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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인천. 경기

하늘 정원에서 배운 인생, 명성산 억새밭

by 혜강(惠江) 2008. 12. 7.

 

명성산 억새밭

하늘 정원에서 배운 인생

 

 글·사진·영상=박종인 기자

 

 

 

        

 

 

    하늘 호수 위로 하늘 정원이 숨어 있습니다. 정원에는 가을이 숨어서 빙긋 웃고 있습니다. 함께 가보시지요. 자, 하늘 정원 산책.

 

 

  경기도 포천시에 있는 산정호수는 다들 아시겠지요. 산꼭대기에 뜬금없이 우물처럼 있다 해서 산정(山井)이라 합니다. 일제 때 저수지로 처음 생겼다가 지금은 농업용수보다는 관광호수로 쓰임이 바뀐 호수입니다. 한국전쟁 전까지 이곳에 김일성 별장이 있었다고 하지만,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강원도 고성에 김일성 별장으로 공식 확인된 곳이 있을 뿐.

 


  어찌됐건 인공호수이지만, 산정호수는 이 땅에서 보기 드문 하늘 호수입니다. 얼마 전 하늘로 간 최진실의 홈페이지 제목이 ‘하늘로 간 호수’였습니다.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수면을 바라보며 잠시 그녀를 생각했습니다. 오늘 최종 목적지는 호수가 아닙니다. 호수는 여름의, 흰 눈에 수면이 뒤덮일 겨울의 것. 오늘은 그 옆 명성산에 있는 억새밭으로 갑니다. 가을이라는 계절이 가장 인상적으로 시각화돼 있는 공간입니다. 지난 주말 내린 가을비로, 계절은 더욱 더 가을처럼 변했습니다. 명성산 억새밭을 저는 하늘 정원이라고 부릅니다. 왜인지는 가보시면 압니다.

 

 

          

           ▲ 나라는 어지러운데, 저 파란 하늘!

 

 

  10년 전 IMF가 터졌을 적에,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산이란 산은 온통 난리를 피한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나라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이때에, 하늘 정원으로 가는 길목에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저 한적한 수요일이겠거니 했지만, 주차장은 관광버스로 가득했습니다. 생수 한 병과 김밥 한 줄을 사서 배낭에 집어넣고 등산로로 들어갑니다. 길은 인생과도 같았습니다.

 

 

 

  슬픈 영웅, 궁예의 울음과 명성산

 

 

  명성산(鳴聲山)은 우리말로 울음산이라 합니다. 미륵불을 자처하며 변혁을 꿈꿨던 궁예. 그가 왕건에게 쫓겨가며 크게 울었던 산이라고 했습니다. 산도 함께 울었다고 해서 울음산이고, 훗날 그 뜻 그대로 한자로 옮겨 명성산이 되었습니다. 명성산 너머 철원과 이곳 포천, 그리고 한강 남쪽 안성에 이르기까지 궁예의 전설은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명성산은 그 실패한 영웅 궁예가 결국 왕건 군에 의해 죽었다는 산입니다. 망국의 한, 영웅의 꿈도 그 때 사라졌습니다.

 

 

  등산길은 팍팍한 돌길입니다. 아직 단풍은 들지 않아, 푸릇한 여름과 발간 가을이 서로에게 교직하며 사람들을 인도합니다. 마침 날이 너무도 맑아, 그 명징한 공기가 폐부 저 아래까지 속이 후련하게 파고 듭니다. 오른편에는 개울이 흐릅니다. 개울은 가을이 가득합니다. 떨어져내린 낙엽들이 한치의 벌어짐도 없이 빽빽하게 개울을 메웠습니다. 내년 봄이면 영양분 가득한 거름이 될 올해의 잎새들입니다. 새소리, 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 팍팍한 돌길을 올라갑니다. 구두를 신고도 충분히 오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폭포 위로 용이 무지개를 타고 승천했다고 했습니다

 

 

  길 중간쯤에 등룡폭포(登龍瀑布)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3단으로 이뤄진 제법 큰 폭포입니다. 무지개를 타고서 용이 승천했다지요. 폭포 아래에 있는 소(沼) 또한 한해를 즐겁게 산 도토리나무 잎새들이 헤엄을 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기 바쁩니다. 님은 이곳에서 시간을 많이 없애지 마십시오. 우리의 하늘 호수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폭포 한번 일별하고, 땀 한번 씻어내고,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출발.

 

  이정표가 나왔습니다. ‘억새꽃밭 1.0km 험한 길’과 ‘억새꽃밭 1.2km', 당신은 어떤길을 택하실 건가요? 저는 험하지 않은 길을 택했습니다.

 

      

            ▲ 인생은 선택입니다

 

 

  산 것들 중 싸우지 않은 것이 있을까

 

 

  윤현수라는 사진가가 그의 책에서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무릇 산 것들 중 싸우지 않은 것이 있을까.’ 우리는 언제나 싸웁니다. 자아(自我)와 싸우고, 적과 싸우고, 스스로 남의 적이 되지 않기 위해 싸웁니다.

 

  명성산 하늘호수로 가는 길에는 이렇듯 내가 ‘산 것들’ 가운데 하나입을 입증하게 하는 요소가 많습니다. 동일한 목적지임에도 한 길은 ‘험로’라고 적어놓았고, 또 어딘가에는 ‘등산로 아님’이라는 팻말을 박아놓고 도전의식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수영 금지’라고 붙여놓고 뛰어들 자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등산로가 아니라면 절대로 가지 않고, 험한 길이라고 적힌 길은 절대로 가지 않는 속 좁고 간 작은 사내이기에, 저는 그리 많이 싸우지 않고 편안하게 길을 이었답니다.

 

  등룡폭포 위쪽으로 길이 이어집니다. 여기까지 팍팍한 돌길을 30분 정도 올랐는데, 한눈에 봐도 70은 된 노할머니께서 나무 지팡이 하나 의지해 제 옆을 스쳐갑니다. 그만큼 ‘등산이라 하기에는 어딘지 민망한’ 산길이 이어집니다. 땀을 닦으며 개울을 보니 등룡폭포 맨 위의 첫 번째 소(沼)가 광채를 가득 머금고 있습니다.

 

 

            

▲  때로 인생은, 광채이기도 합니다

 

 

  광채(光彩). 요절한 소설가 최명희의 소설 제목이 ‘혼불’입니다. 혼(魂)의 불이지요. 모든 생명은 스스로 가지고 있는 불꽃을 태우며 존재합니다. 세상이 하수상하여, 많은 사람들이 혼불의 불씨를 지필 의지를 잃고 있는 이 즈음, 맑은 날 골라 등룡폭포 제1소 광채를 만나보십시오.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낙엽에 에워싸여 찬란하게 불타는 그 작은 소의 생명을.

 

 

          

            ▲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지난 계절을 그리는?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붉은 단풍잎, 그리고 지난 계절이 아쉬워 연록색 빛을 놓치 않고 있는 커다란 잎새들을 구경하며 서서히 고도를 높입니다. 여전히 길은 팍팍하고 다리 근육의 긴장감은 강도가 높아가지만, 기분은 정말 좋습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길섶에 매복하고 있던 하늘 정원의 선봉대, 억새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약수터에서 한숨 돌리고 다시 길을 잇습니다. 제법 몸이 힘듭니다.

 

 

나를 반긴 가을, 그 찬란한 하늘정원

 

 

  부푼 기대를 안고서 폭포에서 길을 이은 지 30분 여. 마침내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파란 하늘 위로 탈지면 뜯어놓은 것처럼 구름들이 흘러갑니다. 푸르름과 붉은 단풍색 일색이던 등산로에도 새하얀 억새들이 점점 늘어갑니다. 울울창창하던 옷을 벗고, 나목(裸木)으로 변신 중인 숲길이 나왔습니다. 길은 제법 가팔라집니다. 거기에서 누군가가 소리쳤습니다. “저거다, 저거!”

 

 

   하늘과 맞닿은 길 끝 양편으로 새하얀 어떤 존재가 펼쳐져 있습니다. 억새밭입니다. 지금까지의 ‘길’과 전혀 다른 분위기. 걸음을 뗄 때마다 하늘로 곧추 서 있던 모든 존재들이 갑자기 수평으로 변합니다. 군 초소가 보이고, 그 뒤로 드디어 하늘 정원이 나타났습니다.

  

 

       

        맨 처음 제가 본 것은 연인들이었습니다

 

 

 

   연인들이 억새밭 초입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냅니다. 표정에서, 몸짓에서 그들의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잘 정비된 오솔길을 따라 길을 걸었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꽃밭이기에, 대신에 아래에 있는 사진들을 보십시오. 모두 클릭하면 큰 사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정원에 다녀왔습니다. 하늘 위에 꽃밭이 있었습니다. 억새가 가득 피어 가을을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오솔길은 하늘 끝으로 연결돼, 거기에서 슬픈 사내 궁예와 만났습니다. 꼭대기에 서 있는 팔각정에 오르니 산 너머 철원 땅이 보이고, 그 뒤로 아득하게 산줄기가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연인들은 서로 사진을 찍는데 여념이 없었고, 여기저기에서 감탄사가 새어나왔습니다.

 

 

   팍팍한 돌길을 걸어와 개울을 물들인 광채를 보았고, 땀을 흘렸습니다. 계절을 무시하고 지난 시절을 그리는 녹음(綠陰)이 있었나 하면, 남보다 앞서 봄을 준비하는 붉은 단풍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닿은 하늘정원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그저 하늘과 직접 대면하며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세월이 그러합니다. 모두가 저마다의 이유로 숨가쁘게 선택을 하며 사는 것. 이 가을, 명성산 하늘 정원에 가시길 권합니다. 바람에 울어대는 억새의 노래, 그리고 그 노래 위로 흘러가는 계절의 변화를 느껴보십시오. 오늘은 여기에서 맺습니다.

 

 

 

  ::: 여행수첩

▲ 가는 길
:전국 어디서든 의정부~동두천~포천을 잇는 43번 국도를 타면 된다. 가는 길 곳곳에 이정표가 모범적으로 잘 돼 있으니 길 찾는 데 문제는 없다. 지도는 생략.


▲ 사진 촬영 팁 하나:억새를 찍을 때, 역광이 순광보다 훨씬 좋다. 환하게 빛나는 억새를 찍을 수 있다. 억새밭 서쪽 사면은 능선이 얕아서 오후에 가면 태양광이 억새에 비춘다. 이쪽 역광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동쪽 사면은 높이가 높아서 역광 효과 내기가 어렵다.

▲ 자가운전시:43번 국도는 교통 체증으로 악명이 높다. 따라서 퇴근 시간을 피해 일찍 집으로 출발하는 센스!

▲ 추천 숙소:산정호수가족호텔(www.sanjunghotel.co.kr). 각종 펜션도 많고 콘도도 있지만, 펜션들은 길 가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콘도 또한 호수, 산과 많이 떨어져 있다. 이 호텔이 위치가 가장 좋다. 호숫가에 있고, 등산로 입구까지 도보로 이동 가능. 이 호텔 식당에서 1인분 1만원에 삼겹살 정식을 먹을 수 있다. 객실요금은 8만원부터.  (031)5...

▲ 여행정보

 

1.포천시청 홈페이지(www.pcs21.net):명성산을 비롯한 시 관내 관광지의 역사, 문화적 유래도 설명해놓고 있다. 숙박 및 음식점 정보도 많다.
2.산정호수관광지부(www.sanjunghosu.net):산정호수 관광업계 홈페이지. 먹거리, 숙소 및 주변관광지 소개

 

 

<출처> 2008. 10. 30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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