스가 2년간 274
- 번 공연하며 세계에 유명세를 떨친 캐번클럽에선 앳된 얼굴의 소년들이 마이크 내어리
- (Mike Nairy)씨의 기타 안주에 맞춰 비틀스 노래 ‘I feel fine’을 따라 불렀다. 지난 10월 19일
- 부터 열린 ‘록 스쿨(Rock School)’ 10주 과정에 참여한 학생들이다. 과정이 모두 끝난 뒤엔
- 비틀스뿐 아니라 롤링 스톤스, 퀸, 엘튼 존, 오아시스 등 내로라 하는 밴드들이 연주한 무대
- 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날 ‘walking’이라는 자작곡을 선보였던 매튜 브린(Matth-
- ew Breen·14)군이 말했다.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클럽인 이곳에서 노래를 배운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영감을 주는 - 일이에요. 제 꿈은 물론 제2의 비틀스가 되는 겁니다.”
/ 리버풀(영국)= 김우성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raharu@chosun.com
<출처> 2009. 11. 30 / 주간조선 20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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