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44) : 시나이반도
광야인 '엘림/신광야/르비딤'을 통과하다
- 만나와 메추라기, 아멜렉과의 전투 사건을 생각하다 -
글·사진 남상학
*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지나간 길(엘림 근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목을 축인 후에는 걸어서 엘림에 다다르게 된다. 엘림은 수에즈 운하에서 290㎞, 마라에서 남쪽으로 230㎞ 떨어진 곳으로, 아흐마드 함디 터널에서는 117Km 떨어진 곳이다. 엘림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당시 두 번째로 진을 쳤던 곳이다.
출애굽기 15장 27절에 보면,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먼 광야길을 걷는 사람에게 타들어가는 목을 축일 수 있는 식수가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여기는 적절한 물을 공급해주는 담수샘이 있고, 골짜기를 따라 이어진 멋있는 협곡과 종려나무들이 그늘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지금은 12개의 샘 중 7개가 남아 있으나 종려나무는 찾아볼 수가 없다.
신(zin) 광야 - 만나와 메추라기의 기적
엘림에 장막을 쳤던 이스라엘 백성은 그 후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러 진을 쳤다.(출 16:1, 민 33:11) 이곳에 진을 쳤을 때는 애굽에서 나온 지 2월 15일이 되었으므로 식량은 바닥이 났다.(출16:1)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식량이 떨어지자 굶주린 지 오래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출 16:3)
모세가 한 일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므로,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는 것은 그 일을 시키신 하나님께 대한 원망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굶주린 백성들은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므로 모세를 원망하는 것은 결국 신앙의 문제가 되고 영적인 문제가 되는 것이다. 간혹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이해되지 않을 사건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원망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해서 행하시는 분이므로, 우리의 지식의 한계를 생각하고 겸손한 태도, 절대 신뢰하는 마음으로 그 분이 행하시는 일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늘에서 양식-저녁과 아침에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약속하신 대로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는가를 시험하기 위함이었다.(출16:1-36) 공평한 분배, 탐욕을 버릴 것, 근면할 것, 특히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할 것 등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이 날에는 일하지 말고 그 전날에 모든 것을 예비해 두어야만 했다. 하나님께서 이같이 백성들을 시험한 것은 십계명의 율법을 공포하기에 앞서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의 말에 순종하는 자가 되도록 훈련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만나를 통한 영적 훈련을 시키고 계신다.
이 만나의 축복은 가나안 지경에 이르기까지 40년간 계속되었는데 40년 동안 끊임없이 내린 만나는 생명의 떡인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험난한 상황 속에서도 때를 따라 필요를 채워주시고, 선택한 백성을 끝까지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된다.
* 만나와 메추라기의 기적을 체험한 신광야 지역은 모래와 바위뿐이다.
르비딤 -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승리
다음 목표지점은 르비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출애굽기의 여정을 따라가는 길이다. 우리를 태운 전용버스는 르비딤을 향해 달리다가 잠시 멈춰섰다. 기념사진을 찍고 오라는 것이다. 차가 멈춰선 길가 척박한 땅에 홀로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싯딤나무라고 했다.
싯딤나무는 구약성서에 몇 차례 보이는 나무로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일종의 아가시아 나무라고 한다. 재질이 견고하고 내구성이 강해 조각목으로 쓰이는데, 실제로 법궤의 자료로 쓰였다. 지팡이나 연장의 손잡이로, 화력이 좋아 땔감으로도 적합하다고 한다. 가시 사이로 난 잎은 낙타와 양의 좋은 먹이가 되기도 한다. 이 광야 한 복판에 저토록 큰 나무로 자라기까지는 얼마나 깊게 뿌리를 박아야 할까? 신앙도 마찬가지이리라. 시나이반도를 여행하며 자주 만나는 싯딤나무를 보며 르비딤으로 다시 향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다”(출 17:1)고 출애굽기는 기록하고 있다. 르비딤은 신 광야에서 시내산으로 가는 도중에 일행이 머물렀던 곳이다.
시야에 ‘파이란’이란 글씨가 선명하게 쓰인 도로표지판이 들어왔다. 이곳에서 르비딤 광야를 ‘파이란 광야’로도 부른다고 한다. 르비딤도 역시 광야 지대이지만 특히 이곳은 양쪽으로 험한 바위산을 거느리고 좁은 계곡으로 길게 뻗어 있는 것이 다른 곳과는 다르다. 또 이곳은 보기 드물게 4㎞에 달하는 큰 오아시스를 품고 있는 곳이다. 시나이 반도에서 가장 큰 오아시스라고 한다.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 광야의 계곡 한 모퉁이에 이런 오아시스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성서의 기록으로 볼 때 르비딤은 두개의 커다란 사건과 관련이 있다. 반석을 쳐서 물이 나오게 하셨고, 또한 아멜렉 족속의 공격을 물리치도록 도와준 사건이다. 뜨거운 광야인지라 르비딤에 장막을 쳤을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실 물이 없어 모세를 원망하고 다퉜다. 이에 모세가 호렙산으로 올라가서 반석을 쳐서 물이 나게 하여 백성들의 갈증을 풀어준 것이다. 그래서 이곳의 이름을 ‘시험하다’라는 뜻의 ‘맛사’ 또는 ‘다툰다’라는 뜻의 ‘므리바’로 부르게 되었다.(출 17:1-7, 신 6:16, 9:22)
이 지역에서의 또 하나 중요한 사건은 애굽을 떠나온 이후 광야 생활 최초로 이민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사건이다.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싸우고 지도자 모세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손을 들면 이기는 싸움이었다. 모세와 아론과 훌이 함께 산에 올라 모세의 동역자인 아론과 훌은 돌을 쌀아 그 위에 모세를 높이 앉게 하고,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도록 양쪽에서 모세의 손을 들어 올렸다. 그 결과로 아멜렉과의 전쟁에서 이기게 되었다. 본디 아말렉 족속은 약탈을 일삼는 고대 유목민으로 막강한 체력을 가졌고, 싸움에 능한 민족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이곳 지형에 능하여 그들이 산 양등성이에서 공격하면 협곡으로 지나가는 이스라엘은 전멸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에 모세가 이곳에 아말렉과 싸워 승리한 기념으로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여호와는 나의 깃발)라 하였다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다. (출17:8-16)
우리 일행은 온통 바위뿐인 가파른 경사로를 따라 르비딤 오아시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 양팔을 들고 지도자 마치 모세나 된 것처럼 포즈를 취해보기도 했다. 모세가 손을 들고 서 있던 곳에 모세 기념 교회가 세워졌는데 지금은 다 무너지고 터만 남아 있다. 기도하는 지도자 모세와 그의 동역자인 아론과 훌, 그리고 직접 전투에 임한 여호수아와 그의 군대가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 아래 한데 뭉쳐 승리하는 장면은 연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통쾌한 일이다.
이 외에 르비딤에서는 모세는 장인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방문을 받는다. 여기서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조언에 따라 온 백성 가운데 재덕이 겸비한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진실 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택하여 천부장, 백부장, 십부장을 택하여 작은 사건은 스스로 재판하도록 맡기는 장면이 나온다.(출:18:21-22) 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70인의 장로를 세웠던 것도 르비딤이었다.(민 11:1-25)
르비딤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공동 사역의 원리에 대한 교훈을 얻게 된다. 적합한 자를 선택하여 일을 분담시킴으로써 더욱 크고 의로운 일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이것이 결국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는가. 이와 같은 공동 사역의 원리는 오늘날 주의 사역에 힘쓰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혼자 하기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여럿이 함께 힘쓰는 모습을 주님께서는 기뻐하실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 교훈을 실천이라도 하듯이 우리는 돌로 뒤덮인 미끄러지기 쉬운 산길을 서로 손을 잡고 부축하며 내려왔다. 언제 우리가 온 것을 알았는지 베두인 소녀가 토속품을 들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만 되면 이곳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르비딤을 떠나 다음 행선지인 시내산으로 향했다.
* 사막 가운데 홀로 서있는 싯딤나무
* 르비딤 오아시스, 대추야자 나무가 오아시스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 르비딤 골짜기에서 만나는 암석들
* 르비딤 산 언덕을 오르는 일행의 모습
* 르비딤 산 언덕에서 마치 모세나 된 것처럼 양팔을 들고 포즈를 취하다.
*이곳에서도 베두인 여인이 물건을 팔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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