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수상 및 후보시

2009 경향신춘문예 당선시 : 맆 피쉬 / 양수덕

by 혜강(惠江) 2009. 1. 1.

 

                        <2009 경향 신춘문예 당선시>

 

                           

                              맆 피쉬 

 

                                        양 수 덕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땡볕더위에 잎맥만 남은 이파리 하나
                 지하도 계단 바닥에 누워 있던 청년은

                 양말까지 신고 노르스름한 병색이었다
                 젊음이 더 이상 수작 피우지 않아서 좋아? 싫어?
                 스스로 묻다가 무거운 짐 원없이 내려놓았다
                 맆 피쉬라는 물고기는 물 속 바위에 낙엽처럼 매달려 산다
                 콘크리트 계단에 몸을 붙인 청년의
                 물살을 떨다 만 지느러미
                 뢴트겐에서 춤추던 가시, 가물가물
                 동전 몇 개 등록상표처럼 찍혀 있는 손바닥과
                 염주 감은 손목의
                 그림자만이 화끈거린다
                 채 풀지 못한 과제 놓아버린 손아귀
                 청년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세상의 푸른 이마였던 그의
                 꿈이 요새에 갇혀서
                 해저로 달리는 환상열차
                 잎사귀인지 물고기인지를 한 땀 바느질한
                 지하도 계단으로 오르내리는 이들이
                 다리 하나 하늘에 걸칠 때 

 

 

 

 심사평- 개성있는 언어 활달하게 구사

 심사위원 황지우·최정례
 
  예심을 통과해 본심의 대상이 된 열다섯 분의 작품 가운데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정수연씨의 ‘숙련공’이었다. 시를 쓰고 있는 자기 세대의 어법을 개성적으로 연출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였다. 그러나 행과 행의 관계를 긴밀하게 조직하는 힘이 부족해 보였고, ‘숙련공’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감각적인 표현에 구체적인 사유를 담지 못한 허약한 표현이 많았다. 시에서 강한 정신력과 숙련된 언어는 함께 이루어진다. ‘도원역’과 ‘아주 조금만 남은 것들’을 쓴 김우찬씨는 언어를 정제하는 작업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가 갈고 닦은 언어는 새롭다기보다 익숙하고 편안해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언어나 세계를 향한 모험이 보이지 않는다. 시에 지루한 감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200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심사위원을 맡은 시인 최정례씨(왼쪽)와 황지우씨가 본심에 오른 작품을 분석하며 의견을 나누고 있다.


  안웅선씨의 ‘창밖으로 오분’은 창을 내다보고 있는 화자의 모습을 개성적인 어조로 붙잡아내는 그 착상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아이디어를 끌고 나가는 힘이 부족해 환상으로 잇대어진 연결 부분은 실감이 부족했다. 감탄어미와 ‘치명’이라는 모호한 단어로 시의 끝을 맺고 있는 것도 안일한 수법이다.

  양수덕씨는 다른 응모자들에 비해 개성있는 언어를 활달하게 구사하고 있다. 언어에 개인적 표현이 많아 소통부재의 위험이 보이기도 하나, 당선작 ‘맆 피쉬’에서는 지하도의 걸인이라고 하는 익숙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밀한 묘사력과 참신한 비유로 대상을 섬세하게 구현해내었다.

  말은 자신의 생각을 갈고 닦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또한 우리 자신을 이 세계로 실어보낼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신춘문예의 당선을 계기로 세계 속으로 자아를 밀고 나갈 수 있는 힘도 함께 얻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황지우·최정례>

 

 

당선소감- “이제 내게도 뿌리가 생긴 것 같다”

이영경기자 

 

   시 부문 당선자 양수덕씨(55·본명 양선희)는 기자를 두 번 놀라게 했다. 첫번째는 적지 않은 나이로 ‘늦깎이 등단’을 했다는 점이었다. 두번째는 그럼에도 그의 시가 젊고 감각적이라는 것이다. 양씨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명제를 재확인시켜주었다.

  “뿌리가 없던 사람에게 뿌리가 생긴 것 같습니다. 시에서 많은 실패를 겪었고, 희망도 안 보여 스스로가 바람 같다고 느꼈어요. 제가 당선된 것은 시를 잘 써서라기보다 저 같이 뿌리없이 사는 사람들, 존재감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닐까요.”

  뿌리가 없다고 했지만, 양씨에게 시는 자신의 존재 그 자체였다. 성신여자사범대학 국문과를 졸업한 그는 세월이 흐르면서도 시에 대한 꿈을 한시도 접지 않았다. 40대 초반 자비로 시집을 내기도 한 그가 본격적으로 시 공부를 시작한 것은 8년 전. 혼자 쓰는 시는 발전이 없다는 생각에 시 공부모임에 나갔다. 지금은 서울 성북구 돈암동 시사랑회 화요팀에서 공부하고 있다.

  시에 대한 애정 하나로 외길을 걸어왔지만, 신춘문예 등에서 낙선을 거듭하며 아픔도 많이 겪었다. “한 선생님이 ‘시를 열심히 쓰다 보면 언젠가 시가 보답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큰 용기가 됐습니다. 주변사람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살았는데 이제 그 빚을 조금이나마 갚은 기분입니다.”

  당선작 ‘맆 피쉬’는 양씨의 소외된 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어느 날 우연히 지하철 계단을 오르다 목격한 젊은 걸인을 보고 가슴이 아파 시를 쓰게 됐다. “살다 보니 제가 모르는 사람도 스승이고,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도 스승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를 쓸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양씨는 지난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어머니가 너무 놀라 심장마비라도 걸릴까봐’ 나중에 조용히 당선 소식을 알렸다고 한다. “오래 지켜봐줬던 부모님, 형제, 친구, 주변사람들, 시사랑 화요팀 선생님뿐 아니라 인연 있었던 선생님들, 시사랑에서 함께 공부한 분들께 감사의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양씨에겐 시가 바로 그 자신이다. “그동안 혼자 즐기려고 시를 썼지만, 이제 사람들이 위안받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영경기자>  

 

 

<출처> 2009. 1. 1 / 경향신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